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1 칼날 위 탄생한 나비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31-14 "나비로 진화"하는 이유

>

갑자기 어두운 통로에서 거대한 붉은 물결이 분출하더니, 급류가 들이닥친 것마냥 주변의 벽을 산산조각 냈다.

다들 조급한 모습이 역력했고, 루시아가 마침내 엘리베이터에 들어섰다.

창백한 조명이 모두의 혼란스러운 얼굴을 비추었고, 엘리베이터 아래에선 계속해서 물결이 솟구치며 쫓아오고 있었다.

이제 어쩌지? 이게 또 거리로 넘치는 건 아니겠지?

일단 지상으로 올라가서 판단하시죠.

왜 미리 얘기 안 했어! 이 귀신 나올 것 같은 곳에 이제 비상계단까지 무너져있잖아!

루시아가 미리 경고했었잖아요. 듣지 않은 건 우리죠. 우선 숨겨진 중층으로 가볼까요?

아래에서 적조가 다시 한번 귀를 찢는 듯한 파열음을 내면서 밀려왔다.

상승하던 엘리베이터가 그 충격에 의해 천천히 멈추더니, 낯선 층에서 문이 열렸다.

이게 숨겨진 중층인가요?

일단 여기로 숨어!!

일행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어두운 터널로 발을 내딛기 전, 모퉁이에서부터 홍수가 난 것 같은 굉음이 들려왔다.

통로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앉았고, 흩날리는 먼지들은 밀려오는 적조에 휩쓸려 사라졌다.

!

물러나세요!

엘리베이터 옆에 있던 구조체가 주먹으로 버튼을 내리쳤다. 천천히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틈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이 루시아의 초조한 얼굴을 고스란히 비췄다.

이윽고 적조의 파도에 둘러싸인 엘리베이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단 한 걸음 차이였다.

암호도 얻었고, 반이중합 탑의 균열도 바로 앞에 있다.

단 한 걸음 차이로 저 안에 들어가지 못했고, 반이중합 탑으로 돌아갈 수 없었으며, 집으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았다.

그들이 내디뎌야 할 마지막 한 걸음은 바로 눈앞의 적조였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터널을 가득 채운 적조를 어떻게 건너야 할까?

루시아를 올려다보니, 그녀의 표정 역시 지휘관과 마찬가지로 무거웠다. 그 죽음들을 목격한 뒤로 루시아는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곧 지상에 도착할 거예요. 우선 여기를 벗어나시죠. 암호도 얻었으니, 나머지는 안전한 곳에서 의논하시면 될 것 같아요.

갑자기 엘리베이터 아래에서 거대한 충격음이 들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수압 때문에 금속이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붉은 물방울들이 엘리베이터 틈새로 스며들면서 가는 물줄기를 만들어냈다.

이합 생물이에요. 놈들이 엘리베이터 아래에서 공격을 시작했어요.

루시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다시 한번 거센 충격에 흔들렸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넘어졌다.

주변에는 어느새 여러 개의 틈이 생겼고, 안전했던 공간에 붉은 기운이 스며들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엘리베이터 안의 생존자들은 중앙으로 바짝 모여들었다.

네. 위로 가시죠.

루시아는 빛 무늬 태도를 지휘관에게 맡긴 후 그를 들어 올렸다.

이합 생물이 여러 번 부딪히면서 엘리베이터는 예전의 견고함을 잃게 되었다. 위쪽 틈에 칼날을 집어넣어 비틀자 점점 벌어졌다.

젠장, 빨리해! 우리가 도와줘?!

적조는 여전히 바닥 틈새를 통해 흘러들어오고 있었고, 루시아는 서염 기체 내 Ω 코어를 최대 출력으로 올려 다가오는 적을 물리쳤다.

"쾅!"

빛 무늬 태도에서 불꽃이 튀며 마지막 장애물을 녹여냈고, 칼자루의 강한 타격으로 인해 철판엔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구멍이 생겼다.

구멍 너머로 절반은 어두운 통로, 나머지 절반은 꼭대기 층의 희미한 빛이 보였다.

적들은 모두 아래쪽에 집중되어 있어요. 하지만 여긴 지상과 가까운 곳이라 나비들이 날아올 수 있어요.

그런 것들은 우리 손으로도 쉽게 처리할 수 있어.

먼저 손을 내민 두 용병이 차례로 엘리베이터 위쪽에 안착했다.

키리시마 센 역시 올라간 뒤, 몸을 돌려 구멍 안으로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

이제 당신 차례예요!

