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3 밤의 장막 너머의 빛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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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1 폭설에 뒤덮은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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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의식이 깊은 해저를 떠다니는 듯했다.

젖은 시야가 파도 속에서 계속해서 흔들렸고, 속삭임과 비명이 담긴 거품들이 조류를 따라 신경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차가운 공기가 콧속과 기관지를 타고 폐 속으로 들어왔다. 먼지 냄새가 순식간에 의식을 현실로 끌어당겼다.

허름한 텐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해에서 느꼈던 질식의 공포가 아직 입과 코를 옥죄어 오는 듯했다.

조금 전 목격한 것은 그저 악몽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실제 기억의 잔상일까?

지금 넌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간절히 찾고 있는 지휘관일까? 아니면 그들이 신경 쓰지 않는 5명 중 하나일까?

바렐리아가 한 봉지를 통째로 줬어. 안에 100개도 넘게 들어있었는데, 난 2개만 먹었고 너한테는 1개만 줬어.

▄▅▃▆▁

적조의 허상... 기록할 수 있...

만약... 여기까지 볼 수 있다면...

그리고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낯익은 그 그림자.

대체 누구이며, 왜 그녀의 눈동자가 이곳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거 같지?

그녀가 말한 "아직 때가 아니다."는 또 무슨 의미일까?

머릿속에 남아있는 핵심 단어들을 서둘러 기록했다. 반복해서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주변을 살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침상 앞에 놓인 부츠는 얼음과 눈이 틈새로 스며들어 흠뻑 젖어있었다. 바네사의 잔소리를 피하고 싶다면 당분간은 신지 않는 게 현명할 것 같았다.

낡은 텐트 안에는 지휘관이 쉬고 있던 침상 하나뿐이었다. 텐트 입구 사이로 눈 덮인 하늘의 빛이 가늘게 스며들고 있었다.

의식을 잃기 직전, 지휘관은 바네사를 등에 업은 채 엠마와 오블리크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텐트 밖에서 희미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내용을 파악하기도 전에 텐트 입구가 열렸다.

다행이에요. 의식을 되찾지 못하실까 봐 걱정했어요.

엠마는 재빨리 인간 지휘관의 방호복 수치들을 확인했다.

방호복이 파손되어 저체온 증상이 나타났고, 퍼니싱 침식까지 진행됐어요. 다행히 비축된 혈청 덕분에 여기까지 버텨낼 수 있었어요.

부상이 심각해서 일단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어요. 지금은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 이곳에서 야영 중이에요.

오블리크는 우주 도시로 도움을 요청하러 갔어요. 그리고 저... 저는 여기서 지휘관님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곧 오블리크가 구조 차량과 함께 복귀할 거예요.

평소와 달리 빨리 말을 쏟아낸 엠마는 현재 상황을 어수선하게 설명하면서, 혈청 주사를 지휘관의 방호복 인터페이스에 꽂으려 했다.

오블리크가 오면... 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엠마는 당황한 듯 고개를 들었다.

...

금기어라도 들은 듯, 엠마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고, 가늘게 떨리는 손끝이 그녀의 불안을 드러냈다.

엠마는 고개를 숙인 채 혈청을 방호복 오른쪽 인터페이스에 섬세하게 연결했다. 혈청이 완전히 주입되자, 방호복의 침식 수치를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응시했다.

입술을 깊이 물은 채 엠마는 침묵 속에 잠겼다. 침식 수치가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하자, 그제야 고개를 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네사는... 이제 없어요.

바네사는... [player name] 님!

수색구조 과정에서 주황빛 머리의 구조체는 움직이는 그림자를 눈보라 속에서 예리하게 포착해 냈다.

오블리크, 저기예요!

다른 방향을 수색하던 오블리크는 엠마의 외침을 듣자마자,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그림자가 비틀거리다가 눈밭에 쓰러졌다. 다행히 거리가 가까워서 엠마와 오블리크는 어렵지 않게 그들에게 달려갈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눈밭에 쓰러진 바네사의 기체는 처참한 상태였다. 왼팔과 오른쪽 다리가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그리고 인간 지휘관은...

멍하니 있지 말고, <M>그</M><W>그녀</W>의 방호복이 파손됐어. 퍼니싱 침식 증상이 나타났으니까, 응급 키트에서 혈청 꺼내 당장 주입해.

