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1 칼날 위 탄생한 나비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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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0 기록: 썩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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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동기화를 재요청했습니다.

>><color=#ff4e4eff>역장 차단막</color>과 관련된 기록 검색 중:

>>성공

일부 데이터 손상이 감지됐습니다. 여기서부터 동기화를 시작하시겠습니까?

>>확인 중입니다.

지구 시간 2198년 11월 21일, 201 분기점 기록:

인간이 카오스 오염 확산을 막기 위해 휴대 가능한 역장 차단막 생성 장치를 개발했습니다.

여러 차례 이중합 탑을 통해 시간을 되돌린 결과, 이중합 탑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습니다.

제작 비용 문제로 인간은 역장 차단막 장치를 대량 생산하기 어려워 소수의 인원에게만 지급했습니다.

이에 따라 인간 지도자들이 이중합 탑 내부 탐사를 위해 총 12명의 선발대를 구성했습니다.

역장 차단막을 장착한 선발대가 처음으로 탑 내부에 진입했습니다.

카오스 오염으로 인해 그들의 구체적인 계획과 성과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역장 차단막을 장착한 선발대가 두 번째로 탑 내부에 진입했습니다.

카오스 오염으로 인해 그들의 구체적인 계획과 성과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기록 데이터가 손상됐습니다.

기록 데이터가 손상됐습니다.

인간 선발대 제▅▁▇▅▂▄▁▃▆▃▆▁▂▄▁▅▇▅▃▆▅▄▁

역장 차단막 너머의 인간 계획을 파악할 수 없습▅▁▇▅▂▄▁▃▆▃▆▁▂판단 오류▄▁▅▇▅▃▆▅▄▁

▁▇▅▂▄▁▃▆▃▆▁▂▄▁▅▇▅▂▄▁▃▆▃▆▁▂▄▁▅▇▃▆▅▄▁

인간 지도자 <color=#fdc600>도미니카</color>가 "나"의 존재를 인지했습니다.

기록 갱신: "나"는 잘못된 호칭으로 ▂▄▁▃▆▃▆▁▂▄▁실행 오류▁▂▄▁자체 검사▆▁▂▄▁검출됐습니다.▁▂▄▁▅▇▅▂▄▁▃▆▃▆▁

기록 데이터가 손상됐습니다.

▁▇▅▂▄▁▃▆▃▆▁▂▄▁▅▇▅▂▄▁▃▆▃▆▁▂▄▁▅▇▃▆▅▄▁

기록 데이터가 손상됐습니다.

기록 갱신: 인간 지도자 <color=#fdc600>도미니카</color>가 "나"의 존재를 인지하고, 0호 대행자로 명명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전진하며 탐사를 이어갔습니다.

인간 지도자가 선발대의 행동 방침을 변경하여 "나"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무의미한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 지도자는 계속해서 "나"의 정보를 갱신했고, 역장 차단막도 발전을 거듭해 이제는 전체 구역을 덮을 수 있게 됐습니다.

"나"는 그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해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

모든 연산 능력을 집중해야만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color=#fdc600>도미니카</color>를 제외한 선발대 대원들의 관찰을 중단했습니다.

<color=#fdc600>도미니카</color>야말로 내가 상대해야 할 가장 큰 위협이었습니다.

나머지는 그저 비옥한 산속에 있는 썩은 나무에 불과했습니다.

216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216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phonetic=콜레도르>0호 대행자</phonetic>는 본·네거트와의 접전을 막 끝내고, 가까스로 승리하여 얻은 분기점 기록을 음미한 후 이중합 탑의 균열을 통해 황금시대로 들어섰다.

우뚝 선 황금빛 숲 사이에서 비행을 멈춘 콜레도르는 높은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이곳의 모든 걸 내려다보았다.

인공 건축물은 웅장하고 찬란했으며, 화려한 빛이 빌딩의 유리 사이에 어우러져 하늘의 빛조차 앗아갈 것만 같았다.

