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27 비석으로 세운 척량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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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3 평범한 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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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부

퍼니싱 전투 지휘 센터

손실 상황을 보고해.

우주 부대와의 통신이 두절된 후, 지휘 센터는 즉시 공중 편대를 파견해 우주의 상황을 파악하게 했다.

하지만 곧 각지에 떨어지는 잔해로 인해 그들은 원래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지상과 공중의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군부는 이전 작전에서 침식된 대부분의 방공 시스템을 파괴해야만 했다.

각지에서 공습경보가 울리자, 그들은 한정된 공중 전력을 통합하여 이 잔해들을 요격했다. 지상 시설과 민간인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 것을 막아야 했다.

이런 손실은 명백한 것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늘이 짙은 연기로 가려지고 불타는 잔해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게 됐을 때, 지휘 센터는 비로소 밸러드 소대의 경고와 우주 항에서 파견된 연락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네. 현재까지 접수된 보고에 따르면, 우주 부대의 손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주 정거장의 사망자 1927명, 생존자 25명입니다. 현재 우주 정거장은 완전히 점령당했으며, 참모부는 탈환 가능성을 0.12%로 예상했습니다.

성함 전투군은 사망자 35782명, 실종자 965명, 생존자 1729명입니다. 부 지휘관급 이상 장교는 전멸했고, 전투 부대는 87%의 사상률을 기록했으며, 함체는 전부 파괴되었습니다.

우주 항 주둔군은 사망자 1792명, 실종자 298명, 생존자 23597명으로 이번 손실 중 가장 적은 편입니다. 현재 우주 항구의 잔여 선실 구역은 지시에 따라 모두 위험지대를 벗어나 에덴 Ⅱ형 식민함선과 접속 중입니다.

공중 편대는 사망자 9300명, 실종자 125명이며, 부대 인원 사상률은 80%를 초과했고, 전투기 손실률은 97%를 넘었습니다.

그 외에도 우주 핵폭발로 인한 방사능과 낙하 잔해로 인한 피해는 아직 집계 중입니다.

……

다른 소식은 없나?

게슈탈트 중추 코어는 분해되어 현재 운송 중입니다.

이번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기술부에 즉시 격리 방안을 마련하라고 해.

그리고... 1호 원자로 쪽 보고입니다.

30분 전, 우리가 설치한 45개의 관측소에서 해당 구역의 퍼니싱 농도가 동시에 급상승하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300밀리 초 내 기존 20000배로 상승했고, 이와 동시에 도미니카 일행과 통신이 두절되었습니다.

그들도 실패한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참모부에서는 성공했을 거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후 30분 동안, 해당 구역에서 퍼니싱 농도는 더 이상 상승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주변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확산 상황도 이전에 설정한 확산 모형과 일치한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관측소가 그 폭발 후 내부 에너지 반응을 더 이상 포착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참모부는 다른 가능성을 모두 배제한 뒤, 1호 원자로가 중지됐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총지휘자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혼란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이것은 끝도, 끝의 시작도 아닌 시작의 끝일 뿐이었다.

우주 항, 성함, 국제 우주 정거장을 잃은 지금, 아카디아 대이동은 완전히 실패했다.

병사들과 시민들이 전우와 가족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결정권자들은 앞서 새로운 미래를 찾아야만 했다.

우선 확산 상황에 따라 격리 구역을 만든 뒤 주민들을 대피시켜.

구조대를 파견하여 핵폭발 방사능 영향 지역의 가이거 계수기의 수치를 확인하고, 안전 구역을 계획한 뒤 청소 작업을 하고 전력 시설을 재가동해라.

구체적인 사상자 수를 집계하고 남은 부대를 통합시켜.

먼저 이 일들을 완료해.

알겠습니다!

명령을 내린 후, 한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휘부 밖으로 향했다.

옆에 있던 경비병이 즉시 뒤를 따랐지만, 한스는 손을 흔들어 그를 저지했다.

