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실을 나서자마자, 시끌시끌한 소리가 복도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방화 유리창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어 보니, 소집된 용병들이 반원 형태로 모여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두려움과 긴장감이 엿보였다.
어떤 이들은 마치 주변에 거대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듯 총기를 품에 안은 채 경계하고 있었다.
확실하게 말해. 반드시 설명 들어야겠어!
진정하고, 애한테 그러지 마.
이건 아이냐 어른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그 괴물을 똑똑히 보지 않았습니까? 저걸 밖으로 내보내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어요? 우리의 부모님이나 연인들이 안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고결한 척 그만하세요! 그런 사람이 남의 물건 훔치고 폭력을 휘둘러요?
네. 저희가 배고파서 먹을 걸 빼앗은 건 사실입니다. 나가서 법의 심판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고, 저희 중 누구도 도망가지 않을 겁니다! 이건 그 괴물들이랑은 완전히 다른 문제에요!
루시아가 작게 고개를 저으며 상황을 지켜보자는 듯한 눈짓을 보냈다.
여러분이 그 장치에 대해 질문하셔서 사실대로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그 장치는 카오스가 제게 준 것이고, 우리의 안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했어요.
네가 얘기한 "그녀", 그걸로 우리를 보호할 수도 있고 가둬둘 수도 있다고.
우리가 여기 며칠째 갇혀 있는 것도 그 장치 때문이잖아? 전에는 직접 보지 못해서 몰랐지만, 오늘 보고나니까 이제 다 알겠어.
이합 생물을 경계해야 하는 건 맞지만, 지금은 잠시 그녀와 협력해야 할 때예요.
네.
문을 여는 루시아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오, 어제 안겨서 다니던 그 약골께서 깨어나셨네요.
그... 그만!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이미 어젯밤에 주먹맛을 봤다고요!
그만, 제발요! 잘못했어요! 대화로 해결하시죠! 대화로!
보아하니 어젯밤의 설득은 말로만 끝난 게 아닌듯 했다.
때마침 잘 왔어요. 전에 우리를 밖으로 데려다주신다고 해서, 다들 믿고 여기에 모인 거예요.
근데 이 아이가 말한 그 괴물은 또 뭔가요? 차단막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게 사실이에요? 나가고 들어가고를 그 괴물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거라면, 우리가 떠난 후에 어떤 나쁜 짓을 할지 모르잖아요.
당신들 혹시 그 괴물이랑 한패인가요?
아니에요. 저희는 이제부터 그녀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러 갈 거예요.
네?
이 도시에는 카오스 외에도 또 다른 잠재된 위협이 있어요. 도시를 순찰하는 그 괴물들, 전부 그녀가 만들어낸 거예요.
어젯밤에 말씀하신 기계체 폭동 사건 기억하시죠? 이 이합 생물들도 같은 이유에서 비롯됐어요. 컨스텔레이션 외부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했었고요. 여길 나가면 그 위험한 기계체들과 맞닥뜨리게 될 거예요.
그럼, 밖은 이미 종말이 닥친 거나 마찬가지네요.
…………
그럴 리가, 저기...
… 직접 나가셔서 두 눈으로 확인하시면 알게 되겠죠.
…………
여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건가요? 진짜 그 괴물과 협력하시게요?
협력은 일시적인 거예요. 카오스도 그 잠재적인 위협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어요. 가장 큰 위협이 제거되고 나면 저희가 직접 그녀를 처리할 겁니다.
매우 위험한 과정이라 여러분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어요. 그래서 우선 안전한 곳으로 철수한 뒤, 밖에 있는 다른 생존자들을 구하는 걸 도와주셨으면 하는 거예요.
만약 저와 지휘관님이 진짜로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거라면, 여기서 여러분을 죽이는 게 훨씬 더 쉽겠죠.
루시아가 빛 무늬 태도를 뽑아 들자,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불꽃이 타올랐다. 그녀가 한 걸음도 내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연이어 몇 미터 뒤로 물러섰다.
제가 혼자서 못 해낼 거라 생각해서 그런거라면, 한번 시험해 보셔도 좋아요.
그들은 멀찍이 서서 눈빛을 교환하더니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잠깐 저희끼리 상의 좀 할게요.
루시아는 무기를 거두고 대장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 무리는 제일 멀리 있는 키리시마 센 쪽으로 물러났다.
그로 인해 원래부터 벽 모퉁이에 서 있던 키리시마 유코가 더욱 눈에 띄게 되었다.
