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정원
과학 이사회 2부
11월 9일, 13:17, 청문회 2시간 전
지휘관이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아시모프는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가 끝까지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두형"이라 자칭하는 구룡 출신의 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아시모프가 보고서를 다 읽을 수 있도록 두라는 신호를 보냈다.
지휘관은 200여 페이지에 이르는 기술 세부사항과 통계 수치들로 가득 찬 보고서를 대략적으로만 살펴볼 수 있었으며, 이 내용이 아시모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그의 얼굴에 이미 나타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아시모프는 습관적으로 테이블에 놓인 커피잔을 들었다. 하지만 평소처럼 차분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 보고서를 누가 준 거지?
오랜 친구라고 말해도 될까요? 아니. 그렇게 부를 수는 없지만... 저는 그에게 이 보고서의 출처를 비밀로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럼, 이 보고서를 본 다른 사람은 있나?
몇몇만 알고 있어요.
미치광이 해커들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놀랍지 않지.
저기, 보이시나?
잘 보인다. 그리고 이 데이터들도 아주 잘 보여.
화서, 로봇, 북아시아 생명 과학과 진화 연구소... 완전히 뒤죽박죽이네.
분명 이 해커들은 화서가 만든 만세명을 모방하려는 것 같아. 게다가 북아시아 연구소에서 뇌 과학 관련 기술도 훔쳤어.
하지만 그들은 비리야의 일부 기술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화서 같은 것을 다시 만들 수는 없어. 그러니 만세명도 창조할 수 없어.
모두 빌려온 것들이라, 그들은 세상을 바꿀 만한 기술을 창조할 방법이 없어.
하지만 이것도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지.
미치광이들의 작품일 뿐이야. 만세명 같은 이야기를 믿는 건가?
내가 믿는 건 중요하지 않아.
그럼... 우리의 협상카드로서, 잘 살아남길 바라.
왜 그 데이터를 남겨뒀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게 우리의 거래에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라.
난 이 데이터들이 내 최후의 카드로 필요하고, 나에게도 네가 원하는 정보가 있다. 우린 단지 서로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을 뿐이야.
늘 정치가가 싫다고 하면서, 결국 정치가의 방식으로 새로운 계산을 하는군. 밸러드?
목적만 이루면 돼.
군인에게 어울리는 방식이네.
겨울 요새... 흥, 내용 확인했다.
궁금하긴 하네. 왜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거지?
세계 정부에 남아있던 너의 예전 파일을 본 적이 있어. 그 비밀 파일들... 너의 말과 행동으로 봐선 이런 비인간적인 것들에 관심을 가질 것 같지는 않은데.
내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더러운 기술은 혐오스럽지만, 정보와 지식은 곧 힘과 권력이 되지.
그 외에 일은 넌 알 필요 없어.
좋아. 그럼, 이제 내가 원하는 걸 받을 차례야.
...
주저하는 게 파일에 기록된 네 성격과 다르네?
혹시 네가 나를 배신하지는 않을까 생각 중이야.
너를 배신하는 조건이 공중 정원을 뒤흔들 비밀이라면, 그건 너무 손해지.
이 보고서는 내가 안전 정보국에서 일할 때부터 준비해왔던 거지만, 내 목표는 그보다 더 중요해.
세계 연합 정부 안전 정보국의 수법을 들은 적이 있어.
하지만 보다시피 난 공중 정원에서는 구룡 출신이라는 이유로, 구룡에서는 정부 의원이라는 이유로 배척받고 있어. 그래서 가족도 없고, 자식도 없지.
이런 것쯤은 이미 다 알아봤겠지?
이 보고서가 네 손에서 제대로 쓰였으면 좋겠군.
공중 정원 내부의 여론과 민의를 조성할 수 있다면, 내 일도 수월해질 거야.
물론이지. 밸러드
이건 협력이니까.
정보원과 저를 제외하면, 여기 계시는 두 분밖에 없어요.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시죠.
