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의무실로 막 돌아왔을 때, 용병 대장이 다가왔다.
저희 얘기 끝났어요. 다들 당신을 믿고 이번 작전에 동의했어요. 바깥 상황에 큰 문제가 없다면, 사람들을 불러서 도우라고 할게요.
근데 만약... 음, 당신들이 말한 것처럼 다들 자기 몸도 챙기기 힘들다면... 저희가 먼저 그들을 도와줄게요.
좋아요. 그렇게 하시죠.
네. 그럼, 여기 머리 아픈 문제는 당신한테 맡길게요. 정 안 되면 도움을 요청해요.
네. 그렇게 할게요.
갑시다. 사람들 대부분이 2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네.
루시아가 돌아서서 지휘관을 향해 미소 지었다.
지휘관님.
D7 쌍둥이 전망대 2층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침울한 분위기를 떨쳐내고 그다음 작전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곧이어 구조체와 지휘관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조용해졌다.
군중 밖 가장자리에 혼자 서 있던 카오스도 지휘관을 바라봤다.
지휘관과 카오스의 시선이 마주치려는 순간, 루시아가 그 사이로 걸어 들어와 둘 사이를 가로막았고, 이합 생물의 모습도 완전히 가려졌다.
루시아와 지휘관은 모든 사람 앞에 나란히 섰다.
여러분.
모든 사람이 숨죽이고 루시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미리 약속한 대형대로 제 뒤에 서주세요.
이합 생물들이 지금 1층 로비에 있어요. 역장 차단막이 해제되는 순간 이쪽으로 몰려올 거예요.
제가 선봉에 설 테니, 여러분은 빈틈을 메워주세요. 적들한테서 튀는 체액에 닿지 않게 조심하세요. 안 그러면 궤양으로 퍼져서 절단해야 할 수도 있어요.
이곳을 떠난 후에는 모든 기계체를 피해 다른 사람들과 합류해야만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어요.
이상입니다.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가요?
없어요. 출발하시죠.
로즈, 역장 차단막을 해제해 주세요.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소녀는 위층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발소리를 들으며, 현을 튕기는 손가락 주변으로 붉은 나비 몇 마리를 띄웠다.
후후... 일부러 적조를 보여주지 않았더니, 역시나 내가 적조를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군.
넓은 광장에 집단 장례식을 열어주지.
루시아의 일격에 전시관 안쪽의 문이 무너졌고, 그 진동으로 이합 생물들이 물밀듯 몰려들어와 1층 계단까지 이어지는 긴 통로가 열렸다. 콜레도르는 그 상황이 재밌다는 듯 웃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희망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틈새는 곧 다시 나머지 괴물들로 메워졌고 이합 생물들의 점령 구역이 갑자기 줄어들었다.
콜레도르의 눈빛은 차가웠고, 손가락이 현을 스치자 붉은 나비가 괴물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며, 현의 울림이 공간에 퍼져나갔다.
처참한 살육과 붉은빛이 흩날리는 틈 사이로, 최전선에 있던 루시아의 시선이 어둠 속의 소녀를 정확히 응시했다.
이제 끝낼 때가 됐다. <phonetic=0호 대행자>콜레도르</phonetic>.
눈부시게 타오르는 불꽃이 주변을 감싸고 있던 어둠을 일순간에 몰아냈다.
하...
콜레도르의 손에 있던 하프는 사라지고, 붉은 나비들이 모여들어 녹아내리며, 날카로운 칼날을 장착한 핏빛 낫으로 형태를 바꾸었다.
낫이 채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루시아는 콜레도르 앞으로 돌진해 광기 어린 외침과 함께 치명적인 일격을 날렸다.
칼날이 정면에서 날아와 머리를 내리쳤다.
콜레도르가 눈을 살짝 치켜뜨고 검지를 구부리자, 이합 생물 하나가 순식간에 루시아를 향해 날아가 자기 몸으로 루시아의 맹공을 막아섰다.
둘, 셋, 넷... 모든 이합 생물이 콜레도르의 명령에 따라 그 눈부신 사냥감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루시아는 몰려드는 이합 생물들을 보며 다른 손으로 두 번째 검을 움켜쥐었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거다!
검광이 허공을 가르며 괴물들이 만들어 낸 감옥을 베어냈다.
타오르는 불꽃이 용처럼 휘몰아치며 흉악한 괴물들을 모조리 태워 없앴다.