…………
안녕하세요.
키리시마 유코는 온 힘을 다해 용기를 내어, 이쪽으로 걸어왔다.
방금 말씀하신 "잠재적인 위협"… 혹시 콜레도르를 얘기하시는 건가요?
맞아요.
혹시… 그녀의 정체를 알고 계신가요?
키리시마 유코는 콜레도르에게서 답을 듣지 못했던 그 질문을 다시 꺼냈다.
전에 그녀와 얘기 나눈 적이 있는데, 자신은 작가에 의해 창조된 인간이라고 했어요.
빙의... 같은 건가요?
… 비슷한 거네요.
키리시마 유코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지친 듯 벽에 기대었다.
다행이네요. 적어도 제가 대화했던 콜레도르는 실제로 존재했고, 처음부터 저를 속인 게 아니었다는 거네요.
키리시마 유코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콜레도르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요?
대부분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었어요.
혹시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그 안에 중요한 정보가 있을지도 몰라요.
정보라고요? 그녀가 적조에서 본 이야기도 정보가 될까요?
아, 그리고 그녀를 창조한 작가와 그 작가의 유언 같은 것들도요…
다른 건 더 없었나요?
다른 거요? 미래에서 왔다고 했어요. 뭐였더라... 잘 이해는 못 했는데, 관리자 같은 거라고 했어요.
그 미래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미처 못 하고 실패했댔어요. 정확한 실패 원인을 못 찾고 있다면서요.
아! 그리고 두 분이 오신 후, 그러니까 어젯밤에 저를 찾아와서 이상한 말을 했어요.
뭐라고 했나요?
제가 몇 번이나 죽었는지 기억하냐고 또 나비가 된 꿈을 꾼 적이 있냐고 물어봤어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장주몽접 이야기 같은 걸까요?
컨스텔레이션에서 한 번 죽음을 겪은 후, 꿈속에서의 시선이 나비를 따라간 적이 있었다. 마치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된 것처럼.
무슨 사건이요?
절 죽였다고요? 왜죠?
언니를요?!
그럴 리가 없어요. 분명히 저와 약속했어요. 언니를 만나게 되면, 저에게 언니를 도와 줄 기회를 주겠다고… 근데 언니를 죽였다고요?
그걸 누가 신경 써요?
그걸 누가 신경 써요?
…………
콜레도르가 그렇게 한 것도 인격 데이터 충돌 때문인가요?
콜레도르를 원래 모습으로 돌릴 방법은 없나요?
특별하다고요? 제가요?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두 분이 이 모든 걸 알고 계신 것도, 그녀처럼 미래에서 왔기 때문인가요?
정말인가요? 콜레도르는 여러분이 올 거라고 예언했어요. 두 분이 이 재난의 진짜 범인이라면서 이름과 생김새까지 자세히 알려줬어요.
하지만 사람들을 죽이고 저를 조롱하는 모습을 본 후로, 더 이상 콜레도르를 신뢰할 수 없게 됐어요.
그래서 두 분을 믿기로 한 거예요. 제발 저를 속이지 말아주세요. 네?
역시 그렇군요.
시간 역행이라는 기술이 정말 존재했네요.
그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주세요. 그녀의 말처럼 사람들은 끝없는 재난에 빠지게 되나요?
그럼, 저는요?
콜레도르의 말대로라면, 두 분이 계신 미래에서 센 언니를 잘 알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그럼, 저도 아세요?
루시아는 난처한 얼굴로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말했어요. 두 분께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요.
전에 비앙카한테서 들은 적이 있어요. 지원 부대에 있던 센의 동생이 전투에서 희생됐다고 했어요.
그래서요? 전 어떻게 죽은 거죠? 센 언니에게 폐를 끼치진 않았나요?
그녀의 동생은 부상을 당해 침식된 후 승격자를 만났어요.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동생을 본 센은 공격 대신 그녀를 구하려 했죠.
합리적인 판단이네요.
하지만 결국 침식체로 되었고... 승격자의 조종하에 건물 최하층의 장치를 폭발시켜 그곳에서 조사 임무를 수행하던 구조체 14명이 전부 희생됐어요.
센은 살아남았지만, 중상을 입었죠.
원래는 특화 기체를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 폭발 사고로 의식의 바다가 심각하게 손상되어 자격을 상실했어요.
그래도... 이합 생물과 융합할 때는 조금이나마 자아를 유지할 수 있어서, 그 거대한 몸체가 통제를 잃지 않았던 거예요.
