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하늘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희미한 빛과 희망마저 삼켜버렸다.
시속 6~7km로 이동하고 있고, 좌표 확인 결과 우주 도시로 향하는 경로 위에 있어요.
물자는 바닥났고, 이화 적조가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 대부분의 전자 기기마저 고장 나 버렸다. 그래서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방향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단말기가 꺼지자 희미한 빛마저 사라져 버렸다.
아무도 말이 없었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을 밟는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이들은 대묘비 집결지에 남은 마지막 인간이었다. 그들마저 우주 도시에 도착하고 나면, 대묘비 집결지는 정말 그 이름 그대로 무덤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기온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
단말기의 희미한 불빛이 다시 켜지면서 엠마의 얼굴 한쪽을 비췄다.
곧 합류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복귀하는 순찰대 그리고 물자 수집 소대와 접선했다고 했으니, 그들의 속도라면 금방 우리와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지휘관님, 방금 퍼니싱 농도가 떨어진 건 루나가...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단말기를 끄자, 불빛이 다시 사그라들었다.
차가운 한밤중,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음에도 그 단어를 쉽사리 입에 담고 싶지 않았다.
지휘관과 바네사가 떠난 후, 루나는 새로 태어난 0호 대행자와 다시 한번 맞섰다. 퍼니싱 농도가 급격히 상승한 걸 보면 0호 대행자가 우세를 차지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후에...
약속했던 대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도와준 것이다. 지휘관과 인간을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한기가 온몸을 타고 올라왔다. 거친 숨결이 어둠 속에서 하얗게 얼어붙는 가운데, 옆에서 걷던 유랑민들이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루나... 그 승격자조차도...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요?
대묘비가 함락됐는데, 설마 우주 도시마저도...
유랑민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이대로라면, 이대로라면... 저희가 정말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한기는 점점 더 짙어져 갔다. 그러자 옷이 너무 얇았는지 유랑민의 목소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
바니가가 불안에 떨고 있는 유랑민들을 달래려는 듯 얼어붙은 손을 비빈 뒤, 등에 메고 있던 악기를 내려놓았다.
눈보라가 현을 스치면서 희미한 선율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불안에 떨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듯, 바니가가 낮은 목소리로 그 익숙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 평범한 육신에서 벗어날 때...
깨어날까? 아니면 영원한 잠자리에 들까? 누가 알 수 있으랴?
거센 폭풍도 우리 인간의 영혼은 앗아갈 수 없네.
이 어둠 속에서 우리는 가장 용감하게 버티리.
반주 없이 부르니 전쟁의 노래가 마치 진혼곡처럼 슬프게 들렸다.
바니가는 모닥불 옆에서 이 노래를 수없이 불렀기 때문에, 집결지의 모든 사람이 이제는 이 곡을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나뭇가지에 쌓였던 눈이 살랑살랑 떨어지는 가운데, 조용히 서 있던 유랑민 중 누군가가 먼저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긴 밤이 저물고, 새로운 여명이 다가올 때,
우리 함께 희망을 안고 노래하리.
슈욱...
뜨거운 불꽃이 하늘을 물들이며 대지를 뒤덮은 어둠을 몰아냈다.
신념이 횃불처럼 타오르네.
보아라! 선구자들의 발자국이
잿더미 속에서 피어나는걸
녹슨 칼날에 베인 상처가
전선을 이루고, 파괴 속에서 우리는 다시 태어나리.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군중들의 노랫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지휘관의 손에 들린 신호봉처럼, 침묵과 고통으로 가득한 대지를 태우고 있었다.
불꽃이 남긴 여운 속에서 웅장한 성벽이 눈보라 속에 아른거렸다.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를 긴 여정 끝에, 드디어 우주 도시의 거대한 성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시에 들어선 후, 엠마는 유랑민들의 정착을 돕느라 분주했고, 로사는 성문 근처에서 지휘관을 불러 세웠다.
지휘관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떤 걸 먼저 들으시겠어요?
이중합 코어 조각... 얼마 전에 근처 이합 생물에게서 발견했던 그것 말인데요. 드디어 거기 담긴 정보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어요.
거기엔 이중합 탑 코어를 분석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예전에 해독했던 부분과 결합해 보니...
강화된 "필터"를 어느 정도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예전의 여과탑처럼요. 덕분에 이화 퍼니싱과 적조를 일시적으로나마 걸러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퍼니싱이 또다시 변이할 가능성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당장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쁜 소식이라기보다는...
이화 적조를 탐색하느라 너무 많은 자원과 인력을 소모했어요. 정말 이대로 계속해도 될까요?
지휘관님께서 고생해서 가져오신 이중합 코어 조각의 내용을 이중합 탑 코어의 해독 내용과 맞혀봤어요.
그래서 강화된 "필터"를 어느 정도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예전의 여과탑처럼요. 덕분에 이화 퍼니싱과 적조를 일시적으로나마 걸러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모됐어요. 물자도 없고, 장비도 없고, 제대로 된 실험실조차 없는 상황에서...
그래서...
