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2 은하수를 향해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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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4 폐허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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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나미는 이번 수색구조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나나미는 "인간 보호 수칙 100항"을 하카마에게 하나하나 자세히 알려준 후, 이번 수색구조 작전의 모든 권한을 그녀에게 위임했다.

하카마, 이쪽 일은 너랑 스프너에게 맡길게!

필요한 게 있으면 네빌을 찾아. 혹시라도 네빌이 협조하지 않으면, 나나미가 돌아와서 혼내줄 거라고 알려줘!

정말 혼자 가시는 겁니까? 제가 동행할 수도 있...

여긴 하카마가 필요해. 기계 교회의 다른 기계체들은 인간과 어울리는 것에 아직 서툴잖아.

걱정 마. 나나미는 이번에 정말 조심할게.

연산 능력이 충분한 시설을 찾아서 기계 할머니와 연락하기만 하면 돼.

꼭 그렇게 하셔야 하는 겁니까?

응... 솔직히 좀 두렵긴 한데...

지금의 모든 게... 정말 나나미가 연산에서 봤던 그 "미래"인 걸까?

모든 것이 이전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완전히 다른 것 같았다.

공중 정원이 지구를 떠났다. 사실 확인 완료.

일부 인간이 지상에 남았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틀린 내용은 아니다.

적조가 퍼지고, 이합 재난 구역이 확산됐다. 이것도... 맞다고 봐야 하겠지?

나나미는 눈살을 찌푸린 채, 각 항목에 체크 표시를 했다.

공중 정원이 곧 떠날 거야. 일정 거리를 벗어난다면 난 기계 할머니와 연락할 수 없게 되겠지.

다시 연산을 하거나, 직접 기계 할머니한테 물어봐서 답을 알고 싶어.

지금 이 세계는 나나미가 봤던 그 미래들로 향하고 있는 걸까?

……

하카마는 더 이상 나나미를 말리지 않았다. 기계 선현이라 불리는 소녀가 지구의 마지막 희망을 위해, 홀로 모험을 떠나는 걸 막을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화 적조가 지면을 삼켜가면서, 대기의 온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어느새 새로운 소빙하시대가 찾아왔다.

흐음... 전에는 분명 이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폐허 앞에 선 나나미는 우울한 표정으로 양쪽의 선을 연결했다.

눈앞의 시설은 한눈에 봐도 이화 적조에 침식돼 있었다. 그렇기에 나나미가 아무리 전력을 연결하고 회로를 개조해도, 이 거대한 컴퓨터는 다시 작동하지 않았다.

하아, 벌써 네 번째 장소야.

나나미가 성난 듯이 지도에 X표를 그으며, 난처한 표정으로 지도를 바라보았다.

게슈탈트와 연결할 수 있는 시설을 여러 개 발견했으나, 그중 대부분은 이미 이화 적조에 의해 침식을 당한 상태였다.

이제 남은 건 눈앞의 도시뿐이었다.

나나미는 단말기에서 투사된 지도를 닫은 후, 몸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앞에 있는 폐허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폐허가 된 도시의 입구에 뜻밖의 방문자가 서 있었다.

핑크색 머리의 구조체는 폐허 한쪽에서 나나미를 보며 익숙한 미소를 지었다.

안녕.

또 만났네, 나나미는 널 기억하고 있어.

넌 공중 정원의 구조체잖아. 공중 정원이 곧 떠날 텐데, 왜 여기 있는 거야?

당연히 공중 정원의 수색구조 작업을 돕기 위해서지.

이스마엘이 망토를 여미며, 앞쪽의 폐허를 바라보았다.

나나미는 네가 뭘 하러 왔는지 관심 없어. 나나미를 막지만 않으면 돼.

널 막을 생각은 없어. 난 단지 네 생각이 궁금할 뿐이야.

아직도 마음이 바뀌지 않은 거지?

진짜 지구를 떠날 생각인 거야?

다른 선택지라도 있어?

유감스럽지만, 지금으로선 어떤 새로운 선택지도 보이지 않아.

그렇다면 나나미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나나미

시간이... 거의 다 됐어.

허공의 카운트다운이 깜빡이는 가운데, 중력은 계속 강해지며, 점점 무거워지는 중력 속에서 시곗바늘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중력이 극한에 도달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나나미도 몰라. 그리고 그걸 시험해 보고 싶지도 않고.