여기는 안전 위협이 없어. 잠시 혼자 있겠다.

한스는 천천히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언제나 꿋꿋한 소나무 같았던 그였지만, 지금은 조금 구부러져 있었다.

한스는 방 안에 혼자 앉아 있었다. 이 작전을 지휘하기 위해 그는 며칠 동안 이 방에 돌아오지 않았고, 눈도 붙이지 못했다.

한스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퍼니싱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했다.

전례 없는 상황은 감당하기 힘든 참패를 가져오고 말았다.

한스는 계속 생각하고 싶었지만, 피로와 자책감이 그의 뇌를 혼돈의 가장자리로 끌어당겼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스는 군인이자 총지휘자로서 임무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이기에, 보고서 숫자 뒤에 숨겨진 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일까?" 한스는 지휘실을 떠난 후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른 계획을 세웠다면, 임무 순서라도 조정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피와 땀으로 인간 승리라는 희망의 길을 다지겠다는 것은 그들 각자가 한 맹세였다.

하지만 희생을 전제로 승리를 쟁취하는 건 결코 옳은 일은 아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생존자들을 마주해야 할까?

무거운 짐이 한스의 어깨를 짓눌러 소나무 같은 그를 구부러뜨리려 했다.

해방되길 원하는 건가?

한스는 책상 옆 수납장을 열었다. 그 안에는 총알이 장전된 권총이 놓여 있었다.

그는 권총을 자신의 턱에 갖다 댔다.

한편, "오랜 친구"가 톨리드의 저택을 방문했다.

이 시간에 날 찾아오는 걸 보니, 단순히 안부 인사나 하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톨리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건넨 뒤, 다시 소파에 앉았다.

어떻게 불러야 하지? 쿠로노?

쿠로노

그 호칭이 딱 좋군.

차를 받아 든 상대방이 손을 흔들자, 호박색 차가 도자기 컵 안에서 가볍게 출렁였다.

쿠로노

알고 지낸 지가 30년이 넘었는데, 더 좋은 차로 대접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장난스러운 어투로 말한 상대방은 자주 찾아오는 손님처럼 조금도 어색한 기색이 없었다.

톨리드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나는 세계 정부에서 주는 월급만 받는 사람이야. 너처럼 큰 기업의 사업가가 아니라서 손에 여윳돈이 없어.

너무 오래 찾아오지 않아서 우리 집 사정을 모르나 보군.

두 마리의 늙은 여우는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오랜만의 재회니, 옛날 일이나 이야기하겠다는 건가?

내가 한번 맞혀볼까? "크틸라 계획"? 아니면 "겨울 계획"?

상대방은 손가락으로 컵의 손잡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쿠로노

그런 건 과거의 작은 사업일 뿐이야. 이제 와서 다시 언급할 필요가 있나?

오, 너는 전혀 모르고 있구나?

내가 내부 정보를 조금 알려 줄까?

컵을 컵 받침에 올려놓은 상대방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쿠로노

이건 절차에 맞지 않는 것 같은데, 나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네가 절차와 규칙을 신경 썼어?

쿠로노

이래 봬도 법을 준수하는 납세자야.

그렇길 바라.

톨리드는 차 한 모금을 마신 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달리할 이야기가 없다면, 이만 실례하겠네. 솔직히 말해서 꽤 바쁘거든.

쿠로노

그래? 퍼니싱 폭발 이후로 세계 정부의 실질적인 지휘권은 군부가 가져간 걸로 알고 있는데?

너도 꽤 오랫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잖아?

겉으로는 무심한 듯한 말투였지만, 독사처럼 톨리드의 마음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런 특별한 시기에는 문서에 서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나 같은 늙은이가 최전선에 나가면 몸이 버티지를 못해.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쿠로노

물론이지. 서류에 서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야.

퍼니싱과의 전투뿐만 아니라 정부 기관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면서, 일반 시민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평범한 일일수록 더 쉽게 간과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잖아?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변화시켰는지는 기억하지만, 무엇을 유지했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해.

