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 보육 구역 진입 전
수송기
공중 정원
우주 항
공중 정원, 우주 항, 수송기.
"진화", 그리고 의식의 바다... 지휘관이 손에 든 임무 보고서를 넘기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누군가가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
지휘관이 무의식적으로 감사 인사를 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리브는 이미 손길을 거두었고, 수송기의 출입구에 설치된 장비 앞에 서서 홍채 인식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있었다.
신원 인증이 완료되었습니다.
신원 확인을 마친 리브는 돌아와 치맛자락을 여미고 다시 자리에 앉아, 고개를 내밀어 지휘관의 단말기를 들여다보았다.
이건 얼마 전의 임무 보고서잖아요.
단말기 화면에는 "완료" 표시가 찍힌 임무들이 나열돼 있었다.
신형 여과탑 설치 협조 완료. 보육 구역 주위 이합 생물 처치 완료.
그리고... 히포크라테스 교수가 요청했던 과제 리소스 임무도 완료 상태였다.
기체 적합 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새로운 임무를 받았지만, 이번 임무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휘관님?
리브는 멍하니 앉아 있던 인간 지휘관의 손에서 컵을 가져가, 따뜻한 물을 조금 더 채워 컵을 책상 위에 놓았고, 그녀 역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루시아와 리의 단말기에 메시지만 남기고, 직접 알리지는 못했어요. 정말 괜찮을까요?
곧 만날 수 있을 줄 알고, 뭐 좀 챙겨주기로 약속했었는데...
이 갑작스러운 사건만 아니었다면, 둘은 루시아와 리처럼 보육 구역을 오가며 여과탑을 교체하고 구역의 안전을 지켰을 터였다.
지휘관이 말을 이어가고 있을 때, 리브는 다시 수송기 문에 새로 설치된 신원 인증 장비에 시선을 돌렸다. 문이 닫히자 깜박이던 불빛이 꺼졌다.
수송기에 누군가를 몰래 태워서 공중 정원으로 들어가게 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네요.
단말기 화면의 보고서에는 한 남성의 증명사진이 표시되었고, 리브는 몸을 살짝 기울여 화면 하단의 정보 내용을 읽었다.
콜먼·렘브란트... 보아하니 정신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네요.
그가 제공한 정보를 믿어도 되는 걸까요?
생각에 잠긴 사이, 눈앞의 콜먼 사진이 점점 선명해지며 과거의 기억과 겹치더니... 이내 생생한 화면으로 되살아났다.
하루 전
취조실
공중 정원
감사원
공중 정원, 감사원, 취조실.
지휘관이 명령을 받고 취조실에 도착했을 때, 하산은 감사원의 직원들과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상자의 이송부터 취조실 입실까지 전 과정을 감사원이 직접 수행했습니다. 그러니 정보가 새어 나갈 위험은 없습니다.
문제의 수송기 승무원도 모두 처리했고, 일부러 흔적까지 남겨두었으니, 누군가 그 미끼를 물면 즉시 추적하겠습니다.
좋아. 아, [player name], 왔군.
의장이 몸을 돌리자, 옆에 있던 라스티가 지휘관에게 눈인사를 건네고는 곧바로 돌아서 자리를 떴다.
하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가라고 손짓하자, 지휘관은 하산의 시선을 따라 앞을 바라보았다.
단방향 투명 유리 너머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한 남성이 감사원의 심문관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제 내가 말했던 "선택지"를 기억하나?
어느날, 너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진실된 멸망과 거짓된 존속, 이 두 가지 밖에 없다면, 넌 어떤 선택을 할 텐가?
톨리드는 우리 대신 선택을 한번 해줬지.
난 자아의 파멸이 두려운 게 아니라, 여태 싸워온 만큼, 모든 게 의미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일 뿐이지.
지휘관과 하산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유리 너머의 콜먼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감청용 이어폰 없이도 희미하게 들릴 정도였다.
내가 이미 충분히 말했잖아!
나머지는 공중 정원의 주민 신분을 보장받기 전까지는 말 못 해!!
하산이 건넨 이어폰을 착용하자, 취조실 안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진정하세요. 그렇게 큰 소리로 자신의 요구를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심문관은 의도적으로 잠시 말을 멈췄다.
제공하신 정보가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절차에 맞는 요구라면 들어드리겠습니다.
주민 신분을 대가로 드리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임시 체류 신분을 보장해 드릴 수 있으니, 정보 확인이 순조롭게 끝나면 정식으로 전환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임시... 임시 따윈 싫어! 다시 지상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난 분명히 말했어! 지금 당장 공중 정원의 주민 신분을 줘! 그딴 핑계로 날... 으...
