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1 칼날 위 탄생한 나비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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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5 마지막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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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간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난 인간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복부의 상처는 봉합되었고 거의 회복 단계에 접어들었다.

다소 복고풍의 집으로, 생활용품들이 주변에 아무렇게나 놓여있고, 얇은 먼지가 방구석에 쌓여있었지만, 자주 사용하는 공간은 새것마냥 깨끗했다.

자세히 보니 소파에 긁힌 자국이 있었다. 집에 고양이라도 있는 걸까?

본·네거트는 자신의 병상에 앉아 마치 간호사처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구식 단말기로 무언가를 연구하면서도 한쪽 눈으로는 지휘관의 모든 행동을 감시했다.

자세히 보니 코트 아래 입은 옷은 평소와 달랐는데, 아마도 집에서 입는 옷 같았다.

본·네거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본·네거트

크게 다쳤으니까.

본·네거트

네가 루시아와 함께 이중합 탑의 코어를 회수했기에 이 층에는 정화 구역이 없다. 리가 이중합 탑의 코어를 개조하여 만든 정화 구역은 위층에 있다.

본·네거트

위층.

본·네거트는 전혀 설명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출구라고 할 만한 곳은 모두 역장 차단막으로 봉쇄되어 있어서 탈출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루시아는 아직 안개 지역에 있었고, "열쇠"를 사용하고 싶어도 구체적인 사용법은 모를 것이었다.

반드시 본·네거트한테서 정보를 얻어내, 루시아를 구출해서 함께 이중합 탑을 벗어나야만 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의심할 테니... 일상적인 대화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본·네거트

5월 10일 오후다. 네가 수송기에서 적조로 추락한 지 한 달이 지났지.

본·네거트

내가 이 일로 사과하길 바라나?

아니면 말로라도 보상해 주길 바라는 건가?

본·네거트

번호표는 뽑았나? 날 죽이고 싶어 하는 이가 한 둘이어야 말이지.

본·네거트는 이런 무의미한 언쟁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당장은 정보 수집이 우선이었다.

본·네거트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콜레도르도 너를 이 시간대로 끌고 왔었지. 난 그녀가 남긴 "쥐구멍"을 이용했을 뿐이다. 그래야만 네가 나올 시간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

본·네거트

지금, 이 시점의 난 아직 이중합 탑에 들어가지 않았다.

본·네거트

이중합 탑과 퍼니싱을 이용해 기억을 전달하는 건 원래부터 능숙했다.

본·네거트

더 나은 상태로 다음 계획에 참여시키려고.

본·네거트

준비를 마치고 이중합 탑에 들어가겠지.

본·네거트는 구식 단말기를 보며 관련 기록을 찾는 듯했다.

본·네거트

마찬가지로 이중합 탑에 들어갔다. 다만 이번에는 이중합 탑과 함께 나타난 균열을 수리하는 쪽으로 전환됐지.

본·네거트

그렇다.

하지만 0호 대행자가 돌아온 후로는 어느 시점에서 문제가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게 됐다.

본·네거트의 손이 살짝 멈칫했다.

본·네거트

그 일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도미니카가 알려 줬나?

본·네거트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

본·네거트는 다시 한번 무거운 목소리로 지휘관의 직위를 불렀다.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표정도 변화가 없었지만, 펜을 쥔 손에는 힘이 더 들어간 듯 보였다.

꿈에서 봤다고 본·네거트에게 말해야 할까?

계속 침묵을 유지한다면, 이 대행자도 더 이상 정보를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긴 꿈에서 본·네거트는 부하들에게 카오스 오염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승격 네트워크와 퍼니싱이 만들어낸 필연적 현상이라고만 포장했다.

이 사실을 본·네거트에게 말한다 해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지휘관의 정보뿐이다. 하지만 이미 호랑이 굴에 발을 들였으니, 이 정도 위험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본·네거트

?

