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1 칼날 위 탄생한 나비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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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5 길을 잃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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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행동하기에 앞서, 루시아가 끝까지 함구하려 했던 <phonetic=거짓말>비밀</phonetic> 하나를 털어놓으려 한다.

사실, 컨스텔레이션에 발을 들이는 순간, 서염 기체는 미래로부터 온 정보를 받았고, 거기에서 컨스텔레이션을 떠난 후 맞이하게 될 아홉 가지 결말을 목격했다.

그동안 루시아가 다소 과묵하게, 의도적으로 심층 연결을 피하며, 수시로 상대방과 접촉해 안전 여부를 확인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였다.

미래...

처음에는 루시아도 미래에서 온 이 메시지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외면했었다.

모든 상황을 자세히 살핀 루시아는 반이중합 탑이 완전히 붕괴하기 전에 원래 시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 아홉 가지의 미래는 모두 실현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0호 대행자는 절대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탑에서 있었던 74번의 시간 역행처럼, 그 둘에게는 항상 피할 수 없는 재난과 그림자가 따라다녔다.

때로는 이합의 광란이 하늘을 뒤덮으며 밀려왔고,

때로는 조사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에서 갑자기 함정이 터지기도 했다.

탁 트인 지형이 미로로 바뀌었다.

순간 미로가 붕괴하며 사방에서 협공이 들어왔다.

이 탑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의지를 갖춘 채 외부인들을 배척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평화로운 순간은 바로 반이중합 탑의 코어에 근접했을 때다. 그 신비로운 푸른 빛 아래에선 0호 대행자의 술책도 일시적으로 무력화된다.

0호 대행자.

0호 대행자가 존재하는 한, 줄곧 루시아를 주시할 것이고, 탑 내부는 마치 주인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마법의 집과 같기에, 거기에 들어가서 탐색하는 게 순조로울 리가 없었다.

이중합 탑에서 벗어난 후에도 이 저주 같은 그늘은 계속 따라다니고 있었고, 한 걸음씩 천천히 그녀를 아홉 개의 결말로 밀어 넣는 중이었다.

첫 번째 결말에서 루시아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게 되어 0호 대행자에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컨스텔레이션이 적조에 잠긴 지 1년 뒤, 외층이 열리게 되면서 세계는 적조에 잠식됐다.

두 번째 결말에서는 카오스가 시간을 되돌릴 수 없게 된 루시아를 대신해 지휘관을 데려갔다. 그 이후는 알 수 없었다.

세 번째 결말에서 루시아는 시간 역행을 포기하고 반이중합 탑에서 얻은 정보와 샘플을 공중 정원으로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다른 시간대의 복잡한 정보와 알 수 없는 오염에 시달리다가 탑으로 돌아가는 순간 죽고 말았다.

네 번째 결말에서 루시아는 본·네거트와 잠시 힘을 합쳐 시간 역행을 통해 지휘관을 구해냈다. 하지만 전투 과정에서 0호 대행자에게 이중합 탑의 코어를 빼앗겨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고 수많은 시체가 쌓여 피바다를 이루었다.

다섯 번째 결말에서 루시아는 본·네거트와 잠시 힘을 합쳐 시간 역행을 통해 지휘관을 구한 뒤, 0호 대행자가 모든 것을 파괴하기 전에 이중합 탑의 코어를 녹여버렸다.

하지만 지휘관은 코어가 제거된 후의 후폭풍을 막기 위해 카오스와 하나가 되었고, 이를 막으려던 루시아는 본·네거트에 의해 균열 속으로 던져졌다. 그 이후는 알 수 없었다.

여섯 번째 결말의 앞쪽 상황은 그 전과 비슷했지만, 0호 대행자가 반격의 기회를 찾아내 모두를 균열 속으로 끌어들인 뒤 이중합 탑을 붕괴시켰다. 그 이후는 알 수 없었다.

일곱 번째 결말에서는 코어가 녹아내린 후, 루시아는 이중합 탑의 균열 옆에서 영겁의 시간을 버티다가 결국 기력을 다해 쓸쓸히 혼자 죽었다.

여덟 번째 결말에서 루시아는 이중합 탑의 균열 앞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버텼지만, 돌아가는 길에 본·네거트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미 긴 전투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대응조차 못 하고 이중합 탑 밖에서 죽고 말았다.

