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7 악몽이 깃든 늪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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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0 짙은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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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 보육 구역

새벽

386 보육 구역 새벽

"모든 창작은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에서 출발해야 하며, 이야기는 인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만 비로소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리브는 식탁에 앉아 커뮤니티 게시글을 단말기로 넘겨보고 있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제목이 있었지만, 어쩐지 정신이 산만해져 제대로 읽지 못했다.

음...

요즘 들어 비슷한 내용만 보는 것 같았다. 어제도...

(어제... 어제는 무엇을 봤지?)

리브의 사고는 느닷없이 찾아온 공백에 빠져, 어제의 일을 떠올릴 수 없었다.

똑똑똑...

작은 동물이 내는 듯한, 아주 희미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

깜짝 놀란 리브가 고개를 돌려 문 쪽을 쳐다보았고, 그녀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커피 두 잔을 들고, 식탁으로 접근하려던 인간 지휘관마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리브?

아... 아! 죄송해요.

지휘관의 시선에 몇 초간 멍하니 있던 리브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허둥지둥 문으로 달려갔다. 문밖에는 파란 머리 여자아이가 겁을 먹은 채 서 있었다.

리브가 문을 열자, 여자아이는 조심스럽게 과일을 내밀었다.

조... 좋은 아침이에요!

리브는 몸을 낮춘 뒤, 아이슬링의 미소에 화답하면서 과일을 받았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이슬링. 챙겨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매일 이렇게 과일을 가져다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리브는 아이슬링과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잠시 멈칫했다. 이 짧은 침묵이 대화를 이어가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리브의 의식 속에는 작은 동요가 일었다.

두 분이 아이슬링을 도와줬잖아요. 신선한 과일로... 보답하고 싶어요.

아이슬링은 잠시 고개를 저었다가 끄덕이더니,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엇! 잠깐만...

리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슬링은 이미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리브는 미처 인사할 겨를도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손에 든 과일을 들고 방으로 돌아와 업무를 시작한 인간 지휘관의 곁에 내려놓았다.

아이슬링이 또 왔었어?

제가 몇...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계속 오네요.

지휘관님? 아직도 일하고 계신 거예요?

광산과 관련된 임무 기록을 정리해서 공중 정원으로 보내고 있어.

광산과 관련된 임무 기록이라면... 광산의 이합 생물을 소탕하는 그 임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리브는 의아한 마음에 지휘관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지휘관은 단말기 스크린을 끄고는 리브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갱도 안에 대형 이합 생물이 나타나서 다른 이합 생물들을 지배하는 것 같아. 그래서 이번 임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지휘관은 단말기를 닫은 채, 갱도의 "이상 현상"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리브가 잠시 멈칫했다가 말을 이어가려던 순간, 지휘관이 갑자기 그녀의 말을 끊었다.

멜리노에?

지휘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방금 아이슬링이 서 있던 자리에 멜리노에가 와있었고, 리브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리브.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멜리노에를 비추자, 서서히 의식이 맑아진 리브는 가늘게 눈을 뜨며 주변을 살폈다.

리브는 멜리노에와 담소를 나누며 보육 구역의 중앙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알려주신 의료 기술은 아주 유용했어요. 휴대하기 편하게 작은 책자로 만들어서 나눠주면, 다들 외출할 때 더 안전해질 거예요.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리브가 보육 구역 너머를 바라보자, 짙은 안개가 산봉우리들을 감싸 하늘과 땅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주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신가 봐요?

관심 없는 게 아니라,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당신이... 이 소식을 들으면 기뻐하실 줄 알았어요.

물론 기쁘죠. 조금 전은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리브는 시선을 거두고는 몸을 돌려 멜리노에를 바라보았다.

이젠 저를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것 같네요.

...

처음 만났을 땐, 솔직하게 대화를 나눴지만, 저와 지휘관님을 경계하셨잖아요.

그... 그러면... 안 되는 거였나요?

전... 아이슬링 덕분에 저희의 관계가...

왠지 미묘해진 분위기를 이어가며, 중앙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고, 그 사이로 익숙한 파란 머리의 아이가 어렴풋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멜리노에는 일부러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 재잘거리는 아이슬링을 멀리서 바라보며 화제를 돌렸다.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아이슬링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때, 두 분이 그곳에 안 계셨더라면...

그때 말이죠.

리브는 멜리노에가 무심코 내뱉은 단어를 날렵하게 붙잡았다.

네?

대화가 갑자기 끊기자 멈칫한 멜리노에는 고개를 돌려 의아한 표정으로 리브를 바라보았다.

그때, 저와 지휘관님이 없었다면 아이슬링은 갱도에서 사라졌겠죠?

네... 맞아요. 두 분이 아니었다면, 며칠 전 갱도에서 죽었을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말씀하신 "며칠 전"이란, 정확히 "몇 일"을 의미하는 건가요?

...

아이슬링을 보육 구역으로 데려온 지, 벌써 며칠이 지났죠, 멜리노에?

아이슬링에게 새로운 입양 가정을 찾아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입양" 건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리브의 말투에서 온화함이 점차 사라졌다.

죄송해요.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다만,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요.