그들은 군인들의 희생을 애도하지만, 일상적인 생계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기억하지는 못해.

후자가 그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도 말이지.

평범한 말 속에는 가장 악독하고 경멸스러운 도발이 담겨 있었다.

각자의 역할만 하면 돼. 우리에게는 관심받지 않는 게 최선의 결과니까 말이야.

더군다나 한스는 내 친구야. 난 그를 믿어.

쿠로노

아. 친구, 그런 진부한 농담은 제발 그만해줘.

상대방은 가식적인 어조로 말했다.

쿠로노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자신과 기정사실만을 믿지.

내가 너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면?

쿠로노

너만의 독특한 유머인가?

톨리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쿠로노

우리에게 말이란 그저 진짜 목적을 가리는 커튼일 뿐이야.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우리의 진심을 보여주는 건 오직 우리가 하는 행동뿐이니까.

정말로 신경 쓰지 않는다면, 네가 "에덴 계획"을 그렇게 급하게 추진하지도 않았을 거고, "고용 법안"을 통해 재선하려고 애쓰지도 않았겠지.

이 점에 대해 우리는 매우 감사하고 있어.

그 "우리"라는 게 쿠로노 그룹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상대방은 톨리드가 계속 묻기도 전에 말을 끊었다.

쿠로노

물론 그룹과 그룹의 친구들을 말하는 거지.

톨리드의 침묵에 쿠로노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쿠로노

넌 모든 카드를 "에덴 계획"에 걸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넌 졌어.

내가 방금 말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바꿨는지는 기억하겠지만, 네가 무엇을 유지했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해.

의료 개혁? 게슈탈트 민간화? 교육 보급?

아니.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기억하지 못해.

그들이 기억하는 건 오직 첫 번째 세계 정부 의장이 과학 이사회와 손잡고 지옥 문을 열었고, 퍼니싱이라는 재난을 풀어놓았다는 거야.

그들은 지금 당장 이걸 청산할 시간이 없을 거야. 하지만 넌 과학 이사회를 비난하는 탄핵을 많이 시도했겠지?

인간의 등대였던 존재도 이런 어리석은 의견들에 휩쓸리는데, 너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어?

톨리드는 침묵을 지키며 상대방의 반박에 직접적으로 응답하지 않았다.

재난이 닥쳤는데 사람들에게 이성을 유지하라고 요구하는 건 사치야.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쿠로노

하지만 그때쯤이면 너도 역사의 일부가 되어 있겠지. 그리고 평판과 지위는 네 곁에서 모두 사라졌을 거야.

하지만 지금 너에게 기회가 찾아왔어.

상대방은 품에서 두 개의 새 크라프트지 봉투를 꺼냈다.

이건 뭐지?

쿠로노

세계 정부가 수송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거 알아. 대이동 실패로 군의 공중 전력이 거의 전멸했잖아.

이 행성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 그리고 하늘만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야.

아는 게 많군.

쿠로노

쿠로노는 친구가 많거든.

그래서 너에게 작은 선물을 가져왔어.

쿠로노는 그중 한 봉투를 손으로 가리켰다.

쿠로노

그리고 작은 제안도 하나 있어.

쿠로노는 나머지 다른 봉투를 가리켰다.

톨리드가 첫 번째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세계 정부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공중 수송력을 양도하는 계약서가 들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수송기가 어디서 난 거지?

쿠로노

우리는 최전선에 나갈 필요가 없잖아. 이 점은 세계 정부가 민간 재산을 열심히 보호한 덕분이지.

내가 세계 정부의 이름으로 징발할 수 있어.

쿠로노

지금 상황에서? 아니. 너는 완패한 이 상황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을 거야.

최전선이 위태롭고 후방도 긴박한 지금, 사람들에게 그런 잘못된 인상을 주고 싶진 않겠지?

세계 정부에는 폭동을 막을 병력이 그렇게 많지 않을 텐데?