다른 건 차치하고, 이 보고서가 뭘 의미하는지 알아?
거짓말이야. 몇십 년에 걸친 거대한 거짓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과 문명을 이롭게 하는 기술들이 전부 거짓말로 덮여 있었어.
아시모프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다시 테이블에 어색하게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떨고 있었다.
아시모프는 방금 언급한 수격자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고, 심지어 하는 말도 논리 없이 뒤죽박죽이었다. 아시모프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해 보면,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 고마워.
지휘관이 아시모프의 팔을 잡아주자,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와 충격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시모프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두형과 지휘관을 바라보다가, 결국 그 두꺼운 보고서로 시선을 돌렸다.
이 보고서는 과학 이사회가 게슈탈트 계획을 시작한 시점부터 마지막 대철수까지의 모든 프로젝트 개요와 분기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쉽게 말해, 이 보고서는 일종의 목차... 아니지. 목차보다는 계통수에 더 가까워.
마치 우리가 아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사실상 계통수의 일부인 것처럼 말이야.
겨울 요새, 겨울 계획과 크틸라 계획, 의식의 바다, 역원 장치와 탄탈 공중합체 그리고 화서, 만세명은 물론, 이사회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은 돌연변이 구조체 계획까지... 아니. 그뿐만이 아니야.
공중 정원이라는 이민함을 포함한 은하계 탐색 방안, 자료를 전혀 찾을 수 없는 "로봇 의식 실험" 그리고 나조차 들어본 적 없는 수많은 세부 기술들이 포함되어 있어.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모든 것의 "분기"와 "잎사귀"인 셈이야.
몇몇 특정 기술과 연도로 지정된 지점에서 어떤 기술과 사건들이 이전 분기로부터 분리되어 "잎"이 되는 거지.
아시모프는 그렇게 말하면서 테이블 위에 있는 보고서를 넘겼다.
여기를 봐. "과학 이사회 연구 윤리 위원회의 비인도적 인체 실험에 대한 내부 통지"라는 부분 말이야.
"과학 이사회 윤리 위원회와 과학 이사회가 합의한 내용을 기반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과학 이사회는 비인도적 인체 실험을 반대합니다. 이는 인간 문명의 진화와 수천 년에 걸친 과학 윤리에 기반한 인도적인 결정입니다.
어떠한 단체, 조직, 기관, 개인도 강제적이든 비강제적이든,
과학 이사회의 허가 없이 생체 또는 비생체 관련 실험에 자연인이 참여하도록 요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실험을 진행하는 관련 과학 연구원은 과학 이사회의 인증을 박탈당하고 제명될 것이며,
과학 이사회는 이러한 실험을 금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위의 합의에 따라, 인류 도덕의 기준을 심각하게 위반한 비인도적 실험을
무단으로 진행한 것에 대해 버나드 고드윈 박사를 제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일관되게 세계 연합 정부가 사형수의 관련 실험 참여 허가에 대해 보류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외부에는 공개된 적이 없는 내부 통지서야.
지금 보니, 이 내부 파일은 과학 이사회가 세계 연합 정부의 악명 높은 사형수에 대한 인체 실험 법안을 반대했음을 상징하는 것이었어.
구룡 지역에서 비인도적인 인체 의식 실험이 한 번 일어난 적이 있었어. 그 사건 당시에 이사회가 비슷하게 공개적으로 비난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이 통지가 작성된 날짜보다 훨씬 이후의 일이었지.
구룡의 인체 의식 실험이라면, 의식의 바다와 인공지능 기술을 도용한 부희 연구소 사건 말씀이신가요?
맞아.
그 사건은 제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이미 결론이 났던 걸로 기억해요. 곡 님께서 과학 이사회와 연합하여 직접 처리하셨죠.
맞아. 과학 이사회 기록에 따르면, 그 연합 재판은 상당한 부정적 여론을 불러일으켰지. 난 그전까지 과학 이사회가 그런 실험을 내부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줄 몰랐어.