모두가 나나미한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 대체 어떻게 해야 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나미가 마주하고 있는 건 단순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아니거든. 나나미는 심지어 그 문제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고.

이중합 탑을 폭파시켜서 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핑크색 머리 구조체는 미소를 지으며, 나나미의 혼잣말과도 같은 불평을 얌전히 듣고만 있었다.

나나미는 해결 방법은 고사하고 문제가 뭔지도 알 수 없어. 나나미가 원해서 생긴 호칭은 아니지만, 나나미는 기계 선현이야. 그래서 기계체들을 이끌고 나가야만 해.

나나미는 기계체의 미래를 담보로 지구에 남는 도박을 할 수 없어. 하지만 인간의 친구로서...

<phonetic=나나미>지휘관</phonetic>의 친구로서...

인간이 이렇게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나나미는 인간이 좋아, 지휘관은 더더욱 좋고.

나나미가 혼자였다면, 이대로 지구에 남았을 거야. 결국 죽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나미는 인간과 지휘관을 돕고 싶어.

하지만 나나미는 다른 기계체 동포들의 운명을 대신 결정할 수 없잖아... 결국엔 나나미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걸까?

난 "정답"과 "오답"을 정의할 수 없어. 아니, 어쩌면 이 문제의 답은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것이겠지.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거야?

그녀는 미소 지은 얼굴로 기계체 소녀를 바라보았다.

나나미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어, 잠깐 생각을 좀 했을 뿐이야.

나나미는 머나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의 세계는 정말 그 "미래"로 이어지는 걸까?

기계체가 가야할 "길"은 끝없는 우주를 항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가야할 길은... 정말 지구에 있는 걸까?

음... 내 의견을 물어보는 건가?

나나미의 시선을 눈치챈 이스마엘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너라면 많은 걸 알려주지 않을 것 같아,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나나미는 네 의견을 듣고 싶어.

"미래"는 결코 내일의 도래를 막을 수 없는 법이지.

아무리 두려워해도, 지구의 태양은 변함없이 떠오를 테니까.

이스마엘의 손바닥 위로 반들거리는 주사위 2개가 나타났다. 마치 그녀의 손에서 수만 번의 마찰을 겪은 듯한 둥근 주사위였다.

신기하네, 나나미도 마침 똑같은 생각이야.

나나미가 지금 이곳에 서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

만약 원래의 "미래"대로, 인간이 생존할 기회를 얻을 수만 있다면...

나나미는 기꺼이 기계체들과 함께 지구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미 결심했으면서, 왜 나한테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닐까"라고 물어본 거지?

이스마엘은 보기 드물게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냥 네가 대단해 보여서 그랬어! 혹시라도 뭔가 알아낼 수 있으면 좋잖아~

회색 머리의 소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럼... 내가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면?

일단 그 답을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지휘관을 만나면 같이 판단할 거야!

"지휘관"을 그렇게 맹목적으로 믿는 거야?

"맹목적"이라니! 듣기엔 좀 불쾌한데!

나나미는 눈과 귀가 있으니, 보고 들을 수 있다고.

나나미가 잘못된 판단을 한다고 해도, 지휘관이 나나미를 도와줄 거야! 물론 지휘관이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나미도 나서서 도와줄 거고!

<phonetic=지휘관>나나미</phonetic>와 <phonetic=나나미>지휘관</phonetic>은 서로 믿고 있어. 그러니까 우린 분명 해피 엔딩을 만들 수 있을 거야!

미안... 내가 실언을 했군.

이스마엘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나미한테 더 할 말 있어? 지금 바빠서 가봐야 해.

작별 인사를 할 때가 됐군...

조금 전 내 실언에 대해, 사과의 의미로 해줄 말이 있어.

20면체 주사위가 이스마엘의 손에서 빙글빙글 돌았고, 멈춰 설 때마다 서로 다른 숫자를 보여주었다.

지금은... 막다른 길이 아닐 수도 있어.

지금의 "세계"는 잠들어 있지만, 언젠가는 깨어날 거야.

기점이 다가올 정확한 시점을 확인할 수 없지만, 그들은 결국 이 모든 것을 바꿀 방법을 찾아낼 거라는 예감이 들어.

당연하지! 나나미도 그렇게 생각해!

<phonetic=나나미>인간</phonetic>은 언제나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내잖아. 지휘관도 마찬가지야!

지휘관은 분명 이중합 탑에서 나올 거야! 그런데... 나나미의 행동이 인간과 지휘관에게 해가 되지는 않겠지?