황금시대...

<b><ud><color=#34aff8ff><link=10>2197년</link></color></ud></b> 12월 25일 그녀는 이보다 더 번화했던 시대에 강림했었다.

"카오스 오염"이 가져온 혼돈의 폭풍을 통해, 그녀는 그 시대의 쇠락을 목격했다. 다만 그 쇠락 속에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왜 실패했던 것일까? 기록은 여전히 불완전했다.

콜레도르가 기억하는 건 오직 인간 지도자와의 대치에서 전력을 다했고, 선발대의 최종 작전이 성공하기 전 도미니카를 안개 지역으로 던져 넣었다는 것 뿐이였다.

열쇠도 없고 고차원의 안내자도 없는 상황에서 지구 이중합 탑의 "문"을 건널 경우, 반드시 안개 지역에 떨어져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콜레도르는 지도자를 잃은 선발대가 완패하여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도미니카가 어떻게 안개 지역을 빠져나와 이 시대로 왔는지 콜레도르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결국은 인간일 뿐이었기에, 안개 지역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자신의 원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이후의 쇠락은 도미니카와는 관계없었을 것이다.

그럼... 그때의 난 대체 왜 실패한 거지?

호화로운 건물들은 그녀의 질문에 답이 없었고 서비스형 로봇들도 원하는 정보를 주지 못했다. 콜레도르는 드문드문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주시했다.

이곳은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공허했고, 가치 있는 "영웅"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부 "썩은 나무"들 뿐이었다.

콜레도르는 화려한 도시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지하로 잠입한 후 적조의 집결을 준비했다.

해가 지지 않은 늦은 오후, 거리 깊숙한 곳에서 나른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

[꽃밭 속에 반짝반짝 보석이 춤춰요~]

[알고 보니 나비였네, 클로버는 아니래요~]

???

[큰 나무 옆 강아지 빙글빙글 뛰어놀아요~]

[꾸벅꾸벅 할아버지, 클로버는 없대요~]

…………

그것은 순수한 동화 같은 노래였다. 고향을 되찾아 줄 기적의 네잎클로버를 찾아 헤매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 배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수확하기 전에, 이곳의 이야기나 먼저 들어볼까.

그녀의 육체 속 "콜레도르"의 일부가 그 아쉬운 노랫소리에 이끌려 그녀에게 다가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당신이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한데 들려주실 수 있나요?

네?

아쉬움 가득 담긴 노랫소리가 멈췄다.

첫 만남이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이곳에 갇혀 있던 사람도 딱히 할 일은 없었기에 그들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콜레도르는 그녀에게 많은 도움과 보호를 제공하며, 침식된 기계체와 용병들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많은 비밀들을 알려주었다.

콜레도르는 그녀에게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고 말했다.

또한 이전에 실패한 원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별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 난해한 이야기들이라서 설령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더라도 그저 농담처럼 웃어넘길 얘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헝클어진 이 젊은 여성에게 있어서, 상대방을 가까이하고 따르게 된 진짜 이유는 바로 음식과 보호를 제공해 준 것이었다.

우리가 만난 지도 벌써 며칠째네요.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제 얘기는 재미없어요. 차라리 이 시대의 진정한 위인들을 찾아가 보는 건 어때요?

그 이야기들은 이미 들었어요. 그냥 시간이나 때우는 거죠.

…………

키리시마 유코는 한숨을 내쉬며 긴 의자에 앉아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으로 맥주 캔 하나를 땄다.

좋아요. 맥주도 주셨으니 제 얘기를 들려드리죠.

키리시마 유코는 손목을 기울여 콜레도르와 허공에서 건배한 뒤, 텅 빈 거리를 바라보며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주었다.

제가 자주 말했던 센 언니 기억하시죠?

당연하죠.

사실, 친언니가 아니에요. 제가 일곱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촌 누나와 재혼하셨거든요.