네, 네.

평소 늘 의지하던 정신적 지주가 이런 모습이 되어버린 것에 엠마는 당황스러웠지만, 본능적으로 바네사의 지시에 따라 혈청을 꺼내 인간 지휘관의 방호복에 주입했다.

예비 방호복 가져왔어?

여기 있습니다.

예비 물자 가방에서 방호복을 꺼내 신속하게 지휘관에게 입힌 후, 그들은 눈보라를 뚫고 우주 도시를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쿨럭... 너희들이 데리고 나온 다른 대원들은 어디 있지?

지휘관님의 연락을 받고 즉시 출발했습니다. 대원들은 해산시킨 후 주변 물자 수색을 지시했습니다.

연락해서 모두 우주 도시로 복귀하라고 해.

구조체의 숨소리가 다급해졌다.

바네사 님, 말하지 마세요. 순환액 유출이 위험 수준이에요.

엠마가 순환액 팩을 꺼내서 바네사의 순환 시스템에 연결하려 했지만, 바네사가 손을 흔들며 저지했다.

아껴둬. 지금은 필요 없어.

엠마, 주위 퍼니싱 농도를 계속 관측해.

바네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빠르게 상황을 분석했다.

인간 지휘관을 발견한 새로운 0호 대행자는 입에 들어온 큰 먹잇감을 쉽게 놓치려 하지 않을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무사히 철수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알... 알겠어요.

입술을 깨물며 순환액 팩을 치운 엠마는 퍼니싱 관측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눈보라가 조금씩 거세지더니 주위의 모든 것을 거칠게 할퀴고 있었다.

기절한 인간 지휘관과 움직일 수 없는 바네사를 옮기느라 일행의 이동 속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오블리크, 퍼니싱 농도가 계속 올라가고 있어요. 구조 차량까지는 얼마나 남았죠?

엠마는 의식이 있는지 불분명한 바네사를 걱정스레 살피며, 오블리크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이동 속도라면 약 두 시간 반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다른 대원들은 복귀 명령을 받았나요?

네. 그들은 설원 깊숙이 들어가지 않아서, 빠른 이들은 이미 우주 도시 안전 구역에 도착했을 겁니다.

조심하세요!

대화하는 사이, 이화 적조가 어느새 일행의 발밑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쿵!

엠마는 오블리크를 재빨리 끌어당기며, 지휘관을 업은 채로 이화 적조의 공격을 피해냈다. 순간적으로 몸을 돌린 그녀는 적조의 안개 속에서 불쑥 나타난 촉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비록 과거 Ω 무기의 위력에는 못 미치더라도, 로사가 특별히 제작한 무기는 이 정도 크기의 이화 촉수쯤은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이화 촉수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지면의 액체 속으로 다시 스며들어 갔다.

하지만... 이곳을 발견한 이상, 그 0호 대행자도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였다.

...

바위 뒤 그림자 속에서 새로 부임한 0호 대행자가 냉랭한 눈동자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갓 태어난 0호 대행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오직 강력한 힘을 갈구하며, 끝없이 이 세계를 잠식해야 한다는 원시적 본능만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이 자신의 영양분이 되어야만 했다.

멀리 있는 몇 개의 그림자에 초점 없는 동공이 모아졌다.

그리고 저 인간은... 가장 맛있는 먹잇감이 될 거였다.

속도를 더 높이세요.

기체 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면서 엠마는 초조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구조 차량이 있는 곳까지는 아직 두 시간이 넘게 남은 상황에서 바네사와 지휘관을 무사히 우주 도시까지 데려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쿨럭.

총성이 반쯤 의식을 잃은 바네사를 깨웠다.

인간 지휘관이 의식을 잃게 되면서 지휘관의 억제력이 사라져, 오염된 의식의 바다가 점점 불안정해졌다. 바네사는 모든 힘을 쏟아부어 흔들리는 의식의 바다를 겨우 억누르고 있었다.

우주 도시까지 얼마나 남았지?

지금 속도로... 4시간 정도요.

엠마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걷고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무언가를 걱정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두 시간만 있으면, 구조 차량에 도착할 수 있어요.

시간이 모자라.

너희 둘이 기체 출력을 최대로 올린 상태로 관절에서 불꽃이 튀게 달린다 해도... 늦어.