하지만 이 통지가 겨울 계획과 크틸라 계획의 맨 앞에 표시되어 있고, 그 연합 재판보다 훨씬 이전에 작성된 거야.
맞아.
처음엔 이해가 안 됐어. 과학 이사회가 겨울 계획의 존재를 몰랐을 리가 없는데, 그 시대의 이사회가 가진 정신으로는 이런 기생충을 내버려둘 이유가 없잖아.
지금 보니... 젠장.
이 통지가 바로 겨울 계획과 같은 비인간적 실험의 시발점이었어.
과학 이사회에서 제명된다는 건 가장 심한 처벌이야. 과학 이사회의 인증이 박탈되면 어떤 과학 연구원도 합법적인 경로로 자금이나 지원을 받을 수 없고, 동료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되지. 그렇게 과학자로서의 자존심을 잃게 돼.
뭔가 고대 중세 시대의 종교적 처벌 같네요.
어쩌면 비슷할지도 몰라.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지.
적어도 그때부터 과학 이사회는 그 더러운 기생충들을 인식했고, 그것을 제거하려고 했어. 다만 제거된 벌레들은 또 다른 썩은 고기를 찾아내서 기생했을 뿐이야.
지휘관을 바라본 아시모프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쿠로노를 말하는 건가요?
그래.
아시모프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앞에 놓인 것이 200여 페이지의 보고서가 아닌 수많은 도덕적 범죄자를 마주하는 듯했다.
자료를 교차 검증하다 보면, 쿠로노가 고용한 과학 연구원들 중 절반은 당시 과학 이사회에서 제명된 연구원들이었어. 적어도 내 기억 속 이름들은 그래.
마치 나무와 같아. 그것들은 이 지점에서 뻗어 나온 더 굵은 "분기" 중 하나일 뿐이야.
예를 들어, 이 굵은 나뭇가지 옆에는 공중 정원의 이사회 데이터베이스에 전혀 기록되지 않은 "로봇 의식 실험"이 있어.
"실험 일지. 총 08221번째...
MPA-01이 오늘 나에게 로봇이 "영혼"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솔직히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영혼"이라는 것은 초자연적 현상으로, 그 자체는 아직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또한,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미지의 로봇에 대해 "영혼이 있는가?"를 판단할 수 없다.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완전히 탐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봇 의식"이 정말로 존재하거나 자발적으로 생겨날 수 있다면,
로봇도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자신의 몸에 흐르는 것을 "영혼"이라고 생각할까?
어쨌든, MPA-01이든지 MPL-00이든지, 난 미래로 가는 올바른 열쇠라고 믿는다.
제3 개발부에서 갈라져 나온 우리 노인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힉스 보손은 이론에서 증명까지 48년, 블랙홀은 54년, 중력파는 1세기가 걸렸다.
이 문제가 지금 당장 해결되지 않더라도, 우리의 후배들이, 그리고 그들의 후배들이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다."
맞아. 지금 보니 그 자의식을 가진 로봇들도 과학 이사회에서 나온 것 같아. 이 보고서에 언급된 로봇 모델들이 굉장히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겠어.
이 로봇들을 원천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가진 문명과 로봇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야 할 수도 있어. 어쩌면 그 로봇들도 벌써 상당한 규모의 조직을 이뤘을지도 모르겠군.
지금 필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요.
두형이 다소 거칠게 아시모프의 생각을 가로막았다.
지금 필요한 건 이 모든 것의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건데, 이 보고서의 정보를 우리는 이해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아시모프 님이라면 분명히 알 수 있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거예요.
아시모프는 불쾌한 듯 보고서를 덮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명백히...
아시모프의 말을 다시 끊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player name].
처음에는 이걸로 공중 정원 의회에서 구룡 지원 계획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려는 협상 카드로 사용할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다른 협상 카드가 생겼네요. 제 생각에는... 공중 정원에 있는 누군가는 정치가들보다 이 보고서에 훨씬 더 관심을 가질 것 같아요.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님 그리고 과학 이사회의 수석 기술관님. 인간이 여기까지 오게 한 그 시대의 진실이 무엇인지 혹시 알고 싶지 않으신가요?