그런 사이였기 때문에, 두 분은 결혼식만 올리고 정식으로 혼인신고는 하지 않으셨어요.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 그 센 언니를 처음 만났어요. 언니는 새어머니와 전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어요.

키리시마 유코. 안녕.

안녕하세요, 키리시마 센 언니.

키리시마 유코가 예전에 봤던 새어머니는 무척 인자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딸은 불량 학생의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이제 한 가족이니까 서로 어색하게 굴지 말고, 센 언니나 그냥 언니라고 부르면 돼.

센... 언니.

하지만 일곱 살 위인 이 "불량 학생"은 동생을 대하는 게 쑥스러운지 고개를 돌렸다가, 엄마의 재촉하는 눈초리에 못 이겨 유코의 손을 잡았다.

앞으로 잘 부탁해. 유코.

겉모습만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는 불량 학생이 아닐 거라고 당시의 유코는 생각했다.

재혼 후,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각자 바빴고, 우려했던 새어머니의 학대는 없었지만, 따뜻한 사랑도 없었다.

텅 빈 집에는 똑같이 방치된 언니만 남아있었다.

…………

문밖에서 얼마나 더 서 있을 거야?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와.

그치만... 언니 지금 숙제 중이잖아.

괜찮아. 방해만 하지 않으면 돼.

언니 단말기로 그림 그려도 돼?

…………

내가 지금 쓰고 있어서, 옛날 거 빌려줄까?

고마워. 언니.

이거... 내 생일 선물이야?

응. 한번 열어봐.

아... 내가 전에 그렸던 강아지...

전에 내 단말기 쓸 때 네가 그려둔 그림을 봤어.

귀엽더라, 그래서 이것저것 방법을 찾아서 인형으로 만들어봤어.

너 이런 거 쭉 좋아했었잖아.

응. 고마워. 언니.

키리시마 유코는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언니를 통해 채워나갔다.

생일은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되었다. 편안해진 일상은 구름처럼 빠르게 흘러 어느새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러다가 힘든 날들이 찾아왔죠.

유코의 열두 번째 생일이 지나고 얼마 후, 아버지는 수년간 모아둔 전 재산을 친구의 사업에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새어머니는 사기꾼을 고소하고 연일 바쁘게 뛰어다니던 중, 아버지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고, 왼팔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전신마비 상태가 되고 아버지 역시 장애를 얻게 되었다.

아버지의 돈은 그 친구와 함께 종적을 감췄다.

그들은 찬란한 시대에서 잡음으로 변질돼, 더 이상 "황금시대"의 멜로디에 섞이지 못하게 되었다.

다행인 것은 잡음일지라도, 찬란한 시대는 여전히 그들을 보호해 주고 있었다.

의료, 교육, 의식주를 보장하는 세계 정부의 <최저생활보장 조례>는 모든 시민을 보살피고 있었다. 덕분에 갑작스러운 불행에도 그녀의 가정은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들의 가정사는 즉시 학교 기록에 업데이트되었고, 두 사람에게 무료 기숙사와 식사가 제공되었다.

찬란한 시대의 장점이란, 아무리 빠르고 거칠게 추락하더라도 항상 자신을 받아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최저생활보장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야. 할머니 세대였다면 죽는 일만 남았겠지.

힘없이 침대에 기댄 새어머니는 텅 빈 방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에겐 영향이 없을 거야. 센, 유코... 나 때문에 발목 잡히지 말고 학교 열심히 다녀.

엄마가 무슨 발목을 잡아? 그 사기꾼 말만 믿지 않았어도...

그만!

센... 그만 하렴.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그날 밤 내가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다시 시작할 기회라도 있었을 텐데...

너희는... 집에 있지 말고 학교 기숙사로 가렴. 학교에 신청해서 무료로 기숙사와 세 끼 식사를 제공받을 수 있단다.

