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국가에 깊은 애정을 갖게 하려면,
먼저 그 나라의 과거 역사에 대해 깊이 이해시켜야 한다.
-전목 <국사대강>
공중 정원
세계 연합 정부의 의회 회의장
11월 9일, 오후 3시 51분
구룡의 내부 사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공중 정원이 당신들과 협상할 이유는 없습니다.
특히, 화서와 그 수격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건 말입니다!
의원은 백 년 전 "의회"에서 종이가 날리던 모습을 연상시키듯 손에 든 파일을 휘둘렀다.
제 손에 있는 보고서는 과학 이사회가 제출한 겁니다. 최근 3개월 동안 게슈탈트 중추가 외부로부터 악의적인 네트워크 공격을 받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지난번 화서가 우리한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여기 계신 분들은 모를 리 없으실 겁니다.
의회의 토론 소리는 원형의 의회 회의장을 따라 계단식으로 퍼져 내려갔다. 그리고 무거운 족쇄처럼 가장 아래쪽 중앙에 앉아 있는 포뢰와 조풍을 압박하고 있었다.
포뢰와 조풍 앞 테이블에는 각종 파일철이 쌓여 있었다. 통계 자료, 역사 기록 그리고 대철수 당시 세계 정부의 이민 기록까지 전부 구룡을 향하는 파일들이었다.
비정화 구역 외부 지원을 "협의"하기 위해 공중 정원에 온 포뢰는 여러 방안과 설계도, 데이터, 역사 기록의 늪에 빠져 2주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 제가 말씀드리자면...
저희가 제공해 드린 야항선의 데이터 센터 자료에 따르면, 현재 화서의 소재에 대한 어떤 정보도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항선 산하의 데이터 센터도 화서와 관련 데이터는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희는 화서를 이용해 공중 정원을 공격한 적이 없으며, 현재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룡은 현재 지상에서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해운 공급자입니다. 해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야항선은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다른 의원이 그림자에서 일어나 말했다. 하지만 그는 포뢰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는 듯, 포뢰가 한 말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최근 해저에 이합 생물과 퍼니싱의 흔적이 나타났다는 증거가 나왔습니다. 작년에 적조가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치른 대가가 무색하게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고, 엄청난 오메가 무기를 투입했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우리가 어리석게 보일 정도입니다!
마침 저도 과학 이사회가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여기에는 지난번 특징 코드를 비교해 본 결과, 최근 게슈탈트 중추를 공격한 네트워크 공격이 화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게다가 몇 년 전 이미 증명됐습니다. 그때, 공중 정원을 공격한 것은 구룡이 아니라, 승격자 루나였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 승격자가 현재는 실종됐다는 걸 모르십니까? 그리고 화서가 루나의 손에 없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건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럼, 끝나는 겁니까? 그건 화서가 아직 루나의 손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 아닙니까?
그렇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동일한 논리라면, 화서가 루나의 손에 없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말이 안 됩니다. 당신이 어떻게 그걸 가정할 수 있습니까?
의원님들은 기본적인 공감 능력도 없는 겁니까!?
논쟁의 물결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더욱 거세졌다. 더군다나, 이 바다는 각자가 속뜻을 가지고 있어서 원래부터 불안정한 곳이었다.
조용히 해주십시오!
하산의 목소리는 효과적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의 조용한 상태로 돌아갔다.
흠...
그린스의 조금은 나른한 목소리가 의회 회의장에 다시 울려 퍼졌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린스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많이 조심스러워 보였다.
제가 말해도 됩니까? 하산 의장님?
발언권 드리겠습니다.
하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세계 정부에게 쿠로노는 골칫덩이와 같았다. 심지어 쿠로노 내부에서도 다양한 세력들이 서로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산이 그린스의 의회 복귀를 허락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다만 복귀 조건으로 그린스는 의회에서 조용히 있어야 했다.
저는 구룡을 지원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가 봤을 때, 이 일은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닙니다. 얼마간 자금과 물자를 지원해서 우리 지상의 친구들을 도울 수 있다면 말입니다.