맞아요. 정치는 원래 깨끗한 게 아니죠. 저도 제가 얼마나 정직한 사람인지 확신이 없어요. 어쩌면 정치는 제 마음속의 정직함을 다 씻어내 버렸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치는 순수한 과학이나 전투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낼 수 있는 거예요. 이 세상은 결코 흑과 백으로만 나뉘어 있지 않아요.
두형은 미소 지으며, 도박 테이블의 칩을 가운데에서 지휘관과 아시모프의 앞쪽으로 밀어놓았다.
이 보고서를 당신들에게 넘기죠. 대신 두 가지 조건이 있어요.
첫째, 진실을 밝혀주세요. 이건 감사원에서 구룡에 대해 시작한 특별 조사와 관련이 있고, 저는 야항선이 이 조사에서 통과하게 해야 해요.
직감으로는 이 보고서가 감사원이 행동하는 이유는 아니지만, 출발점과는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둘째, 이 보고서를 외부에 공개할 생각이라면, 물론 그렇게 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당신들이 모든 것을 확실히 한 후에 대중에게 알렸으면 해요. 사람들은 이 역사를 알 권리가 있어요.
네. 그게 다예요.
믿지 않아도 돼요. 지금 세상엔 저를 믿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사실을 믿잖아요.
어차피 당신과 아시모프 님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거 아닌가요?
(어떻게 된 일이야?)
아시모프는 지휘관에게 의문스런 시선을 보냈지만, 곧 두형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겨울 계획을 말하는 거군.
세상에.
눈앞의 구룡 여성이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비유에요. 비유. 이해 못 하신 거예요?
...
이 보고서가 공개되면, 그 영향은 엄청날 거야.
의회뿐 아니라, 과학 이사회와 군부까지도 대중의 신뢰를 잃을 수 있어. 그리고 사람들의 구조체, 로봇, 승격자에 대한 태도도 예측할 수 없게 변할 거야.
이건 공중 정원 전체의 여론을 폭발시킬 수 있는 핵폭탄 같은 거야. 난 이미 그 순간 의회의 모든 비난을 마주하는 상황까지 상상이 돼.
두터운 보고서에 손을 얹은 아시모프는 과거 기록에서 신 앞에 맹세하는 성직자 같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을 끊어낼 용기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상처 아래 썩은 부분을 도려내지 않는다면, 인간과 우리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어.
사람들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어.
두 분 동의하시는 건가요?
지휘관을 본 아시모프는 서로의 의도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건을 받아들이지.
그럼, 시작하죠.
두형의 시선이 보고서에 손을 얹은 아시모프에게로 향했고, 그는 두터운 "역사서"를 다시 넘기기 시작했다.
황금시대 이전의 과학 이사회는 전 세계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느슨한 무국적 조직에 불과했어. 그 시절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확인할 방법도 없지.
당시 인간은 역사의 반복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역사의 한 "침체기"를 겪고 있었지. 자연과학은 정체됐고, 사회과학의 지침도 부족했어. 거기에 대리인 전쟁에서 비롯된 세계 대전까지...
진정한 "암흑 시대"였어. 인간은 제한된 미래 속에서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
그 시절 이사회의 초기 조직은 중세 종교 조직과 비슷했지만, 사람들을 모으는 신념은 신앙이 아닌 과학과 진보였어.
이후 몇몇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민간용 냉핵융합 기술이 확대되었고 "재료학의 폭발" 시기가 있었을 때, 도미니카가 느슨했던 과학자 단체를 통합해서 지금의 "과학 이사회"로 만들었지.
결국 과학의 불꽃이 그 늪 같은 시대를 다시 밝혀주었고, 새로운 용광로를 피워 황금 같은 인간성의 희망과 무한한 미래를 만들어낸 거야.
