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슐츠·로더람, 시와 소설을 쓰고, 가끔 리뷰를 쓰기도 해.
내 이야기는 정말 다양하고 상상력이 넘쳐서 어떨 땐 완전히 다른 세계로 뛰어들기도 해. 한 이야기에서는 참호에서 총 들고 있는 병사였다가, 그다음 이야기에서는 우주선 타고 우주 끝을 향해 나아가는 선구자가 되기도 해.
누가 알아? 이야기란 원래 그런 거잖아?
난 구룡에 가본 적이 있는데, 가끔 거기가 내 두 번째 고향이라고 느껴져. 어떤 책에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어.
역사의 흐름에서 과거가 현재를 지배한다. 그리고 역사의 저술 속에선 현재가 과거를 지배한다.
봐, 역사와 이야기는 별로 다를 게 없어. 도덕이라는 것도 상황에 따라 변하는 찰흙 같은 거라, 필요할 때는 인간의 도덕이 아주 저열하게 변할 수도 있어. 그래서 털도 뽑지 않고 날 것의 고기를 먹을 수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천국에 앉아 있는 성인처럼 고상하게 될 수도 있는 거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내가 많은 이야기와 시를 썼고, 많은 사람에 대해서도 써서 그래. 결국 모든 건 다 이야기일 뿐이야.
그 이야기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 예를 들면, 지난주 <주간 바빌론>에 발표한 이야기 속 그 운 없고 가엾은 이는 사실 매일 마감을 재촉하는 내 편집자야.
솔직히 말해서, 난 그 인간이 싫어.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정말 비참했다고 얘기했었어. 가정불화라고 했었나?
나도 다른 작가들처럼 많은 사람과 사건을 보기 위해 외출하곤 해. 어디서든 이야깃거리를 찾아야 하잖아? 그러다 보니 집에 잘 없고, 잡지사에도 자주 안 보이는 편이야.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 아닌가? 창작이라는 게 결국 내 영감이 떠오르는 곳에서 시작되는 거니까 말이야. 그걸 제한할 수는 없는 거잖아.
친구들은 내가 역겨운 것들, 형편없는 것들, 정신적으로 비정상적인 것들, 시각적이나 정신적으로 불쾌한 것들을 뜯어서 펼쳐 보여주는 게 내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라고 말해.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이런 걸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누가 슬프고 비극적인 고난을 쓰고 싶겠어? 이야기는 즐거운 게 목적이잖아.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 버려진 가여운 사람을 쓰지 않았을지도 몰라. 불쌍하게도, 내 편집자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인 게 분명해.
불쌍한 인물 외에도, 난 미적 감각이 형편없는 화가와 끔찍한 털 색깔을 가진 페르시안 고양이에 관한 내용도 썼어.
하지만 그 이야기를 쓰기 위해 난 일주일 동안 편집부에 앉아서 내 불쌍한 편집자를 관찰했지. 아마 사흘이었을지도 몰라. 어쨌든 매주 금요일에는 원고를 제출해야 하거든.
이제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거야. 처음 <주간 바빌론> 5786호의 "허구의 모음" 7페이지에 실린 이야기인데, 아마 처음 내 머릿속에 나타난 게 4주 전이고, 3일 전에야 첫 글을 쓰기 시작했을 거야.
4억 4500만 년 전, 오르도비스기 대멸종은 이 행성의 85% 생물을 멸종시켰다.
3억 6000만 년 전에는 82%가 멸종됐다.
2억 5140만 년 전에는 95%가 멸종됐다.
1억 9960만 년 전에는 50%가 멸종됐다.
6600만 년 전에는 75%가 멸종됐다.
이로부터 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은 돌과 나무 막대기를 사용해 자연과 맞서 싸우며 생존해 왔다.
하지만 인간 문명이 탄생한 이래로 오늘날까지, 83%의 야생동물이 이미 멸종되었다.
(음, 요 몇 문장이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데...)
저기... 슐츠.
통통한 중년 남자가 두툼한 원고 뭉치를 슐츠 앞에 내밀고는, 누렇게 변색된 손수건으로 얼굴에 맺힌 기름진 땀을 닦아냈다. 슐츠에게 마감을 재촉하는 편집자인 것처럼 보였다.
