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28 뭇별을 이은 북극성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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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7 명과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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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의 기억은, 때로 곡조차도 잘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를 만날 기회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아버지가 그녀에게 했던 말은 모두 실현이 됐다.

사실 윤은... 오늘 나를 대신해 고생한 거야. 그리고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

오늘 이후로, 오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질 거고,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아질 거야.

그날 밤 이후로 아버지는 가족들 앞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가족도 조금씩 아버지를 멀리하는 것 같았다. 가주인 순 대인도 아버지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항상 주목받던 오빠도 필요한 가족 교육 외에는 상회 내원의 정원에 거의 가지 않게 되었다.

곡과 대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은 듯했지만, 가족은 조금씩 두 남매에게 번갈아 가며 내원에서 공부할 것을 요구했다.

그 외에도,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이 항상 곡의 마음에 감돌았다. 무언가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늘 동경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곡 님.

청포를 입은 산예파가 들고 있는 교편으로 멍하니 있는 곡을 가볍게 찔렀다.

미안.

생각에 잠긴 곡이 대답하며 손에서 떨어질 것만 같았던 데이터 단말기를 다시 집어 들었다.

피곤하십니까? 요즘 계속 멍하게 계신 것 같습니다.

잠시 10분 정도 쉬겠습니다. 이미 <상군서>까지 진행하셨으니, 진도는 괜찮습니다.

"공과 사가 분명하면 소인은 현자를 미워하지 않고, 불초자는 공적을 시기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었어.

좋습니다. 여기까지 하시고, 10분 후에 다시 계속하겠습니다.

50이 다 된 문란은 곡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이 들고 있던 단말기도 덮고는 서재의 다른 쪽 태사 의자에 기댔다.

음... 문란?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 "상과 벌에는 신뢰가 있어야 하며, 형벌은 엄격하고 확실히 이루어져야 한다. 관계가 멀든 가깝든 공평해야 한다. 그래야 신하는 사리사욕 때문에 군주를 속이지 않고, 백성도 윗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라고 적혀있네.

맞습니다. 이 부분은 이 장의 시작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큰 상을 통해 신뢰를 세우고, 큰 벌도 마땅히 내려야 해. 상은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줘야 하고, 벌은 가까운 사람에게도 내릴 수 있어야 해.

아버지도 그렇게 하셨어?

…………

태사 의자에 기대어 잠시 쉬려던 문란은 경각심을 가지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치 대인은 상벌이 분명한 분이시니 당연히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럼, 아버지도 "거리를 두지 않으며, 가까운 사람에게도 어긋남이 없다."를 지키셨어?

2년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게...

내원에 있는 문연과 문진에게 물어봤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어.

곡은 문란의 눈을 바라보며, 그가 피할 수 없도록 했다.

문연 학사와 문진 학사도 모른다면, 저도 잘 모릅니다.

저는 문연, 문진, 문회, 문란 이 사각 학사 중 제일 밑이라, 말씀하신 두 학사보다 제가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순 대인 곁에 있었고, 문란은 아버지 곁에 있었잖아. 정말 모르는 거야?

이건... 이건...

저는 정말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문란은 분명 알고 있을 거잖아.

곡의 끈질긴 질문은 문란의 목을 조여왔다.

길게 한숨을 내쉰 문란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창문 밖을 내다보며 주위를 살폈다.

곡 님, 도서관에 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도서관?

하지만 내 질문에 아직 답하지 않았어.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곡 님께서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저는 도서관 의사실에서 치 대인의 일을 도와드리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언제든 저를 "찾아오시면" 됩니다.

책상 위 고서와 단말기를 가방에 넣은 문란은 곡에게 인사를 한 뒤, 서둘러 내원 서재를 떠났다.

무슨 일인 거지?

(언제든 저를 "찾아오시면" 됩니다.)

(언제든 ..)

(문란이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건가?)