아홉 번째 결말에서 루시아는 마지막 순간까지 버텼고, 지휘관은 회수한 코어를 가지고 이중합 탑에서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녀는 모든 대가를 감내하며, 안개 지역에 갇혀 몸이 부서질 때까지 버텼다.... 그 이후는 알 수 없었다.

…………

세계의 상태는 이 아홉 가지 결말 속에서 변동을 거듭했고, 지휘관도 세계의 운명과 얽혀 있었다. 오직 루시아 본인만 한 줄기의 희망조차 찾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루시아는 이런 "예언" 같은 정보들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떠밀려 결국 결말의 분기점에 서고 말았다.

이제 강제로 시간 역행하는 방법만 남은 걸까?

이 모호한 "미래 정보"들은 그 어느 것도 구체적인 경로를 완벽히 보여주지 않았다. 어떻게 그 조각난 미래의 그림들로 나아갈지는 여전히 하나씩 풀어가야 할 문제다.

정말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일까?

…………

이제는 거의 다 부서져서 반응하지 않는 "열쇠"를 꽉 쥔 루시아는 지휘관과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그 균열 앞에 혼자 서 있었다. 절망과 분노가 자신을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여기서 쓰러질 수 없었다.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다.

그 아홉 가지 결말 중에 코어를 녹이지 않고도 지휘관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분명 존재할 터였다.

우선 자료를 원래 시대로 가져가야겠어.

그곳에는 여전히 공중 정원이 존재하고,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다른 대원들, 그리고 과학 이사회와 게슈탈트도 건재했다. 그들의 지혜와 힘을 모으면 반드시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을 거야. 우리를 가두고 있는 시간을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어.

균열을 넘어, 루시아는 다시 한번 완수하지 못한 귀로에 오른다.

적조에 적셔진 균열 속으로 향한다.

반이중합 탑 붕괴 중에 발생한 이상 현상을 피해 갔다.

죽음과 고통의 기억이 서려 있는 장소를 하나씩 지나쳐, 마침내 단 한 걸음만 남겨둔 출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휘관님. 금방 갔다 올게요.

하지만 출구를 건너 반이중합 탑을 떠난 그의 눈앞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건 한 번도 본 적 없던 황량한 황무지였다.

이어진 선들이 거리와 골목을 그려내고, 빈 공간이 빛과 그림자를 메운다. 색이 바랜 풍경은 마른 종이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광경 앞에서 루시아는 한동안 방향을 찾지 못했다.

여긴 어디지?

지구 외의 공간? 혹은 본·네거트가 언급했던 "안개 지역"? 아니면 머나먼 미래?

그것도 아니면... 컨스텔레이션 안의 적조 영향 때문에 모습이 바뀐 "현재"?

…………

비통한 마음이 다시 한번 심연으로 떨어진다.

저기요!!

한번 외쳐본 목소리는 미지의 공허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자신의 귀에조차 들리지 않았다.

루시아는 기체의 에너지를 가동하여 이 기이한 풍경을 뛰어넘으려 했지만 기체는 "열쇠"처럼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풍경과 풀리지 않는 의문을 잠시 뒤로한 채,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디딘 그 순간, 그녀의 손가락이 점차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니 팔뚝이 주변의 풍경처럼 희미한 선으로 변해갔다.

이곳은 정적에 잠식된 세계였다. 어떤 생명체나 에너지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3차원의 모든 것이 벗겨져 나가고 텅 빈 백지만 남은 듯했다.

?

끝없이 이어진 공백 속, 오직 뒤에 있던 이중합 탑만 그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루시아는 손에 든 균열 가득한 "열쇠"를 다시 한번 바라보며, 반이중합 탑에서 수집한 정보와 아홉 가지 미래를 떠올렸다.

컨스텔레이션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 까닭에, 안정적으로 쉽게 해결 가능했던 결말은 이미 막혀 버렸다.

지휘관을 구하고 세계의 대재앙을 막으려면 남은 길은 단 하나뿐이다.

아홉 번째 결말...

그건 오랜 세월 동안 계속될 고된 싸움이었고,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여정이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모두가 심연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모든 대가를 혼자 짊어질 각오를 했음에도, 이 불확실한 미래가 가져올 위험은 여전히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어.