위로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적조가 이미 루시아 종아리까지 차올라 있었다.

이합 생물

!!

어느새 나타난 이합 생물이 탈출하려는 구조체를 향해 공격을 가했다.

부유하던 장검이 루시아를 대신해 공격을 막아냈고, 적을 노려보는던 그녀의 눈가로 붉은 빛이 흩어지며 스쳐 지나갔다.

루시아

지휘관님, 먼저 올라가세요.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루시아

네.

아래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뒤로 하고 주위의 세 사람을 살폈다. 용병들은 이미 강철 케이블이 견고한지에 대해 확인을 끝낸 상태였다.

지금 끼신 장갑 잘 미끄러지지 않죠?

키리시마 센이 손을 내밀었다.

용병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해.

용병들이 먼저 케이블을 잡고 신속하게 위로 올라갔다. 탈출구가 바로 눈앞에 있다 보니 평소보다 행동이 더 빨라졌다.

다음은 키리시마 센이었다.

저도 도와드릴까요?

네.

키리시마 센은 케이블을 단단히 잡고 용병들의 뒤를 따라 올라갔다.

아래에선 또다시 둔탁한 소리가 철판을 타고 울려 퍼졌다. 곧이어 발밑의 엘리베이터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붉은 물결이 솟구치는 그 순간, 틈 사이로 백금빛이 번쩍이는 게 보였다.

위를 보니 세 사람은 이미 밝은 출구 너머로 사라졌고, 무사히 지상에 도착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튼튼하게 버텨주는 케이블 덕분에 올라갈수록 희망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안이 또 한 번 심하게 흔들렸고, 격한 진동이 손바닥까지 전해졌다.

——위로.

끈적끈적한 액체 때문에 손바닥 움직임이 더뎌졌다.

——더 위로.

역겨운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계속.

출구의 밝은 빛이 마침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동시에——

지표면 가장자리, 지휘관과 시선이 마주치는 위치에 익숙한 실루엣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순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막 올라온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님.

빛이 비추는 곳에는 소녀의 모습과 함께, 그녀의 발치에 쓰러진 시체가 있었다.

키리시마 센은 죽기 직전까지 위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네? 제가 어떻게 모습을 숨기고 접근했는지 궁금하시다고요?

적조 안에 있었죠. 적조와 한 몸이 된 저를 루시아가 발견했을 리가 없잖아요.

루시아를 부르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 온몸을 통해 전해져왔다.

튀어 오른 피가 동공을 물들여 세상을 온통 붉게 만들었다.

지휘관의 시대로 돌아가려면 대체 몇 번의 죽음을 더 겪어야 하는 걸까?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또 몇 번의 실패가 거듭돼야 하는 걸까?

아니… 어쩌면 더 이상 기회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열쇠"는 곧 소진될 것이다.

허무하게 끝나버린 종착점에는 막다른 길과 조급함으로 인한 실패만이 가득했다.

이중합 탑으로 돌아가기까지 단 한 걸음만 남았었다. 분명 고지가 눈앞이었는데...

루시아, 루시아...

부탁이야… 적어도 이번만은…

산산이 부서진 육신은 아무에게도 닿지 못한 그 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 통로로 추락했다.

엘리베이터 위로 추락한 잔해가 부딪히면서, 루시아는 잠깐의 무중력 상태를 경험했다.

뚝. 뚝.

위에서 붉은 물방울 하나가 툭 떨어졌다.

엘리베이터 천장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었다.

루시아는 천천히 움직임을 멈추고, 흘러내리는 붉은 물결 따라 고개를 들었다. 영혼마저 고통스럽게 만드는 선명한 진홍빛.

루시아는 그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 피가 어디서 흘러온 건지도 눈치챘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토록 많은 피를 흘리는 육신은 어떤 모습일지 안 봐도 뻔했다.

엘리베이터의 무한 거울처럼, 모든 것이 빠져나갈 수 없는 죽음의 순환에 갇힌 것 같았다.

셀 수도 없이 반복되었던 결말이다. 한 사람의 육신과 또 한 사람의 마음이 산산조각나는 일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었다.

순환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 마지막 한 걸음만 내디디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끝없이 반복되는 죽음이었다.

루시아의 손이 맥없이 축 늘어졌다.

끈질기게 쫓아오던 이합 생물들도 임무를 완수한 듯 적조 속으로 사라졌다.

