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다우는 석양빛에 기대어 나무로 된 벽지의 기하학적 프랙탈을 계산하면서 마음을 차분히 하고자 했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침대에 누워 이런 장식을 세고 있을 때면, 어린 시절 시베리아 시골집에서의 어느 밤이 떠올랐다. 그때 외할머니는 종교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작은 막대기로 스웨터를 뜨셨다.
외할머니는 단지 여러 전쟁에서 살아남은 평범한 농촌 여성일 뿐이었지만, 뜨개질한 스웨터에는 복잡한 무늬가 가득했다.
이 또한 일종의 재능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의 깊은 곳에 있는 본능이었을까? 그는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복잡한 무늬에 숨겨진 수학적 원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이리저리 끄적이면서, 이러한 복제하기 어려운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모든 것이 정확히 들어맞는 것은 아니었기에, 란다우는 살짝 웃었다.
셰익스피어 전집의 엔트로피가 어떻게 셰익스피어 본인과 비교가 되겠어?
란다우는 손목시계를 보며 오후 5시 50분인 것을 확인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옆에 있는 통신 단말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로유, 있나?
이고르, 무슨 일이야?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는데, 아직도 거기 있나?
그들이 널 환영하기 위한 연 거야. 나 때문은 아니니까.
그래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비리야는? 아직 실험실에 있나?
음... 방금 전에 레보비츠 박사가 퇴근할 때, 비리야가 같이 떠나지 않았으니까 아직 있을 거 같은데.
그를 불러줘.
콜록... 내가 말한다고 해서 들을지 모르겠네?
내가 말한 거라고 해. 그럼, 들을 거야.
알았어. 시도해 볼게.
좋아. 그럼 6시 반에 보자.
란다우는 통신을 끊고 창문을 연 뒤,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다 맞은편 대각선 아래에 있는 브라운의 방도 불이 켜져 있는 걸 발견했다.
(브라운이 요즘 출근 안 하는 이유가 진짜 코롤료프랑 맞지 않아서일지도 몰라.)
란다우의 방은 이사회 구역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의 벽이 바로 보였다. 여름이 되면 온통 덩굴과 각종 작은 꽃들로 뒤덮이게 되는 길이 300미터, 높이 3미터의 벽은 과학 이사회에서도 널리 알려진 풍경이었다. 그래서 학원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에 와서 서로에게 마음을 고백하곤 했다.
젊은 남녀는 마지막에 어떻게 되든, 그들의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 작은 장미 화분을 하나씩 남기곤 했다. 그래서 매년 겨울이면 이사회의 공무부는 이 시든 상징들을 정리하기 위해 추가 인력을 배정해야 했다.
란다우가 이사회에 머물며 일하던 초기에는 가끔 손에 들고 있는 일을 멈추고 술 한 잔 따라, 이 젊은이들을 조용히 응원하곤 했다. 그의 눈에는 이 시대에는 젊음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석양이 드리워질 무렵, 이 꽃 벽 아래로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걸어가고 있었다.
스무 살의 그들에게는 지금이 인생의 황금기였다.
란다우는 본능적으로 창가의 술잔을 잡으려 했지만, 3년 동안 비어 있던 그 잔에는 더 이상 담길 물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ヘ▼#)...
란다우의 손 옆에 있던 노란 꼬마 로봇이 불만스러운 듯 그의 손을 가볍게 문질렀다.
기억나니? 우리가 여기에 처음 왔을 때, 술병은 술로 가득 차 있었어. 42.
다시 예전처럼 채워줘. 42.
(一︿一)
42는 주인이 술을 마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 뒤, 거주국에 술을 주문하러 바깥으로 날아갔다.
좋을 때군.
란다우는 크게 기지개를 켜고, 담배를 유리 재떨이에 비벼 끈 뒤, 방을 나섰다.
그가 방에서 나서는 순간, 방안이 어두워졌다. 보기 좋은 나무 프랙탈 벽지를 비췄던 석양빛은 그 층을 관통해 차갑고 단순한 투영판 위에 비쳤다.
