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거점 안으로 순백의 망토를 걸친 여성이 들어왔다.
오랜만이네.
이스마엘의 시선이 작은 생명의 나무 아래에 있는 붉은 알을 향했다.
불쑥 찾아와서 미안해. 네가 <phonetic=이중합 탑>열쇠</phonetic>를 얻었다고 들었는데, 맞아?
그래. 그녀는 곧 부화할 거야.
방추형의 "알"이 인간의 심장처럼 천천히 박동하고 있었다.
이번 열쇠는 그 지휘관의... 딸이라고 봐야 할까?
본인에 더 가까워.
주입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어. 기억과 의식이 불완전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파편까지 섞여 들어갔어.
으음.
어쩌면, 완벽한 "귀환 티켓"이 된 걸지도 몰라.
...
본·네거트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현재 상황에 그다지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듯했다.
누구든, 의식의 바다가 안정적이기만 하다면, 열쇠의 코어가 될 수 있을 텐데... 왜 하필 이 지휘관을 고른 거야?
이스마엘의 질문은 본·네거트에게만 향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난 힘의 대가를 아는 자가 필요하다.
<phonetic=변동>열쇠</phonetic>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걸, 그녀도 자신만의 의식이 있고, 계속 같은 결말로 향하는 건 극심한 고문과도 같지, 그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이가 드물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면, 그 힘을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는 데 사용하게 돼.
이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수없이 겪어왔다.
본·네거트도 마찬가지로 박동하는 "알"을 바라보았다.
오직 이 지휘관만이...
가장 완벽한 "<phonetic=변동>열쇠</phonetic>"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휘관" 본인을 "열쇠"로 얻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본·네거트는 고개를 숙여, 자기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수없이 많은 윤회 속에서 본·네거트도 사력을 다해 시도해 봤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지휘관 본인"을 "열쇠"로 사용해 보려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건 "미래"다. 그들과 해피엔딩 놀이나 하는 건 관심 없어.
그렇군.
이번에는 네가 찾아온 새로운 열쇠와 함께 무사히 문을 통과하길 바라.
본·네거트의 깊어진 시선을 감지하자, 이스마엘은 애매모호하게 설명했다.
난 이러한 발전이 사라지길 바라지 않아. "규칙"이 깨지는 걸 보고 싶거든.
그래서 승격자든, 인간이든 상관없이 너희를 막지 않을 거야.
인간과 퍼니싱의 싸움을 말하는 거라면, 나도 어느 쪽이 승리하든 상관없다.
...
살아 있을 때보다 훨씬 재미없어졌네. 본·네거트. 예전의 모습을 거의 볼 수가 없어.
아직 그 "목소리들"과 융합하고 있는 거야?
...
무의식적으로 가면을 쓰다듬은 본·네거트는 잠시 멈칫하더니, 묵묵히 그 말을 인정했다.
넌 지금 네가 누구인지 잊어가고 있어. 지금 시간의 폐쇄 루프를 벗어난다 해도 넌 이미 네가 아닐 거야.
"열쇠"를 가지게 됐다고 해도, 너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본 적은 있어?
이스마엘이 본·네거트를 탐색하듯 바라보았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본·네거트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안정적이었고, 이스마엘의 말에 동요하지 않았다.
결과가 어떻든, 이 길은 내가 처음 구상했던 방향과 일치한다.
너에게도 그리 "재미없는" 일은 아닐 거 같은데, 안 그런가?
둘은 말을 멈추고 침묵에 잠겼다.
"쿵쾅... 쿵쾅..."
"알"의 심장 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마치 껍데기를 깨지 못하는 새끼 새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있는 건가?
이스마엘은 망토를 걷어내고 알을 품에 안았다.
이름을 지어주는 게 어때? 정체성을 부여하고 정보를 주입하면, 부화를 도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이스마엘은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player name], 이 이름은 어때?
"쿵쾅..."
알껍데기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형편없는 농담이군.
부화를 앞둔 알을 바라본 검은 그림자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카오스... 그녀가 스스로 이름을 짓기 전까지는 이걸로 부르도록 하지.
침묵 속에서 알껍데기가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
여기 있었네.
이스마엘은 무언가를 들은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
소형 생명의 나무 안에서 <phonetic=카오스>이합 생물</phonetic>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이게... 너희들의 선택이야.
...
본·네거트는 부화한 이합 생물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왜 그래? 마음에 들지 않아?
이건... 네가 원했던 결과가 아니야?
이스마엘은 깨진 "알"에서 갓 태어난 이합 생물을 부드럽게 망토로 감쌌다.
이건 좀 예상 밖이군.
눈앞의 카오스는 본·네거트가 예상했던 것보다 분명 더 온전한 모습이었다.
본·네거트는 침묵 속에서 이 상황이 자신의 계획에 유리할지 불리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의식이 안정된 게 불안정한 것보다 낫잖아.
열쇠는 어느 정도 완성됐어. 어쩌면 그녀는 완벽한 "귀환 티켓"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이스마엘은 품에 안은 카오스를 내려다보며 작은 이합 생물의 앞머리를 매만졌다.
결과가 네 예상에 부합한다면...
네 이전 계획이 뭐였는지 말해줄 수 있어?
...
금빛 눈동자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본·네거트는 잠시 멈칫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오스를 데리고 이중합 탑에 들어갈 거다.
본·네거트는 기억 속에서 계속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아마 적절한 "방안"을 고민하는 것 같았다.
도미니카의 계획은 허황한 꿈이야. 오염된 밈은 절대 완벽하게 봉쇄할 수 없다는 걸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color=#ff4e4eff>근원</color>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해야만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
이중합 탑에 들어간 다음에는... 어쩔 거야?
그건 나도 확실하지 않아.