루시아

…………

전에 예배당에서 리브를 쫓던 당시, 그녀도 스스로에게 같은 의문을 던진 적이 있다. 자신의 인생은 왜 벗어날 수 없는 미로 같은지, 왜 모든 비극이 순환되는지.

분명 단 한 걸음만 남았는데, 잠깐 시야를 벗어난 것뿐인데,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적조는 이 절망감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더 빠르게 올라오면서 그녀마저 삼키려 했다.

루시아

지… 휘관님...

마음속 깊숙이 잠복해 있던 "그릇된" 무언가가 발효되면서 부패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다음번에는, 절대 그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다음번에는, 절대 그 사람을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번에는, 자신이 찢기는 한이 있어도...

미세한 파열음이 혼란에 휩싸인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루시아

"열쇠"...

손안에 있던 유일한 희망에 균열이 가득했고,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루시아의 예상대로였다. 시간은 되돌아가지 않았고 고대했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루시아

…………

엘리베이터 안의 불빛이 갑자기 꺼지고, 한 줄기 찬란한 빛만 끝까지 남아 있었다.

곧이어 적조가 일말의 자비도 없이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늦은 오후, 컨스텔레이션의 황금기에 다시 한번 석양빛이 내려앉았고, 모든 것이 평온을 되찾았다.

느린 발걸음 소리가 지하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누군가가 나무 지팡이에 의지한 채 절뚝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콜레도르...

오랜만이네요.

콜레도르는 키리시마 유코의 두 다리를 쳐다보았다. 피부는 이미 침식되어 궤양이 퍼져있는 상태였다.

도와드릴까요? 궤양이 번지는 속도를 늦춰줄 순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요?

키리시마 유코의 차가운 목소리가 텅 빈 주차장에서 메아리치며 콜레도르의 귓가에 꽂혔다.

콜레도르는 뒤쪽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 아직 살아있나요?

적조 속에 살아있겠죠.

하하... 이게 당신이 말한 "수호"인가요?

당신의 "작가"... 그 "도액자"에게도 이런 짓을 했었나요?

……

콜레도르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작가"에 관한 기억이 희미해져 있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있었다.

당신은 저에게 자신이 태어난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파도 소리를 잠재우는 것이 본인의 사명이라 믿으면서, 그 "작가"를 인도하려고 했어요.

그의 선택을 직접 목도했고, 그의 의지로 인해 탄생하게 되었다면서요. 본인에게 육체와 생명을 안겨 준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그가 죽은 후에도...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그의 의지를 이어가겠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저에게 접근한 이유도... 저 역시 작가이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당신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죠? 그 작가의 의지인가요? 아니면 자신의 욕망에서 비롯된 건가요?

말해 보세요. 당신 대체 뭐죠?

키리시마 유코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처음 궤양이 퍼져 죽은 시신을 마주했을 때 콜레도르에게 던졌던 바로 그 질문을.

당신이 계속 말하던 0호 대행자? 이야기 속 수호자? 아니면 아직도 "콜레도르"인 건가요?

키리시마 유코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한 다리로 비틀거리며 콜레도르에게 다가갔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요. 대답해 줘요.

키리시마 센은... 아직 살아있나요?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키리시마 유코는 헛된 희망을 품고 질문을 던졌다.

참으로 어리석었다. 키리시마 유코의 하찮은 추억담이 떠오를 만큼 어리석은 짓이었다.

저와 약속했었잖아요. 언니를 만나게 되면, 저에게 언니를 도와 줄 기회를 주시겠다고. 제 유일한 소원은 그뿐이었는데...

사람들을 이끌고 카오스를 잡으라고 해서 그렇게 했고, 보리를 설득하라고 해서 그것도 했어요. 용병들을 선동하는 것까지도 제가...

설마 제가 한 그 일들 때문에 센 언니가 죽은 건가요?

…………

키리시마 유코는 콜레도르가 침묵한 그 짧은 순간에 그녀의 눈 속에 담긴 진실을 읽어냈다.

그 모든 게 저 때문이었군요.

전 항상 쓸모없는 인간이네요. 하는 일마다 망치기만 하고.

객관적인 평가였다.

늘 센 언니를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었어요. 그동안 돌봐준 보답으로 뭐든 어떻게든 도움을 주기 위해 고민했었죠.

하지만... 도우려고 노력할수록, 제 존재가치를 증명하려 할수록, 오히려 언니에게 짐이 되었어요.