콜레도르의 내려찍는 공격을 검으로 막아내고, 붉은 칼날로 숨이 붙어있던 다른 이합 생물을 처치했다.
휘몰아치는 강풍에 기체의 리본이 격렬하게 휘날렸다. 회전하는 화염 속에서 두 칼날이 반원을 그리며 번쩍였고, 이곳을 짓누르던 절망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베어버렸다.
백금빛이 하늘을 가르며 빛을 뿜어내고, 그 찬란한 빛 속에서 루시아는 마치 태양처럼 모든 것을 밝히는 듯했다.
어디로 가든, 내가 반드시 막을 거야!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센, 사람들을 엄호해서 철수하세요!
알겠어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은신처에 숨어있던 키리시마 유코도 뛰쳐나왔다.
루시아가 대부분의 적을 유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변두리에서 배회하던 괴물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노리고 있었다.
용병들은 중앙에 있는 직원들을 둘러싸고, 아직 잔류한 몇몇 이합 생물을 총기로 물리쳤다. 그 모습을 보던 키리시마 유코는 문득 콜레도르가 떠올랐다.
진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콜레도르가 저 건방진 용병들을 처리하는 걸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도 이로 인해 죽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해도 여전히 제가 원망스러우시면, 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기회를 드릴게요.
원망할 것인가? 센이 죽는 걸 봤다면, 분명 원망할 것이다.
유코는 피난 인원들 사이에서 전장을 주시하고 있는 센을 발견했다. 센은 다른 용병들과 함께 남은 괴물들을 화력으로 제압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보호받는 쪽이었다.
유코는 콜레도르와 협력했을 때와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모두를 위해 몰래 식량과 보호를 제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그것마저도 결국 타인에게 의존한 것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참으로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바로 그때, 땅이 갑자기 세차게 흔들리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거대한 짐승이 깨어난 듯한 진동에 철수하던 부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뭐야, 갑자기 왜 지진이 일어나!
조심해요! 지상에 균열이 생겼어요!
적조가 지면의 균열 사이에서 솟구쳐 거센 물줄기처럼 넘쳐흘렀다.
사방에서 이합 생물들이 튀어나와 몸에 묻은 적조를 털어내고는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대열 뒤쪽에 있던 사람들은 적조에 휩쓸릴까 두려워 죽을힘을 다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발밑을 조심하면서 앞으로 가세요! 저희가 엄호할게요!
용병들의 총에서 터져 나온 날카로운 총성이 적들을 쓰러뜨리며 군중의 공포를 잠시 누그러뜨렸다.
용병들은 총을 연이어 발사하며 이합 생물의 공격을 막아냈다.
뒤처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균열을 건너가는 동안 적조는 미친 듯이 불어났다. 그때 또 한 명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필사적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서 한 마리 이합 생물이 집요하게 쫓아왔고, 지면이 다시 흔들리며 적조까지 일렁였다.
혼란 속에서 사람들 틈에 숨어 있던 직원은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었다. 그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앞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아!
이합 생물이 포효하며 코앞까지 다가왔다. 위급한 순간, 센은 한 손에 총을 쥐고 다른 손으로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운 뒤, 그의 등을 밀며 앞으로 밀어냈다.
뒤돌아보지 말고 계속 뛰세요!
그와 동시에 용병 대장이 연속으로 총을 쏴, 키리시마 센 앞에 있는 이합 생물을 처치했다.
옆에도 조심해요!
잠시 숨을 고른 센은 다시 한번 철수하는 대열을 지휘했다.
사람들이 조금씩 무질서를 벗어나 질서를 되찾아가는 모습을 본 키리시마 센은 유코 옆에 서서 철수 대열의 측면을 지켰다.
줄곧 전체 상황을 살피던 센은 동생 쪽으로 돌아서서 방금 전의 상황들을 떠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총은?
여기. 근데 총알이 하나밖에 없어. 더 주면 안 돼?
안 돼. 넌 총 쓰는 법을 배운 적도 없잖아.
키리시마 센은 사격 자세를 조정하며 허리에 찬 비수를 보여주었다.
이걸 써. 같이 나가자.
