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29 근원의 표지 / Story
붉은 바람이 폐허 속에서 확산하고, 음울한 빗방울이 도망치는 사람들의 걸음을 쫓고 있었다.
어디에나 침투하는 적조는 그들의 다음 방향을 항상 예견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적조에 추격당하는 그들을 알 수 없는 길로 몰아넣고 있었다.
지친 몸에서 고통의 신음이 솟아올랐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자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운송 장비의 에너지 또한 충분하지 않게 됐다.
완벽해! 이렇게 분배하면 모든 운송 장비를 계속 운행할 수 있을 거야.
남은 에너지를 재분배한 후, 율시는 만족스럽게 손뼉을 쳤다.
다시 확인할게. 너희 지금 정말 에너지가 필요 없는 거지?
율시는 확신이 없어 보이는 얼굴로 구조체들을 쳐다봤다.
정말 필요 없어요. 고마워요.
좋아! 에너지가 필요하면 꼭 말해줘. 우리에게 비상 에너지가 아주 조금 있거든.
헤헤, 매카가 예전부터 에너지를 아끼고 낭비하지 말라고 말했던 게 지금 이렇게 도움이 되네.
율시는 현재 상황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콧노래를 부르며 뒤쪽에 있는 운송 장비로 걸어갔다.
현재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나요?
불가능해요.
원래는 그 지도를 통해 판단할 수 있었지만, 몇 차례 추격전 이후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됐어요.
지금으로선 우리가 이합 재난 구역 내부에 있을 확률이 높다는 정도만 알 수 있고, 그 외의 정보는 다 없네요.
루시아. 저쪽에서 노르만 그룹의 표식이 새겨진 물건을 또 발견했어요.
하지만 이번에 발견한 물건은 예전에 발견한 것과 느낌이 좀 달라요.
그것들은 "유품"이라기보다는 "시신"에 가까웠다.
알 수 없는 생물에 의해 찢어진 것처럼 보이는 반쪽짜리 로봇 팔, 어디에 붙어있었는지 모를 부품 조각, 그리고... 하나의 로봇 머리뼈.
질척이는 적조 오염물 아래 숨겨진 그 금속색 머리뼈의 텅 빈 눈구멍 안에 작은 연보라색 꽃이 피어있었다.
이건 초대의 구조체 구조예요.
이건... 수첩인가요?
로봇 팔 아래에는 너덜너덜해진 수첩이 단단히 눌려 있었다.
오랜 기간 지상의 바람과 햇빛에 노출된 탓에, 노트의 대부분은 손상되어 있었고, 남아 있는 몇 페이지에서만 몇 글자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다.
그들이.. 노르만 그룹의... "사절"인가요?
우리는 올리브 가지를 물고 돌아오는 비둘기였다.
우리는 황금과 영광을 개척하는 여행자였다.
우리는 노르만 그룹이 보낸 사절이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희망을 가져와 불씨를 되돌릴 것이다.
나는... 에드워드 노르만이다.
(앞부분은 글씨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오늘로 1호 원자로 도시에 들어온 지 다섯째 날이 됐다.
상황은 아버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팀 내 마지막 동행 전문가였던 아서가 심각한 퍼니싱 침식으로 사망했다. 나는 이렇게 심각한 피부 궤양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고통을 완화할 방법이 없었던 나는 그저 그의 마지막 순간을 평화롭게 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리암 역시 침식되었고, 마지막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때에 자신에게 총을 쐈다.
리암은 이성을 잃은 침식체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 계획이 정말로 옳은 걸까? 도미니카는... 정말 이런 환경 속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
……
여덟째 날.
동행 전문가, 아서. 퍼니싱 침식으로 사망.
노르만 그룹 보안 대장, 리암. 자신의 총으로 사망.
노르만 그룹 보안 대원, 아헨. 그는 아직 내 옆에 있지만, 이미 침식체로 변해서 강한 공격성을 보인다.
(글씨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어쩌면 우리가 모두 틀렸을지도...
도미니카는 절대... (글씨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
(글씨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잘못됐다. 이 모든 것이.
난 여기 있으면 안 된다. 내 서재에 있어야 한다. 내 침실에 있어야 한다.
레온, 크리스틴, 빅토리아...
그것이 말하고 있어. 저게 누구지...
레온, 오지 마... 제발 오지 마.