상처가 회복하기 시작한 지휘관은 베개에 기대앉아 꿈에서 본 일들을 차근차근 들려주었다.

"니모"와 "트라우트 교수", 본·네거트의 의식의 바닷속에 융합된 사형수에 관한 이야기부터

심해에서 겪은 모든 일 그리고 이중합 탑에서 코어와 리가 겪은 일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상처가 회복하기 시작한 지휘관은 베개에 기대앉아 꿈에서 본 일들을 차근차근 들려주었다.

"니모"와 "트라우트 교수", 본·네거트의 의식의 바닷속에 융합된 사형수에 관한 이야기부터

심해에서 겪은 모든 일 그리고 이중합 탑에서 코어와 리가 겪은 일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지휘관의 이야기가 끝나자, 본·네거트는 그제야 구식 단말기에서 시선을 떼고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본·네거트

…………

그러다 잠시 후, 생각에 잠긴 듯 다시 고개를 숙여 단말기의 기록을 보았다.

본·네거트

네 증상은... 0호 대행자의 권능이 가져온 영향과 매우 비슷해.

네 몸에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는 게 아니라면, 넌 결국 카오스와 융합되어 0호 대행자의 자리를 이어받게 된다는 뜻이다.

본·네거트의 목소리는 너무나 평온해서 오히려 침울하게 들렸다.

본·네거트

이미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더 이상 숨길 필요 없겠군.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봐라.

긴 설명이 필요한 내용이라면 한 가지만 들을 수 있다. 나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고, 너도 완전히 회복되어야 여기서 나갈 수 있으니까.

본·네거트

…………

본·네거트

질문이 뭐지?

본·네거트

그건 서로 다른 미래의 방향을 말하는 거다. 위층의 이중합 탑에 코어가 존재할 때, 리는 들어가서 코어를 수정하게 되지만, 코어가 녹아 사라진 후에는 이중합 탑에 들어가서 균열을 수리할 것이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 세계의 미래 분기점은 이중합 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계선"이란 말보다는 이중합 탑의 각 층으로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다.

많은 사건이 이중합 탑을 통해 변경된 후에도, 과거의 희생과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다음 층으로 가는 초석이 될 뿐.

이중합 탑도 그로 인해 조금씩 높아지다가, 결국 파멸이나... 붕괴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거다.

본·네거트

가장 높은 층의 세계만 남게 된다.

본·네거트

0호 대행자와 코어가 모두 있다면 가능하다. 코어가 녹아없어져도 0호 대행자가 코어를 되찾는 걸 막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본·네거트

그 빛 속에 서 있는 자는, 나보다 너와 더 많이 접촉했을 텐데.

본·네거트

<b><ud><color=#34aff8ff><link=1>도미니카의 초대장</link></color></ud></b>?

본·네거트는 수많은 시간의 기억 속을 더듬으며 단말기를 잠시 뒤적이다가, 드디어 병상의 인간이 말한 물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깨달았다.

본·네거트

네게 초대장을 남긴 자도 자신의 것이 아닌 일들을 볼 수 있었나 보군. 너만 떠올릴 수 있는 암호를 남긴 것도 이해가 돼.

내 추측일 뿐이다.

본·네거트

아마 아닐 거다.

<phonetic=니모>내</phonetic> 추측으로는 진짜 도미니카는 안개 지역에서 나온 적이 없다.

도미니카는 모종의 방법을 이용해서 이 시대의 "후계자"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거다.

본·네거트

그렇다. 이전의 도미니카가 네게 초대장을 준 것도 네가 새로운 도미니카가 되어 오염된 밈을 봉쇄하길 바랐기 때문일 거다.

본·네거트

데이터 벽을 열어 도미니카의 유산을 찾으려는 이들 앞에서, 네가 설령 새로운 후계자가 된다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을 거다.

게다가 그건 네 두뇌를... 의식을 데이터화해야 한다는 뜻인데, 넌 그것에 대한 적응 능력 없을 텐데, 맞나?