그리고 이중합 탑 안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말해주지 않을 거잖아?
이스마엘이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미안. 그건 말해줄 수 없어.
이중합 탑 내부는 너무 혼란스러워. 그 구조체가 뒤틀어놓은 후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됐다.
교차하는 황금시대일 수도, 적조에 잠긴 공간일 수도, 아니면...
이중합 탑에 들어가자마자 새로운 문명의 방문자와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열쇠가 더 완전해진 건 좋은 일이야.
이스마엘이 카오스를 본·네거트에게 건네려 했다. 하지만 창백한 인형은 본·네거트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
이스마엘은 망토에 싸인 카오스를 본·네거트에게 건네며 살짝 웃었다.
거의 완벽한 귀환 티켓이야. 이번엔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흥.
연약한 인형을 받아 든 본·네거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모든 힘으로 부화시킨 열쇠를 바라보았다.
카오스는 단순한 승리 그 이상을 의미했다.
그것은 본·네거트가 시간의 폐쇄 루프로부터 완전히 탈출하기 위한 통행증이기도 했다.
본·네거트는 이 폐쇄 루프 속에서 너무 오랫동안 혼자 걸어왔다. 너무나 오래돼서... 자신의 본래 모습조차 잊어버릴 정도였다.
얼마나 지난 걸까?
구체적인 수치를 알려줄까?
아니, 괜찮아. 굳이 알고 싶지도 않거든.
손에 든 인형을 바라본 본·네거트는 드물게도 수첩의 도움 없이 더 오래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번에 정말로 성공한다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만의 길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네거트는 실패에 지쳐 있었고, 더 이상의 실패는 원치 않았다.
시간이 다 됐네. 너의 선택도 알게 됐으니...
이만 작별 인사할게.
이스마엘은 갑자기 나타났던 것처럼, 다시 조용히 사라졌다.
잠시 후, 문으로 들어온 혹사가 본·네거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본·네거트님, 그 여자분은 어디로 가셨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았다.
본·네거트는 이런 결과를 예상했다는 듯했다.
그녀가... 부화한 겁니까?
혹사는 본·네거트의 손에 있는 이합 생물을 발견하고는 조심스럽게 다가가려 했다.
그녀의 이름은 카오스다.
카오스...
...
창백한 인형은 눈앞의 대행자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너는... 카오스라고 한다.
본·네거트는 다소 어색하게 작은 인형에게 말을 걸었다.
...
본·네거트님, 의식이 있는 겁니까?
그건 아직 단정 지을 수 없어.
본·네거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완성도가 내 예상을 뛰어넘은 걸 보니, 뭔가 다른 변수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잉태 과정은 완벽했고, 이상 데이터도 없었습니다.
혹사는 집요하게 본·네거트의 품에 있는 카오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알에서 부화한 "아이"였다.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곳에서 무언가가 일어난 거겠지.
깊이 있는 금색 눈동자가 작은 이합 생물을 주시했다.
말해봐. 넌 누구지?
카오스보다 높은 "시점"이 이곳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이한 검은 그림자가 구석에서 속삭이면서, 시끄러운 파편들이 끊임없이 의식의 바다로 흘러들었다.
카오스... 이합 생물... 알...
흩어진 기억이 조금씩 돌아왔고, 세계는 실타래가 풀리듯 모든 것이 지휘관의 앞에서 복원되고 있었다.
이스마엘이 말한 대로, 본·네거트는 카오스의 의지를 완전히 제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모든 것이 지휘관의 통제 아래 있는 것 같았다.
또는...
"너"는 "너"야.
"네"가 진정한 "카오스"가 된다면, 카오스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될 거야.
네 "시선"은 카오스보다 더 높은 곳에 있어.
그리고 네 "시선"은 이곳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야. 그래서 본·네거트가 네 의지를 좌우할 수 없는 거지.
말해봐. 넌 누구지?
본·네거트는 날카롭고 집요하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마치 카오스의 무심한 눈동자에서 뭔가 단서를 찾으려는 것만 같았다.
기억나는 게 있나?
그레이 레이븐 소대... 공중 정원... [player name]...
본·네거트는 단어들을 하나씩 읊어가며 시험해 보았다.
하지만 그 단어들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작은 이합 생물은 진짜 인형처럼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본·네거트님. 이 아이한테 정말 의식이 있는 겁니까?
본·네거트의 어두워진 표정을 본 혹사는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예전 실험체들을 보았을 때, 기억을 주입하지 않으면, "회상"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아 인식이 없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
본·네거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너무나 완벽해. "지휘관"의 기억과 융합된 이합 생물이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결코 믿을 수 없어.
그때... 그 복제된 지휘관에게 정말 이상은 없었나?
...
혹사는 바다 밑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떠올렸다.
이상 없었습니다. 본·네거트님.
모든 게 본·네거트님의 계획 대로였습니다. 도망친 실험체들도 전부 인어가 회수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네거트님.
요람도 계속 안정적이었고, 데이터도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그녀의 알이 태어나는 것을 봤습니다.
혹사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
검은 그림자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본·네거트는 카오스에게 기억이 전혀 없다는 걸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녀는 특별한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본·네거트님,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혹사가 본·네거트를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없다.
본·네거트는 붉은 인형을 안아 들었다.
이중합 탑에 변동이 생겼다. 그래서 "이상"이 이 세계를 눈치챈 것 같다.
이상이라...
이제 다음 단계를 시작해야 한다.
이중합 탑은 중첩된 결정체에 둘러싸여, "귀환"의 길은 사라졌었다.
본·네거트는 이 폐쇄 루프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고, 이제는 이 시간의 폐쇄 루프를 깨는 수밖에 없었다.
본·네거트는 그의 마지막 <phonetic=카오스>희망</phonetic>을 품에 안은 채, 이 거점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