이후 센은 다시 침묵하며 측면을 지켰고, 언니가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걸 눈치챈 유코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
도움이 되고 싶었다. 키리시마 유코는 다시 한번 손에 든 비수와 사용할 줄도 모르는 총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어 눈앞의 전장을 보자, 쓰러지는 이합 생물 뒤로 괴물 군대가 계속해서 적조에서 기어 나와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지진과 함께 적조가 갑자기 분출했고, 붉은 포위망이 빠르게 좁혀들었다. 거대한 손아귀가 도망자들의 생존 공간을 옥죄어 오는 것 같았다.
거대한 파도가 사람들을 삼키려 하자 대열에서 절망적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저 XXX가 오고 있어!
한 그림자가 대열 앞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저 괴물?!
카오스가 손을 들어 역장 차단막으로 대다수의 이합 생물을 막아내면서, 적조의 포위 속에 임시 피난처를 만들어졌다.
출구가 코앞이야. 뒤쪽 역장 차단막을 해제하고 모두 철수시켜!
안 돼요! 저 자식이 뒤돌아서는 순간 저희 다 잡아먹힐지도 모른다고요!
청년은 며칠간 쌓인 분노를 터뜨리듯, 달려드는 이합 생물의 목을 야구 방망이로 내리쳤다.
그는 체력이 바닥나 부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던 데이지의 팔을 부축해 앞으로 나아갔다.
보리, 천천히... 천천히요.
뭘 천천히 에요. 더 늦었다가는...
총성이 그 둘의 말을 끊었다. 용병 대장은 끈질기게 버티던 괴물을 쓰러뜨린 뒤 둘을 날카롭게 흘겨보았다.
그만 떠들고, 어서 가.
재난은 마치 구멍 난 둑처럼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아지지 않았다. 한쪽의 위험이 잠잠해지면 다른 쪽에서 공포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오지 마!
이합 생물은 살기로 가득한 날카로운 발톱을 번뜩이며 모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모나의 뒤에 있던 키리시마 유코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몸을 날려 그 앞을 막아섰다.
모나 언니!
데이지를 막아섰던 때처럼, 키리시마 유코는 본능적으로 몸을 던져 관리자 모나를 밀쳐냈다.
날카로운 발톱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면서, 유코의 다리에 끔찍한 상처를 남겼다.
윽!
키리시마 유코는 그 고통에 쓰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비수를 더 꽉 쥐었다.
순간 솟구친 용기로 날카로운 칼날이 이합 생물의 목을 베어냈다.
튀어 오른 체액과 쓰러진 괴물의 시체를 보자, 뒤늦게 몰려온 공포가 유코의 전신을 휘감았다. 겁에 질린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아 비수를 빼낼 생각조차 못했다.
유코!
괜찮아요. 전 괜찮아요!
키리시마 유코는 떨리는 목소리로, 모나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다리의 상처 때문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유코! 바보같이 왜 그랬어요! 이 상태로는 걷지도 못해요!
괜찮아요. 큰 부상은 아니라서…. 천천히 걸을 수 있어요.
무슨 소리예요! 천천히 가는 걸 탓하는 게 아니잖아요!
알아요. 어... 어쨌든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언니가 이직하면서 절 데려와 준 거잖아요. 그거에 대한 감사 인사라고 생각해 주세요.
…………
모나는 한숨을 쉬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유코를 붙잡아 억지로 일으켰다.
내가 부축할 테니까 얼른 가자!
고마워요. 근데…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이 입가를 맴돌았다.
먼저 가세요. 저 때문에 언니까지 못 가게 할 순 없어요.
이... 알았어요.
모나는 멀어지는 대열을 보며 손에 힘을 풀고 빠르게 그들을 쫓아갔다.
모나가 사람들과 합류하는 순간, 지면이 다시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적조가 몰려와 키리시마 유코와 일행을 갈라놓았다.
유코?!
괜찮아요! 전 루시아를 기다렸다가 같이 갈게요. 먼저 가세요!
…………
관리자 모나는 키리시마 유코의 선택을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유코가 절뚝거리며 계단을 오르는 것을 보다가 몸을 돌려 사람들을 따라 철수했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적조가 낮은 지대를 천천히 삼켜갔고, 철수하는 사람들은 용병들의 엄호 하에 카오스가 펼친 피난처로 숨었다.
로즈는 역장 차단막을 해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카오스의 피난처는 여러 번 흔들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방출하는 에너지로 인해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로즈를 바라보았다. 깊은 절망 속에서도 그들의 마음 한켠에는 희망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유코의 시선은 사람들을 향해 있었고, 센은 사방을 둘러보며 군중 속에서 동생을 찾는 듯했다.
