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진동이 일어나자, 본·네거트는 역장 차단막을 유지하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균열이 꿈틀거리도록 내버려뒀다.
심장 박동이 갑자기 빨라진 지휘관은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걸음을 내딛는 순간, 한 그림자가 틈새에서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그림자는 몇 걸음을 휘청거린 후에야 겨우 자세를 잡았다.
그 익숙한 눈동자는 회색 베일에 가려진 듯 흐릿했고, 방황하던 시선이 마침내 지휘관에게 머물렀다.
지... 휘...
지휘관은 쓰라린 가슴을 뒤로 한 채 곧바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두 손으로 휘청거리는 루시아를 꽉 붙잡았다. 기체는 다행히 아무런 외상이 없었다.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갑자기 불안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
그 불안은 루시아의 침묵과 의식의 바다 쪽 미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루시아의 시선은 지휘관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고, 눈동자를 덮고 있던 어둠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루시아는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마치 빛을 발견한 것처럼 그녀의 눈동자에 다시금 희망의 빛이 감돌았다.
또 한 번의 부름에, 루시아는 지휘관의 품으로 달려와 온 힘을 다해 꽉 끌어안았다.
긴 시간 이어진 외로운 수호, 전하지 못했던 수많은 말들, 루시아는 그토록 그리웠던 존재를, 그녀 인생의 안식처를 꽉 껴안았다.
그동안 억눌려 있던, 아파했던, 혼란스러웠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그녀의 무감각했던 껍질은 재회의 순간에 전부 벗겨졌고, 루시아는 지휘관의 손바닥 아래에서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루시아는 대답 대신 더욱 힘껏 끌어안으며,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지휘관님.
불안정했던 목소리는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루시아는 눈앞의 지휘관을 바라보며 예전의 익숙했던 감각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네. 저 여기 있어요, 지휘관님.
그녀의 말투는 점차 단단해졌고, 불안감이 사라진 루시아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루시아는 팔의 힘을 조금 풀고 천천히 위아래를 살핀 후, 지휘관의 눈동자에 시선을 고정했다.
[player name]님.
루시아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짧게 포옹했다.
네. 돌아왔어요.
포옹을 마친 루시아는 한 걸음 물러나 지휘관의 모습을 살펴본 후,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펴며 쓴웃음을 지었다.
진정을 되찾은 루시아의 서염 기체는 외관상 멀쩡해 보였지만, 분명 과부하 상태임이 확실했다. 이 사실을 깨닫자 앞서 느꼈던 불안감이 다시 밀려왔다.
루시아는 지휘관의 걱정을 한눈에 알아차리고 먼저 자신의 상태를 보고했다.
기체 쪽은 문제없어요.
의식의 바다도... 현재 이탈 경고는 없어요.
말을 마친 루시아는 자발적으로 지휘관과 의식 연결을 시도했다.
모든 데이터가 정상이었고 의식의 바다 이탈 위험도 없었다. 루시아의 말대로 과부하가 극심하긴 했지만, 기체 상태에 실질적인 문제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왜?
30여 년간 이어진 전투와 안개 지역에서의 생사를 건 도주... 그런데도 루시아에게 심각한 문제가 없다니?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눈앞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순간은 마치 깨지기 쉬운 꿈 같아서, 곧 잠에서 깰 것만 같았다.
마음속의 불안이 손끝의 온기를 앗아갔지만, 루시아는 재빨리 지휘관의 손을 잡고 그 따뜻함으로 한기를 떨쳐냈다.
저는 괜찮아요. 지휘관님.
루시아의 낮은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숨기려는 기색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 스쳐 지나가는 의문을 붙잡기도 전에,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생각이 끊겼다.
그녀도 곧 돌아올 거예요.
카오스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 루시아는 비교적 안전한 거리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빛 무늬 태도에 손을 올렸다.
이 말을 들은 루시아는 균열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도 동급의 위협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 같았다.
카오스를 바라보는 루시아의 눈빛에는 여전히 의심과 경계가 남아있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진 뒤, 루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은 곧이어 본·네거트에게로 향했다.
네. 알겠어요.
계획이 명확하고 정보도 충분했기에, 도박일지라도 루시아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루시아는 곧바로 기체에서 열쇠 코어를 꺼내 카오스에게 건네려 했고, 바로 그때...
쾅!
청명한 파열음과 낮은 휘파람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조심하세요!
챙!
차가운 빛이 스치고, 적조로 응결된 날카로운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다시 만났군요. 여러분. 당신들을 찾는 게 정말 쉽지 않았어요.
이제 포기하는 게 어떠세요? 쓸데없는 발버둥은 인생을 지루한 장편소설처럼 만들 뿐이에요.
지휘관님, 뒤로 물러나세요.
계속하실 건가요?
콜레도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몸이 갑자기 옆으로 비틀어졌다.
보이지 않는 충격파가 콜레도르의 귓가를 스쳐 지나가면서, 그녀의 긴 머리카락 몇 가닥을 날려버렸다.
…………
구경만 하실 줄 알았는데.
콜레도르는 치유 중인 본·네거트의 몸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동안 많이 힘드셨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을 도우려는 건가요?
협력 관계라도 맺으신 건가요?
콜레도르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곧 무언가를 깨달은 듯 표정이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적조가 격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콜레도르는 미소를 거두고 눈을 가늘게 떴다.
나쁘지 않네요. 이렇게 된 이상, 깔끔한 결말을 써내려 가 보죠. 아무리 단단한 암초라도 결국 파도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높이 치솟았던 적조는 콜레도르의 선고와 함께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