적조의 확산 속도는 놀라워서 하룻밤에 40~50km는 넘게 퍼질 수 있었다.

...

오블리크는 말없이 총을 들어 옆에서 다가오는 얕은 적조를 격퇴했다.

그들이 쫓아오고 있습니다.

저것들은... 뼈에 달라붙은 시체 구더기 같은 존재들이라, 한 번 발견한 사냥감은 절대 포기하지 않아.

바네사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보였지만, 그녀의 동공은 이미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오염된 의식의 바다에서 거대한 파도가 일었고, 급격히 떨어지는 체온이 신경을 따라 죽음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Ω 무기를... 철수 경로에 설치해. 그리고 다량의 폭발물과 함께...

바네사는 무의식중에도 본능적으로 가장 적절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Ω 무기가 없잖아요.

공중 정원이 남긴 Ω 무기는 이미 십수 년 전에 모두 고갈되었다. 그리고 현재 지상의 기술력으로는 진정한 Ω 무기를 복제할 수 없는 상태였다.

...

하... 맞아. Ω 무기는 이제 없지.

정신을 차린 바네사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시각 모듈이 흐릿해지고, 의식의 바다도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쿨럭...

죽음이 임박한 듯한 감각이 바네사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옥죄어왔다. 그녀는 힘껏 혀끝을 깨물어서 고통으로 자신을 깨우려 했다.

남동쪽으로 가서 지름길로 들어서면...

소용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우리를 발견했어요.

오블리크와 엠마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전진하면서 0호 대행자의 "시선"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하지만 어디로 도망쳐도 차가운 적조가 그림자처럼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이대로는... 이렇게 해선 안 되겠어.

발목을 잡는 이들과 함께 가다가는 결국 이화 적조에 따라잡힐 수밖에 없었다.

바네사는 입에서 다시 흘러나온 순환액을 뱉어낸 후, 기체의 손상 정도를 확인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휘관은... 상태가 어때?

엠마는 서둘러 이동하면서도 인간 지휘관의 방호복에 표시된 침식 수치를 재빨리 확인했다.

혈청 주사 후, 침식 수치가 정상보다 조금 높지만, 안정적인 상태예요. 하지만 저체온 증상이...

...

기체 파손도는 이미 70%에 달했다. 왼팔은 완전히 망가졌고, 오른쪽 다리의 부품은 기능을 상실한 채 응급 고정장치로 기체에 간신히 부착된 상태였다.

날 여기 내려놓고 어서 가. 내가 뒤를 맡을게.

미친 거예요?!

엠마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네사를 쳐다보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야.

바네사는 "오늘 물자 좀 구하러 나갔다 올게."라고 말하는 것처럼 담담한 표정이었다.

지금 이동 속도로는 30분도 안 돼서 우리 모두 그 괴물의 먹이가 될 거야.

그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그때쯤이면 로사가 우주 도시에서 적조 속에서 손 흔드는 우리를 볼 수 있을 테니까.

안 돼요. 절대로 여기 남겨둘 순 없어요.

저도 반대입니다.

오블리크가 말을 끊었다. 하지만 호흡은 불안정했다. 구형 모델인 그녀의 기체는 이미 한계 속도를 넘어서 위험한 과부하 상태에 빠져있었다.

너희 의견을 구하는 게 아니야.

짜증 난다는 듯 손을 휘저은 바네사는 허리의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오블리크가 반응하기도 전에 엠마의 뒤를 쫓아오던 이합 생물을 단 한 발의 사격으로 제압했다.

!!!

엠마는 순간적인 충격에 속도를 높였지만, 그 행동으로 인해 쏟아져 나온 적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질 뻔했다.

어느새 적조가 사방에서 천천히 포위해 오고 있었다.

0호 대행자는 사냥감을 절대 놓치지 않아.

설원은 여전히 평온했지만, 살기는 두꺼운 눈 아래에 숨어 있었다.

안 돼요.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엠마는 입술을 꽉 깨물며 최선의 해결책을 찾으려 애썼다.

제가 적조를 유인하고, 오블리크가 바네사와 지휘관님을 데리고 철수하면 돼요. 전 아직 전투력이 있으니까...

절뚝거리는 나와 의식불명의 인간을 동시에 운반하는 오블리크에게 이미 한계치에 도달한 기체를 두 시간이나 더 가동하겠다는 거야?