뒤쪽 내용은 완전히 읽을 수 없었다.
……
도미니카를 찾기 위해 이런 대가를 치른 건가요?
이건 초대의 구조체 구조예요.
보아하니, 예전에 봤던 노르만 그룹의 표식이 있는 물자들도 아마 그들이 보내온 "사절"들이겠군요.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자료는 저장해 뒀어요. 나머지는...
율시 팀처럼, 근처에 그들을 매장하죠.
크로와 대장님.
어?
언젠가 제가 죽으면, 연료를 쓰더라도 저를 화장한 뒤, 이렇게 근처 땅에 묻어주세요.
?
적조 속에서 외롭게 죽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럴 리 없을 거야.
구조체들은 보호 장비를 착용한 후, 땅에 떨어진 로봇 부품과 팔다리를 하나씩 모아서, "사절"들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증거를 방수천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땅에 퍼져 있던 적조를 치우고, 그들을 지구의 흙 속 깊이 묻었다.
이 세상에서 죽어간 모든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가질 권리가 있다.
에드워드, 아서, 리암, 아헨...
각각의 이름을 나무껍질에 새겼다. 유랑민들이 조용히 모이더니 낮은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적조에 침식되지 않은 "사절"들의 자료 중에는 너덜너덜한 지도 하나가 있었다.
리브는 지도를 통해 일시적으로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이 위치는... 1호 원자로와 매우 가깝네요. 약 260-300킬로미터 이내예요.
그 자료들 중 일부는 도미니카의 수첩으로 보이는데, "사절"들의 기록을 보면, 그들은 아마 조금 더 앞쪽 위치에서 이걸 얻은 것 같아요.
그들이 초대 구조체가 아니었던 건가요?
제가 1호 원자로에서 퍼니싱이 최초로 발생한 이후 관측소 데이터를 조사해 봤어요. 폭발 당일에는 퍼니싱 농도가 급상승했지만, 원자로가 중지된 후에는 그 구역 내 퍼니싱이 일정 시간 이후부터 주위로 확산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이 수첩에 적은 시간에 따르면, "사절"들이 1호 원자로에 들어갔던 당시 그 안의 퍼니싱 농도는 초대 구조체들이 간신히 버틸 수 있는 정도였어요.
그래서... 그들은 이것을 가지고 온 걸 거예요.
도미니카가 기록한 1호 원자로에 관한 수첩의 일부를요.
노르만 그룹은 이런 것들을 위해 저들을 희생시켰단 말인가?
……
이 자료들은 일단 봉인해 두었어요. 통신이 복구되면 바로 공중 정원으로 업로드할 거예요.
제가 예전에 조사했던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죠. 그쪽의 적조는 아직 완전히 모이지 않았어요.
그 적조를 돌파한 후 조금만 더 가면, 이 이합 재난 구역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음...
지금 방호 물자가 빠르게 소모되고 있어요. 율시 팀이 노인과 아이들에게 먼저 방호복을 나눠줬지만, 그래도 충분하지 않아요.
구조체용 의료 물자도 떨어졌어요. 앞으로는 제가 앞장서서 길을 찾을게요.
리브는 루시아 기체에 남아 있는 수많은 상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리브 씨... 몰래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의료 물자가 부족한 건가요?
아, 그저...
여기... 몇 가지 혈청과 붕대가 있어요. 부디... 부디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이것도...
유효기간이 지난 혈청, 낡아 보이는 방호복 그리고 더러워진 붕대들이 구조체들 주위에 쌓였다.
허술했지만, 그들이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다.
받을 수 없어요. 여러분들이 힘들게...
리브 씨, 당신은 저를 기억 못 할 수도 있지만, 저는 당신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어요.
저는 당신이 우리를 대피시켰던 것과 당신에게서 치료를 받았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소녀가 순백의 기체가 날개를 펴며, 어둠 속 적에게 도전했다.
만약 당신들이 없었다면... 저희는 그때 죽었을 거예요.
이것은 우리의 작은 마음일 뿐이에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우리도 도와드릴게요.
그는 허스키한 웃음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더러워진 붕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른 유랑민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물자들은 모두 정리했어?
보호 마스크를 쓴 율시의 목소리는 둔탁했지만 여전히 활기찼다.
다 정리했어!
아저씨와 일레인의 말에 유랑민 중에서도 몇몇이 대답했다.