본·네거트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클론이라는 더 오래되고 믿을 만한 기술을 네게 쓰라고 한 거다.

본·네거트

이중합 탑과 카오스 오염으로 발생한 시간 혼란 구역이다. 비유하자면... 이 세계의 적조와 비슷하다.

본·네거트

적조는 안개 지역의 하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을 침식할 수 있고, 사람들을 불완전한 상태로 만들 수 있지.

본·네거트는 잠시 망설였다.

본·네거트

모든 세계가 2차원으로 벗겨지거나, 네가 2차원 상태로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나?

본·네거트

이중합 탑의 코어를 가지고 있다면 가능할 거다.

본·네거트

이미 두 개 다 물어봤다.

본·네거트는 한숨을 쉬었다.

본·네거트

그래.

본·네거트

많은 사람들이 대재난을 극복하려고 준비했는데, 결국 가장 많은 희생을 낳은 제일 처참한 이 계획만 성공하게 됐다.

정말 무의미해.

본·네거트

넌 아직 모든 사람을 구하지 못했어. 네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왜 다른 방법을 시도하지 않았지?

본·네거트

대행자에겐 대행자의 한계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나도 많은 방법을 시도해 봤었고, 이중합 탑을 이용해서 계속 계획을 수정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다른 이들을 가장 많이 배려할 수 있는 방안이 이것이었다.

본·네거트

미래를 되돌려?

난 그런 대의를 품은 적이 없다. 태양이 여전히 뜨고는 한, 세상은 구원받을 수 있다.

본·네거트

그것도 내 목적 중 하나다. 아무도 없는 행성은 지루하고, 이 둘은 충돌하지도 않는다.

본·네거트

난 그 세계에 안식을 주고 싶을 뿐이다. 그들은 아직 죽지 않았다. 단지 죽음의 경계에서 고통스럽게 버티고 있을 뿐이지. 그들을 구할 방법을 찾기도 전에 코어를 다시 가져간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본·네거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조로웠지만, 피로감에 묘한 온화함이 배어 있었다.

본·네거트

그 목적도 충돌하지는 않는다.

본·네거트는 다시 평소의 차분하고 담담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본·네거트

…………

질문을 들은 본·네거트는 펜을 쥐고 있는 자기 손을 바라보았다.

본·네거트

그렇지 않다.

나의 현재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내 것이 아닌 습관들을 유지해야 한다.

묻고 싶은 게 그것뿐인가?

본·네거트

…………

이 질문을 들은 본·네거트는 고개를 숙인 채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역시나 수납장 아래에 통통한 주황빛 형체가 보였다.

본·네거트

이 근처에 있던 길고양이들이다. 굳이 쫓아낼 필요가 없어서 내버려두고 있는 거다.

본·네거트

역장 차단막은 너를 위한 거다.

…………

더 궁금한 게 없나 보군.

본·네거트

…………

본·네거트

고양이 사료도 괜찮나?

본·네거트

…………

본·네거트

나중에 혹사한테...

본·네거트

쿠키 있는지 찾아보겠다.

본·네거트

알고 있겠지만, 오염된 밈은 영점 에너지와 함께 나타났다.

문명의 가장 발전된 기술을 먼저 침식해서, 그 기술에 맞춰 자신의 형태를 바꾼 거다.

우리가 있던 미래에선, 오염된 밈이 시간 여행 장치를 선택해서 시간 여행자들을 오염시켰다.

이 세계에서 오염된 밈이 게슈탈트 내에 봉쇄되지 않았다면 모든 정보 전달이 차단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문자도, 언어도, 심지어 기호마저 사라진 세상과 마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본·네거트

겉보기에는 정신분열증 같지만, 사람만 교란하는 게 아니다. 이건 일종의 "미래 수렴" 효과다.