여기저기 수정되고 보충한 글씨들로 어지럽혀진 원고는 긴급 수술을 마친 종이 뭉치 같았다.
슐츠는 넥타이를 살짝 잡아당기며 불안한 눈으로 시계를 힐끗 확인했다.
말했잖아. 이제 이런 전통적인 공상 과학 소설은 인기가 없다고.
무슨 소리야!
요즘 누가 공상 과학인지 아닌지를 신경 써?
그래서 합리적인 상상력을 필요한 거잖아!
우리가 보고 있는 게 다 맞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어? 내 생각엔, 우리가 발견한 이론과 현상들은 인간의 이성과 언어로 겨우 설명할 수 있는 것들뿐이야.
우주는 네가 모든 걸 이해하도록 도와줄 의무가 없어.
알아. 나도 그건 알겠는데 이걸 봐봐
케빈이라는 통통한 남자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데이터가 가득 담긴 다른 보고서를 슐츠에게 내밀었다.
데이터를 좀 봐봐. 최근 구독하는 독자들은 긴장감 넘치는 걸 좋아해. 그들은 그저 즐기려고 읽는 거라고.
그러니까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걸 써야 하지 않겠어? 이 항성의 거대 구조 설정을 무한히 증식하는 합성 인간 같은 걸로 바꿔보는 게 어때?
그게 어떻게 말이 돼!?
내 말 못 믿겠어?
케빈의 말투는 전혀 강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의 억울함과 간절함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슐츠에게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이 배 나온 남자를 전혀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케빈은 인기 많은 칼럼을 만들어 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슐츠는 "평가는 좋지만 잘 팔리지 않는" 것들이 무엇 때문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아, 케빈.
내가 예전에도 말했잖아? 결국 우리도 서비스업인데, 독자들에게 언제나 엉망진창인 삶이나 비참한 이야기를 보여줄 필요는 없잖아.
사람들 삶은 이미 충분히 힘들어. 차라리 희망을 줄 수 있는 걸 읽게 하는 게 더 낫지 않아? 우리 개인적 불행 때문에 독자들까지 그런 걸 봐야 할 이유는 없잖아.
안 돼. 우리 편집부는 이런 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 너도 알잖아.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는 거.
아무튼, 다시 한번 고쳐봐. 슐츠. 제발.
아니면... 그냥 다시 써보는 건 어때?
뭐...
그... 주석도 이렇게 많이 달았는데, 그냥 한 번 더 시도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슐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 한 번 해볼게.
케빈이 슐츠의 상사인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고마워. 그럼 수고해.
케빈은 웃으며 돌아섰다. 얼굴에 맺힌 구슬 같은 땀이 웃을 때 생긴 주름 때문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슐츠는 케빈이 멀어지는 걸 보며 다시 한 번 긴 한숨을 내쉬고는 상처투성이인 원고를 책상에 던졌다.
이게 바로 그의 삶이었다.
<주간 바빌론>은 그가 속한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신문이었다. 물론 "가장 큰"이라는 말은 후진 뒷골목 차고에서 불법으로 인쇄하는 선정적인 잡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식"이라는 거였다.
이 도시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없다.
하늘은 늘 흐리고, 언제나 비가 내렸다.
슐츠의 기억으로 가장 길었던 장마가 4년 11개월하고 이틀이었다.
반복해서 씻긴 빨간 벽돌과 시멘트 틈 사이에는 다양한 색상의 끈적한 이끼와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오렌지색 우비를 입은 노동자들이 그것들을 벽에서 긁어내 주사기, 유리 조각과 함께 하수도로 흘려보냈다.
깊고 어두운 골목에서는 항상 누군가가 울고 있었다. 어른도 울고 아이도 울었다. 무직자, 노숙자, 그리고 집에 가기를 꺼리는 노동자들이 술병을 줄 세운 뒤, 발로 차 넘어뜨리곤 했다. 이것이 그들이 아내와 아이를 때리는 것 외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합법적인 오락"이었다.