곡은 문란의 뒤를 따라 내원 정원의 입구까지 달려갔다. 문란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이 내원의 상회 교통 전용선을 향해 멈추지 않고 걸어갔다.

곡은 망설이지 않고 두 번째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몇 분 만에 중앙 도서관의 내원 전용 지하 통로에 도착하게 됐다. 내부 노선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상회의 정무를 처리하는 의사당 서가 전랑에 도착했다.

곡은 다시 한 번 줄지어 있는 책장을 지나 아버지가 평소 정무를 처리하는 의사실로 향했다.

의사실은 실제 의사당보다 작지만, 일반 서재보다는 훨씬 크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이곳에는 많은 책장과 데이터 패널이 배치되어 있었고, 서가 앞에는 공문서로 가득한 책상이 있었다.

구룡 사람들이 평소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구룡의 주인은 특별한 일이 없을 때, 주로 이곳에 있었다.

어?

곡이 문을 여는 소리에 치가 파일에서 고개를 들었다.

곡?

문... 문란 사부를 찾으러 왔어요.

문란? 산예 학사가 곧 회의를 열 것 같구나.

들어오렴.

치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문 쪽에 있는 곡에게 손짓하며 자신의 옆으로 오라고 했다.

아버지 혼자 계세요?

그래. 무슨 일이니?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지금은 별로 바쁜 일이 없구나.

그러니 물어봐도 괜찮아. 내가 문란처럼 박식하지는 않지만 답은 해줄 수 있을 것 같구나.

2년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왜 다른 가족들 그리고 순 대인마저 아버지와 대화하려 하지 않는 건가요?

치는 잠시 놀라는 듯했다.

우리 딸이 그걸 알고 싶었구나?

책에 "상과 벌에는 신뢰가 있어야 하며, 형벌은 엄격하고 확실히 이루어져야 한다. 관계가 멀든 가깝든 공평해야 한다. 그래야 신하는 사리사욕 때문에 군주를 속이지 않고, 백성도 윗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어요.

가족과 외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가요?

치는 말없이 곡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치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했지만, 동시에 깊은 죄책감도 가득했다.

곡아, 우리 좀 걷자꾸나.

오랜만에 함께 산책하는 거 같네?

요즘 아버지를 자주 뵙지 못한 것 같아요.

낡아서 구룡의 주인임을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은 헌 가죽 의자에서 일어난 치는 곡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가자. 함께 본관으로 나갈까?

일이나 책임 같은 건 잠시 잊자.

평소 정무를 보는 상회의 도서관 측관에서 장서 주체의 본관까지는 몇 분 거리에 불과했지만, 같은 건물 내에 있으면서도 두 곳은 완전히 다른 광경을 자아냈다.

사람이 드문 측관과는 다르게, 본관은 오가는 관광객들과 여기서 책을 읽고 관람하는 구룡 시민들로 가득 차 있어서 진정한 도서관과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치와 곡 그리고 몇 미터 뒤 떨어진 곳에 있는 두 명의 카이사이파는 지금 본관의 최상층에 있는 장서 복도에 있었다. 이곳은 측관에 있는 상회의 행정 구역과 바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외부에는 개방되지 않는 곳으로, 도서관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부녀가 난간 앞에 멈춰 섰다. 뒤에서 또 한 명의 카이사이가 걸어와 치의 뒤를 따르는 두 명의 카이사이와 몇 마디 나누자, 한쪽으로 물러나 조용히 대기했다.

치는 이 상황을 인식했지만 말을 하지 않고, 곡 옆에서 난간 아래 인파를 가리켰다.

곡아, 저 사람들을 보렴.

구룡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계 다른 곳에서 자료를 찾기 위해 이곳을 찾아온 손님들도 많을 거야.

우리 구룡의 도서관이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니까요.

그래. 그건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점이야.

하지만 너도 알아야 해. 이 도서관은 아버지가 지은 게 아니야.

네?

하지만 여기는 아버지가 결정해서 지은 거잖아요.