그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은 율시는 여전히 웃음소리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루시아와 확인했어! 저 앞 숲을 넘기만 하면, 우리는... 이 괴상한 곳을 벗어날 수 있어!
조금만 더 가면, 정화 구역이 나올 거야!
다들 정화 구역에서 뭐 할지 다 정했어?
난 밀 음료를 마실래! 정화 구역에는 분명 신선한 밀 음료가 있을 거야!
나, 난 무르와 결혼하고 싶어!
그, 그러면 나도 일레인이랑 결혼할래! 일레인! 나랑 결혼해 줘!
좋아!!
보호 마스크로 얼굴이 가려져 있지만, 소녀의 얼굴에 홍조와 수줍음이 비치는 게 느껴졌다.
답답했던 공기가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 적조 데이터를 모아서 업로드해야지. 이건 아주 귀중한 데이터야.
이 적조의 형성 규칙을 잡아낼 수만 있다면, 논문을 쓸 때 그들의 이름을 모두 첫 페이지에 넣을 거야.
그럼, 전 작은 밭을 일구고 싶어요. 그래서 예전부터 여러 가지 씨앗을 모아놨어요.
난 네가 예전에 혈청 관에서 채소를 키우던 게 좋은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혈청 관은 지금도 밖에 널려 있잖아.
씨앗들을 그 안에 심는다면, 장식용으로만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밥상에도 신선한 채소를 올릴 수 있을 거야!
흠, 말하다 보니 진짜 좋은 사업인 것 같네. 나중에 함께 사업하자!
듣고 보니 정말 괜찮은 사업인 것 같아요.
하, 천천히 토론해. 아직 갈 길이 멀어!
다들 생각을 정리할 때쯤이면, 정화 구역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운송 장비가 부르릉거리며 출발했다. 차창 앞에 놓인 혈청 관 속 두 개의 새싹이 여전히 힘차게 위로 자라나고 있었다.
1호 원자로, 도시 깊숙한 곳
▄▆...▆▁▃...
흠... 좀 더 격식 있는 언어를 써야겠네요.
도서관 중앙, 초록색 망토를 입은 소녀의 발치에 짙은 보라색 꽃들이 피어나 있었다.
발이 여덟 개 달린 이합 생물 한 마리가 그녀 앞 적조에서 조금씩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이게 당신의 소원이에요?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문어 고양이로 변하는 거요?
음... 그래요. 그것도 좋아요.
콜레도르는 몸을 숙여서 그 이합 생물이 내뱉는 속삭임을 귀 기울여 들었다.
그렇군요. 음. 꽤 괜찮은 직업이네요.
우리의 성이 이런 모습이군요.
적조가 온순하게 도시의 형태를 이루더니 콜레도르 앞에 나타났다.
가세요. 그리고 당신의 생각대로 해볼게요.
이합 생물은 그녀의 발치에 몸을 비비더니,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천천히 기어갔다.
이게 네가 그려낸 "문명"이냐?
당신은 "그녀"의 눈동자를 통해, 아직도 저와 연락할 수 있는 건가요?
콜레도르는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책을 거두었다.
흥.
아... 여기 계셨군요.
땅에서 반쯤 버려진 단말기를 집어 든 콜레도르가 그 허상을 들어 올렸다.
지금 저에게 연락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신 겁니까?
아니. 그냥 네 진척 상황을 보러 왔어.
저건 누구지?
적조의 도시 속에서 보라색 꽃잎 몇 개가 이 도시 변두리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건... 제가 가장 읽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희망의 등불을 품고 있고, 절망의 별도 품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뛰어난 씨앗들이며, 저는 그들이 제 기록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적조는 더 많은 문명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네 눈에 띄었다니... 그들을 불운하다고 해야 하나, 불행이라고 해야 하나?
문명은 변화가 필요한 법입니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짧은 인간 문명의 페이지 속에서 수많은 문명이 여기서 흥망성쇠를 겪었습니다.
이 모드는 계속될 겁니다.
그러니 우리와 함께 새로운 문명에 들어가는 건, 하나의 우호적인 초대일 뿐입니다.
원하신다면, 우리도 함께...
쳇.
투영이 꺼졌다.
음... 좀 아쉽네요.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 계속하세요.
적조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또 다른 이합 생물이 서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당신은... 또 무슨 소원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인간 문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을 설계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