루시아는 칼자루를 꽉 쥐고 다시 한번 몸을 돌려

반이중합 탑으로 돌아갔다.

반복된 긴 여정 끝에, 루시아는 드디어 푸른 코어 근처에 서 있던 대행자를 찾았다.

끝없이 이어진 분노의 전투 끝에 루시아는 본·네거트가 소중히 여기던 "열쇠"를 움켜쥐고 그의 목에 칼을 겨눴다.

당신 말처럼, 이 길고 긴 악연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어.

루시아는 본·네거트한테서 시간을 되돌리는 도구를 빼앗아야 했다. 다만 그 전에 이 기회를 통해 몇 가지 정보를 캐내고 싶었다.

그 지휘관을 죽인 건 내가 아니야.

지휘관님을 죽인 이들 중에 너도 포함되어 있어.

루시아는 냉소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건 자신을 포함해, 이 곤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향한 비웃음이었다.

너의 원래 계획은 나와 콜레도르가 서로 죽이게끔 하는 거였어.

나와 지휘관님을 떼어놓고, 내가 방해하지 못하게 만든 뒤, 네 계획을 완수하려 한 거야.

시간 역행을 방해하지 않은 것도... <color=#00ffffff>살아있는 상태에서 융합 준비를 마친</color> 지휘관님을 카오스와 융합시키기 위해서였겠지.

루시아의 제어되지 않는 비통함과 분노에 떨리는 칼날이 카오스의 목을 파고들어 깊은 상처를 남겼다.

…………

대체 지휘관님한테 뭐라고 말한 거야?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을 벌인 거지? 왜 그분이 갑자기 너를 돕기로 한 건지 말해.

외부의 균열과 적조를 얘기하는 거라면, 그건 나도 지금 막으려고 노력 중이다.

아니. 내 말은... 왜 바깥세상에 빈 공간과 선만 남은 건지 해명하라고!

뭐?

모르고 있었어? 밖에 아무런 생명체도 보이지 않아! 세상 모든 게 윤곽선만 남아 있다고!

…………

반이중합 탑의 붕괴가 내 예상보다 심각하군.

제·대·로·설·명·해.

루시아가 이를 갈며 얘기하자 칼날이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상처를 따라 흘러내린 붉은 적조는 Ω 코어의 영향으로 녹아내렸다.

…………

반이중합 탑의 붕괴로 출구가 크게 어긋나서, 너를 또 다른 파괴 직전의 미래로 데려간거다.

다른 미래?

그래. 원래는 "다리"만 그 미래와 연결되어 있었다. 만약 0호 대행자가 아직도 반이중합 탑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거라면, 널 목적지에서 이탈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겠지.

신경 쓸 필요 없다. 그건 너희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이 문제가 발생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반이중합 탑의 파괴와 0호 대행자... 즉, 콜레도르의 조종 때문이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콜레도르는 개조된 코어에 대항하기 위해 반이중합 탑을 파괴할 수밖에 없었어..

내가 여길 지키고 있는 건 콜레도르의 행동을 막기 위해서다. 그녀와 적대적인 관계를 가지거나 이중합 탑을 벗어나면 잘못된 시간으로 가게 된다는 것쯤은 눈치챘잖아.

…………

사실 루시아는 이미 오래전에 눈치챘다.

반이중합 탑 탐색의 종착지는 균열과 적조가 모이는 곳이었다.

네. 정보 수집을 시작할게요.

루시아는 몸을 낮추고 서염 기체의 능력을 빌려, Ω 코어를 통해 퍼니싱을 흡수한 후 읽어낸 정보를 무인기에 보내 가상 영상으로 복원했다.

…………

역시 그들이었어.

그 출구로 도망쳤을 때, 올바른 시간에 도착했나?

알에 속박된 인형은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color=#ff4e4eff><b>그것도</b></color> 내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나?

…………

내 유일한 목표는 널 0호 대행자로 만드는 거다.

0호 대행자에게 의지가 빼앗기지 않는 한, 얻은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든 그것은 네 자유야.

…………

허상으로 이루어진 본·네거트가 균열이 집결된 적조의 가장자리에서 몸을 숙여 정체불명의 파편을 적조 속으로 던져 넣었다.