엄마는요? 엄마는 혼자서 절대 못 움직이잖아요!

네 아빠가 돌봐줄 거야. 그건 걱정하지 마.

그 사람이요? 그 사람이 엄마를 돌본다고요? 외할머니에게 얘기라도 해보세요. 아무리 화내시면서 결혼을 반대하셨더라도...

네 외할머니 돌아가셨어.

며칠 전에 연락했다가 알게 됐어... 이미 반년 전에 돌아가셨대.

…………

어서 가. 센, 네 동생 잘 돌보고. 유코는 아무 죄 없어, 너희 둘 다 죄 없으니까, 이 집에 있으면서 발목 잡히지 말고 멀리 떠나.

"탕"

또 한 캔의 맥주가 바닥에 떨어지며, 맑고 쨍한 소리를 냈다.

언니는 많이 걱정됐지만 어머니를 설득하지 못했어요. 언니는 학교에 가야만 했어요. 일을 해야 새집을 사고 어머니에게 필요한 보조 로봇을 살 수 있으니까요.

집안 어른들은 이미 정상적인 길에서 벗어났어요. 언니마저 그렇게 됐다면, 우린 전부 그 축축하고 차가운 집에 영원히 갇히게 됐겠죠.

아버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박에 빠졌죠. 그렇게 매일 하루 사이에 떼돈을 벌어 인생의 정상에 오르는 백일몽을 꾸셨어요.

방학 때마다 집에 돌아온 저와 언니는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돌아오는 건 아버지의 분풀이 폭력뿐이었어요. 그리고 세계 정부가 어머니에게 준 의료 기계마저 몇 달 뒤 암시장에 팔아버렸죠.

이런 나날이 2년이나 더 지속됐어요.

마침내 졸업하게 된 센 언니는 혼자 살겠다고 했어요. 그래야 어머니를 이곳에서 데리고 나갈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어머니는...

센, 엄마는 너랑 가지 않을 거야. 공공 숙소엔 사람이 너무 많아. 나처럼 거동이 불편한 사람은 그런 곳에 가봐야 좋을 게 없단다.

네가 일하러 가면 날 돌봐줄 사람도 없잖니. 너에게 짐만 될 뿐이야.

난 여기 남을게. 아무리 누추해도... 최소한 몸이라도 붙일 수 있는 곳이니까. 나머지는 유코가 도와줄 거야.

사실 저도 그때 언니한테 남아달라거나 같이 데려가 달라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갓 스물한 살이 된 언니가 두 사람의 생활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맞아요. 전 "짐"이었고, 어머니도 자신이 "짐"이라고 생각하셨어요. 우린 짐이라서 언니가 떠나는 걸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죠.

콜레도르는 이야기의 뒷부분을 기다리며 침묵과 함께 생각에 잠겼다.

현재 적조는 이미 컨스텔레이션으로 번져가고 있었고, 귓가엔 그 거센 흐름의 속삭임이 맴돌고 있었다. 책임, 의무, 그리고 0호 대행자의 사명.

콜레도르는 더 이상 여기 머물면서 이런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가 아니었다.

"키리시마 유코"라는 이 여성은 많은 문제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숨 쉬는 것조차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키리시마 유코는 종종 자신의 무력함을 증오했다. 때로는 죽음을 떠올릴 정도로 말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 콜레도르 앞에 멀쩡히 앉아서, 그녀가 가져온 맥주를 마시면서 웃는 얼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키리시마 유코가 얻은 첫 직장은 개인 간병인이었다.

이 직업은 가정용 로봇을 꺼리는 가정을 위한 것으로, 간호사, 가정부, 미용사 역할을 겸했다.

이 시대에는 대부분의 일이 기계로 대체되었고, 복지 혜택도 충분해 일을 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가끔 여행도 가고, 비싼 음식도 먹고, 돈이 드는 오락을 즐기고,

취미나 사업을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면, 적절한 일자리가 있어야 했다.

