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
육교항구 남부 지역 주민 거주지
11월 9일, 17:24.
마씨는 북쪽 12번가에 있는 허씨네 가게에 그의 8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잔치를 모레로 예약해 뒀다.
허씨네 가게는 그리 크진 않지만, 팔선 식탁에 일곱, 여덟 요리는 놓을 수 있었다.
마씨는 야항선에서 내려온 친구들과 몇 년 만에 돌아온 옛 친구들을 초대할 생각이었다. 두 식탁 정도는 가득 채울 수 있는 정도라 충분히 시끌벅적한 광경이 펼쳐질 것이었다.
술은 빠질 수 없지만 너무 비쌌다. 그래도 내일 곡물을 파는 허 사장에게 더 사와야 했다. 술이 있다고 해도, 옛 친구들에게 짠지와 함께 술만 마시게 할 수는 없으니, 허씨에게 요리를 좀 더 준비해 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너무 초라해서는 안 되지. 몇 가지 찬 음식과 따뜻한 음식으로 준비해야 해.
내일 지출을 계산하면서 주머니에 있는 청부를 만지작거린 마씨는 집 앞 돌의자에 앉아 여러 번 물을 타서 이미 색이 빠진 차를 마시고 있었다.
3일 후에도 마씨는 여전히 마씨로서 자연스럽게 80세 생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마씨는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늘 밑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꽃에 물 주고 새에게 먹이를 주는 편안한 노인이 아니었다. 손녀가 매일 출근하다 보니 집안의 모든 사소한 일이 그의 책임이었다.
마씨는 아직 정정해서, 이런 일을 즐겼다. 그 스스로 말하길, 자신은 한가로이 있지 못하고 집 안 구석구석까지 먼지 하나 없게 정리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마씨 할아버지, 왜 마당에 앉아 계시지 않으세요?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문에서 나와 마씨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난 여기서 햇볕을 좀 쬐다가 산책할 거거든.
약 드시는 거 잊지 마세요.
그래. 고맙구나.
흰 가운을 입은 여자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웃으면서 골목을 빠져나갔다.
마씨는 서쪽 곁채에 사는 소우를 무척 좋아했다. 야항선에서 자라온 이 아이는 여러 번의 혼란을 피해 결국 이곳에 정착하여 남항구 지역의 의료센터 의사가 되었다.
마씨는 손녀한테서 소우의 의술이 뛰어나 공중 정원에서도 그녀를 데려가고 싶어한다고 들었다.
공중 정원... 흥.
마씨가 소우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녀가 구룡을 떠나 공중 정원으로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마씨도 손녀에게 전해 들은 것일 뿐이지만, 그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소우의 기개를 높이 평가했다.
본채에 살고 있는 고가와 달리, 소우네 세식구는 소우가 밖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소우의 남편은 두꺼운 안경을 쓴 병약한 젊은이로, 성은 호씨이다. 매일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학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저런 일을 누가 하나 싶은데, 시나 글 같은 걸 써서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들의 아이는 여섯 살로 정말 귀엽게 자랐다. 항상 마당에서 뛰어다니거나 동쪽 곁채 문 앞에 다가와 마씨에게 같이 놀자고 하곤 했다. 또는, 마씨가 마당 담벼락에서 뜯어온 호랑이 꼬리를 들고 나비와 잠자리를 쫓아다니곤 했다.
그런데 본채에 사는 고 사장은 호씨처럼 안경을 쓴 사람이었으나, 그 부부는 항상 집을 비웠다. 집안 형편이 그런대로 여유로워 먹고 사는 걱정이 없어서, 아이를 낳아 키울 법도 하지만 마씨는 아직 그들의 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마씨는 손녀에게 빨리 결혼하라고 자주 재촉했다. 그냥 아무나 대충이라도 만나보라고 할 정도였다. 마씨의 체면이나 배경을 생각한다면, 손녀가 조금 더 나이를 먹어도 손자사위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씨는 주머니 속 청부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거두고, 깎지 않은 수염을 문지르면서, 증손자나 증손녀를 품에 안는 날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씨가 손녀에게 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손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슬그머니 피해 가곤 했다. 가끔 마씨가 너무 재촉할 때면, 크게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나이도 어린 십대 녀석이... 어휴, 아빠를 닮아서 그런가...