여기에 새로운 간섭 지점을 설치할 거다. 부식이 완료되기까진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지. 만약 실패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적조를 사용하면 할수록, 이 정보들은 그녀에게 쉽게 흡수될 거다. 그럼 인간성에 더욱 얽매이게 되겠지.

자잘한 일들과 쓸데없는 욕망에 주의가 분산되면, 반이중합 탑의 파괴 속도도 늦춰져.

과거로 전달된 메시지 외에... 지금까지 찾아낸 건 대부분 이런 내용들이에요. 본·네거트는 적조에 개입해서 0호 대행자의 계획을 지연시키려는 걸까요?

본·네거트가 말한 "위험을 무릅쓴다."가 지휘관님과 그 인간형 이합 생물의 융합을 뜻하는 걸까요?

혹시 다른 시간대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아니면 탑을 벗어났을 때 도착하게 되는 시점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전에 우리가 찾은 다른 기록에선, 본·네거트가 코어 앞에서 "반이중합 탑이 이렇게 파괴된다면, 그것이 간섭할 수 있는 시간도 혼란스럽게 될 거다."라고 말했어요.

우선 돌아갈까요?

네.

수색과 정밀 채취를 재차 시작하려던 그때, 손에 쥐고 있던 "열쇠"가 갑자기 심하게 진동했다.

너무 거센 진동에 "열쇠"를 붙잡기조차 힘들었고, 결국 적조 속으로 떨어지며 붉은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수많은 붉은 실이 뻗어 나와, 마치 고치처럼 열쇠를 감싸기 시작했다.

루시아는 재빠르게 앞으로 돌진하여, 서염 기체의 퍼니싱 면역력을 이용해 퍼니싱에 잠긴 "열쇠"를 건져냈다.

"열쇠"가... 정보를 흡수한 것 같아요.

웅웅거리는 진동 속에서, 열쇠는 붉은 실을 모두 흡수한 뒤 다시 고요해졌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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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실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더 복잡한 퍼니싱 언어일 가능성이 높아요. 아마 단말기가 해석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 같아요.

네.

…………

네가 적조를 통해 콜레도르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그런데 왜 지휘관님을 카오스와 융합시키려고 하는 거지?

늦었다. 반이중합 탑이 파괴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나 보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전에도 많았지. 시간 역행을 통해 그런 일들이 없었던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뿐.

처음 지휘관님을 찾았던 곳에서 "나무 열매"의 존재를 발견했어. 콜레도르가 더 이상 컨스텔레이션 전체를 집어삼킬 수 없게 된 것도 그 효과 덕분이었겠지.

그런데도 넌 지휘관님을 카오스와 융합시키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콜레도르도 죽이지 않았어. 대체 뭐를 망설이는 거지?

0호 대행자의 저장 장치와 여러 번 싸웠으면, 그녀를 탑 안에서 죽일 수 없다는 걸 너도 알 텐데.

하지만 그녀의 저장 장치인 콜레도르에겐 약점이 하나 있어.

본·네거트가 뒤에 있는 푸른 코어를 바라보았다.

바로 여기, 푸른 코어 근처에선 그녀를 죽을 수 있지.

하지만 넌 죽이지 않고, 계속 그녀를 감싸기만 했어. 게다가 당시 나와 지휘관님, 그리고 그녀를 반이중합 탑 밖으로 밀어낸 것도 안개 지역을 보여주려던 게 아니라 그녀를 보호하려 했던 거겠지.

컨스텔레이션에서는 서로의 위치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도 쉽게 알 수 있어.

가장 핵심은 0호 대행자는 저장 장치가 죽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아.

쉽게 설명하자면, 0호 대행자는 공중 정원의 지휘관처럼 일종의 권한이자 직위다. 지금은 콜레도르가 그 역할을 맡고 있는 거지.

담당자가 죽으면, 이 직위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다음 저장 장치로 넘어가게 된다.

카오스는 아직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때문에 그녀가 다음 0호 대행자의 저장 장치로 선택될 확률은 극히 희박하지.

만약 이 "직위"가 정체불명의 인간이나 나에게 위협적인 존재에게 넘어가고, 우리의 수단마저 모두 소진된다면...

이 세계의 미래는 네가 목격한 그 세계처럼 될 거다.