언니, 오후에 보낸 메시지에 왜 아직도 답이 없어?

일을 시작한 지 2년째, 모든 불평거리가 사소해지고 모든 게 정상 궤도로 돌아온 것 같았다.

미안. 바빠서.

센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묻어났다.

바보 개구리 그리고 있어?

응. 심심해서 그리고 있어.

영상 통화 너머의 언니는 고개를 숙여 방금 유코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고용주가 바뀌었어? 무슨 일 있는 거야?

그쪽에서 당분간 간병인이 필요 없대서 다른 집으로 옮겼어. 지금 일하는 집이 언니네 근처라 시간 나면 찾아갈게.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진짜 별일 없는 거 맞아?

무슨 거짓말? 간병 일에 문제 있을 게 뭐가 있어?

우리 아들한테 문제 푸는 방법 가르치라고 했잖아요! 이렇게 간단한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할 거면 차라리 가정용 로봇이 낫겠네요!

물론 널 믿지만 요즘 그런 뉴스가 많아서 그래. 개인 간병인에게 가정 문제까지 떠넘기는 바람에 여러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고 하더라.

어떤 일이든 사람이 힘들지 일 자체가 힘든 건 아니니까.

하하, 뭐 어쩔 수 없지. 우리가 가정용 로봇보다 나은 점이 바로 그거잖아? 로봇은 기록이 남으니까, 책임을 떠넘길 수도 없고 말이야.

필요하다면 근무 시간에 카메라를 집 안에 설치해 두는 건 어때?

괜찮아. 괜찮아. 난 고용주를 믿어.

당신 우리 몰래 이런 걸 켜놓고 찍고 있었어요? 그래요. 화병은 안 깼다고 증명할 수 있겠네요. 근데 지난번 일은 기록에 없잖아요! 우리 딸한테 뒤집어씌울 생각 하지 마세요!

오늘 급여 정산해 줄 테니 당장 꺼져요! 우리 집엔 당신 같이 속셈 가득한 사람은 필요 없어요!

이전 집에서 급여는 제대로 받고 나온 거야?

응. 체불 없이 중개 회사로 다 지급돼.

급여 명세서는 단말기로 보냈어요. 배상금 차감하고 아직 삼백이 남았으니까 잊지 말고 납부해요.

중개사가 손해액을 산정하고 구매 기록에서 가격을 확인할 때 보지 않았다고요? 아, 맞네요. 그날 안 계셨죠. 어차피 이미 다 처리됐으니까, 중개사한테 가서 물어보세요.

다행이네. 새 집은 어때?

만족스러워. 돌봐야 할 사람이 한 명뿐이야.

아버님이 막 수술을 마치셨는데, 저와 와이프는 일이 바빠서요. 간호 좀 부탁드려요. 만약을 위해서 병원 직원한테 관장하는 법도 배워두시면 좋겠어요.

전에 좀 일이 있었어요... 음, 항문 조루술... 배변 주머니를 평생 차고 계셔야 할 거 같아요. 다행히 연세가 있으시니 그 고통도 오래가진 않겠죠.

아버님은 예민한 편이셔서 조심스럽게 대해 주시면 좋겠어요. 예전 간병인도 이것 때문에 그만뒀거든요.

그렇구나.

키리시마 유코는 그제서야 언니가 자기 일에 대해 계속 물어보는 이유가 할 말이 있어서라는 걸 눈치챘다.

언니, 무슨 일 있어?

…………

유코...

키리시마 센의 목소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

도박장에서... 누군가와 다투시다가 사람을 죽이시고... 본인도 돌아가셨대.

언제?

오늘 저녁이래. 방금 엄마한테 연락받았어.

가게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 배상금을 물어야 한대. 물건도 많이 파손됐고... 엄마한테 넘어간 채무도 좀 있는 모양이야.

…………

그래도 네가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야.