한숨 쉰 마씨가 물처럼 싱거워진 차를 단숨에 들이킨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따뜻한 정오의 햇살이 노인의 얼굴을 비추자, 일부러 기른 턱수염이 목뒤의 상처까지는 가리지 못했다. 노인은 기지개를 켜고 골목 안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야항선이 항구 밖에 정박한 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옛구룡성을 키운 큰 강줄기는 북서쪽 산악지대에서 구룡으로 흘러 들어가, 성안에 있는 강심섬에 의해 두 갈래로 나뉘었다. 그중 한 갈래는 남동쪽으로 흘러가 구룡성 남동쪽 산악지대를 지나 바다로 들어갔고, 나머지 한 갈래는 구성의 서문인 육교문을 통해 직접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남동쪽 하구는 항구 건설에 불리하고 상업 항로와도 너무 멀었기 때문에, 구룡성 서쪽 하구가 구룡의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직선으로 뻗은 중축선 육교문이 바깥으로 뻗어 나왔고, 중축대로가 육교항구를 남북 두 항구 지역으로 나눴다.
북항구 지역은 구룡의 육상 화물 운송하는 간선과 더 가까워서 주로 본토의 상업 주문을 주로 처리했다. 하지만 예외적인 점은 북항구 지역이 아딜레 산업 연맹의 철도 궤도와 가까웠기 때문에 구룡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아딜레 상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북항구 지역의 구룡 상인들과 능숙한 구룡어로 협상을 하며, 수백 년 전부터 사용하던 계산 문자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들의 언어와 문화가 구룡과는 크게 달랐지만,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구룡의 방법을 익혀야 했다.
화물이 북항구에서 남항구로 해상 운송되어야 하는 경우, 지하에 설계된 빠른 화물 운송 궤도를 통해 남항구로 보내졌다. 그래서 북항구의 주요 도로마다 구시대 "지하철"과 같은 시설이 있었지만, 승객운송은 하지 않았다.
패하 제복을 입은 관리자에게 설명하면 안심하고 화물을 맡길 수 있었다. 화물은 짐꾼이 특별한 코일이 장착된 궤도 컨테이너에 적재하면, 북항구의 어떤 화물도 몇 분 안에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남항구 부두로 빠르게 운송됐다.
북항구가 많은 궤도 교통을 보유하고 있어서 "구시대"의 느낌을 준다면, 남항구는 완전히 미래형 항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남항구 지역 전체는 진정한 의미의 자동화를 완성한 상태였다. 이문과 패하의 통합 관리 아래 상업 운송이 질서 정연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단말기에 주문만 입력하면 구룡이 모든 화물 인도를 전담해, 다양한 크기의 자동 로봇이 화물을 운반했다.
셔틀과 화물 운송 로봇들이 남항구의 복잡한 고가도로와 공중을 교차하며 거대한 컨테이너들이 철근 콘크리트의 숲을 지나갔다. 그리고 그 화물들의 종착지는 구룡의 명칭이 새겨진 거대한 화물선이었다.
완전 자동화가 실현됐음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원양 화물선은 황금시대 이전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장의 지휘 아래 출항해서 바다에 나가면, 선장이 최고의 권한을 행사했고, 배와 생사를 함께했다.
수많은 원양 항로가 끊임없이 뛰는 심장을 이루면서 구룡과 그 찬란한 세계를 연결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이 원양 화물선이 다른 이름으로 알려지게 됐다. 바로 야항선이다.
마씨는 당연히 이런 것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이때 마씨는 자갈이 깔려 먼지가 자욱한 도로를 지나 두 골목 너머에 있는 북쪽 12번가의 옛 동료 집에 놀러 가고 있었다.
청회색, 연한 파란색, 벽돌색의 각기 다른 색들이 조합된 단층집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지붕 위를 나무 기둥에 얽힌 전선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것이 꼭 사는 사람들의 개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예전 북항구 지역의 다양한 건축 재료가 사용됐기 때문이었다.