그 이후는 너희도 알겠지. 모든 게 급격히 발전한 시대는 공중 정원의 교과서에도 기록되어 있으니까.
예전에는 구조체 기술이 없었다면, 인간 문명은 끝났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빛나는 시대 아래에는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었고, 그게 가장 핵심적인 것이었어.
이 보고서가 나에게 이 거대한 계통수의 "뿌리"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걸 구축한 "기점"이라는 것을 일깨워줬어. 그런데 이 보고서에서는 "뿌리"와 관련된 모든 정보가 의도적으로 "빠져" 있었어.
이렇게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처리된 핵심이자 "뿌리"가 바로 게슈탈트야.
"게슈탈트 계획"은 그 당시 전 세계 자연과학부터 사회과학까지 모든 엘리트를 모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야심찬 초대형 프로젝트였어. 단 1년의 예산만으로 작은 우주 함대를 완성시킬 만큼 방대했지.
심지어 공중 정원 하나쯤은 완전히 날려버릴 수도 있었어.
아니.
공중 정원 열 개를 날려버린다 해도 아깝지 않았어. 필요한 조건만 갖춘다면 언제든지 새로 만들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게슈탈트만큼은 절대 잃어서는 안 돼.
구조체의 작동을 판단해, 역원 장치에 패러다임을 전송하며, 공중 정원의 생명 유지 시스템과 비행 자세를 제어할 수 있어. 게다가 엔진 층의 서른여섯 개의 냉핵융합로와 우주 무기를 제어하고, 이론적으로는 퍼니싱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할 수도 있지.
그것은 무한한 만능 블랙박스 같아.
현재 기술로는 게슈탈트의 절반만 들여다볼 수 있을 뿐이지만, 그 절반의 기능만으로 현재 우리 생존의 전부가 되어 버렸어.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게슈탈트에는 아직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 상당히 많아.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블랙박스"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해.
맞아.
겨울 계획, 크틸라 계획, 그리고 구조체와 의식의 바다 기술 자체, 화서 등등은 모두 "게슈탈트 계획"이라는 "뿌리"에서 자라난 잎사귀와 나무줄기에 불과해.
다만 그 위대한 계획이 실행되던 당시, 인간의 도덕성이 지금처럼 타락하지는 않았던 거지.
마치 그 시절의 모든 게 옳았던 것처럼 확신하시는 것 같네요.
...
아시모프는 말없이 보고서 표지 위에 있는 "과학 이사회"의 로고 아래, 여섯 가지 언어로 서명된 같은 이름을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도미니카.
그 시대가 정말로 그리운 이유는 질서와 번영, 평화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진취적인 정신 때문이야.
어쨌든, 이 보고서의 관점에서 본다면 문제의 핵심은 게슈탈트에 있는 것 같아.
게슈탈트 자체에도 아직 모르는 게 많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맞아. 그리고 이 부분은 의회도 알고 있어.
대이동 시기에 게슈탈트의 중요 설명 파일들을 많이 잃어버렸어. 그리고 게슈탈트 자체의 제한도 있어서 내가 방금 말한 것처럼, 우리가 지금 "사용할 수 있는" 게슈탈트는 황금시대의 절반밖에 되지 않아.
아시모프는 고개를 저었다.
사용할 수 없거나 아니면 올바른 접근 방법을 찾지 못한 걸 수도 있어.
하지만 "유토피아" 사건 이후, 게슈탈트 안에서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파일 기록을 억지로 찾아냈어.
아시모프는 말하면서 손에 있는 전용 단말기를 열어 사진 하나를 불러냈다.
그 사진 파일은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된 종이 문서였다. 상단 중앙에는 과학 이사회의 로고가 찍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짙은 파란색 잉크로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 있었다.
"구룡은 ■■■ 박사를 소환하여 과학 이사회 제3 개발부의 관리자로 즉시 임명한다."
특이한 점은 이 파일이 명령서처럼 보이면서도 명령을 내린 자가 없었고, 가장 중요한 이름 부분도 검정색으로 칠해져 있다는 점이었다.