로사는 낮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되풀이했다.
정말... 계속 해도 될까요?
이화 적조에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끝없는 시간과 물자 그리고 인력이 소모되고 있어요. 게다가...
새로운 0호 대행자, 새로운 적조의 의지... 지금 우리가 가진 조건으로는 그것들의 "성분"을 분석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죠?
"생명"이에요. 그것도 지구의 것이 아닌 거요.
아시모프 님이 계셨다면, 이 모든 걸 해결하실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전... 할 수 없어요.
로사는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중합 조각에서 해결책을 얻었잖아요. 이중합 탑 코어 연구에 좀 더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인간이 절대적으로 안정된 집결지를 확보하는 것도 하나의 생존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선택은 지휘관님의 몫이에요.
계속해서 이화 적조를 탐색할까요? 아니면 적조 탐색은 포기하고 이중합 탑 코어 연구에 집중해서 더 안정된 집결지를 만들어낼까요?
수많은 실험 기록과 데이터를 보며, 지휘관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로사의 말대로, 이화 적조를 탐색하느라 상당한 인력과 물자가 소모됐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일지 모르지만, 지금은 단 하나의 씨앗도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 정도의 손실조차도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잠시 숨 돌릴 때가 된 것 같네요.
로사는 바닥까지 늘어진 물자 소모 목록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정말? 정말로 "쉴"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후방에서 달려온 바네사가 대화의 마지막 부분을 들었다.
인간이 이중합 탑 코어의 비밀을 완전히 해독하고, 퍼니싱을 완벽하게 정화하는 필터를 얻는다 해도... 그다음은?
단단한 껍데기를 만들어서 그 안에 숨어서 기다리자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인간에겐 반격할 여력이 없어요.
엠마가... 대묘비 집결지가 곧 적조에 잠길 거라고 하던데요.
혹시... 더 좋은 소식이라도 가져오셨나요? 예를 들어, 더 많은 물자를 확보했다든가... 더 나은 주둔지를 발견했다든가?
로사는 절박함과 애원이 뒤섞인 표정으로 바네사를 바라보았다.
최근... 순찰대와 물자 수집 소대는 얼마나 많은 물자를 가져왔나요?
...
너무나 날카로운 질문에 바네사는 잠시 침묵했다.
집결지 외부의 대부분 지역은 이화 적조와 고농도 퍼니싱에 잠식된 상태였다. 그래서 물자 수집 소대는 오래전부터 쓸 만한 물자를 찾지 못했다.
단단한 껍데기라도 있으면 인간이 숨이라도 돌릴 수 있을 텐데... 이대로 계속 간다면...
인간은 생존할 기회마저 완전히 잃게 될지도 몰라요.
맞아요. 이 부분만 잠시 천천히 진행하자는 거예요.
로사는 마치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주 도시는 "필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나마 퍼니싱을 걸러낼 수 있어요.
그리고 이중합 탑 코어의 내용만 해독할 수 있다면, 새로운 무기와 자원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때가 되면, 다시 이화 적조를 탐색하면서 그 실마리와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날이 과연 언제가 될까?
바네사의 실망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먼지 묻은 차림의 집결지 유랑민들이 우주 도시의 허름한 건물에 초라한 짐들을 내려놓고 정리하고 있었다.
오블리크가 몇몇 순찰대 대원들을 이끌고 막 돌아왔는데, 대원들의 몸에는 깊은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이화 적조가 수원을 파괴했고, 인간의 생존 기반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런 재앙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했다.
시간이 소중하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인간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집결지에는... 이미 몇 년째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
안정적으로 살 땅이 없는데, 누가 새 생명을 이 세계에 데려올 수 있겠어요.
로사의 눈 밑에 알 수 없는 안개 같은 것이 맺혀있었다.
저나 지휘관님은 물자 손실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인간은 어떻게 하나요?
엠마가 준 자원 소비 현황을 전체적으로 살펴본 결과, 로사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적조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은 반격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물자는 점점 고갈되어 사상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0호 대행자의 힘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었다.
인류는 계속 열세에 놓여 있었고, 인해전술로 메우려 한들 적조가 넘쳐나는 작은 웅덩이 하나조차 메울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인간이 반격할 능력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나중에...
바네사는 비웃음과 함께 한마디를 던지고는 돌아섰다.
잊지 마. 인간은 한때 지구 전체를 가졌었어.
인간은 한때 지구 전체를 가졌었다.
로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바네사는 언제나 빼앗긴 영토를 되찾고 싶어 하네요. 대묘비는 물론, 모든 땅을 말이에요.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현실을 직시했으면 좋겠네요.
하늘에서 눈이 펄펄 내리는 가운데, 로사가 작성한 손실 목록이 차가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프린터용 잉크는 오래전에 바닥난 상태였다.
나나미가 남긴 창고를 발견한 후에, 사용할 수 있는 물자들을 전부 확인해 봤어요.