동의합니다.
어!?
리스트의 보기 드문 인정에 놀란 그린스는 자리에서 튀어 오를 뻔했다.
하지만 리스트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린스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고, 그의 속셈도 알 수 없었다.
쿠로노 내부에서조차 파벌 싸움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리스트의 과거 행동 때문에 그린스는 한때 의회를 떠나야 했고, 그로 인해 쿠로노 내 주도권을 잠시 리스트에게 넘겨줘야 했다.
이번 리스트의 갑작스러운 인정은 오히려 그린스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흠... 저는 의회가 구룡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구룡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한 것뿐입니다. 예를 들면, 비공식적인 경로 같은 걸로 말입니다.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의원이 그림자에서 일어나 말했다.
어?
구룡 야항선이 공식적인 협력을 구하고 있는 상황이니, 공식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 일은 반드시 의회가 결정해야만 합니다.
비공식적인 협력과 협상은 의회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며, 절차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린스 님.
미소를 짓고 있는 두형은 그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으로 그린스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게 의회의 의견입니까? 하지만 제 개인 생각을 말씀드리면 의회가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건 의회가 구룡의 협상안을 거부하는 입장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린스 님.
하지만 제 생각에는 우리 공중 정원 혹은 현재 세계 연합 정부가 구룡에 적절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의원으로서의 의견이자... 인간으로서의 의견입니다.
흠... 그렇다면... 물론입니다.
멀리서 일어서는 리스트를 힐끗 쳐다본 그린스는 굉장히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와 리스트 님의 생각은 같습니다.
잠깐의 침묵 후, 의회 회의장은 다시 한 번 격렬한 논의로 가득 차게 됐다.
쿠로노의 내부 파벌은 얽히고설킨 채, 정부와 의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쿠로노의 이익 우선주의와 강권주의는 오랫동안 비난받아 왔다.
하지만 이번 공중 정원과 구룡의 협력 방안은 공중 정원에게는 "도덕적인" 일일뿐, 사실상 "이익"은 거의 없었다.
특히 쿠로노 입장에서는 그랬다.
공중 정원
구룡 상회, 세계 정부 회관
11월 9일, 오전 10시 21분, 청문회 5시간 전
번호... 의회에서 이민자 파일을 어디까지 수집하려는 거죠?
내가 할게. 이건 연합 공동체 전에 구룡 상회의 자료를 봐야 하니까, 이민국과 기록국 인원들에게 물어서 확인해야 해. 포뢰, 너는 야항선에 통신 좀 해줘.
긴 한숨을 내쉰 포뢰가 손에 들고 있던 두꺼운 파일을 내려놓고, 예스러운 원형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 파일들은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처럼, 책상 위 여러 자료들 사이로 스며들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대철수 때 많은 파일이 사라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배에 있는 이민국과 기록국에 옛 구룡 시절의 자료가 남아 있을 가능성도 그렇게 높진 않을 거야. 당시 그는 구룡을 떠날 때 그런 자료들을 가져가지도 않았을 거거든.
대가 가져간 일부 파일들은 옛 구룡의 부희 설계국에 보관되어 있을지도 몰라. 그러고 보니 정말 흩어져 있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렇게 많은 자료가 필요한 건가요? 재건 지원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려고 하는 건데, 왜 이렇게 복잡해진 걸까요?
그들이 이렇게 많은 파일과 자료를 요청하는 이유는 실제로 다 보겠다는 것이 아닐 수도 있어.
네? 무슨 뜻인가요?
의회와 감사원이 어떤 특별한 조사를 시작할 경우, 엄청난 양의 정보 목록을 작성해 그들의 진짜 의도를 숨기지.
이 수법은 정말 많이 봤었어. 예전 구룡 파일 검토에서도 많이 쓰이던 방식이었지.
감사원이 의회에서 많은 자리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들이 법안을 추진하는 능력은 어느 기관보다도 커. 그들이 가진 건 "감사"의 권한이라 누구도 그들을 쉽게 대하지는 못하지.