……

톨리드는 잠시 침묵하더니 두 번째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명단이 들어 있었다.

첫 페이지를 보자마자 톨리드는 명단을 내려놓았다.

원하는 자리가 너무 많군.

쿠로노

친구, 나는 상인이야. 거래의 본질을 파악하는 건 내게 기본 기술이야. 그러니 나를 상대로 협상 기술을 사용하려 했다면 그만둬.

더군다나 이건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초대이기도 해.

초대?

쿠로노

옛말에 "영리한 새는 나무를 골라 둥지를 틀고, 현명한 신하는 주인을 선택한다."고 하지 않던가.

과학 이사회의 시대는 이미 끝났어.

나는 다음 시대가 너희 것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쿠로노

네가 협의에 서명한다면 다음 시대는 우리 시대가 되는 거야. 나의 시대가 아니라 우리 시대가 되는 거라고.

그럼, 너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실패자가 아니라, 정치계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의장이 될 거야.

쿠로노의 눈은 톨리드의 얼굴에 드러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내가 동의한다고 해도, 이 자리들은 한 번에 교체할 수 없어. 의장의 권한도 무한하지 않으니까.

쿠로노

모든 것은 절차에 맞춰 진행될 거야. 우리가 예전에 협력했던 것처럼 말이지.

그 말을 들은 톨리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희의 손은 대체 어디까지 뻗쳐 있는 거지?

쿠로노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어. 모든 사람이 재난 앞에서 한스처럼 고집불통인 건 아니거든.

그 말을 하며 쿠로노는 가볍게 웃었다.

쿠로노

한스는 굽히지 않는 소나무 같은 사람이야. 잎이 다 떨어지고 생기를 잃어도 허리를 굽히지 않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바람이 부는 대로 휘어지는 갈대와 같아. 그래서 우리의 잠재적인 동맹이 꽤 많다고 볼 수 있지.

그렇다면 넌 어떤 종류지?

……

협력 명단이 필요해.

쿠로노

당연하지. 하지만...

우리는 예전에 불미스러운 계약 위반의 상황이 몇 번 있었잖아. 그래서 이번에는 네가 먼저 의장 명의로 전 세계에 방송 연설을 해줬으면 해.

이걸 기정사실로 만들길 원하는 건가?

쿠로노

중요한 건 무엇을 약속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가 아닐까?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쿠로노

명단 하나에 지원 하나야.

상대방은 봉투 두 개를 톨리드 앞으로 내밀며, 손에 든 패를 보여주었다.

쿠로노

그리고 너의 다음번 연임도 말이야.

잠시 생각한 톨리드는 명단에서 두 사람의 이름을 지웠다.

한스의 위상이 너무 높아서 군부 일은 내가 손댈 수 없어.

눈살을 찌푸린 쿠로노가 톨리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다음 달에 있을 기자회견에서 임명과 해임 조례를 선포하지.

쿠로노

음... 좋아. 어차피 그 두 사람은 중요하지 않아.

쿠로노는 양도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쿠로노

수송기들은 네가 선포를 마치면, 너의 명의로 양도될 거야.

그리고 가입을 환영해. 톨리드.

상대방은 일어나 모자를 쓰고 방을 떠났다.

한 달 후.

한스의 주먹이 톨리드의 얼굴을 세게 가격하자, 톨리드는 몇 바퀴를 돌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톨리드!

한스는 단 한 달 만에 몇십 살은 늙어버린 것 같았다.

다음 날 지휘실에 모인 사람들은 하룻밤 사이 백발이 된 한스를 보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한스는 조용히 손을 흔들며 모두에게 계속 일하라고 했다.

그 군인들이 앞길을 열어주는 카드가 됐으니, 자신도 몸을 바쳐야겠다고 한스는 결심했다.

한스는 죄책감이나 도피로 그들의 희생을 더럽히거나 배신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라는 화폐를 잘 활용해서 명예롭게 죽기를 원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은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스는 누군가가 먼저 배신자가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 의원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죄명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 그리고 기자회견에서 톨리드가 새로 임명된 명단을 발표했을 때.