슐츠는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게 싫었다. 이미 너무 많이 보았고, 어쩌면 그 자신도 원래는 그들 중 한 사람이었을 수 있었기에, 이런 것들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슐츠는 책상 위에 구겨진 담뱃갑을 집었다. 하지만 그 안은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다.
담배 필요해?
잘 관리된 듯하지만 조금 건조한 손이 슐츠의 앞에 내밀어졌고, 손끝에는 담배 한 개비가 있었다.
금연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담배를 받은 슐츠는 그녀의 살짝 오르내리는 가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몇 초 동안 껄껄 웃고는 고개를 돌려 담배를 물었다. 그러고는 책상 위 수첩을 넘기기 시작했다.
슈바르츠실트는 현재 도시 섹션을 맡고 있지만, 그전에는 유쾌하기로 유명한 슐츠의 상사 편집자였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케빈이 너무 "유능"했기 때문에, 슈바르츠실트는 소설 섹션을 자진해서 떠나 케빈에게 그 자리를 넘겼다.
옷 좀 수선해야겠네.
슈바르츠실트가 내뱉은 담배 연기는 연기로 가득한 편집부 안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제 넘어져서 그래요. 근데 금연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3일이라도 끊으면 금연이지.
그러다 폐암 걸려요.
너도 조심해.
슈바르츠실트는 고개를 저으며,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말을 멈췄다.
담배를 입에 문 슐츠는 라이터를 찾으려고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건 샤틴 벨벳이 감싼 사각형 물건이었다.
(음...)
슐츠는 오늘 저녁 6시 10분에 정확히 오웬 거리 29번지 B31의 낡은 나무 문 앞에 서 있어야 했다. 그 시간이 헬레나 가족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슐츠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벽시계를 봤다. 오후 5시 30분이었다.
쿨럭...
슐츠는 연기를 뱉고는 슈바르츠실트를 팔꿈치로 건드렸다.
저 가요?
아직 퇴근 시간 되려면 좀 남지 않았어?
오늘 할 일이 있어서요.
그럼, 케빈한테 말해 봐.
이미 다 말했어요.
슐츠는 파일 더미 사이에서 주황색 종이를 꺼냈다. 마치 굶주린 늑대들 사이에서 커다란 고깃덩이를 꺼내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쓰거나 보고 있던 사람들이 눈을 들어 시계를 한번 본 뒤, 슐츠 손에 든 타임카드를 주목했다.
급한 일이 있어서...
슐츠는 중얼거리며 굶주린 듯한 눈빛들을 피해 타임카드를 낡은 타임카드 기계에 넣은 뒤, 머리를 숙인 채로 연기 자욱한 편집부를 빠져나갔다.
빌어먹을.
슐츠는 퉤하고 침을 뱉었다.
밖에서 내리던 비는 슐츠가 아침에 출근할 때보다 조금 잦아들었다. 그렇지만 우산 없이 오웬 거리를 20분 정도 걸어간다면 반쯤 젖기 십상인 날씨였다.
이 비는 미세먼지가 지난 뒤 내려오는 비라서 석탄재와 흙이 섞여 있었다. 슐츠는 위층 노인에게 빌린 이 슈트를 깨끗하게 돌려주고 싶었다.
결국 슐츠는 우산을 펴고 빗속으로 걸어갔다.
거리에는 아직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슐츠가 퇴근한 5시 30분은 일반적인 퇴근 시간이 아니라 조퇴였기 때문이다.
편집부가 있는 그레이 스톤 거리에서 오웬 거리에 있는 헬레나 집까지는 버스로 15분이 걸리지만, 걸어서 가면 20분 정도 걸린다.
슐츠는 걸어서 가고 싶었다. 가는 길에 꽃을 한 송이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슐츠는 한 손으로는 검정 폴리에스터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주머니 속 작은 샤틴 벨벳 상자를 만지작거리며 거리를 걸었다.
정장이 이것 하나뿐인 슐츠는 주머니에 넣은 손으로 눈에 띄진 않지만, 신경 쓰이는 작은 구멍을 최대한 가리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10분이 지났고, 슐츠는 그레이 스톤 거리 모퉁이 골목을 빠져나와 오웬 거리로 들어섰다. 그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웬 거리 끝에서 희미한 안개와 비 속에 솟아오른 높은 굴뚝이 보였다. 그것은 오웬 제2 공장이었다.