그들이 이번에 많은 노력을 들여 의회에 이런 것들을 물어보게 한 이유는 분명 안에 알고 싶은 게 있다는 뜻이에야.
문제는 의회와 감사원이 대체 무엇을 조사하려고 하는가인데...
관자놀이를 누르는 두형은 손에 있는 자료를 읽는 데서 눈을 떼지 못했다.
원래는 돈과 자원을 논하는 자리였을 텐데, 이렇게까지 복잡해지니까... 뭔가 이상한데?
두형 아가씨?
문이 살짝 열리고, 집사복을 입은 노신사가 문 앞에 서서 두형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죠?
외교원 리스트 의원이 급한 일이 있어 두형 님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지금 상인회 응접실에 계십니다.
리스트? 쳇...
네?
쿠로노야.
그들이 찾아왔다는 건... 좋은 일은 아닐 거야.
이번 청문회와 관련이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있어.
쿠로노가 이번 청문회에 간섭할 가능성은 사전에 예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쿠로노가 직접 두형을 찾아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조건일 수도 있고, 협박일 수도 있어.
여러 조건을 받아들이고, 공중 정원과 협력하며, 저 "어르신"들의 지적을 견뎌야 하다니요. 아...
저들은 구룡을 진정으로 기억한 적이 없어. 그들 자신의 이익이 위협받을 때만 우리를 생각하지. 마치 "시혜"하듯이 거들먹거리면서 말이야.
구룡 사람들도 그런 대우를 받기 싫어할 거예요. 원래 우리가 세상을 연결했어야 했는데, 지금의 구룡은 고립된 섬 같아요.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힘들게 될지도 몰라요.
지금은 일단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조풍, 통신 연결됐어요.
손에 든 단말기를 조풍에게 건넨 포뢰는 기지개를 켜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책상 위의 파일을 집어 들었다.
이쪽은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두형님, 수고하셨어요.
이 큰 배가 가라앉을지 아니면 떠오를지는, 이 일에 따라 결정될지도 몰라요.
꼿꼿이 자세를 잡고 앉은 리스트는 공중 정원의 구룡 상회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두형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말을 꺼냈다.
두형 의원님.
안녕하세요, 리스트 의원님.
이번 청문회까지 30분밖에 남지 않아서 바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전 게슈탈트의 연산 능력 락 사건 이후로 감사원은 조사 초점을 과학 이사회와 게슈탈트에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감사원이 의회와 함께 표면적으로는 화서와 곡의 행방 그리고 예전 연산 능력 락 사건을 조사한다지만, 실제로는 황금시대 이전 과학 이사회의 정보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 정보는 공중 정원 자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3... 개발부 말입니까?
하지만 과학 이사회는 제1 개발부와 제2 개발부 밖에 없는 것으로 압니다.
두형 의원님께서는 세계 연합 정부에 언제 합류하셨습니까?
잠시 동안 두형의 눈에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
퍼니싱이 폭발하던 해입니다.
그렇다는 건, 그전까지는 계속 구룡에서 생활하셨다는 말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현재 상황으로 본다면, 과학 이사회는 제1 개발부와 제2 개발부, 이 2개만 있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게슈탈트의 개발 초기에는 과학 이사회 내에는 제3 개발부가 있었고, 게슈탈트가 완성된 이후 제3 개발부는 해체되어 분리되었습니다.
이... 이건 제가 잘 모르는 일입니다.
이건 실제로 어떤 문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사항입니다.
소수만 알고 있는 일이고, 당시 관련자들은 모두 입막음 당했습니다. 그래서 기억과 구두로 전해지고 있을 뿐입니다.
리스트 의원님께서는 아직 젊으신 걸로 아는데, 이런 건 어떻게 아시게 됐습니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쿠로노 내부를 설득해 의회에서 구룡 건설 지원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건 당신과 제가 사적으로 논의할 부분이 아닙니다. 게다가 저는 쿠로노의 약속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의원님 혼자 쿠로노를 대표하실 수 있습니까?