제2 개발부가 이렇게 개방적일 줄은 몰랐네?
당연하지. 이건 논쟁의 여기가 없는 사실이니까.
머리숱이 없는 중년 남자가 컵에 든 음료를 단숨에 비웠다.
일반 사람들이 우리의 우주 함선 설계도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때론 너무 많은 정보를 아는 것이 사람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하지만 과학 이사회는 언제나 이 부분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
이러한 것들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사회에 학습 신청을 할 수 있어.
지식과 진리는 아무런 장벽도 없어야 해요. 또한, 장벽이 존재하는지 여부가 지식과 진리 자체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 돼요."
코롤료프 옆에 앉아 있던 안경을 쓴 온화한 여성이 이렇게 말했다.
원한다면 누구나 우주선 설계도를 요청할 수 있고, 집 뒷마당에서 우주 비행기나 우주 정거장을 직접 지을 수도 있지요.
공유되지 않는 지식은 진공 속 꽃처럼 의미가 없어요.
물론, 그걸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야. 그리고 허가를 받을 수 있느냐는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맞아. 슈바르츠실트가 말한 것처럼, 지식과 진리에 장벽이 있으면 안 돼.
란다우는 비리야가 계속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비리야는 그 뜻을 알아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음...
네 새 학생이 꽤 개성이 있는 것 같네. 참 보기 좋아.
응. 성격이 좀 독특하긴 해. 사람 많은 곳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늘 말하더라고.
어때? 재능은 있어 보여?
응.
며칠 전에는 이산 유한군에 기반한 초위원 다차원 양자 역비밀 코드 방안을 제시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가능성 있어 보였어.
그럼, 그냥 네가 가르치는 게 낫지 않나? 아... 넌 지금 학생을 거의 받지 않지?
레보비츠 선생님은 정말 오랫동안 새로운 학생을 받지 않으신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 레보비츠의 마지막 제자가 바로 여기 있으니까 말이야.
너도 네 학생이 제2 개발부에 가서 천체 물리학을 연구할 줄은 몰랐지?
쳇, 그건 네가 데려가서 그런 거잖아.
아니야. 난 그런 적 없어.
내 생각에 그는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아. 어쨌든 별이잖아!
난 저 노인네가 학생이 어느 별에 가서 감자를 심을지 알고리즘으로 미리 예측한다고 네가 말할 줄 알았어.
코롤료프 박사님!
슈바르츠실트는 부끄러운 듯 입을 다물었다.
이고르, 다음 주에 하반기 예산을 신청해야 해.
뭐라고?
뭐라고!?
무릎을 탁 치며 자세를 고쳐 앉은 코롤료프는 생각보다 술에 취한 것처럼 보였다.
너도 그 캐논이라는 녀석에게 예산을 20% 더 주고 싶진 않을 거 아냐?
그들이 제안한 로봇 의족 교체 기술은 꽤 재밌을 것 같던데.
너 혹시 라도가의 버섯을 너무 많이 먹어 정신이 혼미해진 건 아니야?
술 좀 줄여. 코롤료프.
새벽호와 궤도 어레이를 만드는 데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너희 제3 개발부도 인원을 더 늘린다고 하지 않았어?
너희 요즘 소설가와 극작가를 많이 초대한다고 요한한테서 들었어. 뭘 하려고 초대하는 거야?
게슈탈트 때문이야. 아직 인원이 충분하지 않아서 작업은 착수하지 못하고 있어.
아직도 작업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코롤료프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돌아왔을 때 시작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빨리 될 리가 없잖아.
게슈탈트를 건설하려면 각 분야의 수많은 전문가와 학자가 필요해. 그리고 기초 과학과 공학의 통합도 필요해. 도미니카가 예산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보고서의 숫자를 보고는... 쳇쳇.
란다우는 혀를 차며 웃었다.
그런데 소설가랑 극작가들은 왜 고용한 거야?
우리 같이 실험실에 박혀 사는 사람들이 기발한 이야기를 써낼 거라 기대할 수는 없잖아?
