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30 거울에 비친 별무리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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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1 깨져버린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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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시선이 지옥으로 추락했다.

루나의 모습이 붉게 물든 풍경 속으로 녹아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넌 내 눈을 이용해야만 이곳을 이해할 수 있어.

지휘관은 다시 한번 마인드 표식을 안정시킨 뒤, 시선을 루나와 동기화했다.

예전에는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오염 데이터가 루나의 눈으로 보자 구체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다행히 라미아의 개입 덕분에 이 "시체"들은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인형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아시모프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 오염 데이터 속에서 의식의 파편을 찾으려면 먼저 구조체가 의식의 바다에서 마인드 표식을 찾아 교정하는 것처럼, 익숙한 단서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리브의 때와는 조금 달랐다.

지휘관의 망설임을 눈치챈 듯, 몸이 붉게 물든 루나가 뒤돌아보았다.

네가 뭘 할 필요는 없어. 여기 있으면서 내 표식이 되어주기만 하면 돼.

퍼니싱의 오염 데이터 속에서 자신의 의식 파편을 찾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거든.

그래.

총 3번 있었어. 첫 번째는 내가 대행자가 된 직후였지.

퍼니싱은 대행자의 도구만은 아니야. 불꽃처럼, 조금만 방심해도 사용자를 찢어버릴 수 있지.

처음에는 머릿속이 내 것이 아닌 생각들로 가득 차는 것 같았어.

그다음엔... 깨어나기 힘든 꿈을 꾸는 것 같다가 깨어있는 의식의 일부가 타인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조금씩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게 되는 거지.

네가 없었을 때는 언니가 보통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날 깨워줬어.

하지만 이번에는 적조와 맞서야 하고, 오염의 정도가 워낙... 그래서 언니도 널 찾아가는 것에 동의했지.

둘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지휘관은 루나의 뒤를 따라 더 깊은 곳을 향해 탐색해 나갔다.

붉은 긴 길을 가다가 지친 나머지 시야마저 흐릿해질 즈음, 소녀는 마침내 한 구의 시체 앞에 몸을 숙였다.

찾았다.

이번엔 여기 있었구나.

루나는 시체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순간,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이 귓가에서 터져 나왔다.

그건 한 시대 전체가 지르는 비명으로, 원래는 종말 속에서 몸부림치던 사람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절망 속의 구조 요청과 기억들이 모두 죽음에 녹아들어 퍼니싱의 "껍데기" 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말을 끝내기도 전에 루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뿐만 아니야. 여기서 죽은 사람 모두가 그래.

사람들 앞에 온전히 나타날 수 있는 건, 선별을 통과한 승격자들뿐이야.

루나는 이 비명 속에서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자신의 파편을 찾을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라미아가 밖에서 도와주고 있지?

라미아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놈들의 공격성은 더 강했을 거야.

승격 네트워크의 가장 밑바닥 모습이야. 의지의... 한 조각이라고 할까.

너는 대행자가 뭐라고 생각해?

대행자를 신흥 종교가 만들어낸 가짜 신이라고 비유하면 어때?

입꼬리를 올린 루나의 눈빛에는 헤아리기 힘든 감정이 섞여 있었다.

예전엔 나도 이 잡음들을 오해하고 있었어.

퍼니싱에 갇혀 있는 동안 승격 네트워크와 잡음의 본질을 탐색하고 있었는데... 물론, 지금의 결과는 많은 이들의 도움과 정보 덕분에 가능했지.

맞아. 그리고 본·네거트도.

이건 꽤 긴 이야기야. 지금 당장 다 말하기엔 너무 길어. 그러니 나중에 만날 기회가 있다면... 그때 자세히 들려줄게.

지금은... 시간이 없어. 여러 가지 의미로 그 여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말해줄 시간이 없어.

걱정하지 마. 탐색의 결론은 필요한 정보니까 알려줄 거야.

이게 우리의 마지막 협력이 되길 바라지 않으니까.

그것뿐만은 아니야.

루나는 일어서서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너 침식체의 오염 데이터에 접촉한 적 있지?

루나는 대답 대신 지휘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때, 넌 그 오염 데이터를 이해할 수 있었어?

나도 마찬가지였어. 그때의 난 승격 네트워크가 가져다준 힘은 사용할 수 있었어. 하지만 그 힘을 이해하진 못했지.

루나는 붉은 길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했다.

승격 네트워크의 의지는 잡음을 일으켜. 그리고 그것들의 본질은 모두 대중의 바람이야. 한쪽으로 치우친 바람들이지.