...

아니면, 아니면...

으윽!

대화하는 중에 오블리크가 신음을 내뱉으며 발을 다시 들어 올리자, 신발 밑창에 적조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봤지?

바네사가 입과 코를 가린 채 두어 번 기침했다. 그러자 입가로 순환액이 흘러나왔다.

망설일 시간 없어. 더 지체했다간 우리 모두 여기서 죽게 될 거야.

입술을 깨문 바네사는 자신의 기체 손상 정도를 알렸다.

지금 당장 우주 도시로 복귀한다 해도 현재 남은 물자로는 내 기체를 수리할 수 없어.

눈이 점점 더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너희를 설득할 힘도 없어. 지금 선택지는 두 개야.

A, 다 같이 죽거나. B, 내가 뒤를 막거나.

바네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화 적조의 촉수가 다시 몰래 나타나 엠마의 발목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윽!

엠마가 비틀거리는 순간, 바네사는 등반 로프를 끊고 엠마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바네사는 왼쪽 다리로 겨우 몸을 지탱한 뒤, 몸을 굽혀서 오른쪽 다리의 붕대를 한 손으로 단단히 조였다. 순환액이 하얀 눈 위에 흘러내리며 끔찍한 흔적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할게. 너와 오블리크는 지휘관을 데리고 여기를 떠나. 내가 뒤를 막을 테니.

내가 어떻게 대처할지, 전투력이 얼마나 남았는지 그런 걱정은 하지 마.

내가 너희에게 가르쳐준 걸 잊지 마.

생존자들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야 해.

바네사는 남은 힘을 모아 바위에 기대어 섰다.

눈이 순식간에 바네사의 기체를 덮었고, 흘러나온 순환액이 스며들어 붉게 물들었다.

더 이상의 반박은 없었다. 엠마와 오블리크는 묵묵히 바네사에게 경례한 뒤, 바네사의 지시대로 인간 지휘관을 데리고 우주 도시 방향으로 철수했다.

[player name]... 하.

바네사는 흐린 회색 하늘을 바라보며 비웃듯 웃었다.

전장은 그렇게 자비롭지 않아. 그 누구도 모든 사람을 지킬 순 없어. 누구든 희생을 치르기 마련이지. 수석, 너도 예외는 아니야.

발밑의 빙판을 바라본 바네사는 힘겹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얼굴의 핏자국을 닦아냈다.

구조체가 돼서 좋은 점이 있다면... 인조 피부가 인간의 피부보다 훨씬 더 잘 붙어있다는 거야.

수십 년 전, 어두운 지하 격리실에 남겨졌던 때처럼, 텅 빈 빙판 위로 바네사의 낮은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때는 의식을 잃은 수석이 곁에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차가운 세상에 바네사 혼자만 남아 있었다.

...

이화 적조가 빙판 위로 끈적한 물보라를 튀기자, 0호 대행자가 액체 속에서 아른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꽤 빠른데.

보라색 머리의 구조체가 눈앞의 0호 대행자를 향해 악의에 찬 비웃음을 지었다.

여기까지다.

바네사는 자신의 기체를 폭발시켰다.

텐트 안 온도는 견디기 힘들 만큼 낮았다. 눈 때문에 텐트 출입구 커튼은 빳빳하게 얼어붙었고, 거센 바람이 텐트 지지대에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폭발음이 들렸지만, 뒤돌아볼 수 없었어요. 안전 구역까지 이동해서 지휘관님을 안전하게 모신 후, 다시 돌아가 살펴봤어요.

폭발로... 이화 적조를 잠시나마 물리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원래 있던 얼음층이 완전히 사라지고, 짙은 갈색 암석만 드러나 있었어요.

그리고 이것밖에... 찾지 못했어요.

엠마가 손바닥을 펼쳤다. 손 위에는 성갑충의 금속 명패가 놓여 있었다. 명패는 온통 탄흔으로 뒤덮여 있었고, 폭발의 흔적으로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지휘관은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힘없이 입을 열었지만, 한숨 소리만 새어 나왔다.

어쨌든 다시 소개하자면, 난 백로 소대 지휘관이자 이번 작전의 총지휘자 바네사다.