하지만 란다우 박사님의 농담 실력은 엄청나실 것 같은데요?
너... 언제 한 번 레보비츠에게 널 잡아다가 우리 실험실에서 좀 고생시켜야겠어.
란다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게슈탈트 설계에는 인간의 모든 학문과 분야의 지식이 필요해. 그래서 앞으로 제1 개발부와 제2 개발부에서 인원과 자금을 더 빌릴 생각이야.
봐! 벌써부터 인원들을 빼가려고 하잖아! 도미니카한테 널 고발하는 수가 있어!
난 이사회가 너희에게 새 어레이와 새벽호를 위한 자금을 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연합 재단에서 자금을 얼마나 더 끌어낼 수 있을지도 문제긴 해. 특히 제3 개발부 쪽은... 이사회와 재단에서 성과 보기를 원해. 첫해, 세 번째 해, 다섯 번째 해에는 사람이 와야 해.
젠장. 난 그 톨리드라는 녀석이 정말 마음에 안 들더라.
입만 살아서... 교회 설교처럼 그럴싸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단 말이야!
그게 바로 정치지.
정치! 이런 건 딱 질색이야!
그럼, 이건 어때?
란다우가 코롤료프에게 보드카 한 잔을 건넸다.
우주 정거장에 가지고 갈래?
아, 그걸 말하는 거라면...
코롤료프는 갑자기 머리를 젖혀 잔에 있는 보드카를 비운 후 란다우가 건넨 병을 받았다.
좀 힘들 것 같아.
선물이야.
하지만 네가 잘 감시해. 슈바르츠실트.
이 녀석은 조금만 방심해도 모두 다 마셔버리는 수가 있거든. 우주 정거장에 정말로 몰래 술을 가져갈지도 몰라.
아, 네. 알겠어요.
그런 적 없어! 설계도를 그릴 때, 99% 맨정신으로 한다고!
그럼, 그 1%일 때는 사무실에 있어선 안 되겠네.
순간, 원탁 사이에서 몇 번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식당 전체에 울려 퍼졌다.
과학 이사회의 구내식당은 절충주의 건축 방식으로 지어진 3층짜리 건물이었다. 오늘날, 이런 건축 양식은 몇백 년 전의 골동품으로 취급됐으며, 소수의 역사 유적지와 새로 지어진 전시관에서만 이런 건축 방식을 사용했다.
현재, 비리야는 통유리 칸막이 밖에 있는 발코니에 서서 밤하늘 아래 우뚝 솟은 하얀 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건 티코급 전파 망원경이야. 하지만 지금은 운행하지 않아.
금발 소녀의 목소리가 비리야의 생각을 끊었다.
안녕, 난 과학 연구 제2 개발부의 발렌티나야.
비리야는 여성의 인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망원경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이 전파 망원경을 세웠을 당시, 이사회는 여기에 단지 지을 생각이 없었대.
그래서 전자파 교란을 고려해서 이사회가 이사 온 후 운행을 중단한 거야.
발렌티나는 비리야가 듣지 않고 있다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발코니 난간에 기대어 말을 이어갔다.
물론, 지금은 제2 개발부의 본부 사무실로만 사용되고, 가끔 아이들이 견학하러 오기도 해. 실제 관측에 쓰이는 전파 망원경 어레이와 간섭망은 저 깊은 산속과 황야의 사막에 있어.
하지만 최근 십여 년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과도하게 개발되면서 많은 지역의 밀집 어레이와 간섭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서, 점진적으로 궤도로 옮길 수밖에 없을 것 같아.
…………
비리야는 발렌티나의 끊임없이 말하는 열정에 조금 난감해하며 식당으로 돌아갈지 고민했다. 하지만 이런 난감함도 이내 발렌티나의 말 속에 묻히고 말았다.
티코급 망원경은 구시대에 남겨진 최대 규모의 망원경이야. 여기서 봐도 정말 크네. 참, 옷차림을 보니 너 구룡 사람이지?