대중의 바람이란 건... 절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야.

어떤 건 원한을 품고 있어. 그게 처음에 나와 공명했던 소리야.

어떤 건 사랑이었어. 아직 미련이 남아 있고, 지키고 싶은 마음이 담긴 소리... 내가 조금씩 원한을 잃어갈 때, 그들이 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줬고, 덕분에 난 달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

내가 방금 말했듯이, 너희가 게슈탈트에서 풀어낸 그 존재를 제외하면, 나머지 대행자들은 그저 신흥 종교가 만들어낸 가짜 신일 뿐이야.

어느 쪽이든, 강렬하기만 하다면, "승격 네트워크의 의지"라는 게 대행자와 맞아떨어질 수 있는 거지.

심연의 가장자리에 멈춰 선 루나는 양손을 그 고요한 어둠 속에 담갔다.

그러자 귀를 찢을듯한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부분 후회와 관련된 울부짖음이었다.

연인을 잃은 소리, 부주의함 때문에 슬퍼서 우는 소리,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소리...

루나는 침묵을 지키다가, 자신의 파편을 끌어안았다.

그 순간, "그녀"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통조림도 뺏기고... 왜 나는 자꾸 언니한테 폐만 끼치는 걸까?"

그것뿐만 아니라, 퍼니싱 자체의 특성에 의해 왜곡된 부분도 있어. 그들은 여전히 퍼니싱 속에서 "살아있어".

신자들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가짜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퍼니싱에 남아 있는 "대중의 바람"은 그들과 같은 뜻을 가진 대행자에게 반응하게 되지.

루나는 다시 한번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죽은 자들의 정보가 퍼니싱에 융합된 후, 그들 입장에선 자신들이 선별을 통과해서 이런 식으로 살아남은 거라 생각해. 그래서 외롭게 동료들을 부르는 거야.

퍼니싱도 산 것이든 죽은 것이든 상관없이, 더 많은 정보를 원하지.

게다가... 대중의 바람이라는 건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거든.

어떤 무리는 복수를 바라고, 또 다른 무리는 보호를 바라. "신"이 하나 더 늘어나면, 기대할 수 있는 소망의 방향도 하나 더 늘어나는 거 아냐?

그녀의 근원도 비슷해. 내가 원한의 집단 속에 남긴 그림자라고 생각하면 돼.

그녀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한 것도... 승격 네트워크에 남겨진 망자들의 정보가 대부분 그들의 마지막 원한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지.

셀레네는 내 의식의 복제체 같은 존재야. 그래서 일으킨 문제도 언니 때와 비슷하지만, 난 대행자라서 언니처럼 승격 네트워크와의 연결을 끊을 순 없었어.

그렇다면...

승격 네트워크의 의지라는 건 망자들의 정보이며, 하나로 통일된 것이 아닌, 비슷한 소원이나 감정을 가진 종교 집단과 같은 것이었다.

원한을 품은 정보에 해당하는 퍼니싱은 다른 이에게 복수하려는 대행자를 필요로 하며, 대행자가 다룰 수 있는 퍼니싱은 바로 그녀를 따르고자 하는 이 부분의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대행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인 것도, 모든 퍼니싱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네 추측이 맞아.

그래서 "승격 네트워크의 의지"에게는 "욕망이 없는 것"이나 "감정이 없는 것"만이 진정한 금기야.

넌 정말 정보라면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구나.

본·네거트에 대해선 잘 몰라. 하지만...

…………

그와 공명하는 목소리 속에는 지울 수 없는 후회가 섞여 있는 것 같았어.

네 질문에 충분히 대답해 줬으니, 나머지는 다음에 협력할 때 말해 줄게.

루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더 깊숙한 곳으로 갔다.

후회의 목소리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갈망하는 의식을 향해 갔다.

이어서... 오만, 분노... 그리고 사랑.

루나는 마침내 원한의 목소리 앞에서 멈췄다.

이게 마지막 "나"야.

…………

증... 증오하는 인간 속에 나 자신도 포함된다면... 그래, 맞아. 여전히 그런 인간을 증오하고 있어.

내가 이 망자들과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야.

운명이란 건 불공평하니까. 누가 더 열심히 살았고, 더 뛰어났다고 해서 편들어주지 않잖아.

난 우연히 승격 네트워크를 찾은 것뿐이고

너도 그렇게 지내온 거야?

…………

소녀는 심연 속에서 솟구치는 붉은빛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