구룡이요?
다시 봐봐.
아시모프는 다시 테이블 위의 보고서를 연 뒤, 방금 전 읽었던 실험 일지를 가리켰다.
"어쨌든, MPA-01이든지 MPL-00이든지, 난 미래로 가는 올바른 열쇠라고 믿는다.
제3 개발부에서 갈라져 나온 우리 노인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현재 제1 개발부와 제2 개발부처럼, 과학 이사회의 산하 소속 연구 부서였어요.
게슈탈트 개발 초기에는 과학 이사회 내부에 제3개발부가 존재했지만, 개발이 끝난 후 이 부서는 해체 및 분리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됐죠.
아시모프는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걸 어디서 알았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두형은 아시모프의 손에서 보고서를 가져가 실험 일지의 시간을 가리키며 이어서 말했다.
만약 이 실험 일지가 "제3 개발부에서 나온" 연구원이 작성한 것이라면, 그땐 이미 제3 개발부는 해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이 시기는 게슈탈트 개발 이후로도 상당히 늦은 시기에 해당하니까요.
과학 이사회는 특정 목표를 위한 특별 개발부를 세우고 임무가 끝나면 즉시 해체하는 관행이 있기는 해.
그 제3 개발부는 아마 당시 과학 이사회에서 게슈탈트를 개발하기 위해 특별히 설립한 부서일지도 몰라.
업무가 겹치지 않았기 때문이야.
상설된 제1 개발부와 제2 개발부는 명확히 구분되어 있어. 적어도 황금시대 이후로, 제1 개발부는 이론과 기초 과학을 중점으로 하고, 제2 개발부는 천체물리와 항성 공학 같은 내용을 더 중점으로 다루고 있어.
제1 개발부와 제2 개발부만으로는 게슈탈트와 같이 모든 인간의 지식 체계를 아우르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맡기엔 금방 한계가 올 거야.
확실하지는 않지만... "게슈탈트 계획"은 아마 새로운 생긴 제3 개발부가 담당했을 거야.
결론 내릴 수는 없지만, 그건 꽤 강력한 증거가 될 거야.
지금으로선 불분명해.
게다가 그 학자의 이름조차 지금은 미궁이니까.
...
지휘관과 아시모프의 시선이 두형에게 향했을 때, 그녀의 깊게 패인 눈 속에서 더 깊은 의문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생각 하시는지 알아요.
혹시 비리야를 말하는 건가요?
비리야의 지능이라면 이런 슈퍼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을 정도는 맞아요. 실제 비리야는 구룡 중앙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냈어요.
그럼에도, 비리야가 제3 개발부의 관리자일 가능성은 낮아요.
임무 보고서에서만 [player name]이(가) 그 이름을 언급한 걸 들은 적이 있어.
능력으로 보자면, 화서의 설계자는 분명 게슈탈트의 일을 맡을 수 있을 거야.
그런가요? 그렇게 본다면, 비리야는 공중 정원을 추락시킬 뻔한 원흉이 될 수도 있었겠네요.
최근 게슈탈트가 몇 년 전처럼 정체불명의 외부 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감사원도 아마 이 점을 이용해 일을 추진할 것 같아요.
정말... 아픈 데를 꼭 짚고 넘어가는구나.
지난번 화서가 게슈탈트에 침입했을 때는 특징 코드를 남겼어. 그리고 최근 외부 공격에 관해서는 의회에서 분명히 말했지만, 아직 화서라고 판단할 수는 없어.
두형은 깊이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현재 화서의 행방은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첫 번째 조건에 대해... 만약 감사원이 게슈탈트를 조사 중이라면, 조심하셔야 할 거예요.
감사원의 손길과 에너지는 두 분의 수석과 보통 의원 하나로는 막기 어렵죠.
그리고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이 일이 정치가 좌지우지하도록 놔두지 않겠어.
안 돼요.
오늘 청문회에서 의회가 이 구룡 관련 의안을 통과시킬 거예요.
