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가 있다.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더 자주, 더 오래 생각할수록, 점점 더 새로워지고 점점 더 커지는 경탄과 경외감으로 마음을 채운다.
그것은 내 머리 위에 있는 별로 가득 찬 하늘과 내 마음속에 있는 도덕 법칙이다.
-임마누엘·칸트
이고르·네베르예비치·란다우는 실험실의 기밀문 손잡이를 잡으면서, 문득 20년 전 치올콥스키 교수와 함께 실험실에서 나와 바실리섬의 도로를 따라 산책하던 오후가 떠올랐다.
그날은 말 그대로 "화창한" 날씨였다.
란다우 교수는 제어실의 소형 실험 장치에서 나오는 열이 정화된 냉각수를 타고 네바강으로 흘러가, 바다 깊숙이 사라지던 그날이 생각났다.
심지어 그는 그날 제어실의 회전의자에 씌워진 갈색 인조 가죽, 황록색의 제논등 불빛 아래 속삭이고 있는 학생들과 노동자들, 구속 장치의 경고음 그리고 스크린에 희미하게 비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생각났다.
모든 장면이 타임랩스 영상처럼 그의 시간을 그날 오후부터 밤까지 길게 늘려 주는 것만 같았다.
지금 그가 머물고 있는 이 도시는 그가 속해 있던 도시와 마찬가지로 강이 구불구불하게 지나가며, 상류에서 떠밀려 온 토사가 이곳에 쌓여 비옥한 평야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도시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건 밤이 되어도 도시 중심에서 수많은 별을 볼 수 있다는 거였다.
란다우가 별이 가득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자, 손가락 사이로 별빛이 반짝이며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닿은 채, 아직 떨어지지 않은 술과 뒤섞여 약한 빛을 발산했다.
저 별들은 수백, 수천 년 동안 우주를 여행한 끝에... 지구에 도착한 거야.
저기 저 별 보이지? 저쪽 방향에 있는 게 아마 아크투루스일 거야. 우리와 대략 40광년 정도 떨어져 있지.
40광년이라... 처녀자리의 다이아몬드...
란다우는 멀고 오래된 별빛을 붙잡고 있던 손을 거두고, 병에 남은 술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는 크게 트림을 한 후, 옆에 있던 연구원을 향해 활짝 웃었다.
대도시의 빛 공해가 없으니 별 보기에는 정말 좋은 곳이야.
여긴 연구를 목적으로 한 위성 도시라 사람이 살지 않아. 사실 이곳은 그냥 넓은 황야나 다름없지.
당시 상회에서 이곳에 과학원을 세우기로 했을 때, 이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에게 상당한 수준의 이주금과 정착금을 줬다고 들었어. 이문 쪽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때 마련한 준비금은 새로운 LHC를 만들 만큼 충분했다고 하더라고.
이주 보상금만으로도 한 가족이 어느 도시에서든 편히 지낼 수 있을 정도였고, 땅을 사서 집 짓고 살 만큼까지도 됐었대.
하, 그런데 난 여기 땅값도 그렇게 비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당연하지. 사람들도 다 떠났고, 건물도 다 부쉈는데, 비싸고 뭐고 할 게 있나?
음... 근데 저 연구소 건물은 아직 남아 있네?
그건 우리만 남아서 그래.
몇십 광년 떨어진 별에서도 우리처럼 이렇게 술 마시며 별을 보고, 집값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럴지도 모르지. 우리는 천문학자가 아니니, 이런 건 확실할 수 없잖아.
꺼억...
난간에 기대고 있던 연구원이 길게 트림을 했고, 그것은 황량한 벌판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들렸다.
짐은 다 챙겼어?
어. 며칠 전에 다 챙겨놨지. 연구소에 개인 파일만 조금 남아있어.
계약 관련해서 더 이야기해 보진 않았고?
자네도 알잖아.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란다우는 빈 술병에서 술을 좀 더 따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다 마셨네.
과학 이사회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인원이 부족해서 연구소와 재계약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정말이야?
란다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선은 여전히 손에 든 빈 술병에 머무르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연구소에서는 널 내보내고 싶지 않은 것 같던데.
