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깊고 허무한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화려했던 의상은 이제 처참히 찢어졌고, 사지마저 온전치 않았으며, 가슴과 복부에는 눈에 띄게 불규칙한 구멍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수없이 많은 연산 속에서 그녀가 직접 경험했던 것처럼 당연한 것 같았다.
전쟁에서 죽거나,
배신으로 죽거나,
하지만 이번에는 운명의 죽음이 찾아왔다.
쏴아... 쏴아...
의식의 바다가 파도처럼 물러가자, 그녀는 어둠 속에 빠져들었다.
더 이상 고통, 피로 그리고 두려움은 없었다.
이 어둠은 그녀의 부서진 몸을 가득 채워 끝없는 따뜻함을 느끼게 했다.
좋은 술처럼, 죽음을 향해 갔다.
그리고 온 하늘에 가득한 불꽃이 그녀의 무거운 눈꺼풀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저 하얀 별이 보이니?
북극성 또는 지금의 북극성이라고 말할 수 있지.
저것은 북극성이란다. 3개의 별로 이루어진 연성이지.
수백 년 전, 우리 선조들은 저 별을 따라 바다를 건너 넓은 세상을 여행했단다.
정말 아름다웠다.
어떤 오염도 없이 순수해서 오히려 소름 끼칠 정도로 맑은 별하늘이었다.
곡은 눈동자를 움직여 기억 속 또 다른 별을 찾고 싶었다.
곡은 자신이 직접 이름을 붙인 별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작은 미세한 움직임조차 할 수 없었다.
이 3개의 별 중에서, 단 하나만이 가장 밝게 빛나지만, 다른 별들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430광년이나 떨어져 있지. 멀고도 아주 멀단다.
그래서 저 별은 혼자 저렇게 빛나고 있는 거란다. 그 빛이사람들의 눈에 비치기 위해서.
하지만 곡의 눈동자는 미동도 할 수 없었다. 눈앞의 별이 엄청난 중력을 지닌 듯 그녀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쏴아... 쏴아...
곡은 방향을 찾고 싶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자신에게 전해진 그 방향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지상의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별을 찾고 싶었다.
지금은 그녀의 감정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노력해서 생각하려 했다.
심지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기억조차 못 하지만, 노력해서 생각하려 했다.
생각할 수 없는 상태로 돌아갔음에도, 노력해서 생각하려 했다.
마지막 의식 신호가 밤하늘의 별들 아래에서 마침내 사라질 때까지.
의식의 바다에서 울려 퍼지던 파도 소리가 마침내 멈출 때까지.
죽음에게는 시간이 무의미했다.
충분히 긴 시간 동안, 무수한 항성이 태어나고 사라졌다.
또 충분히 긴 시간 동안, 눈에 띄지 않는 소성단 하나가 빙글빙글 돌다가 곡의 부서진 손바닥에 떨어졌다.
그 작고 보잘것없는 소성단은 손바닥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며 꺼지려 하지 않았다.
거친 손이 어둠 속에서 자라나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받쳐 들었다.
그러고는 또 다른 소녀 같은 따뜻한 손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손이 그녀의 몸을 받쳐 들었다
멀고도 아주 멀단다.
어둠 속에서 한 노인의 손이 자라나 그녀의 부서진 손을 잡아 주었다.
강렬한 고통이 거대한 파도처럼 그녀의 의식의 바다를 찢어놓았다.
잠깐 동안, 그녀는 이 심한 고통으로 의식을 다시 잃을 뻔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누구든 꽉 쥔 손을 놓을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받쳐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투쟁하며 일어서려 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황금빛 들판이자, 풍요로운 밀밭 같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손이 엮어 만든 그곳에 그녀의 유해가 놓여 있었다.
부서진 몸은 파도에 의해 채워진 것 같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그들>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비록 몸이 지금은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로 채워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발걸음은 여전히 비틀거렸다.
그녀<//그들>는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침묵 속에 행진했다.
그들은 눈처럼 하얀 옷을 입었고, 황금빛 들판 위에서 은하수처럼 이어졌다.
그녀 앞에서 눈부신 하얀 리본들이 흩날렸고, 큰 눈송이들이 칠흑의 밤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마치 죽은 별들이 남기는 소성단처럼 반짝였다.
은하수의 맨 앞에는 들판 속에 반짝이는 빛이 있었다.
그 깨끗한 빛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고, 의식의 바닷속 거대한 파도는 더욱 거세졌다.
