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3 밤의 장막 너머의 빛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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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1 별들이 보낸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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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낯이 시야 속에서 갑자기 회전했다.

어렴풋이, 의식 속의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수많은 윤회를 겪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파오스에 등록하러 오셨나요?

야... 야!

쳇. 정신 차려! 졸업 모의고사 때문에 엄청 열심히 하는구나. 수석!

교가가 강당에서 멀고도 흐릿하게 울려 퍼졌고, 옆에선 아직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바네사가 살짝 짜증 난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냐고? 수석님~ 설마 졸업 시뮬레이션 작전 준비하느라 밤새워 공부하다가 해마체가 망가져서 기억 상실된 거 아니지?

흰 머리 소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단말기를 확인했다.

이제 곧 졸업생 대표의 연설 시간이라고.

그런데 지금...

바네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 교복도 갈아입지 않았네.

의식이 흐릿한 와중에도 뒤섞인 기억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나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이 튀어나왔다.

하. 어차피 단상에 올라가 연설할 사람은 내가 아니야. 그러니 내가 교복을 입지 않아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어.

곧 네가 올라가서 연설할 시간이라고.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됐어. 굳이 따지지 않을게.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죽을 사람은 내가 아니거든. 난 단상에 올라가서 연설할 필요도 없으니까.

생각이 억지로 "올바른 기억"을 다시 짜맞추는 것 같았고, 의식은 여전히 흐릿해서 몸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34분 남았어~

바네사의 시간 알림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쪽에서 교관이 서둘러 다가왔다.

[player name]. 이쪽으로!

선생님은 무슨… 난 네 교관님이다!

교관이 장난으로 화내는 척하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네 파일에 문제가 좀 있어서 말이야, 파일 관리처 직원한테 가서 직접 정리해야 할 것 같아.

그래. 확인하다 보니까 네 파일 중, 코드를 작성하지 않은 보고서가 하나있더라고.

교관은 마치 지휘관의 비밀을 꿰뚫고 있지만 절대 말하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너 오늘 좀 이상한데, 마치 단말기에 내장한 음성 재생 프로그램 같아.

너희들의 수석을 잠시 빌려야겠는데, 걱정 마. 졸업식 시작 전에는 돌려보낼게.

교관은 바네사에게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지휘관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어두운 파일 관리실에는 관리처 직원만 기다리고 있었다. 백열등에 문제가 있는지 깜빡거려서 직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음… 아, 맞다, 바로 이 서류들이야.

직원은 각종 성적표, 등록표, 보고서 중에서 몇 장을 꺼내 지휘관 앞에 놓고, 재촉하듯 책상을 두드렸다.

원래 이 보고서들의 코드는 전부 기계로 출력됐어야 하는데, 네 서류는 입학할 때부터 몇 장이 누락된 것 같아.

나중에 다시 출력하려고 했지만, 마침 네가 시뮬레이션 훈련 중이라 미처 연락할 수 없었고, 그래서 좀 미뤄졌던 거야. 이제 이 서류들의 코드를 네가 직접 채워 넣어야 해.

머릿속이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어딘가 이상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네가 수석이라고 해도 너 하나를 위해 파일 출력기를 따로 돌릴 순 없어.

손으로 써넣어도 유효하니, 내가 불러줄 테니 받아써.

9... 3... 12...

한없이 익숙한 숫자였지만, 어쩐지 펜을 들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뭘... 기다리고 있는 거니?

관리실 안에 천장을 뒤덮을 듯한 하얀 안개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직원"의 말이 아득한 안개 너머에서, 기억 깊숙한 곳의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뭔가가 지휘관이 쓰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 같았다.

어서 받아써. 졸업식이... 곧 시작될 거야.

손끝이 따끔거렸다. 그리고 희미한 재촉 소리와 함께 펜촉이 갑자기 종이를 찢어버렸다.

931206.

숫자 9의 끝부분이 보고서 코드란을 길게 그으며 절대 아물 수 없는 상처처럼 낡은 종이 위를 찢어놓았다.

낡은 관리실의 불빛이 깜빡거렸다. 파오스에 정말 이런 관리실이 있었나? 내 서류에 정말 빠진 부분이 있었나?