어쩔 수 없잖아. 그리고 다른 방법도 없고.
깊게 한숨을 내쉰 란다우가 술병을 쓰레기통에 던진 다음 다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뇌와 같아.
뭐?
별하늘 말이야.
……
사실 난 알고리즘 엔지니어를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자넨 이 분야 최고잖아.
돌이켜보면, 대학교 때 천문 동호회에 가입해서 우주 정거장을 견학할 기회까지 얻었었어.
상상할 수 있겠나? 백여 년 전만 해도 하늘에 떠 있는 수십억 개의 별을 담은 지도를 그리는 데 십여 년이 걸렸어.
하지만 지금은 은하계 수천억 개의 항성 위치를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관측 가능한 우주 내에서 맨눈으론 볼 수 없는 항성까지도 수조 개의 수량을 확인했지.
언젠가 우리도 그 별들을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럴지도.
란다우는 하늘을 향해 뻗었던 손을 거뒀다. 하지만 다른 한 손은 아쉬운 듯 버린 술병을 다시 손에 쥐고 싶어 했다.
우주와 비교하면, 우리는 정말 작고, 약하고, 하찮은 존재야.
하지만 우리는... 140억 년의 우주 역사에서 과학의 불빛을 들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존재지.
그 말이 끝나자, 황량한 들판에 두 사람의 깊은 한숨이 울려 퍼졌다.
란다우가 지하 실험실로 가는 기밀문의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 누군가가 자신을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로 밀어 넣으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과의 작별 인사를 한 뒤 오후의 습한 손이 그의 심장을 꽉 움켜쥐는 듯했다.
그는 기밀문의 은백색 문손잡이를 잡고 있는 자신의 손에 맺힌 땀과 알코올의 흔적이, 2년 전 돌아가신 치올콥스키 교수님을 애도할 시간조차 없었던 침묵과 뒤섞여 타향의 밤하늘로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오늘이 지나고 나면... 다시는 여기에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야.
그렇게 슬퍼할 필요 없어. 분명 다시 돌아올 기회가 있을 거야.
소장님도 말했잖아. 이 자리는 언제나 자넬 위해 남겨두겠다고. 구룡의 문은 언제나 자네에게 열려 있을 거야.
미소를 지었던 그는 술기운을 빌려 기밀문을 열었다. 우주의 횃불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고, 두 사람은 아이들이 쌓은 블록 성으로 사라지듯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란다우는 이후로 다시는 구룡에 돌아올 기회도, 바실리 섬의 햇살을 볼 기회도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과학 이사회
본부 빌딩
과학 이사회, 본부 빌딩.
거대한 건물 아래 서 있는 란다우는 영원히 타오르는 촛불 같은 거대한 석상이 무너져 내리며 자신을 산산조각 내는 그 환희의 순간을 수없이 상상했었다.
그렇게 된다면, 머릿속을 괴롭히는 수많은 문제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단 한 마디의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상상일 뿐이었다. 란다우는 자신이 그 위대한 불꽃을 든 인물들의 대열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과학 이사회의 웅장한 고층 건물 앞에는 판테온의 돔과 비슷한 외관을 가진 거대한 부조 벽이 있었다.
우윳빛의 깨끗하고 단정한 토스카나식 돌기둥 7개가 연한 황색의 삼각형 현관 아치를 받치고 있었고, 그 위에 이 부조 벽이 있었다. 그리고 뒤로는 과학 이사회의 주요 건물을 상징하는 청회색 돔이 있었다.
이 부조는 언제고 무너질 것 같이 사람들 머리 위에 떠 있는 위태로운 벽처럼 보였다. 이는 그들 시대의 새로운 "아테네 학원"이었다.
부조 벽의 왼쪽 하단에는 통통하고 연미복을 입은 배비지가 계단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발치에는 매우 정교한 원통형 기계가 놓여 있었으며, 그 안에는 무수한 톱니바퀴와 레버가 들어 있었다. 그건 바로 미분기의 원형이었다.