과거 지휘관이 어떤 성적을 거두었든 이번 임무에서는 장관님의 지휘를 따라야 할 거야~

어리석고 순진한 [player name], 네가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건 그저 그들이 이상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야.

넌 의지할 곳을 모두 잃었어. 이제 내가 어떻게 생존자의 가치를 최대화하는지 가르쳐 주지.

30년이나 늦은 인사네.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이번엔 네가 정말 죽은 줄 알았어.

어서 갔다 와.

여기서 기다릴 테니 걱정하지 마. 네가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건 바로 내가 될 거야.

...

바네사

▃▅▂▆█▆▄▇▆▅▂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아?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는 건 일반 ▂▆█▆▄▇▆▅▂에선 사망했다고 볼 수 있겠지.

웃기지 않아? ▂▄▇▄▇▂▃▅▂▂▄▇▆▅▄▇▂

목소리가 깊은 해저 파도 아래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미니 단말기에서는 손상된 백색 소음이 나왔다.

지휘관님... 지휘관님!

혈청... 혈청 남아있나요?!

마지막 한 개도 다 써버렸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텐트 문이 잠깐 열리고 누군가 들어서자, 매서운 바람이 텐트 안으로 몰아쳤다. 순간 텐트 안의 답답한 공기가 환기되었다.

차가운 액체가 혈관 속으로 흘러 들어가자 해저 광경이 희미해지며 사라졌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엠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휘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휘관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지휘관은 피로에 짓눌린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순간 어지러움이 밀려왔지만, 의지로 눌러 담았다.

어둠의 심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리고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우리처럼, 의식의 바다 속에서 무겁게 출렁이고 있었다.

지휘관님, 침식 수치가 불안정해지고 있어요. 버티실 수 있으세요?

로사는 아직도 새로운 코어 부품을 기다리고 있다. 바네사의 희생을... 절대 헛되이 할 순 없었다.

네. 출발 준비를 할게요.

동행한 대원들이 수집한 물자들을 구조 차량에 싣는 동안, 오블리크와 엠마는 차량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우주 도시까지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우주 도시의 "필터" 작동 범위가 이곳까지 미치고 있었기에, 0호 대행자는 이 구역에 진입할 수 없었다.

바네사가 부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이 세계에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휘관은 성갑충 금속 명패를 손바닥이 찢어질 듯 강하게 움켜쥐었다.

지휘관님? 출발해야 합니다.

바네사는 지쳐 있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간의 마지막 불씨를 지켜온 그녀는 자신의 사명을 완벽히 수행해 냈다.

붉은 금빛으로 타오르는 횃불이 이 땅을 순간적으로 밝히고, 릴레이의 바통처럼 높이 솟아올랐다.

불빛이 남아있는 한... 인간의 희망은 영원히 타오를 것이다.

바네사가 수십 년간 지켜온 인간 문명을 여기서 무너지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엔진 소리가 빙야의 적막을 가르고 지나갔다. 이내 쏟아진 큰 눈은 그들이 남긴 모든 흔적을 지워버렸다.

마치 이곳에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

봉우리 위에 선 분홍 머리의 구조체는 점점 작아지는 구조 차량의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낯익은 듯했지만... 뭔가 다른 점도 있는 것 같았다.

붉은 금빛 화염이 그녀의 눈동자에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가 깊은 생각에 잠기자, 의식의 바다 깊숙한 곳에서 오래된 기억들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선발대 대원이... 또 한 명 희생된 건가요?

어. 253이야.

그의 이름은 이르·2·히스고, 폴라성 이주민이었죠. 그에게는 연인이 있었는데... 바로 142호 선발대 대원이었어요.

그때... "열죽음"이 찾아왔을 때, 그들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겪었던 것 같았다.

기억들이 책장처럼 빠르게 넘어갔지만, 한때 선명했던 순간들은 이제 희미하게 바래고 있었다.

항성들이 하나둘 꺼져가는 사이, 비행선은 마치 도망치듯 깊은 우주 속으로 사라져갔다.

이야기는 늘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지만, 이 인간들의 결말도... 같을까?

이 인간들이 운명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해도...

영원한 어둠에서 누가 도망칠 수 있을까?

주사위가 서로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냈다. 분홍 머리의 구조체는 구조 차량이 사라진 지평선을 한동안 응시하다가, 차가운 설원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