졸업하기 전에 코롤료프 박사님께서 우릴 데리고 너희 천문대를 참관한 적이 있었어! 아직까지도 구룡의 8천 제곱킬로미터 망원 어레이가 전 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천문 관측 어레이라고 들었어!
아...
오! 드디어 말했네. 청력이나 언어 기능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는데.
난 그냥...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그게 그렇게 이해하기 어렵나?
과학 이사회 제3 개발부의... 비리야?
소녀는 비리야의 신분증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란다우 박사님의 학생이었구나. 역시 너도 그분처럼 삽입형을 사용하지 않는구나.
난 란다우의 학생이 아니야. 그리고... 넌 참새처럼 시끄럽다는 거 알아?
그래?
소녀는 비리야의 비꼬는 말투에 신경 쓰지 않고 해맑게 웃었다.
넌... 코롤료프의 학생이야?
맞아.
음...
오호? 너희 둘 여기에 있었구나? 이 골동품을 보고 있었어?
좁은 발코니는 코롤료프의 조금은 통통한 몸이 들어서면서 더욱 좁아졌다.
어때? 란다우가 구룡에서 왔다고 하던데?
그래서 어떻다는 거지?
내일 궤도 플랫폼에 있는 톨레미급 망원경 3대를 납품할 예정인데, 너도 국제 우주 정거장에 구경하러 올래?
비리야는 말없이 손을 휙 흔들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좁은 발코니를 빠져나갔다.
참 개성 있는 친구야.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구룡의 최근 새 지도자가 크게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 망원경들이 언제 완성될지 몰랐을 거야. 그래서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할 생각이었는데...
왜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해요?
몰랐어? 저 친구가 그 구룡 지도자의 동생이야!
"양자 상호작용 신경 네트워크와 강인공지능 프로젝트"는 과학 이사회가 주도하여 전 세계 여러 대학과 연구 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슈퍼컴퓨터 및 인공지능 프로젝트로, "게슈탈트 계획"의 전신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그동안 이것밖에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거야?
탈모 증세가 있는 남자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인물인 것 같았다. 그의 뒤를 따라온 비서 차림의 두 젊은이는 즉시 그의 말에 동조했다.
안녕하십니까? 대서양 경제 공동체 재무부 부장 고든·람슬레이치 님. 새 정장이 당신을 더 빛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개발부의 내외부 온도 차이가 커 불편을 드릴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또한 저희가 준비한 아침 식사를 즐기시면서 초가을의 아침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이거 미리 녹음된 음성이지? 사전에 통보한 적이 없는데...
아닙니다. 부장님. 저는 게슈탈트 계획의 세 번째 그래픽 시각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제3 개발부의 성과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1년 넘게 작업한 결과가 그저 프로그램이 말할 수 있게 한 것뿐인가요?
진정하세요. 고든님.
넥타이를 정리하는 톨리드는 머리 위로 울려 퍼지는 전자음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구룡이 제3 개발부에 투자할 때, 그쪽 이문파에서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네?
저도 몰라요.
엘리베이터가 약간 흔들리더니,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고든. 아무 말도요.
제3 개발부 메인 컴퓨터 실험실 입구에 도착하셨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그들 앞에는 흰 가운을 입은 여러 연구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작업 중이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십여 미터 높이의 유리문이 있었고, 그 안에는 별처럼 반짝이는 푸른 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류가 그 문 뒤에서 흐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톨리드 이사님.
큰 체격의 남자가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톨리드와 여유롭게 악수했다.
란다우 박사님.
이 분이 람슬레이치 부장님인가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방금 비행기에서 내리셔서 피곤하시겠네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란다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들을 엘리베이터 오른쪽에 있는 사무실로 안내했다.