배비지는 일부러 단단하게 다려진 셔츠 옷깃을 한 손으로 잡아당기고, 다른 한 손으로 연산지를 흔들었다. 그리고 옆에 작은 모자를 쓴 다빈치와 무엇인가를 논쟁하면서 뒤에 있는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 옆에는 라부아지에가 혼자 앉아 있었다. 그의 옷차림은 오른쪽 끝에 있는 통통한 신사보다 더러웠고, 셔츠의 앞쪽과 어깨 부분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는 매우 긴장한 표정으로 초조하게 자신의 목덜미를 매만졌고, 다른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뒤에는 파인만, 페르미와 논쟁 중인 폰 노이만이 있었고, 그들의 왼쪽에 있는 튜링이 손에 든 천공 종이테이프를 하늘의 광원에 비춰보고 있었다.
이 모든 건 그 석벽의 일부에 불과했다. 멀리에는 오일러와 뉴턴, 보어와 디락, 아인슈타인과 플랑크, 가우스와 바이어가 있었다.
위대한 학자들 중앙에는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있었고, 그 위에는 인간 문명의 수많은 과학 성과들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위태로운 부조 벽 아래 홀로 서 있는 란다우는 서류 가방을 손에 들고는 그 오색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과학 이사회 사람들은 왜 조각에 새겨 넣지 않았을까?
어디선가 젊고 중성적이면서 조금은 경멸적인 목소리가 란다우 옆에서 들려왔다.
그 사람은 구룡식 긴 옷을 입고 있는 동양인이었다. 그리고 란다우와 마찬가지로 혼자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황금시대에 우리는 그냥 과학이라는 빌딩에 벽돌을 쌓은 사람일 뿐이야. 벽돌을 쌓은 사람은 자신을 새길 자격이 없어.
흥, 별거 아니네.
사실 다른 이유도 있어. 그건 아무도 자신의 업적이 그분들과 동등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야.
란다우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구룡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란다우.
비리야.
비리야는 잠시 주저하더니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란다우와 악수를 나눈 뒤, 곧바로 손을 뺐다.
넌... 구룡 사람이야? 구룡어를 상당히 능숙하게 사용하네.
그렇다고 할 순 없지.
그래서 과학 이사회가 여기야? 난 무슨 박물관인 줄 알았어.
여긴 과학 이사회의 본관이야. 이 뒤에 있는 단지 전체를 과학 이사회가 소유하고 있어.
도시 하나 정도는 될 거야.
이런 곳에 있었다니...
음? 넌 여기 참관하러 온 거야?
아니. 일하러 왔어.
고개를 저은 비리야는 란다우에 대한 조금의 존중도 보여주지 않고, 과학 이사회 로비의 긴 계단을 혼자 올라갔다.
아, 요즘 젊은이들은 참...
란다우는 돌 조각 중앙에서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는 색유리 창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본 뒤,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넓고도 차가운 대리석 위를 차례로 걸었다.
이 넓고 광활한 로비의 위에는 약 50미터 높이의 돔이 있었다. 육안으로는 어떤 광원도 보이지 않았지만, 로비 전체는 항상 하늘색 차가운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작은 공중 공간에서는 소형 운송기와 궤도 차량들이 질서정연하게 공중에서 가로지르며, 설정된 경로에 따라 벽에 있는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그 아래에선 다양한 인종과 외모의 사람들이 동일한 복장을 입고 로비 안을 바쁘게 움직였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낮은 소리로 논쟁하거나, 생각에 잠긴 채, 바쁘게 걸어가기도 했다.
이 생각의 큰 흐름 가운데에는 푸른 행성의 조각상이 있었다. 그 조각상 아래, 투명한 유리가 둥글게 둘러싸여 원형의 안내데스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란다우는 곧바로 로비 중앙의 안내데스크로 걸어가, 유리창 너머 하얀 복장을 입은 소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 역시 따뜻한 미소로 화답해 줬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고르·란다우라고 합니다. 출근 수속하러 왔어요.
란다우 박사님 맞으세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유리창 너머의 소녀는 한 차례 파동과 함께 사라졌다가, 이내 작은 섬광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환영합니다. 란다우 박사님.
