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3 밤의 장막 너머의 빛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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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침묵의 해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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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온통 검붉은 거미줄로 뒤덮여 있었다.

액체, 액체, 또 액체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폐는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뜨자 거미줄이 눈알을 단단히 휘감았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이 폭발하듯 퍼져나갔다. 마치 벌레가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날뛰는 것 같았다.

방향도 위치도 알 수 없는 혼돈의 공간 속에서 지휘관은 간절히 중력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온몸이 끈적한 액체에 휩싸여, 자기 신체와 주변 환경의 경계조차 알 수 없었다.

마치... 녹아버린 것만 같았다.

어쩌면 지금 느끼는 것이 순수한 의지만 남은 자신의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상한 감각이 혼돈 속으로 파고들었다.

혀끝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새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터지면서 상큼한 맛이 퍼져나갔다.

혀뿌리에서 강렬한 신맛이 퍼지자마자 중력 감각이 돌아왔다. 흩어져 있던 의식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비로소 지휘관은 자신이 단단한 무언가 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긴... 의무실인가?

야.

바네사는 과즙이 흐르는 야생 과일을 지휘관의 입술에서 떼어내며, 군용 비수를 가볍게 돌려 보였다.

지휘관의 장례식을 준비해야 하나 했는데, 아쉽게 됐네.

지휘관은 거미줄에 휘감긴 눈꺼풀을 애써 들어 올리며 그것을 걷어내려 했다.

하지만 수천 개의 바늘이 피부를 파고드는 듯한 통증은 여전했다.

당연히 머리가 아플 거야.

예정된 지점까지 아직 10만 8천 미터나 남았는데, 갑자기 쓰러지더니 머리부터 눈더미에 처박혔잖아. 갑작스러운 이화 적조 습격이 있었다 쳐도...

이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화 적조를 보고 기절하다니...

바네사의 손에서 군용 비수가 날렵한 도구로 변했다. 그녀는 능숙하게 움직이며 두 번째 과일의 청황색 껍질을 끊김이 없이 깎아내고 있었다.

그건 극지에서만 자라는 희귀한 사과였다.

입 벌려.

비수 끝에 꽂힌 과일 조각이 지휘관의 입가로 다가왔다.

허.

지휘관의 입안에서 다시 한번 새콤한 맛이 터졌다. 그렇게 차가운 야생 과일이 지휘관의 흐릿한 정신을 조금씩 깨워가고 있었다.

이제 좀 괜찮아?

지휘관의 표정을 본 바네사는 더 말하지 않고, 과일 조각을 다시 찍어 지휘관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말해봐.

파도가 거세게 밀려왔고, 죽음의 감각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했다.

꿈속의 광경 그리고 조금 전 정신을 잃었을 때 빠져들었던 해저...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억의 조각들이 의식 속에서 계속해서 교차했다.

해저라...

야생 과일 깎던 손을 멈춘 바네사의 눈동자에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그 승격자 말하는 거야?

둘은 동시에 같은 일을 떠올렸다.

폭우와 파도가 한데 뒤섞여 바닷가의 암초를 향해 밀려와, 완전히 무장한 소대를 물안개로 뒤덮어 버렸다.

레이저 포인터의 붉은 점이 목표를 조준했지만, 목표가 품고 있던 물건에서 이상한 빛이 뿜어져서 그 누구도 선뜻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라미아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그 숫자 기억해?

네가... 아니 또 다른 네가 나에게 알려줬잖아.

그 사람은 "내가 버려진 거구나"라고 말했었다.

해저의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그리고 햇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 인어의 곁에서 죽었다.

그때 일이라면...

바네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급박한 노크 소리가 무거운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지휘관님! 이화 적조에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