상회가 아직 상회가 아니었던 시절부터, 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조들, 각 세대의 구룡의 주인은 모든 책과 구룡이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물 그리고 수집해야 할 지식을 한곳에 모아 보존하려고 노력했단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이전 왕조의 역사를 수정하고, 국가가 번영할 때에는 다양한 책을 편찬한단다.

지식과 역사의 무게는 우리의 국민과 함께 각 세대의 구룡의 주인을 억누르고 있다.

난 단지 그 지식과 역사를 위한 용기를 준비했을 뿐이란다. 곡.

하지만... 구룡의 주인도 결국엔 이런 도서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용기요?

이 도서관이 다양한 세계의 지식을 담고 있는 용기라면,

구룡의 주인이 짊어져야 하는 것은 구룡과 국민의 의지 즉, 구룡과 국민의 용기가 되는 거지.

…………

이 도서관에 사람이 없을 때는 본 적 있니?

없어요.

밤에는 문을 닫을 테니까요?

아니. 그렇지 않단다.

여기는 내 명령으로 24시간 사람들에게 언제나 개방되어 있단다.

아무도 읽지 않는 책, 아무도 배우지 않는 지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이... 이해했어요.

아버지의 말씀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거죠.

역시 내 딸답구나.

치는 웃으며 곡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아버지.

그날의 일이 이 도서관과 관련이 있나요?

물론이지.

곡, 너에게 물어볼게.

병에 돌이 가득 차 있을 때, 그 안에 물을 부으면 얼마나 들어갈 것 같니?

그건 돌 사이의 틈새가 얼마나 큰지에 달렸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많이 들어가지는 않을 거예요.

결국 돌이 없는 병보다 들어가는 물은 적어질 수밖에 없지.

그날 밤, 난 병 속 돌들을 전부 사라지게 했단다. 물이 들어갈 병에 물만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지.

그게 무슨 뜻이에요?

치는 옆에 서 있던 카이사이들이 어느 순간 사라져 있는 것을 봤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한 후, 딸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곡아, 이 일은 아버지 혼자서 감당할게.

오늘 아버지와 함께 해줘서 아버지는 정말 즐거웠다.

치는 반쯤 무릎을 꿇고 곡을 품에 안았다.

아버지...

곡아, 아버지는 지금 중요한 회의에 가야 해.

잠시 후... 누군가 널 찾으러 올 거다.

네?

여기 있으면, 누군가 널 찾으러 올 거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도 괜찮아.

곡, 단 한 가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는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

너희에게 너무 많은 걸 빚지고 있구나. 미안하다.

사랑... 한다고요?

알았어요.

치는 품에 안고 있던 곡을 놓아준 뒤, 어린 곡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딸이 함께 왔던 길을 따라 치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걸어갔고, 그의 모습은 구룡 상회 정무 구역의 넓고 어두운 복도 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어둠 속에서 휠체어 한 대가 천천히 나타났다.

곡.

순 대인.

실제로 순은 상회에서 어떠한 주요 직책도 맡고 있지 않았고, 실제 결정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회 통합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이 노인은 가족 전체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지위 덕분에, 치조차 그를 만나면 가문의 예법에 따라 그를 "대인"이라 불러야 했다.

그는 외부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가족의 모든 것을 맡은 후에는 항상 구룡 내원에 머물렀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는 강철과 전쟁의 불꽃으로 현재 구룡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가 아니었다면 구룡은 통합을 이룰 수도, 정복을 완료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이 있으면, 뒤에서 지탱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최근 가족에 대한 학습은 어디까지 했었니?

자부까지요.

좋아. 빠르구나.

이런 것들... 그리고 역사.

너희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모두 기초를 다지는 것들이다.

9층 탑도 흙을 쌓는 것부터 시작하지. 기초가 불안하면 언젠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 구룡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언제나 안정적인 "기초"란다.

알겠어요.

그럼, 곡아. 너는 저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보았니?