박사님의 기존 계약 절차와 이사회 본부 관련 파일들은 모두 처리되었습니다. 필요한 파일과 고유 신분 식별 표식은 나중에 조수가 가져다 드릴 겁니다. 삽입형 식별 표식은 필요 없으신 건가요?
네.
알겠습니다. 박사님께서 부재인 동안 저희 이사회는 사무실을 그대로 유지해 두었습니다. 제3 개발부로 옮겨드릴까요?
부탁드릴게요.
네. 처리되었습니다. 약 3분 후 사무실 모듈이 제3 개발부로 이전될 것입니다.
고마워요.
란다우가 말을 마치자, 둥둥 떠다니는 마름모 십이면체 형태의 로봇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공중에 떠 있는 소형 로봇의 앞면에는 로봇의 아날로그적 표정을 즉각적으로 보여주는 간단한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주황색과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로봇은 과학 이사회의 연한 파란색 천막과는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_^
알았어. 42... 알겠어.
알겠다고.
란다우는 로봇의 스크린을 문지른 뒤, 로봇 몸에 있던 단말기, 종이 파일 및 작은 작업 명찰을 손에 쥐었다.
박사님께서 자리를 비우신 동안, 이사회의 여러 부서의 구조와 지리적 위치가 조정되었습니다. 설명이 필요하십니까?
괜찮아요. 이 로봇이 길을 안내해 줄 거예요.
알겠습니다. 도와드릴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란다우 박사님. 업무가 잘 되시길 바랍니다.
둥근 유리 스크린에 있던 안내원은 환한 미소를 짓고는 사라졌다.
란다우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안내데스크 앞에서 구룡 출신 소년이 안내원과 무언가 논쟁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거리가 좀 있어서 그들의 대화는 정확히 들을 수 없었다.
?_?
저쪽으로 가보자.
란다우는 공중에 떠 있는 꼬마 로봇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구룡 출신 소년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 있나요?
이 분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구룡의 담당자와 협의 중입니다.
흥, 건방지게...
어?
일반적으로 특수 증명이 없는 한, 이사회의 핵심 연구 허가를 받으려면 최소 23세 이상이어야 합니다.
여기선 나이가 과학의 기준이 되나 보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 때문에 온 거지?
게슈탈트 계획.
이 말을 들은 란다우의 눈에는 반가운 빛이 번졌다.
음, 란다우 박사님...
괜찮아요. 구룡 쪽 담당자와 조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바로 특수 증명으로 처리해 주세요.
네!?
제3 개발부 쪽이라면, 저에게 어느 정도 권한이 있지 않나요?
물론입니다.
파일이 어디 있죠? 제가 사인할게요.
대리석 카운터의 유리 스크린에 파일이 나타나자, 란다우는 잠깐 훑어보고는 곧바로 사인했다.
이럼, 된 거죠?
절차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보안 부서로 가셔서 고유 신분 식별 표식을 받으시면 됩니다.
42, 네가 대신 가줘.
!_!
란다우의 곁에 있던 꼬마 로봇이 즉시 선회하며 떠올라, 공중의 운송 대오에 합류했다.
고마워.
소년은 입에서 세 글자를 어렵게 내뱉었다. 그에게는 이런 간단한 감사 표현이 백여 년 동안 닫혀 있던 도서관을 여는 것 같았다.
별거 아니야. 그나저나 나이가 정확히 어떻게 돼?
17세
정말 천재 소년이구나!
이제 막 알게 된 사이였지만, 란다우는 아버지가 아이를 대하듯 비리야의 어깨를 살짝 감싸안았다.
…………
괜찮아. 생물학적 나이는 생각의 장애물이 되지 않잖아. 그렇지?
과학 이사회의 과학자들은 좀 더 진지할 줄 알았는데...
물론이지!
^_^
란다우 곁으로 금세 돌아온 42는 조금 전처럼 작은 카드를 가지고 왔다.
자, 받아. 그리고 삽입형도 있는데, 그게 더 편하면 언제든 보안 부서에 가서 피부 아래에 삽입할 수 있는 걸로 교체하면 돼.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과학 이사회의 특기인가?
O_o
그럼, 안내원님? 서류 처리 잘 부탁해요.