어떤 예방책이든 변화든, 오염된 자들은 같은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죽음이나 사고를 발생시키고, 더 많은 죽음을 초래해서 오염을 퍼뜨리는 거지.

네가 이중합 탑에서 미래를 수정하려 했을 때, 0호 대행자만이 아니라 카오스 오염의 영향도 받아서, 반복되는 죽음과 허망함을 겪었던 것이다.

본·네거트

그렇다. 하지만 여기는 아직 퍼니싱의 세계이기에 카오스 오염은 퍼지지 않았고 이중합 탑 내부에만 제한되어 있다.

본·네거트

난 역장 차단막이 있으니까.

Ω무기가 퍼니싱에 "정화" 효과가 있는 것처럼, 이건 카오스 오염에 잡히지 않게 해준다.

본·네거트

0호 대행자가 된다면, 너에게도 줄 거다.

본·네거트

…………

본·네거트는 재차 한숨을 내쉬며, 이게 몇 번째 질문인지 세는 것조차 포기한 듯했다.

본·네거트

이중합 탑의 "문"은 다른 "문"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본·네거트

전에 그 여자한테서 들은 건데, 다른 "문" 뒤에는 <color=#ff4e4eff>생명이 없는 문명</color>이 존재한다고 했다.

이것은 가치 있는 요소들을 회수하는 작업이다. 진공 영점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문명을 검증한 뒤, 비정상적으로 발전한 문명의 데이터를 추출하여 "문"으로 운반한다. 그 후 그들의 독자적인 진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본·네거트

기준은 오염된 밈의 공격을 견뎌낼 수 있느냐다. 인간이 불을 다루듯이 <phonetic=오염된 밈>퍼니싱</phonetic>을 제어할 수 있다면, 그건 선물이자 도구가 될 것이다.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진공 영점 에너지를 마음대로 사용하는 건, "문"이 보기엔 잘못된 거지.

본·네거트

문명의 데이터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문"은 그 씨앗을 열적 침체의 대재난을 넘어 우주가 재시작된 후 다시 태어나게 하려고 하는 거다.

본·네거트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본·네거트

내가 친절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면, 이 문명도 친절할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무슨 이유에서든, 시선을 지나치게 멀리, 지나치게 거대한 곳에 둔다면 현재의 모든 것이 희생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본·네거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본·네거트

어쨌든 난 0호 대행자의 권위가 인간의 의식 속에서 통제되도록 할 것이고, 희생자들이 적조의 도움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거다.

그녀는 적조를 바다 안에 가두고, 남은 인간을 위해 생활 구역을 만들어 줄 거다.

본·네거트

너는 당연히 반대하겠지만, 더 나은 선택지는 없다. 곧 너를 바다 밑으로 데려가 불완전한 카오스를 완전히 대체하도록 할 것이다.

도미니카는 후계자를 찾지 못했고, 공중 정원의 기술은 아직 0호 대행자에 맞설 수준이 아니다. 너와 인간 앞에 남은 선택지는 나밖에 없다.

모순된 상황이라고 생각 들겠지만, 네가 아무리 증오심을 품고 있더라도 앞으로의 길은 오직...

본·네거트는 무장 해제된 인간이 이런 행동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순간 그가 얼굴에 착용하고 있던 가면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그의 무릎 위로 떨어졌다.

가면 아래에 드러난 얼굴은 마치 이미 오래전에 치유의 힘을 잃어버린 듯, 균열로 가득했다.

본·네거트

상처? 이는 의식의 바다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치유해도 다시 궤양이 번져버리니 무의미한 시도는 하지 않는 것이다.

본·네거트

원래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리면 이렇게 된다.

본·네거트

묻고 싶은 게 그것뿐인가?

본·네거트는 가면을 집어 들어 다시 얼굴에 착용했다.

본·네거트

여기서 날 때릴 생각을 하다니, 단순한 감정 표출은 아닌 것 같군.

본·네거트

다 했나?