모든 것을 빼앗긴 그 세계.

혹은 미래 정보에서 본 것처럼 지휘관도 없고 사람의 흔적도 없는 그 세계.

…………

적합한 저장 장치를 찾지 못해, 불완전한 카오스가 0호 대행자의 다음 후계자가 된다고 해도...

의식이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해 서서히 자아를 상실할 거다. 그러다 결국 "콜레도르"처럼 0호 대행자의 사명만을 위해 움직이게 되겠지.

그 지휘관의 의식으로 그녀를 보완하는 게 내 목적이다.

네가 만든 이합 생물의 자질이 부족해서, 그녀를 보완하기 위해 지휘관님의 생명을 앗아가겠다고?

이 일만큼은 루시아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

0호 대행자가 가져올 재앙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대체 그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지휘관님도 너의 그 말을 듣고 협조를 약속한 건가?

그 인간이 협조를 결정한 건, 반이중합 탑의 붕괴가 컨스텔레이션보다 더 잔혹한 현실을 가져온다는 걸 봤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해도 넌 믿지 않겠지.

본·네거트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카오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루나와 넌 대행자 신분인데, 왜 0호 대행자를 대신할 수 없는 거지?

인간이 오염된 밈을 풀어놓지 않으려 한다면, 루나는 모든 걸 파괴해서 자신이 원하는 걸 손에 넣겠지.

지금의 루나는 0호 대행자를 대신하기는커녕 탑에도 들어갈 수 없다.

진입 규칙이 바뀌었어.

0호 대행자의 행방은 아직도 미지수인데, 혹시 반이중합 탑의 이상이 0호 대행자와 관련 있는 걸까?

나는 과거로 돌아가 루나에게 단서를 전달했다. 모든 사건이 시작되기 전에 게슈탈트의 일부를 파괴하여 0호의 출현을 저지해달라고.

하지만, 결국엔 그녀를 공중 정원과의 전투에 휘말리게 한 결과만 낳았다.

너희들도 탑에서 비슷한 시도를 했을 것이고, 모두 실패로 끝났겠지. 그리고 나처럼 정보 전달 자체를 차단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지휘관님 말씀으로는 반이중합 탑으로 가기 전에 루나가 나타났다고 하셨어. 그건 또 무슨 이유였지?

[player name]

방금 혹사가 너가 떠났다고 했는데, 또 여기 나타난 걸 보니, 왜? 미처 가져가지 못한 물건이라도 있는 건가?

그래.

그날 갑자기 등장한 본·네거트는 깊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마치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행동을 시작한 것처럼.

"미처 가져가지 못한 물건"? 아니면 반이중합 탑에서 얻은 정보 때문인가?

둘 다.

본·네거트는 아직 의식이 불완전한 카오스를 바라보며, 자신이 미처 가져가지 못한 물건이 무엇인지... 혹은 누구를 지칭하는 건지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난 반이중합 탑에 들어간 후, 너희들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난 거기서 0호 대행자의 추가적인 통제 불능 상태를 막으려고 계속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협조하지 않으려는 카오스를 설득하려 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지.

…………

그 일들이 가져온 결과는 너희도 봤을 거다. 이합 재난 구역이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지.

그 시점에서 재난을 막고 있었다고?

내가 막으려 했던 건 <color=#ff4e4eff><b>"통제 불능"</b></color>이다.

본·네거트는 마지막 단어를 강조했다.

내가 한 일과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더 큰 재난을 막기 위해서, 그 죽음과 혼란을 정당화하는 일은 더욱 없을거다.

나에겐 내가 바라는 미래가 있다. 개인적인 욕망이지. 그 미래로 가는 길에서 통제 불능은 내게 장애물이나 마찬가지야.

그럼 대체 뭘 바라는 거지?