순은 담요에서 마른 손을 내밀어 방금 전 치와 곡이 봤던 곳을 가리켰다.

순이 내민 손은 침체기 시기에 타락한 자들을 징계하고 각자 따로 행동하던 사람들을 통합하며 구룡 상회를 완성한 손이었다.

전쟁, 상처, 명예가 모두 이 늙은 손에 담겨 있었다.

이들은... 도서관을 방문하러 온 시민들이에요.

그것만 보이니, 곡?

가족, 역사, 많은 사람들의 앞뒤가 모두 이 늙은 손에 담겨 있었다.

……

치가 너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더냐?

또 무엇을 보았니, 곡?

지식을 찾는 사람들, 경치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를 만끽하는 사람들, 평화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고금의 지식과 역사를 잇는 경전과 역사서 사이에서.

끝없이 펼쳐진 지식, 바다처럼 방대한 보물들 사이에서.

제가 본 건...

그녀도 여기 있는데, 여기서 무엇을 보았을까?

그들은 단지 도서관을 방문한 시민들일까?

이 도서관은 단순한 도서관일까?

용기...

물은 담길 병이 필요하듯, 책은 저장될 건물이 필요하다.

지식은 기록될 머리가 필요하고, 돈은 유통될 창고가 필요하다.

시민도 마찬가지로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잘했다.

정말 "용기"일까요?

곡의 마음속 어떤 목소리가 그녀에게 이렇게 물었고, 그것은 그녀의 작은 마음을 잠시 멈추게 했다.

하지만 이것이 그녀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답이었다.

잊지 마라, 곡.

결국 모든 것은 기초를 잘 다져야 해. 어떤 돌로 기초를 세우느냐에 따라 어떤 탑이 세워지느냐가 결정되는 거다.

구룡이 구룡인 이유는 이 기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룡의 기초는 오직 구룡의 건물만 세울 수 있다.

건물 위에 서서 다시 기초를 허물려고 한다면...

천천히 손을 거둔 순은 존재해서는 안 될 전쟁의 불길이 피어오르는 곳을 보는 듯 먼 곳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게 돼.

같은 시각.

비행기도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넓은 회의실 중앙에는 고풍스러운 회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원래 이곳은 구룡파와 구룡의 주인이 회의를 하던 곳으로, 긴 테이블 위에는 구룡파와 구룡의 주인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많은 데이터 장치와 단말기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 테이블은 그 본래의 사명만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회의실에는 구룡의 주인도, 구룡파들도 없었고, 오직 인간의 이름으로 대화하는 두 사람만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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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해도, 이 계획은 단지 제안으로만 여기셔야 합니다.

최종적으로 이걸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지 결정하는 것은 구룡과 치 대인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대청의 어둠 아래 앉아 있는 사람의 앞에는 어떤 장치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회의 테이블 위에, 서명도, 이름도, 로고도 없는 파일이 놓여 있었고, 표지에는 단순히 연월일만 표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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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이 계획은 침체기 이전의 인간 유전자 계획을 계속 이어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다만 이번에는 그 범위를 인간 문명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 전체로 확장하려는 겁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이 행성의 900만 가지 이상의 생물종에 대한 유전자 지도와 물리적 지도를 작성하고, 최종적으로 이러한 생물 데이터를 완벽히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일에 드는 시간과 노력이 은하계 탐색보다 적지 않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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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이 계획도 제안인 겁니다.

게슈탈트 계획이 아직 준비 단계인 만큼, 우리만으로는 지금 당장 추가 자원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자금이 문제라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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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 중인 "동방 계획"도 본질적으로는 성간 탐사를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작은 한 걸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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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간 탐사를 통해 추진력과 항로의 가능성을 확인한다면, 다음 단계는 은하계 식민이 될 겁니다.

그렇게 간단하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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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이십니까?

질서를 세우기 위해선, 채찍뿐 아니라 당근도 필요하죠.