강한 불빛이 콜먼의 눈을 찌르자 방금까지 흥분했던 그는 적응하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심문관이 손가락을 튕기자, 배후의 강한 불빛이 다시 꺼졌고, 상대를 달래는 듯한 말투도 어느새 감정이 배제된 차분한 말투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제 말을 끝까지 들으세요. 정보가 확인되고, 당신이 제공한 내용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주민 신분은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허세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절차는 그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공중 정원의 관리 법안 규정에 따르면, 개인 및 조직이 지정된 관문을 회피하거나, 위조 또는 조작된 증명서를 사용하여 통과하려 하거나, 운송 수단 또는 특수 장비에 숨어 공중 정원에 불법적으로 침입하는 행위는...
불법으로 간주하며, 구체적인 정황에 따라 처리될 것입니다.
나... 아니, 나는...
또한 공중 정원의 관리 법안 규정에 따라, 부당한 이득을 위해 기만행위로 재물을 속여서 뺏으려는 행위는 사기죄에 해당합니다.
공중 정원의 영구 주민 신분은 공공 또는 개인 재물에 속하지는 않으나, 중요한 관리 자원으로 분류되어 해당 법안이 적용됩니다.
콜먼·렘브란트, 이제 진중한 태도로 제 질문에 다시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 나는... 후우... 나는...
그는 몸을 바르르 떨며 얼굴을 붉혔고, 어떤 행동을 취하려 했지만, 심문관의 태도에 주눅이 들어 결국 움직임을 멈췄다.
나, 나는... 비밀을 들었어. 의식의 바다에 관한 비밀이야.
지휘관이 의아한 눈으로 하산을 쳐다보자, 하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들어 보라는 눈치를 줬다.
그날, 난 광산에서 튀어나온 이합 생물한테 물려서 의무실에 갔었지. 의무실의 멜리노에 선생님이 진통제를 주고는 거기서 잠시 쉬다가 가라고 하셨고.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었는데, 진통제가 유통기한이 지난 거였는지 효과가 금방 떨어진 거야. 정신이 흐릿해졌을 때 어렴풋이 누군가의 대화 소리가 들렸어.
아마 두 명? 아니다, 남자 세 명이었을 거야. 낮은 목소리로 아주 은밀하게 얘기하더라고. 최근 광산 거래 때문에 갱도 깊숙이 들어갔다가, 뭔가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거야.
그놈들이 그 갱도 안에... "의식의 바다", "진화"와 관련된 정보가 있다고 했어. 그리고 그걸 밖으로 가져올 수만 있다면...
맞아.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수상해.
단방향 유리판 뒤에서 하산은 시선을 내리깔고는 단말기로 전송된 데이터를 살폈다.
우연히 소식을 엿들었고, 우연히 공중 정원에 들어와, 또 우연히 여기까지 이야기를 끌고 왔다...
공중 정원의 검문 절차는 엄격했다. 지상에서 물자를 싣고 오는 수송기는 공중 정원에 진입할 때 반드시 게슈탈트의 스캔 검사 절차를 거쳐야 했다.
컨테이너에 몸을 숨기고 몰래 들어오려는 보육 구역 주민이든, 숨어 있는 이합 생물이나 침식체든, 게슈탈트의 스캔은 어느 하나도 놓친 적이 없었다.
세리카가 과학 이사회를 통해 최근 며칠간의 게슈탈트 스캔 데이터를 전부 조회했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어.
과학 이사회에서 게슈탈트의 스캔 검사 프로그램을 세 번 교차 검증했으나 오류는 없었고, 정비 부대에 넘겨 추가 검사를 진행했지만 역시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어.
감사원에서 콜먼의 소지품을 조사해서 게슈탈트 신호를 직접 차단할 수 있는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는 중이야.
때마침 하산의 단말기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감사원에서 온 메시지군. 콜먼의 소지품에서는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네.
감사원의 직원들도 그렇게 생각했었지. 주워들은 몇 마디로 이득을 뜯어내려는 기회주의자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지상에 버려진 연구소는 널려 있으니, 몇 가지 기밀 정보를 우연히 알게 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야. 하지만...
다만, 그 키워드들이 "진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까지 알아서는 안 됐어.
하산이 옆 의자에 앉자, 옆에 쌓여 있던 심문 자료가 살짝 기울어지면서 종이 몇 장이 드러났다.
종이 위엔 굵은 글씨로 "의식의 바다", "진화"라는 단어가 적혔고 밑줄까지 그어져 있었다.
어찌 됐든, 콜먼·렘브란트는 이 내용을 알아서는 안 돼.
콜먼·렘브란트의 정보 출처를 파악해야만 해. 그리고 이건 자네에게 맡길 수밖에 없겠군.
하산이 단말기를 꺼내 몇 번 조작하자, 지휘관의 단말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소탕 임무. 목표: 368 보육 구역.
이 임무만을 맡기겠어.
그 외의 일은... 스스로 판단하도록.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떠났다.
취조실의 문이 다시 닫히고, 실내 조명의 변화 속에서 하산의 얼굴에 명확한 음영선이 드리워졌다.
그는 다시 이어폰을 착용했다. 콜먼·렘브란트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들려왔지만, 그의 생각은 이미 멀리 떠나 있었다.