나나미는 실패한 시간 수정자였다.

한때 순진하게도 자신이 정해진 미래를 거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연산한 여러 우주를 넘나들었음에도, 시간이라는 끝없는 강물 속에서 올바른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모든 가능성을 장악한 상태에서 최선을 선택하려 노력했었지만...

나나미는 마지막 "엔딩"을 바꾼 적은 없었다.

어떻게 해야 이 우주가 유일한 "정답"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을까?

……

그 질문에 답해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

흥, 네가 또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아무도 답을 줄 수 없으니까, 나나미는 기계 할머니를 다시 찾아가려는 거야.

게슈탈트도 답을 주지 못한다면?

그건 지금의 나나미가 고민할 일이 아니야. 미래의 나나미한테 맡기지 뭐.

나나미의 대답에 이스마엘은 다시 한번 말을 잃었다. 그렇게 쓴웃음을 짓던 이스마엘은 고개를 젓더니, 멀리 떨어지지 않은 폐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작은 희망이라도, 나나미는 인간을 도울 방법을 찾고야 말겠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나미는 지휘관을 도와서 모든 것을 가장 완벽한 엔딩으로 이끌 거야!

폐허를 침염한 이화 적조는 주변의 건물들을 타고 올라,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갔다.

나나미

그런 엔딩이 있을 거야. 그렇지?

이스마엘

내 답변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나나미

물론이지, 나나미는 이미 결심했거든.

영혼을 가진 기계체 소녀는 온 마음을 다해 인간과 이 지구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나미

나나미는 인간의 사랑으로 탄생했고, 그 사랑을 인간에게 돌려줄 거야.

소녀는 깊은 신념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했던 말을 반복했다.

나나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나미는 지휘관을 도와서 모든 것을 가장 완벽한 엔딩으로 이끌 거야!

이스마엘

가장 완벽한... 엔딩이라?

어쩌면, 네가 기대했던 "변수"가 네 소원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네.

이스마엘

<phonetic=지휘관>그렇지</phonetic>?

나나미

응? 지금 누구랑 얘기하는 거야?

이스마엘

아무것도 아니야.

먼 곳을 바라보던 이스마엘은 다시 시선을 돌린 후, 나나미와 나란히 폐허가 된 거리를 걸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음... 먼저 기계 할머니한테 가서 제대로 물어본 다음, 모두와 함께 우주 도시로 가서 우주 함선을 계속 제작할 방법을 찾아볼 거야.

그러다 지상에 새로운 변화가 생기면, 남아서 상황을 지켜볼 거고.

만약 지휘관이 탑에서 나온다면, 지금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생길 거야!

지휘관은 최고로 대단하거든. 하지만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있어, 음... 실은 전에 이중합 탑에 쳐들어가서 지휘관이랑 루시아를 데리고 나오려 했는데, 아쉽게도...

지금 그곳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지.

맞아. 나나미는 기체가 폐기되기 직전까지 찾아봤는데,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어.

중점인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을 "볼" 수 있었다면, 넌 아마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응, 봤어.

시간의 흐름이 어떻게 변하든, 그 안에 서 있던 건 지휘관뿐이었다.

지휘관은 이 세계의 앵커 포인트였으며, 시작인 동시에 종착점이기도 했다.

그곳까지 볼 수 있다니, 넌 정말 재능이 있는 아이구나.

지금 상황은 막다른 길이 아닐 수도 있어.

20면체 주사위가 또다시 회전하기 시작했고, 이스마엘은 그 주사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다만... 운명과 이어진 유일한 거미줄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나나미의 노력과 앞으로의 계획들로도... 부족하다는 거야?

턱없이 부족해.

<phonetic=너>너희들</phonetic>이 하려는 모든 일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다를 바 없거든.

그 바늘은 정말로 존재하는 거야?

미안하지만, 그건 나도 단정 지을 수 없어.

오랜 시간이 지나, 네가 미래의 "너"로 성장했을 때...

그때도 내가 필요하다면, 너의 곁에 나타나 줄게.

짧은 거리의 끝에 다다를 무렵, 나나미는 폐허가 된 도시의 반대편에서 자신이 계속 찾아 헤매던 곳을 발견했다.

그곳은 충분한 연산 능력을 갖춘 시설이 있는 연구소였다.

나나미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방금까지 곁에 서 있던 분홍 머리 구조체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좋아! 이대로 힘차게 가자! 나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