<b>이중합 탑의 제약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게 시간에 간섭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카오스가 0호 대행자의 힘을 계승해서 내가 "문"을 완전히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b>

<b>동시에, 난 0호 대행자의 사명이 이루어지는 걸 절대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다른 미래, 즉 네가 본 그 세계에 존재하는 문제를 이곳으로 끌어올 테니까.</b>

<b>설령 내가 그녀의 사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해도, 절대로 그녀 뜻대로 되게 놔두진 않을 거다. 이건 0호 대행자에 대한 내 개인적인 원한이라고 봐도 좋다.</b>

<b>이 두 가지 목적을 위해 나는 끊임없이 후보자를 선별하고, 실험을 거듭하면서, 적임자를 찾아 헤맸다. 0호 대행자의 직위를 계승하여 나와 함께 그녀의 사명 완수를 저지할 인물을 찾기 위해서.</b>

<b>이 정도면 충분히 설명이 됐나, 루시아?</b>

…………

카오스를 풀어주고 나와 거래하는 건 어때. 이 탑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너무 많아.

그렇다. 루시아는 찾아냈다. 지금, 이 순간 본·네거트의 이 말은 아홉 번째 결말로 향하는 전환점이다.

본·네거트한테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도구만 얻을 수 있다면, 지휘관의 안전을 보장받을 기회가 생기는 거였다.

만약 운이 좋아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기나긴 투쟁의 여정 끝에 매 순간을 온전히 해야 할 일에 쓸 수 있다면…

루시아는 마침내 자신의 바람대로 지키고 싶었던 사람과 일을 지켜내고, 마지막에는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카오스를 0호 대행자로 만드는 것만이 이 재난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다. 나도 그 지휘관의 죽음을 딱히 원하지는 않아.

설령 네가 이곳에서 나와 카오스를 제거한다 해도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홀로 남아 자신의 시대로 돌아가는 길마저 잃게 될 뿐이지.

그래서 거래 조건이 뭐지?

루시아의 뻔한 질문에, 어둠의 대행자는 이상한 모양의 단말기를 꺼냈다.

네 "열쇠"가 작동하지 않는 건 작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 기체의 Ω코어는 카오스와 같은 근원을 두고 있지.

이 부분만큼은 내가 분명히 확신할 수 있어.

…………

네 기체를 이 단말기와 연결하면 다시 작동시킬 수 있다는 뜻이야.

루시아는 대답하지 않고, 눈앞의 대행자가 그것을 사용하는 대가를 설명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네 기체에 큰 손상을 주게 될 거다. 처음 사용할 때는 치명적이지 않겠지만, 여러 번 사용하면 네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게 돼.

네 목적은 이거 같은데?

넌 내가 충돌 속에서 먼저 목숨을 잃기를 기다렸다가 혼자가 된 지휘관을 데려가려 했어. 하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지.

본·네거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럼 다른 선택지라도 있나?

…………

카오스를 인질로 잡은 루시아는 본·네거트에게 천천히 접근했다. 그리고 본·네거트의 손에서 단말기를 빼앗고서야 카오스를 놓아주었다.

카오스, 루시아가 원래의 시간과 위치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 여기서 직접 되돌리면 오차만 더 커지게 될 거다.

……

가기 전에 한 가지 더 물어볼 게 있어.

…………

본·네거트, 너는 매번 콜레도르가 초래한 재난과 카오스가 그녀를 대체하는 게 결정적이라는 점만 강조하면서 설명하고 있어.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만큼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어.

너의 입장은 뭐지? 관전자? 아니면 앉아서 이익만 챙기는 건가? 이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거지?

…………

루시아, 또 같은 결말을 반복하고 싶나?

본·네거트

루시아, 넌 또다시 같은 결말로 돌아왔다.

회상은 그 끝없는 전투 속으로 휘몰아쳐 떨어졌다.

무한히 되풀이되는 시작점, 끝없는 이어지는 소모전 속에서 루시아는 마침내 본·네거트가 역장 차단막 이외의 방법을 쓰게 만들었다.

날 죽여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네가 <color=#ff4e4eff><b>지금</b></color> 당장 얻을 수 있는 도움만 더 줄어들 뿐이다.

0호 대행자를 제거하기 전까지는 네가 죽어도 상황은 변하지 않을 거야.

그 지휘관은 이미 자신의 선택을 내렸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 결말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적어도 여기까지 오면서 있었던 일들은, 난 모두 기억하고 있어.

네가 제시한 방향이 얼마나 기만으로 가득 찾는지, 그리고 그로 인한 희생이 모든 걸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기대되네. 너는 소중히 여기는 그들에게 어떤 완벽한 답을 줄지.

기대해. 그날이 오면... 아니, 0호 대행자만 죽이고 나면 너도 바로 죽여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