한스는 전례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톨리드가 먼저 배신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스, 우린 수송기가 필요해.

하지만 너는 의회의 미래를 담보로 걸었어!

세계 정부가 그 사람들 손에 들어가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너도 잘 알잖아.

톨리드는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한스, 우리의 꿈은 이미 산산조각 났어. 현실을 직시해야 해.

너 이***.

한스는 다시 한번 톨리드를 날려버렸다. 옆에 있던 보디가드가 더 이상 볼 수 없었는지 나서서 한스를 막았다.

보디가드

한스 총지휘자님, 계속하시면 의장님을 폭행하신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내게 더 할 말이 있나?

톨리드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놔. 나 혼자 나갈 수 있어!

한스는 방을 나가며 문을 쾅 닫았다.

야심한 밤.

톨리드는 마지막 지시를 내린 뒤, 눈앞에 있던 젊은이들을 내보냈다.

그리고 그는 도구를 꺼내어 자신이 20년 가까이 일해온 방을 꼼꼼히 청소하기 시작했다.

톨리드는 어떤 구석도 놓치지 않고 진지하게 청소했다.

바닥의 먼지를 쓸고 난 후, 책장의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 뒤에 있는 창문까지 깨끗이 닦은 후, 톨리드는 뻐근해진 허리를 주무르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후... 이렇게 청소하면 한동안은 깨끗하겠지.

창밖의 달빛을 바라본 톨리드는 한스와 함께 잔을 기울이며 축하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내일을 위하여.

내일을 위하여.

톨리드는 별하늘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두근거림을 결코 잊지 않았고, 그때부터 무엇을 위해 평생을 바쳐야 할지 확신했다.

그는 인간을 태양계 밖으로 이끌어, 우주에서 전설을 계속 써나가고 싶었다.

역사 속에 짙은 색채를 남기고 싶어 했던 그는 역사의 먼지로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

톨리드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설명한 뒤, 체면을 세운 채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톨리드는 그럴 수 없었다.

즉흥적으로 보였던 약속이 사실은 톨리드가 항상 지켜온 신조였기 때문이었다.

이건 단순히 이기적인 목적이 아니야. 나는 항상 세계 정부를 나 자신보다 우선시해 왔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어.

거짓말을 무기로 삼던 남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진심을 숨겼다.

이 시대는 더 이상 평범한 정치가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나에겐 아직 모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어.

그는 미리 준비해 둔 와인을 꺼낸 뒤, 달을 향해 잔을 들었다.

내일을 위하여.

톨리드는 잔 속의 붉은 액체를 단숨에 비웠다.

다음 날, 감사원은 상세한 내용의 신고서를 받게 됐다. 그 안에는 세계 정부 의장의 부패와 뇌물 수수, 관직 매매 등의 죄목과 이와 관련된 증거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감사원 사람들이 톨리드 사무실에 들이닥쳤을 때, 그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톨리드의 옆에 놓인 와인잔에서 청산가리가 검출되었고, 이는 그의 사망 원인과 일치했다.

한편, 신고서 내 증거의 진위도 검증되었다.

이에 톨리드는 세계 정부에서 바로 제명되었고, 그가 누명을 씌웠던 사람들은 곧바로 석방돼 예전 직위로 복직됐다.

그의 명의로 된 출처 불명의 자산은 모두 몰수되었고, 그중에는 상당수의 수송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톨리드가 살아있었다면, 배후 인물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그를 압박해 익명의 고발자를 알아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톨리드는 죽었다.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망자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한스는 방에 틀어박혀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정화 부대는 총동원되었다. 밸러드는 이름이 가득 적힌 단말기를 부숴버릴 정도로 세게 쥐었다.

출발해. 암 덩어리들을 제거하러 가자!

톨리드의 추문은 전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불과 사흘 만에 죽은 전 의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아카디아 대철수...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