아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구룡 재건을 지원하는 것이 비용과 이익 측면에서는 맞지 않다고 해도, 도덕적으로 본다면 공중 정원이 스스로 자립하려는 불씨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중하게 리스트의 눈을 응시하는 두형은 이 교활한 인물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
두형 앞에 있는 이 리스트는 의회에서 자주 마주쳤던 그 리스트와는 뭔가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 농담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저에겐 지켜야 할 원칙이 있고, 꼭 완수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쿠로노의 이익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전 의원님과 구룡을 이용하고 있는 겁니다.
조건이 뭡니까?
의원님과 구룡이 감사원이 무엇을 조사하고 있는지 알아내 주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찾는 게 아마 제가 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의원님도 아시겠지만, 구룡은 지금 의회의 문의에 대응하느라 정신없이 바쁩니다.
그럼, 왜 그 그레이 레이븐의 수석에게 물어보지 않으십니까? 그 [player name]은(는) 아시모프와 개인적으로 상당한 교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레이 레이븐 말입니까?
예전에 구룡 순환 도시 전투에서 그레이 레이븐 소대, 곡 그리고 구룡은 여러 관련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문의가 통과된 후에는 구룡에 파견될 첫 번째 엘리트 집행 부대가 바로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차징 팔콘 소대일 겁니다.
이미 결정된 일입니까? 청문회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이든, 외교원은 성공할 때의 것과 실패할 때의 것 두 가지 버전의 성명문을 준비합니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일을 어떻게 끝맺을지를 준비하는 것이 바로 정치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예전에 리스트 의원님께서 의회에서 제안하신 영점 에너지 원자로와 은하계 탐색 계획 재개 관련 제안이 꽤 높은 표차로 통과한 적이 있습니다.
의원님께서는 찬성하셨습니까?
전 기권했습니다.
그러십니까...
리스트는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 인류의 이익이 걸린 문제가 아니라서, 통과율이 매우 저조할 겁니다.
…………
두형 의원님께서는 특히 다양한 화술에 능숙하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구룡 말로는 "태극을 치다."라고 말하는 거 맞습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예, 아니오로 정확히 답해주셔야 합니다. 두형 의원님.
때때로, 어떤 결정이 옳은지 아닌지는 그 후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는 그 순간에는 그 옳고 그름이 "그 순간"에 따라 결정될 뿐이었다.
그러십시다.
공중 정원
세계 연합 정부의 의회 회의장
11월 9일, 15:55
모두 정숙해 주십시오!
정말 드문 일이군요.
리스트 의원님하고 그린스 의원님은 반대표를 던질 줄 알았는데요.
구룡 야항선의 포뢰님, 더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네!?
하산에게 지명당한 포뢰는 갑자기 선생님에게 지명받은 학생처럼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 추가로 말씀드릴 건 없습니다.
그럼, 이 제안의 주요 내용을 다시 말씀드리자면,
공중 정원은 앞으로 구룡 야항선과 구룡 지역 생존자에게 물자 지원을 약속하고, 구룡과 함께 퍼니싱에 대한 유라시아 해상 방위선을 구축해 정화 구역과 보육 구역을 연결해 나갈 것입니다.
하산은 기침을 가볍게 한 뒤, 이어서 말했다.
제가 이어서 말씀드릴 내용이 의장의 의무 중 하나인 공정성을 훼손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반 의원으로 투표에 참여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제 입장을 밝히고 싶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문명의 지속과 미래는 우리만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미래는 신분이나 성별,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손에 달려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책임의 무게 아래서 때로는 잔혹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대가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결정을 내릴 때, 저는 인간의 입장이 최우선이고, 그다음이 세계 연합 정부 의회의 의장입니다.
어쩌면 미래에 후손들이 우리의 결정을 잔혹하다고 기록하며, 인간 문명의 도덕적 최후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 문명의 최고 도덕 기준에 맞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었다고 말입니다.
여기 계신 의원님 모두 세계 연합 정부의 초기 목적은 인간이 하나로 단결하여 문명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함임을 잊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하산의 목소리가 의회 회의장에 울려 퍼졌고, 그 순간 그의 목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제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세계 연합 정부의 구룡 건설 지원 관련 사항>에 관련 투표 집계를 게슈탈트에게 맡기겠습니다.