이 사무실은 약 20평방미터의 공간으로, 종이 문서와 계산 유닛, 다양한 하드웨어 유닛과 서로 다른 색상의 라벨이 부착된 파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지난 세기의 낡은 도서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정문 맞은편에는 나무로 된 사무용 책상이 있었고, 그 위에는 많은 파일과 장비가 쌓여 있었다. 하지만, 몇몇 사진 액자를 통해 이 사무실 주인이 완전한 일 중독자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무용 책상 옆에는 빽빽이 적힌 수식과 반복 계산으로 가득한 화이트보드가 있었고, 화이트보드 뒤에는 세 개의 스크린으로 구성된 워크스테이션이 뒤집혀 있었다. 그리고 스크린 뒤에는 천장과 연결된 케이블 관로가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무실이 완전히 투명해서 제3 개발부 중앙의 거대한 서버실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정말 멋진 곳이네요. 단지... 프라이버시는 보장이 안 되겠네요.
이런 시대에 프라이버시를 기대하기는 어렵죠.
농담을 한 란다우는 몸을 돌려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정보의 칼날은 다른 사람을 겨냥할 수도, 저 자신을 겨냥할 수도 있죠.
저희 부서는 개인 컵을 사용하기 때문에, 여러분께는 종이컵을 드리죠.
란다우는 먼저 람슬레이치에게 종이컵을 건넨 후, 이어서 톨리드와 그 뒤에 앉아 있던 두 비서에게 차례로 종이컵을 건넸다.
이 커피는 최고급 카토 원두로,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친 거예요.
설마 직접 재배하신 건가요?
선별부터 완제품까지 모두 제 손을 거친 거예요.
람슬레이치는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그의 뒤에 있는 두 비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커피를 마셨다.
음, 맛이... 이렇게 좋은 원두를 정말 오랜만에 맛보네요. 추출도 훌륭하군요.
이것도 게슈탈트의 기능 중 하나에요.
란다우는 자신의 하얀 도자기 커피잔을 들고 유리문 너머에 있는 계산 어레이를 가리켰다.
씨앗을 재배하고 땅에 심는 것부터, 물량, 일조량, 비료 등의 농업 기술을 전적으로 게슈탈트가 관리하며 로봇 노동자를 통해 처리돼요. 그리고 이 커피 원두의 건조, 처리, 포장 및 시장에서의 배급도 게슈탈트의 계획 경제에 따라 조절되죠.
미래에는 이런 원두를 제가 선별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 게슈탈트가 모든 걸 완성할 테니까요.
음, 이게 바로 정보 시대군요.
아니요. 람슬레이치 님.
란다우는 단호하게 람슬레이치의 말을 끊었다.
이건 미래 시대예요. 그리고 반드시 실현될 미래죠.
그건 잘 알지만...
종이컵을 옆에 있는 거치대에 놓은 람슬레이치는 톨리드를 슬쩍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꿈같은 이야기 아닌가요?
네?
제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만, 10년 안에 전 세계 사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슈퍼 인공지능을 완성한다는 건 너무 빠르지 않나요? 그런 작업은 공상 과학 소설에서도 수십 년은 걸린다고 말하잖아요?
자신감은 중요해요. 란다우 박사님.
음, 그게...
란다우는 람슬레이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조금은 긴장된 모습으로 톨리드를 쳐다보았다.
"게슈탈트 계획" 이전에도, 저희는 강인공지능에 대해 이미 상당한 탐구와 성과를 검증해 왔어요. 이를 바탕으로 "게슈탈트"를 완성하는 데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도미니카 님이 내놓은 예상이에요.
란다우 박사님의 말은 이사회와 수석 도미니카 본인은 이에 대해 충분한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톨리드가 란다우의 말을 이어받았다.
재료학의 폭발과 냉각로 설계를 독자적으로 추진한 이사회로서도, "게슈탈트 계획"은 여전히 전 세계가 협력해야 할 초대형 과제예요. 그래서 이 점에 대해선 이사회가 충분히 고려하고 있어요.
신뢰는 바로 믿음이죠. 고든.
예전에는 이사회가 진짜로 냉각로를 만들 수 있을지 아무도 몰랐잖아요. 안 그런가요?
저희는 그 구조를 완전히 공개했어요.
아, 그러고 보니... 란다우 박사님과 그의 스승인 치올콥스키 님도 첫 번째 냉각로 모형 설계자 중 한 분이셨죠?