이 "다채로운" 집들을 지나니, 석양이 중축대로에 높이 솟은 여과탑을 비추고 있었다. 이 새로 지어진 여과탑 옆에는 절반쯤 잘려 보이는 더 큰 냉각탑이 있었다.
냉각탑은 죽은 거인처럼 콘크리트 색 바위로 변해, 새롭게 건설된 얇은 여과탑 옆에 서 있었다.
그렇게 죽은 거인과 새로 태어난 것이 북쪽 12번가의 복잡한 길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허씨네 골목은 사실 마씨의 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허씨가 운영하는 식당 덕분에 여기저기 오가는 장사꾼들이 자주 찾아와 물건을 팔았고, 한때는 꽤나 북적였었다.
마씨가 합판으로 만든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예전에 귀를 때리던 소음도 많이 잦아든 상태였다.
어? 오셨어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마씨를 본 앞치마를 두른 허씨가 큰 오동나무 아래에 앉아서 손을 흔들며 그를 불렀다. 옆에 앉은 다른 노인들보다 허씨는 더 건강해 보였고, 실제로도 더 젊었다.
둘러앉아 있던 몇몇 노인들이 각자 의자를 조금씩 옮겨 마씨가 앉을 자리를 내어주었다.
뭐 하고 있었나?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허 사장 아들 얘기하고 있었지.
마씨 맞은편에서 어깨를 기울이고 앉아 있던 마르고 키 큰 노인이 대화를 이어받았다. 그는 말하면서 천천히 손에 쥔 해바라기씨를 까고 있었다.
그는 마씨와는 어느 정도 목숨도 같이 나눈 사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한 친구였다.
허 사장 아들? 또 무슨 일이야?
죽었대.
죽었다고?
마씨가 오기 전에 이미 말하고 있던 이야기였겠지만, 그 말이 나오자 네 명의 오래된 친구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야?
며칠 전 쌀 사러 갔을 때, 그 가게 문 앞에서 아들 봤었단 말이야.
우리 마누라가 그러는데, 그 아들이 쌀 탈곡기 안에 들어가서 점검하는데 허 사장이 지켜보질 않았나 봐.
그러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그다음은 네가 들은 그대로야.
문철은 손에 쥔 해바라기씨를 천천히 까고 있었다. 생과 사가 그에게 그리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안타깝구먼.
그러고 보니, 허 사장의 나이가 허씨보다 그렇게 많이 어리지 않잖아?
음... 제가 올해 예순하나니까요? 보방! 보방?
목소리를 높인 허씨가 마당 반대편을 향해 외쳤다.
왜?
나 올해 예순하나, 맞지?
맞아. 왜?
됐어!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 자네 나이도 나보다 어린데, 어떻게 기억력이 나보다 안 좋나?
그걸 기억력이 안 좋은 거라 할 수 있나? 부인이 무서워서 그러는 거지!
마씨 옆에 앉아 있던 또 다른 노인이 왼쪽 눈을 부자연스럽게 굴리더니 곧 반대쪽 머리를 두드렸다. 그러자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다가 자리를 잡자, 주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만해. 사야. 너 나중에라도 새로 바꾸는 게 어때? 아니면 내 집으로 가져와 봐. 소우가 분명 고쳐줄 거야.
소용없어.
아이고, 형님 무슨 말씀이세요?
소용없어.
봐봐. 이 영감탱이 진짜 고집이 세다니까. 그러니 지금도 혼자 살지.
커다란 오동나무 아래에서 풀무질 소리 같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사야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직 쓸 만하잖아.
야! 허씨!
마당 반대쪽 합판 문 너머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른 여자가 나와 나무 아래 있는 허씨에게 주걱을 흔들며 소리쳤다.
밥이 다 됐어! 딴짓하지 마!
알았어. 알았어. 간다. 가.
허씨는 입맛을 다시며 손에 쥐고 있던 해바라기씨를 나무 아래 작은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앞치마로 손을 닦았다.
그럼, 전 일하러 갈게요.
잊지 마. 모레 오후야.
다 기억하고 있어.