문제없습니다.
자, 이제 모든 게 완료됐어.
비리야? 매력적인 이름이네. 어? 너의 얼굴을 보고... 일반 구룡 사람들과 같을 줄 알았는데...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물론이지. 그건 각자의 권리니까.
고개를 끄덕인 란다우는 공중에 떠 있는 42를 향해 손을 흔든 뒤, 비리야에게 42를 따라가자고 손짓했다.
응?
가자. 이 작은 친구가 우리를 안내해 줄 거야. 여기서 제3 개발부까지는 거리가 꽤 되거든.
잠깐, 난 제3 개발부가 뭔지 몰라.
게슈탈트 계획에 참여하러 온 거 아니야?
제3 개발부가 게슈탈트를 탄생시키려는 곳이야.
넌 누구야?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왜 따라가야 해?
나? 이고르 혹은 란다우라고 불러. 아니면 네 기분대로 부르던가.
하지만 제3 개발부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 "부장"이라고 불러.
비리야가 구룡 지하 개발 계획에 초대를 받았을 때, 눈앞에 놓인 파일에 선명하게 찍힌 노르만 광업 그룹의 표식을 보고, 여러 해 전 이 회사를 본 적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저기 베어 먹다 만 도넛 모양 같은 건물 보여?
완전 투명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란다우는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독특한 형태의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바로 제1 개발부의 첨단 동력 설계국 사무동이야. 원래는 대형 스텔러레이터로 사용되기 위해 지어졌는데, 나중에 장치를 철거하고 제1 개발부의 사무동으로 사용하게 된 거야.
하지만 제1 개발부는 지금 이곳에 없어.
비리야의 눈에는 이 거대한 지하 도시가 비치고 있었고, 란다우의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웅장한 지하 도시에서는 어떤 설명도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반복적으로 교차하는 가지들이 차갑고 투명한 강철 하늘에서 아래로 뻗어, 하나의 거대한 신경망을 이룬 상태에서 각종 펄스 신호를 전송하고 있었다.
이 하늘 아래에서 지상보다 훨씬 더 거대한 지하 도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강력한 미래주의와 이미 "고전"으로 불리는 바우하우스 건축주의가 융합되어 장대한 이성의 도시를 만들어냈다.
이 도시뿐만 아니라, 침체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과학 이사회의 건축 개념에서 비롯된 비전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비리야와 란다우는 이 도시의 공중에서 궤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외에도, 건축 재료와 실험 기기를 가득 실은 로봇들이 오가고 있었다. 2미터 크기의 이러한 통합형 수송기는 현재 가장 흔한 운송 및 건축 프린팅 로봇으로, 이 로봇들에도 동일한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노르만 광업 그룹.
지난 세기부터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해 온 이 글로벌 대기업은 채광, 강철, 건설 및 로봇 등 여러 중공업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고, 다수의 하청업체와 유통업체를 소유하고 있다.
지하 500미터 깊이에 완전한 돔을 포함한 1300만 입방미터에 달하는 연구용 지하 도시를 건설하는 일은 공사나 자원 배치면에서 노르만 광업 그룹 정도는 되어야 감당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이 도시 엄청 크네.
이건 과학 이사회의 일부분에 불과해.
란다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홀로그램 패널을 능숙하게 조작했다.
여기는 제1 개발부와 제3 개발부의 연구 기지야. 제2 개발부의 연구소는 우주 방사능 신호를 차단하기 위해 남쪽 산악 지대에 더 깊숙이 자리하고 있지만 여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작아.
건설에 돈을 쓰는 것에 관한 한 제2 개발부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지만, 그 모든 것에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
아, 아직 잘 모르는구나?
일반적으로 과학 이사회에서는 제1 개발부와 제2 개발부는 상시로 운영해. 제1 개발부는 거의 모든 자연 과학 분야를 포함하고 있어. 때로는 세계 정부의 요구에 따라 사회 과학 연구 분야를 증설하기도 해.
제2 개발부는 주로 은하계 탐색, 첨단 추진 동력, 천문 물리학 같은 분야를 맡고 있어. 공학 분야에 좀 더 치우쳐 있다 보니 예산도 더 많이 받아.