그 빛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별들 속에서 만물을 보았다.
그 희미한 별처럼 흔들리는 빛 앞에서...
곡, 여기를 떠나면 안 된다. 그리고 대와 윤을 보호해주렴.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절대 나가선 안돼. 알겠니?
어디로 가려는 건가요?
나는 구룡을 지키려는 거야.
그럼, 누가 아버지를 지켜주나요?
아무도 날 지킬 수 없어. 아무도 구룡의 주인을 지킬 수 없단다.
구룡은 이 촛불이고,
아버지는 이 등롱과 같아요.
아니란다. 곡아. 넌 이해해야 해.
구룡을 위해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건, 바로 구룡 자신이란다.
그녀는 어두웠던 그 별이 한순간 강렬한 빛을 발한 후, 갑자기 꺼지는 것을 보았다.
가문이 날 선택한 게 아니라, 백성이 나를 선택한 거란다.
구룡의 근본을 형성한 사람은 나를 포함한 소수의 사람이 아닌, 바로 구룡의 모든 사람들이란다.
그들이 구룡의 색을 대표할 사람으로 나를 선택했다면, 난 그들의 바람에 보답해야 한단다.
네 눈에는 구룡이 어떤 색으로 보이니?
저기, 하늘 가장 깊은 곳에 구룡이 가져야 할 색이 있어요.
그런 색깔만이 충분히 강인하고, 우리와 우리의 역사를 감당할 수 있어요.
네가 말하는 게 저 별들을 말하는 거니?
아니요.
별이 밝은 이유는 그것이 별이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보다는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짙고 깊은 어두운 하늘 때문이죠.
그 별들 속에는 눈에 띄지 않는 별이 하나가 있었다.
물론이에요. 곡 님.
"대가"가 있었다면, 이는 반드시 지불해야 할 "보상"이겠지요.
대가요?
역사 속 수많은 죄악이 사랑과 대의를 내세워 시작됐었죠.
전 인류를 위한 일이라지만, 하다 보면 반드시 숨길 수 없는 어두움이 생기게 마련이에요.
어둠 속의 일은 쉬워도, 밝은 세상에서 성공하기란 어려우며, 위선은 인간의 본성이죠.
인류의 역사 속에서 평화로 진보를 이끄는 일은 언제나 험난했어요.
우리는 전쟁, 빈곤, 낙후함을 없애고 질서를 세웠지만, 그로 인해 도전 정신을 잃게 됐죠.
그래서 저는 더 멀리 봐야 해요.
얼마나 더 멀리 보려는 건가요?
구룡이 갈 수 있는 만큼, 저는 그 정도는 볼 수 있어야 해요.
언젠가 구룡이 전진을 멈춘다면, 그때는 이 세계가 제 시신을 밟고 넘어가야 할 거예요.
전진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을 거거든요.
이것이 구룡이 존재할 수 있는 근본 이유에요.
물론이에요. 곡 님. 인간도 마찬가지죠.
그 후, 그녀 앞에는 진홍색으로 물든 전쟁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 앞으로는 하얀 별 하나가 그녀의 앞에 있었다.
아무도... 저를 막을 수 없습니다...
저는... 꼭... 돌아가야... 돌아가야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자. 묵연.
집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또 많은 별들이...
희미하게 빛나는 그 별들은 어두운 별들을 넘어, 한때 모였지만 이제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 별들을 지나, 영원한 어둠을 불태우는 별들을 넘어갔다.
이 모든 밤하늘과 더불어, 그 별들은 그녀의 마음속으로 흘러 들어가 그녀의 일부가 되었다.
마침내 그녀는 보고 싶었던 그 별을 보게 됐다.
아, 너구나.
그것 역시 이 깊은 밤 속에서 태어났고, 작지만 단단히 빛나고 있었다.
이 어둠 속에서 태어났지만, 결코 흔들리거나 망설이지 않지.
넌 항상 그런 사람이었어.
그녀는 소성단을 쥐고 있는 손을 살짝 더 힘껏 움켜쥐었다.
이번은 제가 세계 연합 정부 의회에서 첫 번째로 직접 발언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 건물을 세우기 위해, 구룡은 연합 재단 시절부터 참여해왔습니다.
그때부터 구룡의 청부는 세계 곳곳에서 사용됐습니다. 극북의 설원에서 대양 너머의 심해까지 구룡은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이 세상을 발전시켰습니다.