지휘관은 이번에도 본·네거트의 얼굴을 정확히 때렸다. 하지만 전과는 달리, 가면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손만 아팠다.

본·네거트

뭘 하고 싶은지 말해라.

본·네거트는 이 말을 오래 기다렸다는 듯 조용히 듣고 있었다.

본·네거트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나?

본·네거트

그렇다.

본·네거트

…………

이중합 탑에서 회수한 코어를 카오스에게 주어서 그녀가 일시적으로 0호 대행자의 권한을 상속받게 하자는 말인가?

본·네거트

이 방법은 언제 알게 된 거지?

본·네거트

…………

그런 방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카오스도 콜레도르처럼 조금씩 자아를 잃고 0호 대행자의 저장 장치가 될 거다.

본·네거트

…………

본·네거트의 표정에 여러 가지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말을 꺼내지 않고 계속 듣기만 했다.

본·네거트

그런 방식으로 네 운명을 누구에게 맡길지 결정하겠다는 건가?

본·네거트

네가 루시아를 구해낸다고 해도, 그녀는 널 되찾기 위해 또다시 끝없는 시간 역행과 투쟁을 시작할 거다.

본·네거트

그러니까, 네 계획은 이중합 탑 안의 내가 루시아와 함께 이중합 탑의 코어를 안개 지역에서 끌어내라는 거군.

그리고 코어를 카오스에게 주고, 따라온 콜레도르를 죽여서, 카오스가 0호 대행자의 권한을 이어받게 하려는 생각이군. 설사 그것이 오래 유지되지 못하더라도 말인가?

본·네거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본·네거트

네 계획에는 아주 큰 불안정 요소가 하나 있다.

본·네거트

네가 모든 내기에서 이긴다고 해도, 0호 대행자와의 전투는 반드시 이중합 탑을 다시 붕괴시킬 거다.

그럼, 너와 루시아가 이중합 탑을 떠나 도착하게 되는 시점은 더욱 불확실해지게 된다. 심지어 그녀가 5월 3일에 남겨둔 이 중요 지점마저 사라질 수 있다.

만약 네가 도착한 곳이 황폐한 시간이나 세계라면, 이중합 탑도 계속 붕괴돼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되면, 그땐 어떻게 할 거지?

본·네거트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중합 탑 안의 나는 오랜 시간 고문을 받았다. 평정심을 유지할 여유 따위는 없다. 지칠 대로 지쳐있거나, 폭력적으로 변해있을 거다.

아주 힘든 전투가 되겠지.

본·네거트

…………

본·네거트는 오랫동안 말없이 고민하다가, 평소답지 않은 말투로 입을 열었다.

본·네거트

좋다.

본·네거트

그렇다.

나도... 줄곧 생각해 봤다. 도미니카의 최초 계획이 실현된다면 어떻게 될지 말이야.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꼭 한 번은 필요했던 실패라고 생각하면 되겠군.

본·네거트

하지만 알아둬라. 카오스가 버티지 못하고, 네가 출구를 찾지 못한다면, 내가 시간 역행을 하는 것도 영향을 받게 될 거다.

그때가 되면, 넌 절대 <color=#ff4e4eff>희생</color>을 피해선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이 세계는 같은 곤경에 빠져 같은 파멸의 길을 걷게 될 뿐이다.

본·네거트

목숨?

지친 말투 끝에서 차가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본·네거트

그 당시, 본인의 목숨을 걸고 내게 부탁했던 자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너희들은 자신의 생명을 마치 화폐처럼 서둘러 지불하고 고난에서 홀가분하게 도망치려 할 뿐이다.

본·네거트의 차가운 웃음 속에는 원망의 떨림이 섞여 있었다.

본·네거트

내가 말한 <color=#ff4e4eff>희생</color>은... 네가 오랫동안 살아남아, 긴 시간 속에서 모든 이들의 이별을 목격하는 거다.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