면역 시대 말기
야심한 밤
면역 시대 말기 야심한 밤
수송기의 굉음이 화염에 휩싸인 밤을 가르며 울려 퍼졌고, 위태로운 폐허 위에서 시멘트 파편이 떨어져 나와, 드러난 철근과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냈다.
귀를 찢는 금속의 굉음과 총성의 포효, 모든 정황이 교전 중인 양 측이 보통의 인간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었다.
...
이곳은 최전선이라 위험하니, 수송기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괜찮아, 보게 해줘.
젊은 시절의 하산이 아래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에선 정예 장비를 갖춘 구조체들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침식체가 점령한 구역을 파고들고 있었다.
D-3구역에서 대형 침식체 발견! 반복한다. D-3구역에서 대형 침식체 발견!
저격수가 위치 확보...
F-5 구역 사상자 발생. 부상 3명, 전사 1명!
알았다. 지금 지원하러 가겠다!
하산은 눈앞의 난간을 붙잡고 서서 이어폰으로 아래의 전황을 실시간으로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구조체가 침식된 원예 로봇의 거대한 도끼날을 막아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여기는 위험합니다. 게다가 임무 동행은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저들을 좀 더 보게 해줘.
입안에서 피비린내가 배어 나왔고,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하산은 탐욕스러울 정도로 거리의 모든 것을 눈에 담으려 했다.
저들을 좀 더 보게 해줘.
구조체 하나가 강력한 기체의 능력으로 침식체의 도끼날을 쳐냈고, 푸른 아크가 침식체 무리 속에서 터지며 몇몇 침식체를 동시에 경직시켰다.
지원하러 온 분홍색 구조체는 부상자를 힘겹게 부축하며, 부유 캐논으로 퇴각하는 동료를 엄호했다.
임무 동행 시간이...
알아. 조금만 더...
하산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었다.
하산의 시선은 민첩한 분홍색 구조체를 쫓았다. 그녀는 날렵한 흰 비둘기처럼 포화 속을 누비며, 부유 캐논으로 부상자를 향하는 침식체의 공격을 정확하게 막아냈다.
이들은 실전에 투입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첫 군용 구조체였다.
의식의 바다 안정성이든, 전반적인 작전 수행 능력이든, 그들은 병사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하산은 여기를 다시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전투 중인 구조체들을 다시 한번 보고, 또... 그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이 행성을 다시 한번 보았다.
구조체들의 협공으로 침식체의 수가 점차 줄어들고 안전 구역이 넓어지자, 병사도 더는 하산에게 수송기로 돌아가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이 도시는... 곧 인간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제 곧 반격의 시대가 시작되겠군.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포화가 도시의 다른 방향으로 옮겨간 것을 본 하산은 입술을 깨물며 수송기로 발길을 돌렸다.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자.
알겠습니다.
수송기가 서서히 이륙했다. 높은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지상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폐허는 엇갈리는 포화 속에서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렸고, 전자 차단막이 침식체가 감히 넘보지 못할 임시 방호 구역을 만들어 냈다.
수십 년 동안, 퍼니싱은 인간이 지구에서 수천 년간 쌓아 올린 문명의 결실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며, 인간을 깊은 우주로 내몰았다.
하지만 오늘부터...
불씨는 다시 타오를 것이다.
하산은 여전히 전진하는 전선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이제 이 도시는 다시 인간의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반격의 시대 시작이다.
수송기 창문에 아래의 풍경이 비치는 가운데, 시선이 닿는 곳에서는 후속 지원 구조체들이 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인간은 지금처럼 조금씩 자신들의 고향인 지구를 되찾을 것이다.
찰칵...
심문이 중요한 단계에 접어들며, 알림음이 하산의 의식을 기억 속에서 끌어냈다. 이어, 콜먼·렘브란트의 자술이 헤드셋을 통해 들려왔다.
그놈들이 그 실험실 안에... "의식의 바다"와 "진화"에 대한 정보가 있다고 말했어. 그리고 그걸 가지고 나갈 수만 있다면, 대서양이나 아딜레 쪽에서 분명 이 기술에 관심을 보일 거라고 했어.
의식의 바다, 생명의 나무, 분기점. 중요한 키워드는 정말 이게 다야.
그는 자세를 조금 고쳐 앉고, 손에 들고 있던 접힌 종이를 펼쳤다. 등불 아래, 손으로 그린 거대한 나무가 펼쳐지며 그 모습이 드러났다.
구조체를 선점한 덕에 공중 정원과 인간은 반격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게슈탈트 내부에 숨겨져 있어야만 했던 정보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이것 또한 인류에게 어떤 놀라움을 안겨줄까?
찰칵...
이어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은 하산은 문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 이후의 심문은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고, 그에겐 처리해야만 하는 일이 수없이 많았다.
앞으로 어떤 형태의 도전이 닥쳐오든, 하산은 공중 정원을 이끌고 그 파도의 최전선에 서야만 했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다.
문이 다시 한번 열렸다가 닫혔고, 어두컴컴한 취조실에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문답 소리만이 남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