사실이었다.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콜레도르"는 한 가지 사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당신은 이미 스스로를 가치 없는 존재라 단정 짓고, 썩은 나무라고 여러 번 얘기했어요. 근데, 왜 아직도 살아남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이런 헛된 시도를 반복하는 거죠?

…………

비록 썩은 나무는 맞지만, 그냥 이렇게 썩어서 사라지는 게 싫었어요!

왜 아직도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 하냐고요? 전 그게 싫었으니까요!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여전히 살아있고, 버티면서, 바꿀 방법을 찾고 있는 거예요!

센 언니에게 은혜를 갚기 전까지 절대 죽을 수 없어요. 하지만 결국... 당신 손에 죽었어요!

키리시마 유코가 숨겨놓은 권총을 들어 올렸다. 콜레도르는 그녀가 권총을 겨눌 용기조차 없을 거라 생각했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죠? 분명 저와 약속했었잖아요!!

콜레도르는 대답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0호 대행자의 입장에서는 이게 얼마나 의미 없는 질문인지 잘 알고 있지만, 콜레도르는 흐릿한 기억 속에 잠식된 듯,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표류하는 것마냥 혼란스러웠다.

모든 것이 정해진 사명대로 흘러가는 듯해 보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갑자기 긴 꿈에서 깨어나 자신이 절대 저질러선 안 될 죄를 범했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문명을 파괴하려는 본능과, 인간의 불굴 의지에 감동해 그들을 돕고 지켜보며 존경을 표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존재했다. 과연 이 모순된 감정 중 무엇이 진실일까?

당신을 죽이고 모두의 원수를 갚겠어!!

그녀는 온몸에 궤양이 퍼진 채 증오와 원한에 가득 찬 절규를 내뱉었다. 생명의 마지막 포효는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와 함께 멀리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콜레도르가 지켜보고 있었다.

…………

시선의 초점이 두 겹으로 갈라지는 것 같았고, 귓가에선 여름 매미처럼 시끄러운 소리가 울렸다.

친구? 썩은 나무? 도대체 어느 쪽이지?

글쎄요. 그걸 누가 신경 써요?

키리시마 유코의 가슴을 관통한 날카로운 칼날이 <phonetic=콜레도르>0호 대행자</phonetic>의 앞에서 멈춰 섰다.

적조로 만들어진 무기는 곧바로 적조 속으로 사라졌다. 죽음을 목전에 둔 키리시마 유코는 앞으로 쓰러지면서 <phonetic=콜레도르>0호 대행자</phonetic>의 어깨에 기댔다.

인간의 눈동자는 아직 남아 있는 의지로 겨우 움직이고 있었지만, 무언가를 잡을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권총이 적조 속으로 가라앉으면서, 의지도 함께 희미해져 갔다.

죽은 이는 <phonetic=콜레도르>0호 대행자</phonetic>의 품에 기대어 있었다. 마치 오랜만에 본 친구와 포옹하는 것처럼 보였다.

형용할 수 없는 공허함이 소녀의 의식을 스쳐 갔다. 마치 무언가가 송두리째 도려내진 듯한 감각이었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키리시마 유코의 체온이 서서히 식어가는 걸 느끼며, 심장이 멈춰가는 마지막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이제 더는 망설일 것이 없었다. 0호 대행자의 사명과 충돌하는 일은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콜레도르의 일부분이 이 마지막 심장 소리와 함께 깨어나는 걸 허락하는 이유기도 했다.

가시죠. 유코.

콜레도르는 품에 안긴 사람에게 속삭이며, 더 깊은 곳을 향해 걸어갔다.

제가 당신의 소원을... 이뤄줄게요.

"친구"를 품은 소녀가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 적조는 여전히 엘리베이터 안에서 넘실거리고 있었고, 마치 침묵으로 가득 찬 붉은 관처럼 보였다.

당신들은 적조 속에서 하나가 될 거예요.

서로의 일부가 되겠죠.

추락하면서 생긴 바람의 흐름이 콜레도르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실어 날랐다.

더 이상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걱정하지 말아요.

소녀는 잔잔한 파도 위, 끝없이 펼쳐진 적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그녀는 팔을 휘두르고, 손바닥을 뒤집어 보았다.

한 마리의 나비가 키리시마 유코와 키리시마 센이 잠든 적조에서 날아올라, 콜레도르의 손끝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이렇게 해도 여전히 제가 원망스러우시면, 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기회를 드릴게요.

점점 깊어가는 어둠 속, 콜레도르는 눈을 감고, 손끝에 앉은 나비를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