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설원 한편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곳은 광풍이 몰아쳤으며, 이화 적조와 눈꽃이 서로 뒤섞여, 부식된 대리석처럼 일그러진 무늬를 그려냈다.
…………
후우...
또 오는구나.
루나가 손을 뻗어 공기 중에 퍼져있는 퍼니싱의 흐름을 감지하며,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하... 또 이 모양이네.
적조의 환영... 넌 이번에 또 어떤 신분으로 여기 서 있는 거지?
너는 볼 수도 없으면서, 왜 내가 환영이라고 단정 짓는 거야?
……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거야?
적조에 들어오기만 하면, 이 세계의 "<phonetic=죽음>진실</phonetic>"을 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적조는 승격 네트워크가 빼앗아 간 것들을 다 돌려줄 수 있어. 네 눈뿐만이 아니야.
...
네가 뭘 그리 집착하는지 모르겠네.
넌 이미 승격 네트워크를 통해 "<phonetic=죽음>미래</phonetic>"를 봤잖아.
넌 결국 이 구석에서 죽게 되는 걸 봤다고. 네 힘이 언젠가는 바닥날 걸 너도 알고 있잖아. 네가 적조로 들어오기만 하면...
시끄러워.
쇠약해진 소녀의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지만, 손을 들어 올린 그녀는 정확하게 눈앞의 환영을 깨부쉈다.
헛수고야.
네가 여기 계속 앉아 있는다고 달라지는 게 있어?
네 힘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인간이 <phonetic=미래>모든 것</phonetic>에 대처할 방법을 정말 찾을 수 있을까? 넌 아직도 이 지구에 대해 그런 허황한 환상을 품고 있는 거야?
그건 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
루나가 다시 손을 들자, 적조의 환영이 희박한 공기 속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흰 눈만이 소리 없이 흩날렸다.
인간은 정말 그녀가 힘을 잃기 전에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설령 찾지 못한다 해도, 그때가 되면 그녀 또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터였다.
루나는 그 "<phonetic=죽음>미래</phonetic>"를 보았다.
소녀의 어깨 위로 새하얀 눈이 쌓여가는 가운데, 그녀는 땅에 흩어진 자갈들을 하나둘 모아, 누군가와 닮은 모습을 만들었다.
루나는 이제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볼 수 없었지만, 수없이 반복해 온 손길을 떠올리며 최대한 비슷하게 그 모습을 되살렸다.
매서운 눈보라와 함께 고농도의 퍼니싱이 몰려오던 그때, 이화 적조가 암석을 집어삼키는 절벽 아래에서 정체 모를 인기척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
루나는 짜증 난 듯 눈썹을 찌푸리며, 낮은 한숨을 쉬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는 이 이화 적조와 싸우는 것이 싫었지만...
맞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