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멍해진 의식을 깨웠다.
맞지 않는 코트를 여민 뒤, 정신을 다시 집중했다.
단말기를 켜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미 30분이나 잠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통신 추적을 해제할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단말기를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절벽 아래로 던져버린 뒤, 울퉁불퉁한 산길을 계속해서 올라갔다.
큰 신발 한 짝을 싸움 중에 잃어버린 지휘관은 조심 또 조심했음에도 맨발인 왼쪽 발이 날카로운 바위에 베이고 말았다.
마른 이끼를 조금 뜯어 상처에 댔지만, 이건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산속에서 흐르는 물을 찾는 과정에서 몇 군데 더 상처가 생겼지만, 다행히 지휘관은 원하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흐르는 물로 상처를 씻어내는 동안, 지휘관은 현재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뚜렷해지는 얼굴 윤곽, 수면 부족으로 피곤해 보이는 눈빛, 탈출 실패 후 남은 멍 자국, 침식체와 싸우며 생긴 상처들...
그들이 지휘관을 다시 만났을 때, 과연 지휘관을 알아볼 수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하 실험실에서 탈출한 후 벌써 4일이 지났지만, 자신이 정화 구역 밖에 있다는 것 외에는 다른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시간조차 많지 않았다. 굶주림과 추격병들에 대한 두려움이 지휘관을 빨리 행동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제 산꼭대기로 계속 갈지 아니면 계곡을 따라갈지 결정해야 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등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구조체용 권총을 소리가 난 방향으로 겨눴다.
총을 쏘면 손목이 부러질 수도 있었지만, 잡히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했다.
으아! 지휘관님, 쏘지 마세요!
저예요.
여기서 익숙한 이를 만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왜 남의 외투 하나만 걸치고 이런 곳에 계신 거예요?
연잎밥은 손을 높이 든 자세를 유지한 채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치신 거예요?
연잎밥이 지휘관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어!
엇, 처음 만났을 때라... 잠깐만요. 제 머리를 쏘지 마세요! 생각하고 있어요!
생각났어요. 식재료 상자였어요!
그때 수장님과 그레이 레이븐 소대도 있었고, 아딜레에서 온 키 작은 애... 이름이... 이름이 뭐였더라... 창위였어요!
긴장됐던 신경이 잠시 풀리면서, 지휘관은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다시 집어넣었다.
후...
그런데 지휘관님은 여기서 뭐 하고 계셨어요? 그것보다 먼저 상처부터 치료하셔야겠어요!
연잎밥이 다소 허둥대는 모습을 보자, 지난 나흘간의 압박감이 조금이나 풀어지는 것 같았다.
연잎밥이 가져온 약품으로 악화하기 시작한 상처들을 간단히 처리한 뒤, 최근 며칠간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네? 지휘관님께서 납치당하셨다고요?
전 공중 정원에서 항상 전용기를 보내서 데려가는 줄 알았는데요?
윽...
따라오세요.
연잎밥은 지휘관 왼발에 감겨 있는 붕대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제가 업어드릴까요?
아, 지휘관님! 그런 뜻이 아니에요. 화내지 마세요!
그럼, 제 신발 신으세요!
하지만 연잎밥의 행동은 말보다 빨랐다. 그제야 지휘관은 이상함을 눈치챘다.
헤헤... 다른 구조체들만큼 대단하지 않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하더라고요.
연잎밥이 머리를 긁적이며, 지휘관에게 신발을 신겨줬다.
그래서 남들에게 제가 구조체인 걸 알려주기 싫었어요.
지휘관님, 이제 출발할까요?
연잎밥을 따라 숲을 지나 도착한 곳은 한 동굴이었다. 그곳에는 상처투성이의 인간 형상이 누워 있었다.
맞아요. 우리 수장님이에요.
하지만 수장님께서 공격받은 후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말하길, 의식 연결로 의식의 바다 문제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지휘관님께서 어서 의식 연결로 뭐라도 해주시면 안 되나요!
네???
의식 연결은 그냥 툭 하고 연결되는 거 아니었어요?
제가 구조체로 개조될 때는 지휘관이라는 개념이 없었거든요.
지휘관이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자, 연잎밥이 대답을 내놨다.
그럼, 어쩌죠.
음... 그리고 너무 멀면 안 돼요.
고민하던 중에, 장소 하나가 생각났다. 그곳에는 많은 구조체들이 살고 있어서 기본 시설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뉴 오클레르 마을!
연잎밥도 거의 동시에 같은 지명을 말했다.
예전에 캐다 이모를 그곳까지 호송해 준 적이 있어요. 그녀는 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
정말 타이밍 좋게 왔군. 망각자가 방금 막 마을을 수색하고 갔거든.
어... 지휘관님, 이런 것도 말해야 해요?
허, 자네 꽤 똑똑하군.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그들과 한 편인지 확인해 보려는 건가?
우선 그 폐기된 주점 지하실에 숨어 있어.
캐다에게는 내가 말하지.
난 은혜를 모르는 놈이 아니야. 뉴 오클레르 마을은 친구를 거절하지 않아.
자네가 한 노력과 쌓아온 것들은 절대 헛되지 않을 거네.
그렇게 몇 개월간 고된 여행을 한 끝에 마침내 안식처를 찾을 수 있었다.
그 후로 오랜 각성의 과정이 시작됐다. 그동안 지휘관은 연잎밥의 설명과 외부에서 수집한 소식들을 통해 조금씩 사건의 진실을 파악해 나갔다.
지휘관님, 우리도 출발할까요?
와타나베는 차를 몰고 그의 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럼, 이쪽도 약속을 지켜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