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1 칼날 위 탄생한 나비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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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7 행성 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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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농도 퍼니싱 속에서 육체는 산산조각 났고, 흰빛이 모든 생명의 윤곽을 삼켜버렸다.

루시아가 읽을 수 있는 정보는 여기가 끝이었다.

하지만 그 지휘관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야는 여전히 확장되고 있었고, 꿈꾸는 자 외에는 그 누구도 이 꿈을 볼 수 없었다.

넌 누구지?

악몽의 시선이 흰 망토를 두른 여성에게로 향했고, 그녀 역시 그 시선을 감지했다.

그렇군. 넌 아직 꿈속의 시선을 자유롭게 통제하지 못하나 보네. 그럼, 함께 지켜보자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 앞을 바라보니, 수많은 시체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하늘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니, 수많은 실이 거리를 따라 흐르며, 붉은 파편들을 휘감은 채 깊은 늪으로 빠져가고 있었다.

지구의 생명체와 문명에 대한 정보가 담긴 실들은 점차 모여서 부풀어 오르는 "고치"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행성도 부화하려고 하네.

그녀의 말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여기서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어.

그녀는 거대한 "고치"가 감싸고 있는 "번데기"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시체들을 양분으로 삼고, 실과 그 안에 담긴 정보로 육체를 재구성하고 있었다.

그것이 성장할 때마다 세계는 조금씩 윤곽을 잃어갔다.

의식은 조금씩 허공으로 녹아들어 지면에서 멀어져 갔고, 그녀의 육체도 흐릿해져갔다.

모든 슬픔은 지구 중력의 소멸과 함께 위로 떠올랐다. 그것들은 주변을 휘감아, 그 어떤 영혼도 해방이나 안식을 얻지 못하게 했다.

지면은 이미 닿을 수 없을 만큼 멀어졌고, 머리 위에는 별들이 떠 있었지만, 손에 닿지 않았다.

구원이나 기적은 없었다. 한때 살아 있었던 모든 것은 데이터로 변해 "고치"의 일부로 스며들고 있다.

음? 이게 진짜 결말은 아닌가 보네.

그녀는 갈라진 "고치"를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 도망쳤어.

그것의 목적은 "수확"이야. "올바르지 않은" 문명을 없애고, 이 문명의 모든 데이터를 "문"으로 가져가는 거지.

물론... 올바른지 아닌지는 그것의 "테스트"로 판단해.

그것을 이기고 나면 "문"을 넘어설 자격을 얻게 될 거야. 다만 "문"을 온전히 통과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지.

그래. 이게 바로 그것이 하는 "테스트"야. 이걸 통제하면 별들로 향하는 "승선권"이 되지. 이곳 사람들은 그걸 "카오스 오염"이라고 불러.

…………

만약 기적이 일어난다면, 난 이 행성으로 올 거야. 그때 다시 만나자.

다시 눈을 떴을 때, 카오스가 주시하던 <phonetic=지휘관>그 인간</phonetic>은 반이중합 탑으로 돌아와 있었다.

현실과 꿈의 기억은 죽음과 시간 역행의 영향으로 뒤죽박죽이 된 상태였다.

육체는 마치 5월 3일 교수대에 못 박혀서 조금씩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이명과 두통이 동시에 몰려오자, 인간은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려고 애를 썼다.

반이중합 탑이 붕괴하면서… 현실이 계속 변하고 있어요. 악화된 현실로...

…………

콜레도르의 몸과 인격은 0호 대행자 때문에... 오히려 교란을 받고 있어요.

콜레도르의 의식과 자아가 불안정해서... 그래서...

카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중합 탑의 코어가 0호 대행자에 의해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막고 있어요.

인간은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며 늘 손에 쥐고 있던 중요한 물건을 떠올렸다.

그때가 되면, 활성화된 "초대장"으로 반이중합 탑에 들어가 사용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이걸로 반이중합 탑의 코어를 파괴하고 회수할 수도 있어.

명심해. 탑의 코어를 파괴한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거야. 이건 최후의 수단이다.

<color=#ff4e4eff>통제 불능</color>이요.

탑은 더 이상 0호 대행자의 통제도, "열쇠"의 통제도 받지 않게 되고, 모든 문제가 유출될 거예요.

반이중합 탑이 더 이상 적조나 균열과 같은 것들에 "반"하지 못하게 돼요. 그와 동시에, 누구나 탑에 들어갈 수 있게 되고, 들어간 사람들은 자신이 이동할 시간이나 장소를 제어할 수 없게 되고요.

완전한 혼돈이었다.

그렇게 되면 코어를 회수하는 게 의미가 있나?

이미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어요. 이러다간 0호 대행자도 코어 파괴와 같은... 혹는 더 치명적인 결과 초래할지도 몰라요.

…………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요.

그걸 알고 계셨어요?

카오스는 다소 놀란 듯 보였고, 잠시 머리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해낼 수 있으신가요?

이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았다. 마지막 희망을 얻으려면, 먼저 그것이 풀어 놓은 재난을 겪어야 했다.

피할 수 없는 결말처럼.

…………

만약 이 길을 가고 싶지 않다면, 만약 선택할 수 없다면, 가장 안전한 방법은 하나뿐이다. 시간을 지연시키며 반이중합 탑과 코어를 보존하는 것.

이중합 탑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는 없어도, 해결책을 찾을 시간은 확보할 수 있다.

제가 0호 대행자가 되면 돼요.

카오스는 그러기 위해선 또 하나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니면... 회수한 코어를 저에게 주시면, 제가 0호 대행자의 권한을 이어받을 수 있어요. 비록 제 의식은 콜레도르처럼 오래 버티진 못하겠지만요.

