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적조가 물러나자, 루나는 다시 산꼭대기에 앉았다. 그러나 그녀는 눈에 띄게 지쳐 보였다.
엠마는 구조된 순찰대 대원들을 데리고 먼저 집결지로 돌아갔고, 바네사는 산기슭에서 방어를 맡았다. 그리고 산꼭대기에 올라온 인간 지휘관의 앞에는 한 소녀가 있었다.
그러나 지휘관은 목까지 차오른 "괜찮아?"라는 말을 도저히 입 밖으로 뱉을 수 없었다.
이 재난에는 생존자가 없다.
너구나.
낮과 밤을 녹여내는 황혼 속에서, 새하얀 눈에 반사된 빛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루나의 표정을 아련하게 감추었다.
새로운 적조의 환영이구나. 이제는 네 기운까지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됐나 보네.
루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쇠약한 소녀는 고개를 들고, 생기 없는 두 눈으로 지휘관이 서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환영이라도 좋으니... 잠시 머물면서 내 말을 좀 들어줘.
너무... 너무 오래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