임무 보고서 정리하던 비앙카는 잠시 손을 멈추었다.
그녀는 계속 후회했어요. 승격자 손에 들어가면 절대 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동생을 공격하지 못했죠.
지휘관님이라면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자에게 포기하라고 하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끝까지 버티는 것 자체가 "영웅"의 특권이죠. 하지만...
저도 그런 선택 앞에 서게 되면, 소중한 사람 얼굴을 보고 잠시 망설이겠죠.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당신은 지원 부대의 구조 임무 중에 희생됐어요. 생전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고, 당신이 떠난 후... 지원 부대 대장님을 통해 당신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 질문에는 답해주지 않으시네요.
제가 혹시... 악의를 가진 자들과 손잡고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나요? 지금처럼요?
…………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결말을 좌지우지할 수 없어요. 단지 사고였을 뿐,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당신은 미래에서 자신을 구해준 많은 사람들과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 사고 때문에 자책할 필요 없어요.
…………
말을 끝낸 루시아의 미간은 여전히 펴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루시아는 키리시마 유코가 남긴 상처들을 직접 목격했었다. 그녀의 사정과 고통은 이해하지만,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웃는 얼굴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버릴 수 없는 개인의 욕망과 고통 앞에서 모든 옳고 그름과 관대한 말들은 무의미해졌다.
역시 그랬군요. 콜레도르는 거짓말하지 않았네요... 얘기해 주셔서 감사해요.
센과 대화해 보세요. 비극이라고 해서 피할 수 없는 건 아니에요.
언니와는 이미 얘기를 나눴어요. 저와 연락이 뜸했던 건 현재 맡은 임무가 기밀이어서 그런 거였고, 용병들의 죽음은... 제가 콜레도르에게 도움을 청했기 때문이란 것도 알고 있었어요.
키리시마 유코는 멀리 서 있는 키리시마 센을 바라보며, 지금 그들이 서로 얘기하지 않는 이유를 침묵으로 대신했다.
만약 저 같은 동생이 있으면... 용서 가능하세요?
…………
시선을 떨군 루시아의 머릿속에 아득한 옛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전 당신의 언니를 대신해서 그 질문에 답할 자격이 없어요.
키리시마 유코를 바라보며 한 말이었지만, 사실 스스로에게 해당 되는 말이기도 했다.
만약 같은 처지에 놓인 제 여동생이 이 자리에서 그런 질문을 한다면... 피해자를 대신해 용서할 수 있느냐고 답하는 것보다, <b>과거의 그녀</b>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을 것 같아요.
네?
"… 당신은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 꼭 무언가를 내줘야만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그건 선함이 아니라, 자신에게 상처 입히는 일이에요."
그건 잘못된 거예요. 한 번 잘못된 시작을 하게 되면, 그 잘못을 만회하려다 점점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게 돼요.
일단 그 심연에 발을 들이면, 피해가 증오를 낳고, 그 증오가 다시 상처를 입히게 돼요.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더 큰 대가와 시간이 필요하죠.
유코, 만약 당신이 모든 것의 시작점에 서서 현재의 선택을 되돌아본다고 가정해 보세요.
당신이 진정으로 알고 싶은 건 센이 당신을 용서했는가인가요?
…………
키리시마 유코는 갑자기 자조적인 웃음을 내뱉으며, 벽에 기대어 천천히 주저앉았다.
…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거겠죠.
스스로가 용서 안 돼서, 모든 행동에 이유를 붙이고 핑곗거리만 찾아다니면서 변명했던 거예요.
맞아요. 무언가를 하려 노력할수록 더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됐어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려고 성급하게 행동하다가 결국 어떻게 됐는지 보세요.
… 능력이 부족해서 그곳에서 목숨을 잃고, 많은 사람을 곤경에 빠뜨렸고, 유일하게 남은 가족에게까지 상처를 줬어요.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더라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었더라면…
하지만... 만약이란 건 없다.
키리시마 유코는 가슴에 달린 바보 개구리를 떼어내 손에 꽉 쥐고는 하던 말을 멈췄다.
바보 개구리 좋아하세요?
루시아는 몸을 숙여 그녀 옆에 앉았다.
네. 졸업하기 전부터 바보 개구리 이야기를 좋아했어요.
키리시마 유코는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바보 개구리는 제대로 하는 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기적의 네잎클로버를 찾아 집으로 가져가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결국 웃음거리만 됐죠.