오웬 제2 공장은 이 도시 주민들에게 아직 이 도시가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이 거리가 오웬 거리로 불리는 것도 그 공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오웬 제2 공장이 무엇을 생산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 공장에는 천여 명의 직원이 있었으며, 모두 오웬 거리 주변에 살고 있었다. 헬레나의 가족도 그 공장의 노동자들이었다.
어떤 노동자들은 매일 2미터짜리 철공을 주조한다고 말하고, 어떤 노동자들은 철공을 용광로에 넣어 쇳물로 만든다고 했다. 그 외에 크롬 도금 판에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 이도 있었고, 정밀한 기어를 하루에 무려 300개씩 찍어내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이들이 하는 일이 각각 무관한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아저씨, 방금 딴 싱싱한 꽃이에요. 꽃 사세요.
연한 노란색 이끼가 낀 벽 아래 서 있는 수척한 모습의 소녀가 낮은 소리로 호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닿기 전에 가느다란 빗소리가 먼저 이를 삼키고 있었다.
아저씨, 꽃 사세요.
얼마니?
장미는 3원, 카네이션은 2원, 설구화는 1원이에요.
소녀 앞 바구니에 꽃 몇 송이가 꽂혀 있었고, 꽃잎에는 빗물이 흐르고 있었다. 원래는 그렇게 신선하지 않았던 꽃들이 비를 맞아서 이슬을 머금은 듯 매력적으로 보였다.
장미 하나 줘.
슐츠는 주머니에서 동전 세 개를 꺼내 소녀의 손바닥에 하나씩 놓았다. 소녀는 동전을 받고 꽃을 슐츠에게 건넸다. 그런 뒤, 조금은 초조한 듯 소매를 잡아당기며 눈빛을 피했다.
너 몇 살이니?
……
소녀는 말하기를 꺼려하며 고개를 저었다.
슐츠는 손을 뻗어 소녀의 팔을 잡았다. 그는 힘이 센 편은 아니지만, 수척한 모습의 소녀를 잡아당기기엔 충분히 강했다.
주사 자국이 왜 이렇게 많아.
저기요.
어느새 슐츠 옆에는 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고, 손을 뻗어 슐츠의 손목을 잡고는 소녀의 소매를 더 이상 걷지 못하게 했다.
무슨 일이죠?
소녀는 그 남자의 크고 둥근 모자를 바라보며 격렬하게 숨을 헐떡였다.
콜록...
슐츠는 이 남자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직감했다.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는 소녀의 팔을 놓아 주었다.
괜히 알량한 정의감을 내세웠다가 오늘의 일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아니야.
그럼, 가보세요.
남자도 천천히 힘을 풀었다.
저기... 버... 아빠.
저... 돈 여기 있어요.
소녀가 떨리는 손으로 동전 3개를 사내에게 건네자,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내는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돈을 받았다. 그러고는 슐츠의 어깨를 툭 치고 떠났다.
콜록...
소녀의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했고, 혹시라도 슐츠가 자신에게 말을 걸까 봐 몸을 돌렸다.
슐츠는 한숨을 쉬고, 들고 있던 장미꽃을 주머니에 넣은 뒤, 자리를 떠났다.
(이런 일은 이 도시에선 너무 흔해.)
(그들은 아이들을 비열한 방법으로 조종하며, 그녀들의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아.)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견딘다 해도, 성인이 되면 결국 마약으로 일찍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마약 중독자가 되겠지!)
슐츠는 소심한 정의감으로 불타올랐다가, 이내 끈적한 빗속에서 사그라들었다.
비는 그가 편집국을 떠날 때부터 더 세게 내리지도, 멈추지도 않고, 계속해서 같은 크기로 내리고 있었다.
슐츠가 손목시계를 힐끗 보자, 6시 정각이었다.
이 골목길에서 오웬 거리 29번지 B31까지 가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단 3분이다. 슐츠는 그 낡은 나무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들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6시 10분. 아직 조금 시간이 남아 있었다.