그 후, 외교원이 군과 협조하여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차징 팔콘 소대를 야항선과 구룡 순환 도시의 군사 지원 대표로 지정할 거예요.
두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항상 이런 식이야. 숨기고 가리기만 하지. 정말 더럽기 짝이 없어.
두 번째 조건이네요.
아시모프 님만이 공중 정원에서 이 일을 해결하실 수 있어요.
아시모프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비리야와 그 구룡 연구원의 일은 제가 다시 한번 조사해 볼게요.
다른 방법이 없을 경우, 만세명의 도움을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 수격자가 아직 살아있나!?
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버려서, "구룡의 주인"의 마지막 기억을 머릿속에서 찾아내는 데 한참 걸렸다.
생명은 시들고, 로봇도 언젠가 고장이 날 거야.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니까, 그래서 난 가치 있는 걸 보존해야만 해. 지구의 모든 걸 이 구룡에 집약시키는 거지.
지구의 불꽃이 사라지고, 모든 게 어둠에 빠졌을 때, 이곳은 빛과 열을 발산하며, 길고 긴 세월을 건너온 탐방자들에게 길잡이 될 거야.
그래서 이곳에 온 그들에게 "인간"이 여기에 존재했었다는 흔적을 보게 할 거야. 마치 공룡이 화석을 남긴 것처럼, 구룡은 "만세명"을 남기는 거지.
그러니까 모든 투쟁은 허망한 거야. 아름답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지구를 지배했던 종족으로서의 올바른 자세인 거지.
이번 전쟁을 겪고 나서야 깨닫게 됐어. "만세명"을 완성하려면 누군가가 이 세계를 진정으로 끝내야 한다는 걸 말이야.
처음에 여기 온 이유는 어떤 승격자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는데, 뭐, 괜찮아.
지구의 종말은 이미 결정된 결말이니까, 누가 먼저 기반이 되는지는 상관없는 문제야.
너희의 "역사"를 여기서 종지부를 찍어줄게.
전쟁, 새 출발, 그리고 작별에 관련된 기억...
루시아가 처음으로 아우 기체를 사용했을 때였지.
당연히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만세명"도 계속 진행되고 있어요.
"만세명 계획"은 이 보고서에도 언급돼 있어. "생물체의 생리, 의식 데이터를 모두 기록하고 전 지구의 정보를 통합하여 완전하고도 일치된 문명 데이터 환경을 구축하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말한다 해도 틀린 건 아니죠. 지구 문명을 저장하기 위한 데이터화 계획인 건 사실이니까요. 이론적으로는 "만세명"으로 또 다른 지구를 복제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세계에서는... 어떤 생명도 존재할 수 없어.
만세명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건 무덤이야!
지휘관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낀 가죽 장갑을 팽팽히 당기며, 그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대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곡의 일은 마지막에 해야 한다고 말한 거예요.
곡을 대신해 지휘관님과 루시아에게 사과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구룡은 여러분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은 보장할 수 있어요.
구룡, 곡, 만세명 모두 너무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모든 이유를 여기서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머지않은 시점에 직접 곡에게서 이 모든 것을 알게 되실 거예요.
두형이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생 정치에 몸담았기에, 위선과 거짓말은 제 일상이 되어버렸죠. 하지만 때로는 진실이 너무나 허약하여 수많은 거짓말로 보호해야 할 때가 있어요.
여러분이 저를 인정해 주길 기대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어떻게든, 이 진실을... 반드시 적당한 때에 모두에게 공개해 주세요.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거야.
곡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은 비밀로 지켜주세요. 지금 밝히게 되면 의회에서 혼란이 일어날 거예요.
두형이 탁자 쪽으로 마른 손을 내밀었다.
지휘관은 잠시 망설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형의 손을 맞잡았다.
이제야 같은 배에 탄 신세가 된 건가?
아니요.
제 목숨은 구룡이라는 배 위에 있어요. 생사와 관계없이 항상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