아이슬링이 말썽을 피워서 불편하신 건가요?

아이슬링은 상관없어요. 멜리노에 .

누군가가 지휘관님을 숨기고 있어서, 제가 기분이 좀 언짢네요.

식탁에서 시작된 몽롱함이 현재까지 계속되는 동안, 리브는 기체 안의 감각 모듈을 조회하며 조각난 부조화의 파편들을 정리했다.

흐릿해진 시간, 무한히 늘어나는 가을, 그리고...

리브가 눈을 내리깔았다.

리브,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정말 잘 모르겠어요. 어디 안 좋으세요?

아주 실감 나게 형상을 만들어내셔서, 저도 진짜라고 착각할 뻔했어요.

리브는 무언가 생각난 듯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니었어요.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님이 아니었다고요.

말을 마친 리브는 미소를 거두고, 무표정하게 멜리노에를 응시했다.

말해요. 그녀는 지금 어디 있죠?

갱도

시간 불명

갱도 시간 불명

갱도는 뱀의 배처럼 땅속에 구불구불 뻗어 있었고, 단말기의 휴대용 조명은 바로 앞 구역만 비출 수 있었다.

우린... 지금... 어디에 있는 거예요?

겁에 질린 목소리가 끊어질 듯 들려왔고, 고개를 숙인 지휘관은 주변을 경계하며 곁의 아이를 다독였다.

지휘관은 아이슬링을 안심시키면서, 모퉁이를 돌 때면 비수로 벽에 흔적을 새겼다.

비수가 움직일 때마다 팔에 단단히 감겨 있는 옷끈이 위아래로 펄럭였고, 자연스레 시선이 그곳으로 쏠리자, 얼마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얼마 전, 둘은 여자아이를 데리고 갱도를 벗어나려 했다.

그때, 갱도 안에서 천둥같이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얼마 전의 폭발이 일으킨 유발 지진 때문인지, 갱도는 간헐적으로 흔들렸으며, 가끔 암석층이 갈라지는 소리까지 전해졌다.

으윽...

리브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발걸음을 멈췄다.

리브의 요동치는 의식의 바다를 진정시키는 가운데, 지휘관 역시 갑자기 바늘로 찌르는 듯한 두통을 느끼게 됐는데, 눈앞의 풍경이 점차 갈라졌다가 다시 겹쳐 보였다.

지휘관은 광물의 영향인지 이합 생물의 영향인지 판단할 시간도 없이, 거칠게 겉옷의 옷끈을 뜯어냈다.

지휘관님?

그러고는 옷끈을 리브와 자신의 팔에 단단히 묶었다. 이렇게 하면, 설령 둘 다 정신이 혼란해져도 서로를 잃어버리진 않을 터였다.

괜... 괜찮으세요?

겁을 먹은 아이슬링이 옷자락을 잡아당기자, 지휘관은 회상에서 빠져나왔다.

끊어진 옷끈은 팔에 단단히 묶여 있었지만, 옷끈 끝에 연결된 리브는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머리에 격렬한 통증이 밀려오자, 지휘관은 비틀거렸고, 하마터면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

왜... 그러세요?

리브와 헤어지게 된 후, 무언가가 계속 지휘관의 의식을 공격하려 했다. 혹은... 리브와 연결된 그녀의 마인드 표식을 공격하려 했다.

이 공격은 여러 번 반복되었지만, 결코 방어선을 뚫지는 못했다. 지휘관은 정신을 차리고 암벽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지휘관은 아이슬링을 데리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며, 갈림길마다 리브와 자신을 위한 흔적을 남겼다.

368 보육 구역

새벽

386 보육 구역 새벽

리브는 나무 그늘에 꼼짝하지 않고 서서 멜리노에를 응시하고 있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멜리노에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올라갔다.

들킨 건가요?

그럼, 이제... 여기는 가치가 없겠네요.

멜리노에가 뒤틀리고 쉰 목소리를 내뱉더니, 영혼을 잃은 꼭두각시처럼 리브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것도 위장한 모습이었네요.

발밑의 흙이 썩으면서 무너졌고, 끝이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처럼 지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리브가 공중으로 뛰어오르자, 하늘이 거울처럼 산산조각 나며 해체되었다.

!

의식의 바다에서 비정상적인 메아리가 울렸고, 갱도의 낮고 얕은 웅얼거림이 가장 먼저 청각 시스템을 채웠다.

리브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칠흑 같은 어둠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지휘관은 여전히 곁에 없었고, 바닥에서는 지진처럼 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눈에 들어오는 건 깊고 어두운 갱도, 물방울이 떨어지는 종유석, 기이한 빛을 내뿜는 광물 그리고 거대한 뱀의 등뼈처럼 구불구불한 심연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이 갱도를 떠난 적이 없었다.

의식의 바다에서 조각난 고통이 전해져 왔고, 기억은 수만 개의 찰나 속에서 끊임없이 분리되었다가 다시 만들어졌다.

그러다, 모든 기억이 한 지점에서 멈춰 섰다.

왜 거기 누워... 자는 거예요?