언니...

그런 표정 짓지 마.

앞으로 우리... 어떡해?

넌 열심히 일하면서 잘 지내고 있으면 돼. 나는 사직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집 근처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할 거야. 그래야 엄마를 더 잘 모실 수 있고, 집안도 이렇게 됐으니...

키리시마 유코는 언니에게 모든 걸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아 밤새 언쟁을 벌였다. 하지만 결국 언니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센 언니는 그렇게 자신의 미래를 버리고 어머니 곁으로 돌아갔다.

배상금을 갚기 위해 집을 팔아야 했다.

어머니는 이 집이 본래 아버지께서 모은 돈으로 마련한 것이고, 이제 남은 빚도 전부 갚았으니,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말씀하셨다.

두 사람은 세계 정부에서 지은 무료 공공 숙소로 이사했다. 이런 숙소는 보통 도시의 외진 곳에 있어서 큰언니는 적당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밤에는 술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아침에 돌아와 어머니를 돌볼 수밖에 없었다.

언니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유코는 전신마비인 사람과 함께 공공 숙소에서 지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언니는 불평하지 않았고, 그럴 처지도 아니었다. 그동안 그녀의 가정이 겪은 시련에 비하면 견딜 만했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현재 처지와 이 번영한 시대가 평범한 시민에게 베푸는 호의를 소중히 여겨야만 했다.

여기까지 말한 키리시마 유코는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다행히도 이런 비참한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삶은 다시 순환하기 시작했고, 폭풍우 후엔 맑은 하늘이 찾아왔죠.

그 나쁜 소식이 있고 한 달 뒤, 키리시마 유코는 우연한 기회로 전 일자리에서 벗어나 그토록 동경하던 장난감 회사로 입사하게 됐다.

오늘 온 신입이에요. 앞으로 바보 개구리 홍보 만화를 담당하게 될 거예요.

반가워요! 전에 그리신 바보 개구리 만화 봤어요. 이제 같은 동료가 됐네요.

가, 감사해요. 제가 그린 만화를 내부 직원분들이 보실 줄은 몰랐어요.

사실 지난주에 봤어요. 이렇게 빨리 입사하실 줄은 몰랐네요.

최근 회사가 바보 개구리 캐릭터에 홍보 자금을 더 투자하기로 결정했어요. 때마침 누군가 당신이 그린 만화를 마케팅부에 추천했더라고요.

그랬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자, 이제 다 모였으니 우리 팀 향후 목표를 설명해 드릴게요. 다들 아시다시피 바보 개구리는 출시된 지 오래돼서 관심도가 많이 낮아진 상태예요.

아무래도 외형이...

그건 이유가 될 수 없어요. 시중에는 이미 기괴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인형들이 많아요. 좋은 스토리에 적절한 홍보까지 받쳐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시장에서 이미 보여주고 있잖아요.

이 분야는 개성으로 승부하는 거예요. 바보 개구리는 일반적인 귀여운 인형들보다 더 기억에 남아요. 우리는 이 특징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활용해야 해요.

하지만 다른 제품들과 비교했을 때 딱히 특출난 개성이 없는 것 같은데요.

이런 식의 토론은 의미가 없어요. 그럴 바에 신입 사원 데리고 바보 개구리 홍보나 더 하는 게 어때요?

모나는 단호한 말투로 동료의 말을 끊었다.

이건 우리의 실적과 연말 보너스에 직결된 일이에요.

모나 선배가 떠난 뒤, 유코는 깨달았다. 이 회의실에서 "바보 개구리 마케팅 홍보부 합류"를 기뻐하고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라는 것을.