게다가 이 시대를 초월한 몇몇 것들도 제2 개발부에서 맡고 있어.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꼭 그런 기회가 생길 거야. 이사회의 예산 또는 결산 회의에 참석해 보는 것도 재밌을 거야. 제1 개발부와 제2 개발부가 예산 문제를 놓고 다투는 모습이 꽤 재밌거든.
내가 과학 이사회를 처음 들어보는 원시인도 아니고, 그 정도는 알고 있어.
단지... 제3 개발부가 있다는 걸 몰랐을 뿐이야.
그래서 과학 이사회는 일반적으로 두 개의 개발부만 상시 운영한다고 말한 거야.
이사회는 특수한 시기에만 다른 개발부를 설립해 임무를 수행하거든. 필요하다면 제3 개발부뿐만 아니라 4부, 5부, 6부, 7부, 8부도 설립할 수 있어.
최근은... 얼마 전에 증설한 제4 개발부인데, 지금도 빅터 교수가 이끌고 있을 거야.
잠시 망설인 란다우는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결국 말을 이어갔다.
알고 있겠지만, 그건 전쟁 기계나 무기 장비 같은 것들과 관련된 거야.
그리고 제3 개발부의 목적은 하나뿐이야. 그 목적을 달성하면, 제3 개발부도 제4 개발부처럼 필요에 따라 해체될 거야.
그게 바로 네가 여기에 오게 된 목적인 게슈탈트 계획이야.
로유! 하하하...
란다우가 연구실 문 앞에 서 있는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마른 남자를 꽉 껴안았다. 체격만 봐도 란다우는 그를 쉽게 부러뜨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속적인 수면 부족은 로유의 눈가에 진한 다크서클을 만들어냈다. 란다우와 비교하자면, 로유야말로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맞는 과학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켁... 이고르... 내 어깨가...
어? 아직도 아파? 그러게 내가 13동에 가보라고 했잖아.
거긴 불치병을 치료하는 곳이잖아. 난 좀 피곤한 것뿐이라고. 쿨럭.
로유를 풀어준 란다우의 얼굴은 여전히 재회의 기쁨으로 가득했다.
벌써 3년이나 흘렀네. 어때? 너도 여기로 옮긴 거야?
어. 주로 신경 역동학 쪽과 관련된 거야. 의식 생성과 자가 진화 논리 트리도 우리가 맡고 있어.
아, 또 너무 많은 걸 말했네.
조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로유가 셔츠로 안경을 닦았다.
흠, 그럼, 우리 쪽 일이겠네.
모두 다 왔나?
다 모였어.
그런데 넌 왜 들어가지 않고 있어? 가자.
난 사람 많은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 에휴, 알았어. 가자.
란다우는 비리야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큰 유리문 앞에 섰다. 그의 눈에서 붉은빛이 잠깐 반짝였고, 그들은 함께 그 문 너머의 세계로 들어갔다.
환영합니다. 이고르·네베르예비치·란다우 박사님, 로유 원사님, 비리야 님.
과학 이사회 내 다른 연구 부서와 마찬가지로, 제3 개발부도 깨끗하면서 조금은 서늘한 느낌을 주었다.
짙은 파란색과 순백색이 여전히 이곳의 주된 색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푸른 하늘과 바다 사이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강철의 장막이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그것은 거대한 연산 유닛들이었다.
란다우와 로유가 들어오자, 원래 단말기를 조작하던 연구원들이 하나둘 그들을 둘러쌌고, 로유도 자연스럽게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
란다우 박사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어. 그래.
출장 나간 이후로 벌써 5년이나 흘렀네.
저기... 우리 부서의 일에 대해 말 좀 해줄래?
아. 그렇지.
로유의 말에 란다우는 자신의 가슴에 붙어 있는 명찰의 의미를 되새겼다.
과학 이사회 제3 개발부 부장.
그럼, 내가... 몇 마디 할게.
다들 제3 개발부에 관한 설명서를 받았을 거야.