아이는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바닥에 누워 있는 두 어른을 의아하게 바라볼 뿐, 왜 일어나서 계속 걷지 않는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곧 일어날 거예요.

리브는 쪼그려 앉아 여자아이를 안아주면서 바닥의 피범벅이 된 시체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게 했다.

지휘관님, 아이를 데리고 다음 갈림길까지 먼저 가 주시겠어요?

저는 이곳을 정리한 뒤 바로 따라갈게요.

바로 그때, 갱도 안에서 천둥같이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부터 시작된 걸까?)

리브는 감지 모듈에 남아 있는 불쾌감을 애써 진정시키며, 단말기를 꺼내 지휘관에게 통신을 시도했다.

뚜...

단말기에서는 힘없는 불통 신호음만 울렸고, 통신은 완전히 두절되었다.

리브는 단말기 통신을 포기하고는 눈을 감은 채 의식의 바다에 집중하여 지휘관의 마인드 표식을 포착하려 시도했다.

으윽...

시각 모듈이 격렬하게 떨리면서, 주변의 모든 풍경이 수많은 그림자로 겹쳐 보였다.

그 모습에 리브는 의식의 바다에서 진행하던 작업을 강제로 중단했다.

그녀는 갱도 벽에 기대어 시각 모듈의 파동을 조정하며, 손바닥을 문질러가다가 불규칙한 흔적을 느꼈다.

!!!

이건... 지휘관이 남긴 표시였다.

"이쪽에서 진입한다"라는 의미를 대표하는 삼각형 기호가 거친 암석층 표면에 새겨져 있었다.

그 위치에서 돌아서니, 또 하나의 표시 기호가 보였다.

길을 따라 조금 더 앞으로 가자, 리브가 그 "양부모"를 묻었던 갈림길이 나왔고, 이곳은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다. 임시로 막아둔 갈림길의 입구는 그녀가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낙석과 흙으로 덮여 있었다.

그 후...

암벽을 더듬던 중, 갑자기 들려온 부름에 리브는 발걸음을 멈췄다.

????

아이슬링.

멜리노에?

시각 모듈은 의식의 바다에 교란받았지만, 청각 모듈은 멀쩡했기에, 리브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멜리노에가 어떻게 갱도에...

설마, 아직 "환상" 속에 있는 것일까?

숨을 죽인 리브는 천천히 멜리노에의 목소리를 따라 걸어갔다.

아이슬링... 여기 있니? 아이슬링?

멜리노에는 깊고 어두운 갱도를 초조하게 헤매며, 이합 생물을 자극할까 봐, 걱정됐는지 낮은 목소리로 아이슬링의 이름을 불렀다.

아이슬링? 들리니? 내 목소리 들려?

멜리노에는 이 갱도도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불과 20분 사이에, 그녀는 이 갈림길을 서너 번이나 왕복했고, 매번 다른 갈림길로 잘못 들어섰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리브는 갱도 안을 헤매는 멜리노에를 신중하게 지켜보았다.

리브는 멜리노에를 신뢰하지 않았다.

배후에 있는 존재가 누구든 간에, 이 환상을 조종하는 자는 멜리노에를 잘 알고 있으며, 그녀를 환상 속 핵심 인물로 삼을 정도라면...

그것만으로도 멜리노에가 결백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었다.

다만...

리브는 마음속으로 저울질했다.

리브는 자신이 시각 모듈에 문제가 생겨 "길을 잃은 것"이 의식의 바다 파동 때문인지 아니면 갱도의 지형이 정말로 바뀐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통신에 문제가 생겨 지휘관에게 직접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이고, 만약 의식의 바다를 다시 정리해, 지휘관의 마인드 표식을 포착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 갱도에 나타나는 누구든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었다. 리브는 이 위험한 환상 속에 지휘관을 혼자 둘 수 없었기에 최대한 빨리 합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슬링... 거기 있어?

가까운 갱도 안에서 멜리노에는 슬픈 유령처럼 떠돌며, 아이슬링의 이름을 반복해서 읊조렸다.

...

다시 한번 시각 모듈을 강제로 교정하고 전투 모듈의 정상 작동을 확인한 리브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멜리노에... 당신인가요?

누구세요? 거기 누구세요?

멜리노에는 겁에 질려 한 걸음 물러나 벽에 기댔다.

저예요. 리브.

리브는 숨어 있던 어두운 갈림길에서 걸어 나왔다.

당신 목소리가 들려서...

다행이에요! 정말 당신이군요!

리브의 신원을 확인하자, 멜리노에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혹... 혹시 아이슬링을 보셨나요?

아이슬링...

아... 당신은 아직 그 아이의 이름을 모르시겠군요.

멜리노에의 눈빛에 담긴 다급함과 간절함은 진실되어 보였다.

전에 죽 한 그릇 주셨던 아이인데... 도와주신 적도 있고요. 기억나세요? 파란 긴 머리에, 황갈색 눈동자를 가진 여자아이요!

그 아이 이름이 아이슬링인가요?

네. 제... 제가 지어준 이름이에요.

그 애를 입양했던 가족은 그렇게 부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 됐죠.

멜리노에가 슬프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또 그 아이를 잃어버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