저장된 식량과 기타 소모품들을 합치면, 남아 있는 인간과 구조체들이 한동안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온실 건설도 이미 인원을 배치해 진행 중이에요. 안정되면 바로 작물 재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인간은 이러한 준비들로 좀 더 생존할 수 있을 거예요.
그 후에는...
계획을 설명하던 로사의 눈동자에는 점점 혼란스러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중합 탑 코어의 진정한 비밀을 밝혀낼 때까지 버틸 수 있겠죠.
네. 버틸 수 있을 거예요.
목소리에는 불안한 떨림이 묻어났지만, 로사는 지휘관의 말에 동의했다.
황폐해진 우주 도시는 인간 문명의 마지막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은 허술한 온실에 의지한 채, 겨우 입에 풀칠하며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뜨거운 바다 위를 떠도는 종이배처럼, 이 몰락한 문명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로사는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 결과 인간은 우주 도시를 지키고 "필터"를 보강할 수 있었으며, 이중합 탑 코어에서 해독해 낸 내용에 의지해 겨우 연명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0호 대행자에 맞설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종이배는 그렇게 뜨거운 바다 위를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인간의 결말- "내일" 인간의 문명은 여기서 막을 내렸다.
적조 탐색을 포기한다고? 그래서 모든 생명과 선택권을 지속 시간도 불확실한 "필터"에 맡기겠다는 거야?
초췌한 얼굴의 바네사가 대화의 끝부분을 듣고 말았다.
하지만 인간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이에요.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어.
최소한... 인간은 자신의 적이 누구인지 알아야 해.
바네사는 차갑게 우주 도시 외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화 적조가 인간의 문명을 뒤틀린 모습으로 휘감았고, 거머리처럼 지구의 "양분"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온실을 설치해서 현재 있는 물자를 활용한다면...
...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지 마. 로사.
인간이 우주 도시를 완전히 손에 넣는다고 치자. 그래서 뭐가 달라진다는 거지? 이 장벽 안에서 숨만 쉬면서 겨우겨우 살아가자고?
잊지 마. 인간은 한때 지구 전체를 가졌었어.
눈앞이 핏빛으로 물들면서 의식이 흐려졌다. 이합 생물의 비명이 머릿속을 울리는 가운데, 무언가가 보이는 듯했지만, 그 실마리를 완전히 잡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라요.
대가... 이 세상에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게 뭐지?
허...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들 중에 겁쟁이는 없어.
바네사는 격앙된 듯 가슴이 급하게 오르내렸다. 그리고 몇 번의 심호흡 후에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난 이런... 삶이 지긋지긋해.
창밖에선 눈들이 세차게 땅을 향해 떨어지면서 포효하듯 지면을 때리고 있었다.
도망치고, 숨고, 집결지와 장벽에 갇혀 사는 게...
인간 문명의 미래라면, 차라리 죽는 한이 있어도 빌어먹을 그 미래를 박살 내고 말 거야.
그럼, 지휘관님...
루시아, 나나미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미래"를 향해 노력하고 있었기에 지휘관은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세계는 여기서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적을 충분히 이해해야만 진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카오스는 사라졌고, 이화 적조를 억제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화 적조가 순식간에 변화하는 사이, 새로운 0호 대행자는 이 모든 것을 노리고 있었다.
우주 도시의 자원은 많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 숨어 지낸다면, 식량은 온실과 비축분으로 버틸 수 있으나 다른 소모품들이 문제였다.
구조체들의 순환액과 예비 부품들, 그리고 인간에게 필요한 혈청과 의약품... 우주 도시 내에서 제조나 재생할 수 없는 이런 물자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실험 장비들이 긴 세월 속에 조금씩 닳아 없어진다면, 또 어디서 적절한 대체품을 구할 수 있을까?
...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먼저 공격하는 것뿐이야.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희생될 거야. 설사 그게 내가 될지라도 상관없어. 내가 숨 쉬는 한, 저항을 포기하진 않을 거야.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야. 우물 안 개구리처럼 죽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어.
간단한 논의 후, 현재 순찰대와 구조체 중에서 자원자를 모집해 적조 샘플 채취와 심층 연구를 계속하기로 했다.
뜻밖에도 모집 공고를 내자 지원자들이 실험실 입구에서 거리까지 줄을 이었다.
실험실 밖에 기대선 바네사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좀 의외라서.
...
솔직히 말하면, 이번 선발대는 너와 나밖에 없을 줄 알았거든. 근데 어젯밤에 사람들이 이것저것 토론하는 소리에 잠이 깼어.
이런 상황도... 나쁘지 않네.
바네사는 불빛이 어른거리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조악한 조명을 들고 있었고, 그들의 표정에는 희망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누구도 장벽 뒤에 영원히 갇혀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한 번 빛을 본 이상, 어둠의 조수 속에 안주할 수는 없었다.
죽음을 대가로 치를지라도, 인간은 허리를 곧게 펴고 이 지구에 자신들의 묘비명을 새길 것이다.
수억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미래의 문명도 이곳에서 그들의 불굴의 의지와 투쟁의 기념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상처투성이가 되고, 탄약과 식량이 바닥나는 순간이 올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