우리는 "게슈탈트 계획"을 수립했고, 세계 공용 장난감 회사와 손잡고 자유로운 노동과 생산력을 추구했으며, "동방 계획"을 아버지 세대로부터 이어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에덴 계획"까지 쭉 이어졌습니다.
저는 우리의 손으로 그 계획을 완성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비록 엄청난 시간, 노력 그리고 자금을 들이더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그것은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진행하면, 많은 어려움과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도전에 대항하다 보면, 전진할 동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볼 수 있는 미래에서 이것들이 다음 시대를 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란 그것을 내다보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일과 미래는 결코 무형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알고 있으며, 그것은 반드시 실현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보를 이끌어가는 게 저나 어떤 개인의 소망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우리 중 일부가 별과 미래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이기적인 욕심도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를 믿고 소망과 의지를 우리에게 맡긴 이 평범한 사람들을 별의 세계로 데려가는 일입니다.
우리가 불명예스러운 방법을 써야 하고, 몇몇 희생을 감수해야 하더라도 말입니다.
악명을 남기고, 아쉬움과 미련을 남기더라도 말입니다.
후대 사람들이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우리를 역사 속 먼지로 볼지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운명을 받아들일 겁니다. 이것은 우리의 숙명이고 필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을 마쳤을 때,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정표를 남겼고, 미래에는 어떤 방법으로든 누군가는 이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내일과 미래에서 이러한 책임을 지고 사명을 다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은 흔들리지도, 망설이지도 않을 겁니다.
우리 후손들, 그 후 손들이 계속 이어나간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소성단이 그녀의 손에서 꺼지게 할 수는 없었다.
이건 전임 구룡의 주인에게서 물려받은 위대한 계획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침체기 이전의 인간 유전자 계획을 이어가는 것이지만, 그 범위를 인간 문명에 국한하지 않고 지구 생물권 전체로 확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전 이보다 더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책을 편찬하고, 시대가 바뀌면 역사를 고쳐 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마지막 기회를 가진 시대에 인간 문명의 모든 것을 기록할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매우 간단하지만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사실입니다.
인간의 존속은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계획을 전면에 내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노력을 다해 우리 문명의 영혼인 "밈"이 안전하게 보존되도록 할 겁니다.
우리의 생명은 희망이 없을지라도, 밈은 영원히 남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씨가 되고, 인간 문명의 횃불이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완성되면, 이 행성은 다시 태어날 겁니다.
그리고 우리 뒤로 신인류의 탄생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대지에서 새로운 태양의 햇빛을 받으며 성장할 겁니다.
진화의 끝에 도달했을 때, 우리도 그들과 함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지식, 이야기, 실패와 성공 등
과거의 실수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교훈을 그들은 반드시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여기서 끝날지라도, 우리의 영혼 그리고 전 인간 문명의 영혼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종말을 뛰어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역사는 문명의 그림자이며, 문명이 흥하고 쇠하는 것은 순간입니다.
육체가 사라지고 물질이 소멸하더라도, 우리의 의지와 영혼, 인간 문명의 정보와 밈은 이 세상을 밝히는 횃불이 될 것이고, 우리는 시간 속에 영원히 남게 될 것입니다.
오직 우리만이, 오직 구룡의 의지만이 세월의 시험과 평가를 견딜 수 있습니다.
오직 구룡만이 이 세상의 이정표가 되어, 인간 문명의 영혼이 나아갈 길을 밝힐 수 있습니다.
곡은 직접 이 횃불에 불을 붙였다.
곡은 그것을 결코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았다.
곡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곡의 도피를 비난하고, 그녀의 후퇴를 싫어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곡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횃불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곡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몸을 장작으로 삼을지라도, 그 흔들리는 불씨 속에 던져야 했다.
곡은 황금빛 들판 위, 무수히 얽혀 있는 손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손들은 어둠 속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유일한 빛이었다.
역사의 모든 우연 속에 담긴 필연이 그녀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모든 저항, 모든 슬픔, 모든 분노.
구룡의 생과 사 사이를 맴도는 모든 사람들을 그녀가 데려왔다.
구룡이 내일의 방향을 지시하지 못한다면,
내가 그 방향이 되겠어.
그녀는 그 별을 항상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홀로 빛나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난 너희들의...
그리고 그 시대의 마지막 메아리다.
곡은 주저하지 않고, 거세게 밀려오는 흰빛을 움켜잡았다.
어서 가세요. 곡 님. 그리고 뒤돌아보지 마세요.
너희는?
죽어서 어디로 가겠습니까? 산과 언덕에 몸을 맡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