다 옛날 얘기예요.
하아...
람슬레이치는 조금은 실망한 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부담이 커요.
제 선거구에는 많은 공장 노동자가 있는데, 앞으로 이 게슈탈트가 가동되면 그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거예요. 그때 가면 저는...
게다가 경제 공동체에서는 이런 슈퍼 AI가 인간 윤리에 어긋난다며 신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보는 여론이 항상 존재해왔어요. 언젠가 그 과학 소설에 나오는 로봇과 인공지능 위기가 현실이 될까 걱정하는 거죠.
아니요. 람슬레이치 님.
란다우는 단호한 눈빛을 하며 말했다.
한 시대에서 다른 한 시대로 넘어갈 때, 반드시 진통과 상처가 따르기 마련이에요.
생산력이 이미 상당히 발전한 이 시대에 게슈탈트라는 날개가 더해지면 인간은 더 멀리 날아갈 수 있어요. 그리고 그땐, 모두가 자신의 흥미와 애정에 따라 원하는 일과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우리는 달뿐만 아니라 화성에까지 우리의 도시를 건설할 수도 있어요. 그때는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데에 아무런 제약이 없겠죠.
그리고... 게슈탈트는 절대 인간을 배신하지 않아요.
뭐라고요?
람슬레이치의 뒤에 있던 두 명의 비서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인간을 배신한다고요?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게 그거 아닌가요? 인공지능이 언젠가는 돌아서서 인류를 공격하고 반항할까 하는 우려, 우리의 지시를 거스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요.
이 부분은 제가 과학 이사회의 이름으로 부장님께 약속드릴 수 있어요.
게슈탈트는 절대 인류를 배신하지 않아요
그리고 게슈탈트가 완성된 후에는 세계 정부의 관할 아래에 들어갈 거예요.
글로벌 조정이 가능한 슈퍼 인공지능보다 세계 정부를 세우는 게 더 어려운 일 아닌가요?
성공할 거예요. 고든.
톨리드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에게 단결할 수 있다는 믿음만 심어 준다면 반드시 연합할 수 있을 거예요.
게슈탈트와 과학 이사회가 바로 그 믿음을 줄 최고의 강심제죠.
그리고 이건 단지 정치적인 효과에 불과해요. 고든. 그 뒤에 숨겨진 엄청난 에너지와 경제적 가치를 상상해 보세요.
음...
람슬레이치가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자, 톨리드는 더 이상 설득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들고 있던 컵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란다우 박사님, 부장님께 마법을 보여 드리죠.
마법이요?
우리가 이성과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볼 때, 신의 기적이나 마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죠.
고개를 끄덕인 란다우가 무전을 들어 몇 마디 하자, 몇 명의 연구원이 여러 케이블이 연결된 작은 카트를 밀면서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게 뭐죠?
상식적으로 설명하자면, "마법"이라고 할 수 있고,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자기 적응형 상황 생성 및 시각적 상호작용 결정 기계 Ⅲ형"이에요. 이미 3세대죠. 보통 우리 부서에서는 "앤톤"이라고 불러요.
이건 게슈탈트의 부산물 중 하나이자, "게슈탈트 계획"의 의사결정 문제를 테스트하는 역할을 해요.
현재 이 시스템은 전 세계 인터넷 정보의 35% 정도만 접속하지만, 모든 주요 학문 분야를 포함하고 있으며,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상태예요. 또한, 3백조 개의 언어 모델 문제를 처리할 수 있어요. 앞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통합할 예정이에요.
이 장치는 부장님을 도와 어떤 문제든 결정을 내릴 수 있어요. "어떤 문제"든지요.
전자음의 작은 울림과 함께 란다우가 카트 위의 장치를 켰다.
이게 핵미사일의 발사 여부도 알려줄 수 있나요?
그건 경제 공동체에서 아직 폐기하지 않은 핵미사일 발사 암호가 얼마나 복잡한가에 달렸어요.
조건이 충족된다면, 부장님의 결정으로 세계를 파멸로 이끌 수도 구할 수도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