진실과 허구의 기억이 뒤섞이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졌다. 이곳이 어디인지, 앞으로 가야 하는지 뒤로 가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천지가 뒤흔들리는 와중에 의식이 격렬하게 떨리더니, 갑자기 지휘관의 의식이 육체에서 빠져나왔다.

검은 어둠이 다시 한번 사방을 뒤덮었다.

은하수가 칠흑 같은 배경 속에서 부드럽게 흘렀고, 거대한 우주 함선이 고독한 소녀를 태우고 더 먼 우주 깊숙이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파란 기계체 소녀는 창가에 앉아 소멸하고 새로 태어나는 성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귀한 손님. 오랜만이야.

오랜만이군.

별들이 가득한 균열이 조용히 열리더니 이스마엘이 균열 너머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물건은 이미 받았을 것 같은데.

참 지혜로운 한수였어... 이러면 절대 들키지 않겠지.

나나미의 손 근처 탁자 위에 이중합 코어 조각이 놓여 있었다.

오랜 시간의 여정 때문에 살짝 흐려졌지만,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 시간의 분기점에서는...

이스마엘은 자신의 행동을 모호하게 암시했다.

쉽게 발각될 수 있어. 우리는 마지막 시간 라인에 과도하게 개입할 수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나미는 무적의 나나미니까, 어떤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어.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있는 창밖을 바라보며 나나미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나나미가 예상하지 못했던 건... 우리가 정말로 성공할 수 있다는 거였어.

이것은 수많은 광년을 걸친 기묘한 계획이었고,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위험과 절망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이 오늘까지 버틸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어떻게… 들키지 않겠다는 건데?

이스마엘은 무심한 듯 인칭대명사를 숨기며 말했다.

예전에 내가 했던 것처럼.

정해진 "역사"는 어긋나지 않을 거야.

나나미는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이중합 코어 조각을 살짝 건드렸다.

다만, 우리는 더 많은...

가벼운 광선이 이중합 코어 조각으로 스며들었다.

복잡한 정보들이 필요하다?

아무도 쓸모없는 항행 일지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잖아~

참 소박한 방법이네.

이스마엘은 온갖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나나미가 이렇게 간단한 방법을 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쉬우면 쉬울수록 눈에 잘 안 띄는 법이지.

나나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이중합 코어 조각에 손을 댔다.

암호를 하나 넣어볼까? 뭐가 좋으려나? DeLorean... 아니면 707070?

음, 다 너무 쉬운 것 같네.

나나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이걸로 할래! 이건 분명 지휘관만 알고 있는 비밀이니까.

"정보"가 실체화되자, 나나미는 조금 전에 정한 암호를 진지하게 공중에 썼다.

q... q31206?

이스마엘은 이 숫자를 보며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쉿...

나나미가 손을 들어 스크린을 띄우자, 거기엔 "카퍼필드 해양 박물관 전투"라고 표시된 파일이 떠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센은 비앙카가 다친 후 그녀를 대신해 해저로 반드시 가게 될 것이다.

불빛이 나무 모양으로 뻗은 정보 흐름을 따라 달리다가, 마침내 표시된 위치에 멈췄다.

하카마, 2143번 자료를 4차원 통신으로 보내게 포장해 줄래? 지구로 보내고 싶은 게 있어.

이 시간에서의 인간은 아직 4차원 통신을 수신할 능력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러면 시간 라인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들"이 발견하게 된다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기회는 단 한순간뿐이야.

알겠습니다.

자료 포장 완료됐고, 시공간 좌표도 고정됐습니다. 탐지호가 웜홀 도약하는 동안 정보가 동시에 전송될 겁니다.

이건 나나미가 모두에게 주는 "미래"라는 선물이야.

이스마엘은 조용히 옆에 서서 이미 한 번 공연된 이 연극을 지켜보았다.

휴... 나나미의 여정도 이제 거의 끝에 다다른 것 같아!

하지만 그들이 정말 이 비밀을 발견할 수 있을까? 네가 설정한 그 특별한 암호 말이야.

당연하지! 나나미는 지휘관을 믿거든!

이건 나나미와 지휘관만의 작은 비밀이니까~ 지휘관은 분명 맞출 수 있을 거야!

창밖에선 은하수가 조용히 우주 함선을 감싸고 있었다.

정보를 담고 역행하는 유성이 앞으로 넘어가는 책장을 가로지르며, 목적지를 향해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