란다우는 말하면서 파일철을 가방에서 꺼낸 뒤, 사람들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우리 제3 개발부는 "게슈탈트 계획"의 모든 연구를 맡게 될 것이고, 모든 연구 내용은 당연히 최고 기밀이야.
음... 이런 이유로 이사회가 설명서를 종이로 출력했어.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터졌고, 란다우도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런 뒤, 파일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게슈탈트 계획"의 최종 목적은 가까운 미래에 전 세계의 공공사무를 총괄 관리하고 계획하며 학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 기초 과학 발전에 협력할 수 있는 적응형, 자체 순환, 자체 학습형의 범용 인공지능을 완성하는 거야.
이런 작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
우리는 신을 만든 사람들이 될 거예요.
한 연구원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맞아.
마찬가지로, 이런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잘 알고 있을 거라 믿어.
이 "멀티박"이 무슨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아직 잘 몰라. 아마도 지금이 아닌 후세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하지만 이 "멀티박"을 완성하는 무거운 책임은 우리가 함께 짊어질 거야.
좋아. 쓸데없는 말은 생략하고, 각자의 직책과 업무 내용을 파일로 작성해서 전달해뒀어.
란다우는 손에 든 파일을 다시 한번 흔들었다.
질문 있으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 사람도 다 모였고, 자원도 준비됐으니까 내일부터 시작하자.
고개를 끄덕인 란도우는 앞에 있는 수백 명의 침묵하는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삼삼오오 이야기하다가 흩어졌다.
란다우는 그중 짙은 녹색 머리를 한 구룡 청년을 한눈에 발견했다. 그는 망설이는 듯 자기 파일을 반복해서 읽고 있었다.
란다우는 서류 가방을 옆에 있던 로봇에게 줬다. 전자 스크린만 있는 로봇은 서류 가방을 들고 공중에서 떠올라 그의 책상으로 날아갔다.
음? 젊은이, 무슨 문제라도 있나?
음... 별거 아니야.
방금 전 란다우에게 무례하게 군 비리야는 자신이 란다우의 밑에서 일해야 하는 이 상황에 민망함을 느꼈다.
경력을 보니 대단하던데? 16살에 구룡 중앙대학교에서 물리 기술과 박사학위를 받고, 17살에 과학 이사회에 들어왔어. 여기서 네가 가장 젊은 학자일 거야.
그게 무슨 문제라도 돼?
당연히 아니지. 우린 네가 어리다고 어린애로 대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우리는 생물학적 나이로 사람의 진정한 "나이"를 판단하지 않아.
궁금한 게 있는 것 같던데, 맞지?
비리야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이 들고 있는 파일을 펼쳤다.
"게슈탈트 다중 코어 구조 총괄. 인지 모델 구조 중앙 제어실".
그게 왜?
됐어. 그냥 말하지 않을래.
네 이력을 보면 인공지능, 수리 논리 판단, 기계 공학 제작에 엄청난 조예를 갖고 있는 것 같던데.
내가 말했잖아. 이 무거운 책임은 우리가 함께 짊어질 거라고.
이론에서 검증으로, 검증에서 성공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는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우주와 진리는 아직 멀리 있지만, 넌 젊잖아.
란다우가 비리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란다우에 비하면 비리야는 정말 어린애 같아 보였다.
우리 둘 그리고 로유 박사, 레보비츠 박사까지 모두 함께 코어 구조 중앙 제어실을 맡게 될 거야.
레보비츠... 들어본 적 있어.
당연히 들어봤겠지. 그는 양자 컴퓨팅 분야에서 아주 유명하니까. 너도 그의 교재를 읽어봤을 거 같은데.
자, 우리 함께 해보자.
곧 코어 구조 회의가 시작될 거야. 첫 번째 회의 때, 수석 기술관 도미니카 님도 참석할 거야.
비리야는 제3 개발부의 거대한 강철 돔을 올려다보며 쌀쌀함을 느꼈다.
한때 천재로 칭송받던 비리야도 이 거장들 앞에서는 그저 작은 별빛일 뿐이었다.
이 강철의 장막에서 수많은 별빛과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선율을 충실하게 울리며 거대한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강철의 하늘 아래서 인간의 지혜는 차갑고 고요한 우주와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