세계 연합을 추진하고, 은하계 식민을 완수하려면 과학 기술만으로는 힘들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이 있으면, 뒤에서 지탱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니까요. 적합한 사람을 찾아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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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전 인류를 연합할 수 있는 거대한 조직을 만드는 것인데, 이 작업량이라면... 일반인이 감당하기는 어렵겠군요.

앞에서 당당히 서 있을 수 있어야 하고, 뒤에서는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필요할 때는 도덕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희생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추천할 만한 사람이 있으십니까?

대서양 경제 공동체에 있는 한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가 적합할 거 같아요. 다만, 그의 의지가 중요하겠죠. 제가 북극 항로 연합과 대서양 경제 공동체 지도자들과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 일은 우리 세대만으로는 완수할 수 없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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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이사회의 숙원도 일시적인 게 아닐 겁니다.

창문 앞에 서서 구룡성을 내려다보던 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세대가 안 된다면, 또 얼마나 많은 세대가 더 필요할까요?

구룡조차 전 상회의 역량을 총동원해 내일을 향한 계획을 추진하는 것이 정말 어렵군요.

도미니카

하지만 치 대인이시라면, 할 수 있으십니다.

왜냐하면 구룡의 주인은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니까요.

제가 주도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제가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물론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직접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결국 그 일을 실행하는 건 제 부하들이죠.

일은 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묻기보단, 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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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정치적 지혜는 구룡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만...

당신들 과학자의 시각에서 본다면, 모든 것이 공식처럼 보이겠죠. 등호의 양쪽을 균형 있게 맞추면 답이 나오는 것처럼요. 하지만 인간은 그런 식으로 측정할 수 없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진정한 단결은 이뤄질 수 없어요. 구룡에서도, 북극 항로 연합에서도, 대서양 경제 공동체에서도, 어디에서든 마찬가지죠.

불평등한 이익이 존재하는 한, 특권이 존재하는 한, 사람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대가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한...

인간은 진정한 단결을 이룰 수 없을 거예요.

냉핵융합 기술로 침체기를 종결시키며, 전 세계의 생산력 수준을 전례 없는 단계로 끌어올렸어요. 그리고 지금의 평화는 과학 이사회가 실질적인 과학 기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공동의 이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도미니카 박사님께서 제일 잘 아시겠지만, 이 등식의 왼쪽에 냉핵융합을 놓으면, 오른쪽은 전쟁 무기가 되죠.

설사 앞으로 정말로 전 세계가 연합이 된다 해도, 그때는 내부의 고민이 끊임없겠죠.

도미니카

치 대인 말씀처럼, 이런 일은 저희 세대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우리 후손들, 그 후 손들이 계속 이어나간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겁니다.

네. 꼭 그렇게 될 거예요.

치가 의사실 높은 통유리를 어루만지며, 단호하게 말했다.

도미니카

또 다른 일이 하나 있는데, 말씀드려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말씀해 보세요.

도미니카

최근 구룡이 이사회와 세계 다른 기관에 파견한 직원들이 교체된 것 같습니다.

그만 됐어요.

치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상당한 위압감이 있었다.

이건 과학 이사회에서 언급할 문제가 아니에요.

도미니카

물론입니다. 저는 치 대인이나 구룡이 과학 이사회의 협조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도움이요.

치의 머릿속에 한 소년의 모습이 스쳤다.

도움이라고 하긴 어렵겠군요. 언젠가 그가 여러분과 어떤 식으로든 "협력"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도미니카

그럼, 그때 가서 말씀해 주십시오. 치 대인께서 결정하시면 되는 일입니다.

다른 일에 관해선 언제든 연락 가능합니다.

그 파일은 그냥 거기에 두세요.

내일 답변드릴게요.

도미니카

내일 말입니까?

석양빛이 그의 깊은 눈동자에 비쳤고, 그 석양빛은 구룡 전체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네. 내일... 밤이 되기 전에 준비를 해야겠군요.

내일의 태양은 또다시 떠오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