용병 대장은 센의 어깨를 두드리며 주위 괴물들을 둘러본 후, 남은 총알을 센에게 건넸다. 그것은 전투의 책임을 맡기려는 의미였고, 센은 묵묵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언니로서의 감정은 잠시 내려놓고 수호자의 역할에 집중할 때이다.
… 좋아.
생각에 잠겨 있던 키리시마 유코는 갑작스러운 파공음에 정신이 들었다.
이 시각, 전시관에 발목이 잡혀 있던 콜레도르가 루시아의 봉쇄를 뚫고 나왔다.
또다시 막다른 길에 서게 되겠네요.
콜레도르는 계단 위 키리시마 유코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움직이는 인파와 자신을 막아선 구조체만 주시하고 있었다.
일대일 상황이라면 처리하기 힘들겠지만, 지금처럼 사람이 많을 때에는 신경이 분산돼 방심하는 순간이 생기겠죠.
뒤쫓아 온 루시아가 단칼에 콜레도르의 진로를 차단하며, 그녀의 도발도 막아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콜레도르는 낫을 휘둘러 루시아의 공격을 받아쳤고 순간 불꽃이 튀었다.
…………
… 콜레도르, 당신 대체 정체가 뭐죠?
눈 부신 빛에 정신이 혼미해지던 그녀는 전에 한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제 이름은 콜레도르에요. 정체는... 음, 정의하기 어렵네요.
제 생각엔... 저는 제 "작가"를 잃어버려서, 다른 "작가"의 이야기를 찾고 있는 것 같아요. 사명은 아니고, 그저 마음속 아쉬움을 달래는 취미일 뿐이죠.
당시 콜레도르는 키리시마 유코에게 친절을 베풀기도 했었다. 대체 그녀는 언제부터 변하기 시작한 걸까?
콜레도르는 그 창조된 캐릭터를 저장 장치로 삼아, 좀 더...
빙의... 같은 건가요?
인격 데이터 충돌이에요.
콜레도르의 몸 안에는 두 개의 다른 인격이 깃들어 있었고, 키리시마 유코가 그때 느꼈던 선의는 거짓이 아니었다.
콜레도르를 원래 모습으로 돌릴 방법은 없나요?
가능성은 있는 것 같은데,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몰라요.
…………
콜레도르는 당신의 의식을 주변의 나비로 만들어서 삼켰어요. 어쩌면 당신은 콜레도르에게 특별한 존재일지도 모르죠?
특별하다고요? 제가요?
네. 콜레도르가 당신에게 자기를 해칠 기회를 주겠다고 했잖아요.
그 나비... 아직 있을까?
그녀는 혼자 중얼거리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이 이미 차단막과 격리벽을 열어놓은 상태였다.
적조는 사람들의 희망을 꺾으려는 듯, 한 걸음씩 더 밀려왔고, 그들은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한 명씩 철수하세요!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남아서 뒤를 맡고, 싸울 수 없는 사람은 먼저 가세요!
유코!!
유코를 부르며 찾던 키리시마 센은 마침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건널 수 없는 적조를 발견했다.
유코!!
평소에 못 하는 게 없어 보였던 언니지만, 이번만큼은 건너편에 서서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는 듯했다.
키리시마 유코는 또다시 언니의 짐이 되어 버렸다.
언니, 콜레도르가 그러는데, 미래의 나는 여전히 언니와 언니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될 거래.
뭐?
센은 알 수 없는 웃음을 짓는 유코를 보며,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아 다시 되물었다.
나 같은 존재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계속 생각했어.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어.
멀리 떨어져 있던 탓에, 센은 여전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좀 더 크게 얘기해!
루시아를 불러서 얼른 이쪽으로 넘어와요! 시간 없어요. 당장 이 문을 닫아야 한다고요!
…………
밀리고 밀치는 사이에 인원 중 절반이 이미 철수했고, 모나도 그 외침을 끝으로 좁은 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유코!! 대답 좀 해!!
무슨 답을 해야 할까? 뭐라고 대답해야 이 다리로 저 건널 수 없는 강을 넘을 수 있을까?
키리시마 유코는 점점 가까워지는 콜레도르와 루시아의 격렬한 교전 소리를 들으며, 그저 센을 바라볼 뿐이었다.
