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 게슈탈트의 데이터 벽이 열린 지 10분이 지난 후.
공중 정원의 혼란이 아직 지상까지 전해지지 않은 시점에서, 반년 만에 라미아가 우유과자 봉지 하나를 들고 루나 앞에 다시 나타났다.
루나 아가씨?
라미아는 벽 모퉁이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며, 루나 옆에 서 있는 알파를 힐끗 보았다. 손에 든 과자를 건네야 할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
재선별을 대응할 실마리를 찾았어,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해.
실마리를 찾았다고? 정말 다행이야! 내가 도와줄게!
적조가 나타난 후로 퍼니싱의 힘을 쓸 때 간헐적으로 뭔가가 날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이건 적조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보내는 신호야. 처음에는 귀찮은 잡음이라고만 생각했었지. 하지만 대행자 권한을 잃게 되면서 다른 잡음은 줄어들었는데... 적조의 소리만은 여전히 선명하게 들려.
그래서 난 그 힘을 이용하기로 결심했어. 그들이 대행자를 얼마나 증오하든, 난 모두 받아들일 거야.
너무 위험해! 자아를 잃게 되면, 그들이 루나 아가씨의 의식을 산산조각 내버릴 거야!
해저에서 내가 알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어. 알에 감정을 지배당해서 꼭두각시가 되고 말았다고!
여기 계속 있어봤자 결과는 똑같아.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있어.
어떤 방법이야?
저 멀어지는 잡음들이 다른 길을 보여줬어. 내 안의 원한을 되찾으라고.
원한?
강렬한 감정이면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지. 하지만 오래 지속되는 원한을 만들려면...
눈을 감은 루나는 그 붉은 악몽에 대해 더는 말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시간을 들여 연구한 결과, 사람들의 의식을 내게로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거야.
적조가 집중된 곳으로 가야 해. 그러려면 먼저 이곳을 벗어나야겠어.
하지만 전에도 여러 번 시도했었잖아.
그건 내가 아직 그 잡음들과 얽혀있기 때문이야. 벗어나려고 할 때마다 "그녀"가 날 이곳에 다시 붙들어 놓았거든.
하지만 최근 몇 달 동안 변화가 생겼어. 나에 대한 인내심이 사라지는 게 느껴져. 더 이상 나와 얽매여 있는 것도 싫어하는 것 같아. 만약 "그녀"가 완전히 떠나버리면 나도 버려질 거야. 그렇게 되면 침식체가 되는 건 시간 문제겠지.
우리에겐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어. 그녀가 떠나는 순간, 난 이곳을 벗어나서 적조가 집중된 곳으로 갈 거야.
고개를 든 루나가 그토록 바라던 출구를 바라봤다.
그 다음엔... 탈출하고 나서...
루나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루나 아가씨?
때가 온 것 같아. 바로 지금이야.
눈을 감은 루나가 다시 한번 그 붉은 악몽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단순히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루나는 물에 빠졌다가 수면 위로 올라온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며 깨어났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꾹 누른 채, 뭔가를 뇌리에서 짜내려는 듯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악몽 같은 기억은 루나의 의식 속에 여전히 깊이 얽혀 있었다.
월륜과 장검이 부딪히며 튀어 오르는 불꽃들, 살을 가르고 뼈를 자르는 칼날의 감촉, 무거운 물체가 쿵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눈이 시리도록 선명한 순환액의 색깔...
……
루나는 눈을 감고 몇 번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평소의 평온한 모습을 되찾았다.
루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짙은 안개로 뒤덮인 탁한 하늘, 공중에 떠 있는 부서진 거리, 나무뿌리처럼 땅을 파고드는 퍼니싱 이중합 물질 그리고 주변을 맴도는 희미한 잡음...
여긴... 승격 네트워크의 데이터 공간이군.
승격 네트워크의 데이터 공간은 루나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매번 배경이 달라져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이제 여기서 모든 걸 끝내야겠어.
방금이 마지막 촉매였다. 루나가 거부했으니 승격 네트워크는 당연히 그녀를 포기하고, 연결이 끊어져 더 이상 데이터 공간에 의식이 침입할 수 없어야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승격 네트워크가 자신의 권한을 완전히 회수하지 않고, 아주 작은 부분을 남겨뒀다는 걸 알아챘다. 그 잔여 권한이 승격 네트워크의 명령과 결합해서 못처럼 루나의 의식을 이 데이터 공간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승격 네트워크가 이런 짓을 한 이유는 뻔했고, 루나도 그걸 모를 리 없었다.
내가 승격 네트워크에게 아직 쓸모가 있나 보네.
대행자의 의식을 그냥 썩히느니 차라리 승격 네트워크의 양분으로 쓰겠다는 것이었다.
서둘러 탈출구를 찾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루나는 멀지 않은 곳에서 배회하는 "침식체"들을 바라보았다.
끼익...
크어엉!!
그것들은 단순한 침식체가 아닌, 수많은 의식 데이터를 꿰매 붙여 만든 "괴물"이었다.
한때 살아 있던 이들의 의식을 꿰매 붙여 만들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 살인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공격적이지 않지만, 이대로 있으면 자의식이 온전한 "돌연변이"인 루나의 존재가 들통날 게 뻔했다. 그때부터는 끝없는 추격이 시작될 테고, 결국 산산조각 날 때까지 쫓기게 될 것이다.
이 정도야 견딜 만하지만, 문제는...
루나는 이 공간에서 퍼니싱 농도가 가장 높은 구역을 올려다보았다.
원래라면 그곳에 회색빛 실루엣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셀레네...
루나는 그 잡음의 이름을 조용히 읊조렸다. 그녀가 자신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 후, 롤랑은 그녀를 "셀레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루나가 느낀 대로, 자신의 권한을 물려받아 승격 네트워크에 충성하는 그 꼭두각시는 떠나버렸다.
시간이 없어.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승격 네트워크가 내 의식을 여기 가둬두기 위해 분명 현실에서 나를 속박하고 있는 퍼니싱 지오드를 이용했을 거야.
이 데이터 공간에서 의식을 고정하는 "못"을 찾아서 파괴하면, 현실에서 날 속박하는 퍼니싱 지오드도 함께 부서질 거야.
눈을 감은 루나가 잠시 집중하여 자신의 의식을 속박하는 "못"의 대략적인 방향을 감지했다.
?
하지만 목표를 찾기도 전에 루나는 뜻밖의 것을 발견했다.
승격 네트워크가 좀 이상해. 데이터가 너무 빠르게 흐르고 있어. 전체적으로도 뭔가... 긴장하고 있는 건가?
권한 문제로 더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다.
방심하면 안 되겠어.
루나는 방금 찾아낸 목표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