그래도 키리시마 유코는 갑자기 찾아온 이 기회가 너무 소중하고 기뻤다. 급여는 예전보다 낮았지만, 돌발 상황이 줄어든 덕에 가계에 보탤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인형들에 둘러싸여 일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키리시마 유코에게 가장 큰 행복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이 내야 하는 세금이 "정상적인" 액수라는 것에 기뻐했다. 드디어 자신이 기초생활수급자나 배상금만 갚아나가는 "짐"이 아닌,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동료들한테서 그림 그리는 방법과 마케팅 기법을 배웠고, 그들과 함께 바보 개구리의 새로운 디자인과 채팅용 이모티콘을 만들어냈다.

비록 큰 성과는 없었지만, 키리시마 유코는 여전히 의욕이 넘쳤다. 이렇게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키리시마 유코? 어젯밤도 회사에서 밤새운 거예요?

네. 죄송해요. 이번 이모티콘 표정이 아무리 봐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수정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건강 관리가 제일 중요해요.

네. 이것만 마무리하고 쉬러 갈게요. 감사해요, 모나 선배.

…………

키리시마 유코는 이런 평온하고 즐거운 나날이 계속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무지에서 온 착각이었다.

따뜻한 관심과 함께 3개월이 흘렀다. 키리시마 유코는 회사 식당에서 옆자리 동료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됐다.

식사 중인 동료1

소정이가 오후에 몰래 얘기해 준 건데, 걔네 부서 연봉이 또 인상됐대.

식사 중인 동료2

또 올랐다고? 상반기에 이미 올렸었잖아?

식사 중인 동료1

어쩔 수 없지. 걔네 층은 시나몬 야옹이 시리즈 담당이잖아. 판매량도 우수하고 각 부서도 다들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까.

이대로라면 우리 바보 개구리 팀은 3년 동안 한 번도 조정이 없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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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중인 동료1

게다가 이번에 임금이 오른 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 인원을 뽑기 위해서래요. 사장님이 솜사탕 테마로 하자고 말씀하셨대요.

식사 중인 동료2

듣기만 해도 귀여울 것 같네요. 내부 이동 신청이 가능할까요?

식사 중인 동료1

물론이죠. 신청해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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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키리시마 유코는 처음으로 이대로 계속하는 게 정말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 고민을 센 언니에게 털어놓자, 센 언니가 위로의 말을 건네왔다.

당연히 의미 있지. 많은 대중들의 관심은 받지 못했지만, 특별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캐릭터잖아.

그래서 회사도 홍보하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사장님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살려보려고 하는 거겠죠. 그래도 안 되면 어쩔 수 없고요.

키리시마 유코는 텅 빈 사무실에 서서 개인 물품을 정리하는 동료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만화 부에서 그렸던 자료들은 윗선에서 이미 데이터베이스에 넘겼어요. 앞으로는 AI가 그림을 맡게 될 거예요.

그러면... 스토리는 뻔한 전개로 흘러가서 영원히 결말을 보지 못할 거예요. 바보 개구리도 이 끝없는 반복 속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지 못한 채 머물게 될 거고요.

그걸 누가 신경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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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이동 신청은 어떻게 됐어요?

그녀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얼른 일자리를 알아보셔야겠네요. 전에 집안 사정이 어렵다고 하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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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키리시마 유코는 늦은 밤까지 사무실에 서서, 단말기 속 그림과 바보 개구리를 위해 쓴 곡을 보고 또 봤다.

원래 계획은 유명 가수에게 부탁해 이 곡을 부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발매 계획은 무산되고 AI가 부른 버전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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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다시 처음의 공허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은 늘 별다른 가치를 지니지 않아, 언제나 먼저 희생되는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센 언니가 자신의 미래를 희생하길 원치 않았지만, 도움이 되지 못했기에 센의 선택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회사가 바보 개구리를 포기하는 걸 원치 않았지만, 도움이 되지 못했기에 그것이 사라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일어날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럼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거울 속 쓸모없는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키리시마 유코는 답을 찾지 못한 채, 짐을 챙겨 어머니와 센 언니가 있는 공공 숙소로 돌아갔다.