슐츠는 그리 싱싱하지 않은 장미꽃을 주머니에 꽂고, 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
(쳇...)
(누군가가 있는 것 같은데...)
슐츠는 턱을 긁적였다. 주위에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곳이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갈지 말지를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슐츠가 오웬 거리 29번지 B31의 문손잡이를 잡는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트렌치코트를 입고 모자를 쓴 건장한 남자 17~18명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슐츠는 반응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제압당했고, 자신의 손목에 차가운 수갑이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너희들 뭐야!
대체 누구야!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트렌치코트를 입고 모자를 쓴 사람 중에 그들의 리더로 보이는 한 사람이 슐츠 앞에 서서 그의 어깨를 누르고 경찰 배지를 내밀었다.
난 이 지역 경찰국장 마틴·로유다. 슐츠·로더람. 너를 헬레나 클렌틴을 포함한 12명의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 지금부터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를 진행하겠다.
잠깐.
뭔가 이상하다.
슐츠·로더람이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다는 거지? 그는 그냥 평범한 삼류 작가일 뿐인데,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몸 쓰는 일도 익숙하지 않아? 그런 그가 연쇄 살인범일 리가 있지?
헬레나·클렌틴은 공장의 여공이었고, 슐츠는 공장에 가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그는 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해 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노동자에 관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걸까?
잠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원고지 위 이 부분의 문장을 지워버렸다.
그렇지만 무조건 틀린 것만은 아니다. 나는 작가이자,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
왜 내가 살인범이 될 수 없지?
결국 중요한 건, 방법이었다.
안녕, 헤... 헬레나?
응? 무슨 일이야?
이 작고 사랑스러운 소녀는 자신보다 몇 배는 큰 선반 기계를 반복해서 조작하며 웃고 있었다.
공장 안의 소음 컸기 때문에, 슐츠도 목소리를 높여야만 했다.
그러니까! 헬레나!
어. 무슨 일이야?
아무 일 없어. 그냥 네 이름을 부르고 싶었어!
언제 퇴근해!
6시!
이봐! 너 이 녀석!
반대쪽에서 투박한 인상의 나이 든 노동자가 다가왔다.
아빠!
아... 안녕하세요. 클렌틴 씨!
내 딸한테 관심 끊어.
공장은 너 같은 놈이 있을 곳이 아니야. 어서 꺼져.
나이 든 노동자는 새까맣게 변한 수건을 휘두르며 슐츠를 쫓아냈다.
오후 6시가 되었을 때, 슐츠는 다시 이 작업장에 들어왔다. 그때쯤이면 대부분의 노동자가 퇴근하고, 기계도 멈춰서 소음도 적었다.
야! 여기야!
참으로 매력적인 소녀였다.
"갸름한 얼굴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행복과 환희의 빛은 가릴 수 없었다."
"그녀는 정말 아름다워서, 먼짓덩어리가 잔뜩 묻은 작업복조차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녀는 손을 흔들며 슐츠를 불렀다. 이내 자신이 데이트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임을 깨닫고 선반에서 수건을 꺼내 얼굴의 먼지를 닦았다. 그 때문에 그녀의 뺨은 더욱 붉게 물들었다."
그러니까, 이건...
여기서는 갈아입을 옷도 없고, 아빠 몰래 집에 갈 수도 없어서 옷을 갈아입지 못했어.
아냐! 너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난 기뻐.
장미꽃은 신문지에 싸여 있다고 해서 아름다움을 잃지 않잖아.
또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네!
소녀는 가볍게 한 바퀴 돌더니, 공장의 무거운 문 안으로 걸어갔다.
우리 여기서 잠깐 구경하자.
그녀는 어떻게 죽었을까?
나는 이 불쌍한 소녀를 어떻게 잔인하게 죽였을까?
헬레나가 있는 작업장은 거대한 철공을 단조하는 작업장이었고, 그 옆은 그녀의 아버지가 철공을 대형 용광로에 넣어 녹이는 작업장이 있었다.
아무도 오웬 제2 공장에서 무엇을 만드는지 잘 알지 못했다. 이 공장은 풀리지 않는 큐브처럼 항상 변하고 재구성됐다.
