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귀신이다!!!
당황하지 말고! 진정해!
그... 그가 지나갔다고!!
팔, 팔!!!
깊은 무의식의 혼수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지휘관님!
리브가 지휘관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하지만 시선을 리브에게 돌리자...
주황빛 그림자가 리브 뒤에 서 있었는데, 예전에 봤던 희미한 모습보다 훨씬 더 선명했다.
일단 그 얘기는 나중에 하시죠. 괜찮을 거예요.
지휘관님,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데이터 상으론 마인드 표식은 오염되지 않았고, 수치도 문제없어요.
이마에 닿은 리브의 손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리브가 쓴웃음을 지으며 옆으로 팔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아무런 방해 없이 그녀 옆에 있는 노란 그림자를 통과했고, 그 그림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
▃...▆▄▆...
지휘관님께서 의식을 잃었을 때부터, 만세명 안에 이런... 정확히 정의하거나 관찰할 수 없는 "그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지휘관님의 혼수 상태와 이 "그림자"들의 출현이 어떤 관련이 있는진 확신할 수 없지만, 뭔가 있는 것 같아요.
리브는 뒤에 있는 염유의 텐트를 가리켰다.
고개를 들어 보니, 분주히 오가는 염유 의사들과 부상자들 사이에 이 "그림자"들이 가득 서 있었다.
여기뿐만 아니라, 바깥 전장에도 이런 "그림자"가 많이 나타났어요.
하지만, 지휘관님 근처엔 없어요.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자, 리브 뒤에 있는 "그림자"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곳보다 비교적 "깨끗한 곳"이었다.
그들은 모두 만세명에서 죽은 자들이다.
"그림자"보다 더 구체적인 사람의 형태가 멀리서 나타났다.
짙은 녹색 머리카락, 우아하고 엄숙한 옷차림 그리고 거만한 말투...
우리 만난 적이 있지 않나? [player name].
비리야다.
그... 전에 구룡 야항선에서 화서와 같이 사라졌던 사람이죠!
예전에 구룡 순환 도시에서 곡 님이 화서를 몰래 데리고 간 게 당신이라고 했던 거 같아요.
그래?
그 후에 내가 화서와 함께 사라졌나?
만세명에선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말해준 사람이 없나?
여긴 수없이 많은 의식 데이터와 조각들이 저장돼 있지. 나도 그중 하나야.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인간형의 이미지들은 다 만세명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의식 데이터가 현실 세계에 반영한 거야.
그런데 내 화서가 정체불명의 공격을 받게 되면서, 이 의식 데이터가 만세명에 유출된 거야.
물론이지. 그녀는 내가 만든 유일무이한 완벽의 창조물이야. 내가 그녀를 창조했으니 내 소유물이 되는 게 당연하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를 기억하지도 않을걸.
이 남자의 화서에 대한 집착은 이미 극에 달해있었다.
난 화서를 재가동해서 그녀를 구해야 해.
넌 그렇게 하게 될 거야.
왜냐면 나뿐만 아니라,
곡도 화서의 재가동이 필요하니까.
공중 정원
11월 10일, 04:37
의장 사무실
공중 정원, 11월 10일, 04:37, 의장 사무실.
의회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군부는 어쩔 수 없이 구룡성 근처에 필드 포인트를 배치할 후속 소대를 파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톨리드든 하산 자신이든 더 이상 총알을 쏠 수 있는 화약이 없었다.
의회 앞에 놓인 결론은 망각자 문제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었다. 화서는 실제로 존재하며, 퍼니싱이 화서와 만세명의 모든 데이터를 흡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퍼니싱이 정말 화서를 흡수한다면, 게슈탈트가 아직 연산 능력 락으로 인해 완전히 사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퍼니싱이 화서를 도구로 삼아 게슈탈트를 전복시키는 건, 단지 시간문제였다.
공중 정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루나가 화서를 통해 유발한 공중 정원의 추락 위기가 7295개의 탄도 미사일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만세명이 지구의 생명 데이터 정보를 상당히 많이 저장하고 있어서, 그로 인한 적조와 이합 생물이 어떤 통제 불가능한 진화를 일으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이 모든 일이 정말로 발생한다면, 망각자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망각자는 한 번에 모든 걸 삼킬 수 없지만, 적조는 가능하다.
와타나베가 그 다모클레스의 검을 쥐고 있는 게, 전 인류의 적에게 도살칼을 쥐여 주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니콜라 사령관, 전쟁 동원령은 내렸나?
그래.
니콜라는 단답형으로 말했다.
망각자 사건 이후, 니콜라와 하산의 관계는 미묘한 어색함에 빠진 상태였다.
일치했던 그들의 이상은 처음부터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두 개의 평행선과 같았다. 지구를 되찾고 고향을 재건하는 그 꿈을 진정으로 이뤘을 때만, 무한한 곳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 어느 한 줄은 무거운 어둠을 짊어져야만 했다.
의회에겐 확실히 이것이 유일한 선택이지.
승격자가 화서를 장악하는 것이, 화서로 인해 진화된 이합 생물보다는 나으니까.
최대한 노력해 보자고.
내가 최대한 시간을 벌어볼게. 그리고 필드 포인트의 보장 작업은 내가 진행할게.
고마워. 니콜라 사령관.
니콜라는 잠시 멈추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만약 의회가 게슈탈트의 제안을 무시하고, 강제로 게슈탈트에게 우주 무기를 활성화하라고 명령한다면...
나와 군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알고 있어.
하산은 창밖의 푸르고 아름다운 별을 응시했다. 공중 정원의 궤도 높이에서 보면, 수십 년 전과 다름없어 보였다. 그때는 퍼니싱도, 전쟁도 없었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인간은 결코 그녀의 보금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철수해야 해.
너도 보고서를 봤잖아. 그 "곡"이라는 수격자가 세계 정부 사람에게 암살당했어. 그것도 구룡계 출신 의원에게 말이야.
이 곡이라는 자가 뭘 했는지 그리고 뭘 하려고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어.
예전에 지상 세계 연합 정부에 있을 때, 그녀를 본 적 없나?
없어.
내가 세계 연합 정부에 합류한 건 그 뒤에 일이야.
내가 아는 건... 톨리드가 예전에 구룡을 다른 사람들의 무게를 재는 저울추라고 했다는 것과, 그도 조심스럽게 구룡을 다른 암류 속 세력의 균형추로 사용했다는 거야.
저울 한쪽에 구룡을 올리면, 다른 한쪽의 무게를 측정할 수 있는 거지.
순환 도시 전투에 이어 이번 사건까지 톨리드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