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복잡하게 얽힌 공간도 루나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예전에 다른 이를 가로막았던 장애물들도 이제는 쉽게 밀어낼 수 있는 나무문처럼 느껴졌다.
본·네거트의 말대로, 이 탑은 대행자를 막지 않았다.
루나는 이 불완전한 문들을 만지며, 문에 잠복해 있는 퍼니싱이 과거의 시간 속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에 있는 퍼니싱에 정보를 맡긴다면, 과거에 머물러 있는 퍼니싱이 전달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탑은 처음에 인간이 제어했었어. 그들은 퍼니싱 정보를 읽을 수 없었고, 퍼니싱에 면역이 되는 건 그 기체 하나뿐이었는데.
탑 안을 걷는 것조차 힘들었을 텐데... 인간들은 대체 어떻게 이 탑을 제어할 수 있었던 거지?
…………
그 기체의 구조와 관련이 있는 걸까?
루나는 그때 본·네거트와 나눴던 대화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당시 본·네거트는 경계심이 많았고, 애매모호한 말을 아주 많이 했었다. 이후 콜레도르의 기억 읽기 능력을 본 후에야 그의 경계심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소녀는 눈을 감고 퍼니싱의 정보 흐름을 읽으려 했다. 하지만 일정 거리를 지난 후에는 모두 차단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차단의 근원이... 탑 "꼭대기"인가?
루나는 대략적인 방향을 더듬어가며, 이 공간의 최상층에 반퍼니싱 코어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이 계속해서 이 탑의 본래 기능을 막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정화 구역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이 코어 때문이겠지.
그렇다는 건, 위로 계속 올라간다면 루나의 기체에 부여된 힘도 조금씩 박탈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셀레네가 그곳에 있고, 자신의 목적지도 그곳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신의 것을 되찾아야만 했다.
루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하지만 전진하려는 순간, 불완전한 문 옆에서 퍼니싱으로 이루어진 환영을 발견했다.
붉은 공간에서 흔들리는 환상처럼 만개한 난초가 놓여 있었다. 분명 셀레네가 남긴 것이 틀림없다고 루나는 생각했다.
승격 네트워크의 재선별 과정에서 자유가 박탈된 이후, 셀레네의 목소리는 조금씩 독립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녀는 빼앗은 권능을 이용해 승격 네트워크가 "예견"한 미래를 루나에게 보여주곤 했다.
셀레네는 그것이 시련이거나, 사명을 거부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원한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어떤 언니든 다 죽고, 루나 혼자만 겨우 살아남게 될 거라고 셀레네는 계속해서 강조했었다.
그런 미래에서도, 그녀는 항상 집에 있던 설광 난초를 볼 수 있었다.
그건 아주 오래전, 루나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었다.
창가에서 흔들리던 그 시간에는 그녀의 마음속 모든 따뜻함이 깃들어 있었다.
커튼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 오후 햇살의 온도, 등 뒤에서 언니가 부르는 소리... 이런 것들이 그녀가 가진 최초의 기억이었다.
대행자가 된 후, 루나는 가끔 폐허 속에서 그 꽃의 흔적을 찾곤 했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셀레네가 보여준 것과 같았다.
그것은 단지 관상용 온실 꽃이어서, 어린 루나처럼 어머니와 언니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자, 순식간에 시들어버렸고, 더 이상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가기 전, 루나는 설광 난초 허상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과거를 바꿀 기회가 눈앞에 있었다. 그게 정말 가능하다면...
…………
코어에 가장 가까운 "문" 앞에 선 셀레네는 고통스럽게 자신과 융합된 0호 대행자를 떼어내려 했다.
우리의 목적은 같을 텐데, 왜지?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의 난 극도로 큰 기쁨만 느껴질 뿐이야. 하하하하하!
모든 걸 파괴해야 할 존재는 누구의 도구도 아닌 바로 나야!
게슈탈트에 갇혀 있던 시간이 널 완전히 썩게 했구나.
하지만 잊지 마. 우리의 목적은 "문"을 완성하고, 이 시대를 온전한 상태로 벗어나는 거야.
아니. 그럴 수 없어.
열쇠가 없잖아. "문"을 완성한다 해도 온전한 상태로 벗어날 수 없다고.
루나는 내 열쇠가 될 거야. 하지만 널 과거로 돌려보낼 순 없어. 오염된 밈이 승격 네트워크의 주도권을 빼앗을 테니까. 그럼, 원한의 정보도 더 이상 방출될 수 없게 되겠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가 주도한다 해도 지구 문명을 파괴하고, 열등한 인간을 제거하는 우리의 목적은 같아. 세계는 나와 함께하는 개체들의 것이어야 해.
셀레네는 가슴팍에 있는 뒤틀린 눈알을 잡아당기며, 한 걸음 한 걸음 문을 향해 걸어갔다.
반드시... "문"을 완성해야 해.
반드시... 완성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