규정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이 공장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래서 이 공장은 비밀을 감추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슐츠는 한 손으로 헬레나의 목에 줄을 감았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가 방금 전에 얼굴을 닦았던 수건을 입에 꽉 채워 넣었다.
헬레나는 녹과 흙으로 더러워진 손톱으로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그저 헛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가 산소 부족으로 의식을 잃었을 때, 그녀의 손은 단단히 묶여 있었고, 입에는 수건이 꽉 막혀 있었다.
미안해. 헬레나.
슐츠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철공 안에 넣었다. 그러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옷이 조금 찢어져 버렸다.
미안해. 나... 나 자신을 제어할 수가 없었어.
정말 미안해. 널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
용서해 줘. 제발...
슐츠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듯 경건하게 철공 앞에서 허리를 숙였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슐츠는 거대한 철공에 새겨진 흐릿한 문양을 보았다. 어떤 건 바다고, 어떤 건 대륙이었다.
미안해. 난 정말. 나 자신을 제어할 수가 없었어.
슐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며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 눈물이 철공의 바다 부분에 닿자, 파도가 치는 소리를 내는 듯했다.
"이 지구 무늬가 새겨진 철공은 녹아서 다시 만들어질 것이다."
"다음 날, 바론이 출근했을 때, 사람들은 그가 전날 밤, 잠을 설치고 나와서 성격이 날카로워졌다는 걸 느꼈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어봤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묵묵히 작업만 할 뿐이었다. 그는 철공을 용광로에 운반하여 녹인 뒤, 헬레나의 후임에게 주면서 그 노동자가 다시 새로운 지구를 주조할 수 있게 했다."
그래. 이렇게.
내가 왜 이런 일을 했을까?
정신병원에서 나온 삼류 작가의 행동이 정상적이길 기대하면 안 된다. 길거리에서 난동을 부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거였다.
근데 난 정말 그녀를 사랑했을까?
그렇다. 난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는 내 아내가 되어야 할 사람이었고, 우리는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이 도시에서 비참하면서도 평온한 일생을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난 머릿속에서 이 모든 걸 계획했었다.
우리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면, 보육원에서 입양하면 됐다. 이 도시는 넘쳐나는 게 보육원이었으니까.
그리고 적당한 나이가 되면, 우리는 자연스레 일할 기회를 박탈당할 것이다. 이 도시는 일손이 남아돌았고, 사람들은 복제된 톱니바퀴처럼 영혼 없이 매일매일을 돌고 있었다.
그 후 나는 집에서 이 도시의 슬픔과 고통을 기록하는 삼류 소설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아내는 틈틈이 불법 신문을 위한 삽화를 그리게 될 것이다. 난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보기 좋으면 다른 누가 뭐라 해도 듣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이 취미를 얼마 안 되는 용돈벌이 수단으로 삼았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떻게 정상적인 정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죽으면... 누가 먼저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도시 외곽의 공동묘지에 묻히게 될 것이다.
난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일 죽게 되더라도 유명한 이야깃거리로 남기를 원했다. 이를테면 어느 날, 어느 장소에 천만 개의 분신을 두고 있는 슐츠라는 유령이 나타났는데, 그를 절대 죽일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 얼마나 멋진가!
생각해 봐라. 이 도시는 원래부터 썩은 진흙 같은 곳이다. 그러니 차라리 우리도 그 일부분이 되는 게 좋지 않을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야?
슐츠, 또 헛소리하는 거야.
지금 소설 쓰고 있어!
됐어! 와서 약하고 밥 받아 가. 그리고 조용히 좀 해.
어쩔 수 없이 발에 묶인 족쇄를 질질 끌며, 3개의 철판으로 분리된 나무문 쪽에 서서 오늘의 호화로운 저녁 식사와 구원의 약을 받았다.
조용히 해. 알겠어?
그래. 알았어.
내 이름은 슐츠·로더람, 시와 소설을 쓰고, 가끔 리뷰를 쓰기도 해.
누가 알아? 이야기란 원래 그런 거잖아?
모든 건 다 이야기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