좋아요. 차단막을 열어주셨으니, 저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죠.
여기 넘어갈 생각 하지 마!
그럼, 제가 오랫동안 준비한 트롤리 딜레마를 한번 맛보실래요?
콜레도르의 웃음소리와 함께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던 적조와 이합 생물이 순식간에 솟구쳐 올라, 루시아의 후방에서 지원하던 지휘관을 덮쳤다.
계속 저를 막으실 건가요, 아니면 이합 생물들을 막으실 건가요? 전자를 선택하신다면... 제 "병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겠죠?
루시아는 망설임 없이 적조와 이합 생물에 둘러싸인 지휘관에게 달려갔고, 소녀도 곧장 위험한 장벽을 뛰어넘어 사람들이 모여 있는 출구로 돌진했다.
문을 지키고 있던 카오스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긴 했으나, 이미 오랫동안 역장 차단막을 유지한 탓에 지쳐 있었고, 콜레도르와 맞설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직 대피하지 못한 센을 보며 카오스는 도망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조심해요!!
날카로운 칼날이 카오스의 역장 차단막을 강하게 내리치자, 인형의 가녀린 팔에 균열이 일어났다.
한 번만 더 타격을 입으면, 모든 것이 끝날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콜레도르!!!
키리시마 유코는 자신에게 답이 없는 그 육체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이 절 죽인 것도, 나비에 관련된 일도 전부 기억났어요!!!
완전한 거짓말이었다.
이중합 탑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시간 역행 이전의 일을 기억할 수 있을까?
하지만 <phonetic=콜레도르>0호 대행자</phonetic>는 이 거짓된 "정보"에 공격을 멈추고, <phonetic=0호 대행자>콜레도르</phonetic>와 함께 뒤를 돌아보았다.
전 당신이 말한 "작가"가 왜 마지막에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알 것 같아요.
?
키리시마 유코는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한 발이 남은 총을 들어 올렸다. 총을 쓸 줄 몰랐지만, 이번만큼은 절대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썩은 나무는 태워버려요.
분출되는 피와 함께 유코의 풍성한 머리카락 사이로 붉은 나비의 한쪽 날개가 피어올랐다.
아직 하지 못한 무의미한 축복과 작별을 뒤로한 채, 키리시마 유코는 그렇게 바닥에 쓰러져 적조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유코?!!!
그녀가 삼켰던 나비에서 익숙한 이명이 울려 퍼지며, <phonetic=0호 대행자>콜레도르</phonetic>의 손을 아래로 향하게 만들었다.
어서 가야 해요!! 키리시마!!
대장은 키리시마 센의 옷깃을 단단히 움켜잡고 로즈를 들어 올린 뒤, 두 사람을 강제로 좁은 문으로 이동시켰다.
마지막 사람이 빠져나가자, 역장 차단막이 다시 닫히며 마침내 봉쇄되었다.
루시아는 확인할 겨를도 없이 지휘관의 몸을 감싸안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적조 속 콜레도르는 천천히 유코에게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고 생각에 잠긴 듯했다.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루시아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지휘관은 자신을 더 꽉 붙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느낄 수 있었다.
지휘관님…
아무리 마음이 무겁더라도, 일방통행 길에 들어선 이상 뒤돌아설 수 없었다.
키리시마 유코가 어떤 마음으로 방아쇠를 당겼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건널 수 없는 적조 때문이었을까?
콜레도르를 잠시나마 멈추게 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아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자신에 대한 절망 때문이었을까?
키리시마 유코에게 미래의 일을 알려준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이었을까?
바뀐 미래를 마주한 생존자들은 분명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그래. 그녀의 죽음은 불가피한 거였어.
많은 사람들이 그 사고에서 살아남을 것이며, 키리시마 센의 의식의 바다는 동생을 구하는 일로 인해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센이 카퍼필드 해양 박물관에서 희생될 때, 이합 인간형이 된 그녀의 육체는 온전한 의식의 바다 덕분에 더 방대한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이 새로운 분기점을 토대로, 인간을 더욱 안정되고 번영하는 미래로 이끌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안전하게 우주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썩은 나무를 태우고, 마지막 순간까지 책임을 다한 영웅들이 희생되며, 올바른 죽음들이 쌓여야만,
상처의 별들로 가득한 우주로 향하는 길을 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