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도... 그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수 없다는 건가요?
쌍방의 끊임없는 교전에서 나이젤의 기체는 조금씩 한계에 다다랐다.
기체 내부에서 미세한 파열음이 들리면서, 동작을 담당하는 인조 골격이 더 이상 과부하를 견딜 수 없게 됐다.
그러자 나이젤은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었다.
후... 후...
반대편에 많은 상처를 입은 와타나베도 익스텐션 소드를 땅에 꽂은 뒤, 몸을 지탱하면서 체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와타나베의 몸에서 나오는 고열이 주변 공기를 일그러뜨렸고, 파란 불꽃이 땅에 검은 자국을 남겼다.
밸러드의 목적이 뭐지?
통솔자님과 함께한 시간은 당신이 저보다 길 텐데도, 아직도 모르시나요?
나이젤은 남은 반쪽의 생체공학 스킨을 움직이며 비웃었다.
너도 공중 정원에 풀리지 않는 증오를 느끼나?
증오...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아요.
저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이에요. 황금시대의 기술로도 치료할 수 없는 유전병을 가지고 태어났죠.
그래서 제가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됐을 때, 저를 돌봐주던 사람들이 부모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버려졌던 거예요. 정확히 말하면 구형 단말기 하나의 가격에 팔린 거였어요.
한 번 버림받은 이는 다시 버려지는 걸 신경 쓰지 않아요.
나이젤의 광채 없는 눈에는 증오도, 갈망도 없었다.
그럼, 네가 목숨 걸고 싸우는 이유가 뭐지?
나이젤을 땅에서 일으킨 와타나베는 분노에 차서 물었다.
제대로 수리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익숙하지 않은 전투 방식으로 나와 싸우는 이유가 대체 뭐지?
너와 밸러드는 대체 어떤 미래를 원하는 거야?
미래요?
전 그런 걸 기대해 본 적이 없어요.
당신들은 황금시대의 영광을 보았거나, 에덴에서 태어났을 거예요.
그래서 행복한 미래가 어떤 것인지 알고, 그것을 실제로 느껴봤겠죠.
하지만 저는 알지 못해요. 가장 빛나는 시대에 태어났지만,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살았기 때문이죠.
통솔자님께서 절 은밀한 실험실에서 데리고 나왔을 때, 세상은 이미 그곳과 다를 바 없는 면역 시대였어요.
나이젤은 멀쩡한 왼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한 번도 빛을 본 적이 없는 제가 어떻게 그걸 상상하고 기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죠?
통솔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 가지게 되어 평생을 함께하는 것을 저에게 주셨어요.
그것은 힘, 싸울 힘을 주셨어요.
저에게 전투는 제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이에요.
남들이 어떻게 해도 빼앗을 수 없는 제 존재의 유일한 의미에요.
나이젤은 와타나베의 손을 꽉 잡았다.
당신들에게 전투의 의미는 생존이고, 구원이자, 미래겠죠.
하지만 저에겐 전투 자체가 의미에요.
그래서 전 어떤 임무든 수행할 것이고, 어떤 적이든 없앨 수 있어요.
이 일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통솔자님.
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밸러드는 나이젤에게서 전투를 빼앗는 것이 그의 목숨을 빼앗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 고집스러운 부하를 말리지 않았다.
지난번 실패 때 남은 작은 상처일 뿐이에요. 이번에는 절대 실패란 없을 거예요.
그건 작은 상처라고 할 수 없다. 특히 네 오른팔의 자력 장치를 아직 제대로 조종하지도 못하잖아?
……
상황이 사실이라면,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게 좋겠어.
와타나베는 내 가장 뛰어난 제자 중 한 명이다. 지금 너의 상태로는 그를 이길 수 없다.
원래도 말이 적은 나이젤이지만, 지난번 실패 이후 말수가 더 줄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밸러드의 제안에 반대했다.
통솔자님, 가시면 안 돼요.
당신이 망각자를 지키고 있으셔야 그들은 공중 정원과 맞설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게 될 거예요.
통솔자님께서는 이걸 위해 수십 년을 준비해 왔고, 한 발짝만 더 나아간다면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어요.
활시위에 화살을 올린 지금, 쏘거나 포기하거나 두 가지 선택밖에 없어요.
공중 정원이나 망각자 모두 우리에게 망설일 시간은 주지 않을 거예요.
항상 말씀하셨죠. 힘은 적절한 곳에 사용해야 한다고요.
지금이 제힘을 사용할 가장 적절한 순간이에요.
밸러드는 반쪽 얼굴만 남은 나이젤을 바라보며 무겁게 말했다.
죽을 수도 있어.
이것은 와타나베에 대한 살의와는 무관했다. 밸러드는 지난번 실패를 경험한 나이젤이 이번 임무의 성공을 위해 가장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더욱이 나이젤의 말처럼, 지금은 활시위에 화살이 올라가 있는 순간이었다.
전 죽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전투 중에 이 생명을 바칠 수 있다면, 저에게는 그게 가장 큰 구원이 될 거예요.
……
시간이 침묵 속에 흘렀고, 1초조차 길게 느껴졌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다.
네!
나이젤이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후, 밸러드는 그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리고 밸러드는 구형 단말기를 들어, 유일하게 저장된 연락처에 연락을 취했다.
통화 대기음이 텅 빈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여보세요?
그는 아직도 제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나이젤의 오른팔에 있는 자력 고리가 붉은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연잎밥!
네!
연잎밥이 아직 얼떨떨해하는 캐다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나이젤을 내던진 후 곧바로 지휘관 쪽으로 이동했다.
어떻게든 당신이 통솔자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걸 막겠어요!
연기, 불빛, 폭발이 일어나면서 한순간에 시야를 가려버렸다.
화약 타는 냄새가 나이젤로 하여금 밸러드와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리게 했다.
격렬한 폭발음, 감옥이 부서지는 소리, 무거운 발걸음 소리... 그리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초대의 목소리.
또 다른 피해자인 것 같은데... 우리와 함께 저 벌레들을 잿더미로 만들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