세계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이들이 투표 버튼을 눌렀고, 그들의 생각은 게슈탈트의 계산 회로에서 차가운 데이터로 정리됐다.
제안의 최종 지지율은 찬성 67.5%, 반대 14.5%, 기권 18%입니다.
찬성이 제안 통과 기준을 초과했으므로, 해당 제안은 통과되었습니다.
됐어요!!!
그럼, 공식적으로 선포하겠습니다.
잠시만.
하산이 의안이 통과되었다고 선포하려던 긴박한 순간, 아시모프가 갑자기 일어섰다.
이 상황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아시모프 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하산 의장님, 이 의안을 막으려는 게 아닙니다. 저 또한 이 안에 찬성입니다. 하지만, 의안 통과 전에...
게슈탈트가 이 의안을 독립적으로 한 번 더 판단하게끔 요청드립니다.
회의장은 순식간에 놀란 소리로 가득 찼다.
게슈탈트 말입니까?
법률에 따르면 의안의 최종 결정은 의회에 있지만, 형식상 게슈탈트의 의견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아시모프 님, 투표 결과는 의회가 이 의안을 통과시켰다는 뜻입니다!
절차상 이미 통과된 의안에 대해 게슈탈트에게 의견을 다시 구하는 선례는 없었습니다.
혹시 게슈탈트가 반대 의견을 낼까 봐 걱정되시는 겁니까? 아니면 확신이 없으신 겁니까?
오, 힐다가 말한 것도 일리가 있는데...
만약 게슈탈트가 반대표를 던진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리스트 의원님.
말씀드렸지만, 최종 결정권은 게슈탈트에 있는 것이 아닌, 의회에 있습니다.
쳇...
아시모프...
세계 연합 정부의 의원이자 과학 이사회의 수석 기술관으로서, 이 요청은 유효합니다.
회의장이 고요해지더니, 호수처럼 잠잠해졌다.
알겠습니다.
하산의 목소리가 그 침묵을 깨트렸다.
그럼, 게슈탈트에게 의안 판단을 요청하겠습니다.
회의장의 약한 불빛이 아시모프의 얼굴을 비췄고, 그는 의회 중앙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주시했다. 물론 게슈탈트가 여기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의 시선은 그 어두운 스크린을 꿰뚫고, 공중 정원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게슈탈트의 "심장"과 "머리"를 향해 있었다.
게슈탈트 판단은...
이 의안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전적으로!?
그린스가 책상을 치며 일어섰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리스트는 마음속 짐을 내려놓은 듯했다.
게슈탈트의 개념에서의 "전적"은 100%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는 건, 게슈탈트가 이 제안을 완전히 지지한다는 뜻입니다.
이건 매우 드문 일입니다. 아, 아니, 제가 정치하면서 게슈탈트가 완전히 지지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겁니까?
진짜 예상 밖입니다.
전적으로 지지한다라...
아시모프 님, 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장님.
아시모프는 하산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시모프의 눈은 그 차갑고도 두려운 "100%"에 있었다.
100%는 완전함, 전체, 가득 참, 그리고 필연성을 의미했다.
이 순간, 아시모프는 더 이상 구룡이나 리스트를 신경 쓰지 않았다. 하산이 의장 자리에서 의안 통과를 선포하는 것도, 제안이 통과된 후 구룡과 어떤 협상을 하게 되는지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게슈탈트...
"너"는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 거지?
구룡 영해
구룡성 남쪽 1155해리, 구룡 영해
11월 9일, 16:00
물결치는 파도가 공중에 떠 있는 소녀의 발끝을 스치고, 바닷바람이 그녀의 후드를 날려 보내자 갈색 머리의 땋은 머리가 드러났다.
그녀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서 아직 보이지도 않는 도시를 바라보며, 그 도시와 그 뒤편에 자리한 거대한 문명을 상상하고 있었다.
읽고, 이해하고, 배운다.
시작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