유코는 영상 통화 속 제한된 화면이 아닌, 그들이 생활하고 있는 실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세계 정부는 최선을 다해 의료 서비스와 식량을 제공했고, 심지어 낡은 가정용 로봇도 한 대도 있었다. 하지만 공공 숙소인지라 사람들로 인한 문제는 여전히 많았다.

센 언니의 얼굴과 어깨, 가슴에는 선명한 멍들이 있었고, 그녀가 하고 있는 술집 일이 얼마나 힘든지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앞으로 어떡하면 좋겠니?

어머니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니까, 제대로 배워보지 않을래? 계속 교육을 받으면, 기초생활 수급 신청 자격은 유지될 거다.

아뇨. 엄마, 저도 근처에서 단기 일자리를 구해서 센 언니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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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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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시마 유코는 고개를 숙인 채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음 날,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어요. 공공 숙소에서, 센 언니 옆에서...

거동을 못 하시니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시고, 조금만 소리 나도 센 언니가 깰 텐데...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그러셨을지...

컵에 있던 물을 화장실 휴지에 적신 뒤, 얼굴에 한 겹 한 겹 붙이시고, 손으로 눌러서... 스스로 질식사를 선택하셨어요.

단말기 메모장에 유서를 남기셨는데, 간단한 몇 줄뿐이었어요.

우리에게 사망보험금과 "자신 때문에 속박된 자유"를 돌려주고 싶다 하셨죠.

센 언니에게 더 이상 자신 때문에 공공 숙소 근처에 머물지 말고, 본인에게 더 어울리는 일을 찾길 바란다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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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를 치르고 나선 센 언니와 거의 연락하지 않았어요. 메시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었고, 지금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겠어요.

키리시마 유코는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숨을 깊게 들이쉰 후, 맥주 한 모금으로 그동안 감춰뒀던 슬픔을 삼키려는 것 같았다.

황금시대의 이야기가 궁금하셨겠지만, 제가 들려드릴 수 있는 건 이 쓸모없는 "썩은 나무" 같은 제가, 찬란한 시대에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내왔는지, 세계 정부의 복지에 기대어 어떻게 연명해 왔는지 밖에 없네요.

이게 이 시대의 일상이에요. 가치가 없다고 회사에 의해 "희생"되거나 방치된 상품들이 너무 많아요. 장난감뿐만이 아니라 모든 업계가 그래요. 아래층 맥○날드도 수많은 메뉴를 "희생"시켰죠.

한 번의 실수로 내리막길 인생을 걷게 된 가정이 너무나도 많아요. 구체적인 이유만 다를 뿐이죠.

누군가에게 저의 이 경험을 그대로 얘기하면, 아마 도시의 50%의 사람과 99%의 회사가 오히려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느끼거나 제가 그들을 은근히 비꼬는 거라고 생각하겠죠.

사실 너무 평범한 일들이에요. 일상에서 흔한 일어나는 것들이니까요.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예요. 이런 이야기가 진정 재미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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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도르는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 "썩은 나무"의 이야기에서 수많은 "희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고, 회사는 돈이 되는 인형을 위해 수익성이 떨어진 인형을 희생시켰다.

인간들은 이런 방식으로 도달하기 어려울 것 같던 목표에 도달했다. 그녀가 무시했었던 미래에서의 그 선발 대원들도 비슷한 선택을 했을까?

그런데... 만약 밖으로 나갈 방법이 있고, 이 재난을 일으킨 주범도 물리칠 수 있다면 설령 위험이 있을지라도 당신은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건가요?

그럴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요?

아마 저와 같겠죠.

콜레도르는 눈앞의 "썩은 나무"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 한 가지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사실,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어요.

비밀이요?

네. 며칠 뒤면 컨스텔레이션에 당신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두 사람이 갑자기 나타날 거예요.

바로 그 둘 때문에 재난이 들이닥쳐 여러분들이 이곳에 갇힌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