하지만 바보 개구리는 실패와 웃음거리 속에서도 얻은 게 있었어요.
이 이야기들을 보며 저는 생각했어요... 나도 실패의 경험 속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세요?
저도 바보 개구리를 엄청 좋아해요. 바보 개구리에게도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는 걸 불과 얼마 전에 알았어요.
어? 그럼, 전에는... 외형만 보고 좋아하신 거예요?
네.
이야기를 얼마 전에 아신 거면, 무슨 책을 보신 거예요?
행복과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네잎클로버를 찾아 나선 그 책이요.
첫 번째 책이네요.
이 이야기에 결말이 있나요?
원래는 있었어요. 결말에 바보 개구리는 네잎클로버를 찾지 못했고, 네잎클로버가 가져다주는 보금자리도 찾지 못했죠.
하지만 실패하면서 남겨진 것들로 허름한 텐트를 지었고, 옆에 평범한 세 잎 클로버를 심었어요.
평범한 세 잎 클로버였지만 정성껏 물을 주고 지켜줬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바보 개구리는 세 잎 클로버 사이에 숨어 있던 네잎클로버를 발견했어요.
기적의 네잎클로버를 찾지는 못했지만 만들어 낸 거죠.
키리시마 유코는 이야기를 하면서 바보 개구리 모양의 녹음 펜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바보 개구리를 위해 쓴 노래가 여기에 들어있어요. 반주와 가사밖에 없긴 해요.
키리시마 유코는 코끝에 맺힌 눈물을 훌쩍이며, 정중하게 녹음 펜을 건넸다.
루시아, 이걸 당신께 드리고 싶어요.
저요?
네. 여기에 갇혀 있던 사람들을 도와주시고, 저와도 오래 이야기 나눠주셨잖아요. 정말 고마워요.
발표할 기회가 없었던 노래인데, 바보 개구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자체가 기적이에요.
이 기적을 빌어, 당신과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도... 기적의 네잎클로버를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랄게요.
감사해요.
제가 더 감사해요.
키리시마 유코는 일어나서 손을 흔들고 자리를 떠났다.
…………
지휘관은 키리시마 유코의 뒷모습을 바라며 조용히 루시아를 불렀다.
네. 지휘관님.
네.
의무실 문을 열고,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전망교로 발을 내디뎠다.
아래쪽 거리는 깨끗하게 정돈되었고, 적조의 오염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길었던 밤이 끝나가고 있다.
루시아는 햇살을 맞으며 가볍게 몸을 푼 뒤, 전망교 가장자리에 앉아 뒤에 있는 지휘관을 돌아보았다.
하실 말씀 있으세요?
…………
네. 조금은요.
여기는 황금시대이고... 그들도 아직 살아있을 때잖아요.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우리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고, 돌아가야 할 집도 있어요. 이런 말도 지휘관님께서 물어보실 때만 하게 되네요.
루시아는 미풍 속에서 눈을 가늘게 뜬 채 저 멀리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지휘관님, 보세요.
제일 왼쪽 거리 끝에 출구가 있어요. 지하 주차장과 거리가 멀기도 하고,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해요.
다들 모이면 저곳으로 철수하시죠. 콜레도르가 적조를 불러오더라도 저곳까지 도착하는 데 시간이 걸릴 거예요.
루시아는 미소를 지으며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이제 출발하면 저희가 선두에 서고, 용병들을 맨 뒤에 배치해서 가운데 있는 직원들을 보호하면 될 것 같아요.
지휘관님, 후방 인원들에게 원격 지원이 가능하세요? 제 시야에서 벗어나지만 않으시면 돼요.
루시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찬 바람 속에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는 전투가 계속될 거예요.
…………
왜 그런 말씀하세요?
아니에요. 아직은 확신이 서지 않는 일이라서, 말씀드려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반이중합 탑에 들어가서 시도해 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루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시아 곁에 있던 지휘관 역시 반이중합 탑에 들어간 이후의 계획을 언급하지 않았다.
겨울 햇살이 얇은 구름층을 뚫고, 컨스텔레이션을 봉쇄하고 있는 역장 차단막을 투과해 도시 전체를 눈부신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루시아는 마치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바람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자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휘관님.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에요.
지휘관님은 이제 돌아가셔야 해요.
지휘관이 루시아에게 손을 내밀자, 그녀도 미소 지으며 손을 맞잡았다. 수없이 해왔던 것처럼.
…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