아. 맞다. 어떤 요리를 올릴지 얘기해야 하는데... 내일 다시 얘기하자!
고개를 끄덕인 허씨가 웃음을 지으며 나무 아래에서 급히 달려 나간 뒤, 뜨거운 김이 나오는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방금 그 여자가 들고 있던 주걱을 받아들었다.
봐, 부인 무서워한다니까!
보방이 없으면 허씨네 식당도 운영하기 힘들지. 혼자서는 절대 이런 가게 못해.
사야, 그 일은 어떻게 됐어?
차 한 모금을 마신 문철이 손에 쥐고 있던 해바라기씨 껍데기를 작은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 위로 던졌다.
사야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파일 문제 말이야?
그래.
외지에서 파견됐던 그 해에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파일이 그냥 사라졌나 봐.
그래도 뭐, 살아는 가겠지.
너야 그런대로 지낼 수 있겠지만, 애들은 어떻게 해?
침을 꿀꺽 삼킨 사야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차도 마시지 않았다.
원래 받아야 하는 보조금인데, 어떻게 네 것만 빠질 수가 있냐고?
지금이 밥도 못 먹는 시절도 아닌데, 어떻게 퇴직 보조금이 모자라?
사야는 손을 크게 흔들며 더 이상의 대화는 하고 싶지 않아 했다.
내 아들은 아직 버틸 수 있어.
아...
띠... 띠... 띠...
오동나무에 걸려 있던 색이 바랜 단말기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띠... 띠... 띠...
주의, 주의... 야항선 대표 위원회에서 알려드립니다. 모든 주민은 질서 있게 귀가하신 뒤, 추후 공지를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주의, 주의... 야항선 대표 위원회에서 알려드립니다. 모든 주민은 질서 있게 귀가하신 뒤, 추후 공지를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마당에 걸려 있던 단말기뿐만 아니라, 거주지에 있는 크고 작은 단말기들이 이 특별 공지를 반복해서 방송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또 생겼나 보네.
이런, 여기 막 왔는데 또 돌아가야 하다니, 참...
마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사야는?
가야지.
일단 돌아가고, 내일 다시 얘기하자.
허씨? 허씨...
문철은 방금 허씨가 들어갔던 주방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그의 노련하지만 힘찬 목소리는 반복되는 경보 속에서도 유난히 명확하게 들렸다.
알겠어요.
하지만 문 뒤에서 허씨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경보 해제되면 다시 얘기하자.
문철도 마씨를 따라 일어섰지만, 갑작스러운 어지러움이 그를 덮쳤다.
다행히 문철이 비틀거리며 넘어지기 전에, 투박하고 지문이 닳아 없어져가는 노인성 반점 가득한 손이 문철의 어깨를 세차게 잡아주었다.
조심해.
고마워. 사야.
고개를 끄덕인 문철이 사야의 부축을 받으며, 마씨와 함께 문까지 나섰다.
주의, 주의... 야항선 대표 위원회에서 알려드립니다.
사야, 허씨랑 둘이 조심해.
알았어.
너희 둘은 집에 갈 수 있겠어? 길이 혼잡할 텐데.
익숙해서 괜찮아.
사야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씨와 문철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경보에 따라 귀가하는 인파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흰머리의 나이 든 노동자는 문에 걸려 있던 나무막대를 치우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무거운 대문을 꽉 닫은 뒤, "딸깍" 소리를 내며 잠갔다.
형님!
그때 허씨가 주방에서 뛰어나와 사야와 함께 마당 문을 정리했다.
마씨 형님이랑 문철 형님은 돌아갔나요?
어. 다 돌아갔어.
알겠어요. 그럼... 애들은요? 그리고 왕 형님은요?
애들도 다 잇어.
서쪽 곁채 문가에 있던 아이들이 사야의 시선을 느끼자 우르르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는지 몰래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하루 종일 뛰어놀더니, 지금은 또 다 있네.
선계는 공장에 있으라고 하자. 무슨 일이 있으면 그쪽에서 챙겨줄 거야.
네. 좀 이따 본채의 왕 선생님 돌아오시면 식당 쪽으로 들어오시게 하면 되겠네요.