…………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다른 가능성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생기를 잃은 눈동자를 조용히 들어올 린 카오스는 다음 질문을 기다렸지만 돌아온 건 침묵뿐이었다.

그곳에 서 있는 인간과 인형은, 이 순간의 침묵 속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실패와 벼랑 끝에 선 듯한 절망이 깃들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헛된 시도와 끝없는 고통. 이중합 탑은 시간을 우롱하려는 자들을 가위처럼 끊임없이 잘라냈다.

다른 길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위험한 여정 앞에는 넘을 수 없는 절벽이 가로막혀 있었고, 오직 희생만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보였다.

쓴웃음을 짓던 지휘관은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이합 생물이 된 그녀를 돌아보았다.

…………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층 깊어진 침묵뿐이었다.

…………

루시아의 예상대로, 그녀의 지휘관 역시 같은 이유로 희생의 길을 선택하고 있었다.

그 인간의 희생을 막으려면 앞으로의 모든 행동을 신중하게 결정해야만 했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혼자 가시면 안 돼요.

루시아는 자신도 지키기 어려운 그 부탁을 작은 목소리로 간청했다.

앞으로...

코어를 파괴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회수한 코어를 가지고 본래의 시간으로 돌아가, 모두의 지혜와 힘으로 새로운 해결책만 찾을 수 있다면...

그녀의 희생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무사한 걸까?

5월 3일, 끝없는 학살 속에서 지휘관은 리브와 리의 죽음을 목격했다. 그것은 다가올 미래가 아닌,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었다.

0호 대행자가 살아있는 한, 그녀는 지휘관에게 끝없는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0호 대행자를 해결하려면, 결국 카오스의 의식이 되어야만 했다.

상태가 불완전한 카오스가 0호 대행자가 되려면, 코어를 파괴하는 게 우선이다.

이건 답이 없는 죽음의 순환이었다.

…………

컨스텔레이션에 들어온 후 유일한 진전이라면, 콜레도르가 "나무 열매"에 의해 견제되고 있다는 것 그거 하나뿐이야.

루시아는 본·네거트가 준 단말기를 꽉 쥐며 자신이 쓸 수 있는 카드를 확인했다.

이건 네 기체에 큰 손상을 주게 될 거다. 처음 사용할 때는 치명적이지 않겠지만, 여러 번 사용하면 네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게 돼.

…………

그 여러 번이 정확히 몇 번인지 본·네거트에게 질문해도 어차피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라고 생각해야겠어.

한 번이라도 실패한다면, 그 끝없는 전투에서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루시아의 계획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서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카오스.

내 기억엔 넌 로즈와 계속 연락하고 있었어. 처음 컨스텔레이션에서 만났을 때도 그랬고. 그녀를 보호하고 싶어?

카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즈를 보호하고 싶으면 컨스텔레이션에서 내보내야 해. 그건 내가 할 수 있어. 뿐만 아니라, 컨스텔레이션에 갇힌 다른 사람들도 전부 정상적인 세계로 돌려보낼 수 있어.

그걸 해내려면 너의 도움이 필요해.

첫째, 컨스텔레이션의 역장 차단막에 출구를 열어 그들을 대피시키는 동시에 적조의 침입을 막을 수 있어야 해.

카오스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우리가 반이중합 탑에 들어간 후, 지금처럼 올바른 시간으로 우릴 돌려보낼 수 있어?

…………

안 되는 거야? 아니면 장담할 수 없는 거야?

장담할 수 없어요.

반이중합 탑의 붕괴 정도가 매우 심각하지만, 최선을 다해 볼게요.

오차를 한 달 이내로 제어하는 건 가능해?

일 년이요.

반이중합 탑의 상황이 더 악화하지 않는다면, 일 년 정도는 가능해요.

더이상 시간이 없었다. 0호 대행자는 반이중합 탑의 파괴를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고, 루시아는 지금 자신에게 많은 선택지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

네 계획대로 움직여 줄게, 본·네거트.

루시아는 기이한 모양의 단말기를 들고, 기체 스캔 기능을 사용했다. 연결 장치를 철저히 여러 번 검사한 후 자신의 기체에 연결했다.

연결은 빠르게 완료되었고, 에너지 전송 과정에서 몇 번의 흔들림이 있었지만, 다행히 시행착오의 대가는 크지 않아, 열쇠는 잠시 후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모든 균열이 새로운 빛에 의해 덮인 듯했지만, 이런 얇은 막이 얼마나 오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저희 시합해요, 지휘관님. 지휘관님께서 저에게 가르쳐준 방법으로 같은 목적을 위한 죽음의 질주를 시작해 봐요.

…………

루시아의 알 수 없는 혼잣말을 들은 카오스는 뭔가 예감한 듯, 전투 단말기를 착용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말을 꺼내려다가 결국 고개를 숙였다.

하고 싶은 얘기 있어?

인형은 고개를 숙이고 앞의 구석 모퉁이로 시선을 떨구었다.

…………

있으면 말해 봐.

그 코어는...

?

라미아가 가져간 알로... 만든 건가요?

…………

연결된 '열쇠'가 반이중합 탑 영역 내에서 작동하자,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루시아는 인형에게 의문점이 생겼다.

완벽한 대화가 가능한 이합 생물은 비교적 온전한 인간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

……

너의 의식은 누구한테서 온 거지?

그 질문에 돌아온 건 긴 침묵뿐이었다.

추궁하려는 목적이 아니었기에 루시아도 더 이상 이 의문을 파고들지 않았다. 루시아는 카오스의 침묵을 받아들이고, 마음속으로 마지막 카운트다운을 세기 시작했다.

0이 되고 모든 것이 되돌아가려 할 때, 인형은 마침내 한탄이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기억이 안 나요. 제 이름이 카오스라는 것만 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