허씨는 이야기하며 사야의 손에서 문빗장을 받아 다시 마당 문에 걸쳤다.
이게 무슨 소용이야.
그냥 마음의 위안이죠.
이번이 처음도 아니잖아.
허씨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증기가 피어오르는 주방으로 뛰어갔다.
사야도 더 이상 말없이 자신이 머무는 작은 서쪽 곁채의 문으로 걸어갔다.
음...
자, 다들 방으로 들어가.
사야는 병아리들을 둥지로 돌려보내는 어미처럼 노련한 날개를 휘둘렀다.
겁내지 말렴. 하늘이 무너질 일은 없을 거야.
병아리들이 둥지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사야는 안심하며 큰 걸음으로 마당 문으로 향했다.
허씨!
네!
문 닫아!
네??
방금 주방으로 들어갔던 허씨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으나, 사야의 모습을 마당에서 볼 수 없었다.
나 공장 쪽에 다녀올게.
아이들 잘 보고 있어.
북쪽 12번가를 돌아 집으로 돌아온 마씨는 드물게 급히 귀가하는 고씨네 가족을 마당에서 봤다. 이 중요한 시점에 그들 부부는 서쪽 곁채의 소우네 가족과 뭔가를 의논하고 있는 듯 보였다.
마씨 할아버지, 돌아오셨네요.
평소와 달리 마씨와 거의 대화가 없던 고 사장이 마당 문에서 서둘러 마씨를 안으로 들였다. 고 사장뿐만 아니라 소우와 호씨도 조금은 초조한 듯 보였다.
무슨 일로 여기 모여 있나?
야항선에서 긴급 방송으로 사람들을 집에 머물게 하면서 중요한 공지가 있을 거라고 하잖아요.
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흔한 일이잖아? 예전엔 사흘에 한번 꼴로 긴급 방송을 하고 했으니까, 그 덕에 귀가 다 닳을 뻔했지만.
마씨 할아버지, 혹시 다른 소식은 못 들으셨나요?
고 사장 옆에 단정하게 서 있는 여자는 고 사장의 부인이었다.
나? 아니. 무슨 일이야?
방금 야항선에서 방송하기 전에 의료센터에서 소문이 돌았어요.
조풍님과 포뢰님께서 공중 정원과 잘 협상하셔서 우리 모두가 정화 구역으로 이사하게 되었다고 해요.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
방금 노르만 광산에서 일하는 친구도 똑같은 얘기를 해줬어요. 정화 구역으로 가면 퍼니싱 같은 건 없을 거래요. 그건 정말 "정화"된 곳이니까요.
공장이랑 같이 옮겨가면 안전도 보장될 거 같은데...
헛소리야.
마씨는 냉소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바다에서 그렇게 오래 떠돌다 겨우 집으로 돌아왔는데, 또 가족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라고? 어떻게 그걸 그리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
그렇게 능력 있다면, 왜 공중 정원으로 바로 가서 사는 걸 제안하지 않았지?
나도 이 일이 그렇게 가능성 있어 보이지 않아. 어쩌면 소문이 와전된 걸 수도 있어.
그래서... 마씨 할아버지, 정말로 다른 소문은 들은 거 없으세요?
고 사장 눈에는 뭔가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었고, 마씨 할아버지도 그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알아챘다.
너 혹시 지실 말하는 거니?
네. 이건 포뢰파 쪽 얘기가 더 확실하니까요.
네가 나한테 그렇게 물으니... 나도 잘 모르겠구나.
포뢰님께서 요 며칠 안 보이셨잖아. 다른 포뢰파 사람들도 거의 반달 동안 집에 못 들어가고 계속 교대 근무하고 있잖아.
그렇군요.
어쨌든 이런 쓸데없는 얘기들은 그만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
하지만 마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급한 노크 소리가 그의 말을 끊었다.
누구야? 진짜...
마침 몸이 허약한 호씨가 문에 기대고 있었는데, 문빗장을 내리자마자 들어오는 소녀와 부딪히고 말았다.
헉... 지실?
긴급 상황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