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통일 기념비 앞.
2:00 PM
사람들로 붐벼야 할 광장에 지금 밸러드 혼자 남아 있었다.
와타나베의 부고와 밸러드의 해방 선언을 듣고 난 후, 현장에 있던 병사들은 모두 자신들이 지켜야 할 자리로 돌아갔고, 신호의 불이 타오르길 기다리고 있었다.
비에 젖은 밸러드는 시간에 잠식되어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기념비에 손을 올린 뒤, 그 위의 먼지를 닦아냈다.
아무리 좋고 견고한 재료일지라도 관리가 소홀하면 새겨진 글자들은 조금씩 희미해지고, 날카로움을 잃게 마련이다.
이 기념비에 적힌 이름들을 몇 명이나 기억할 수 있을까?
그들은 재난과 망각 속에서 작은 먼지처럼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밸러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손가락으로 기념비의 조각을 천천히 스쳐 가는 그의 시선은 마치 세월을 지나 과거의 흔적을 바라보는 듯했다.
최종적으로 밸러드의 시선은 기념비 밑부분에서 멈췄다. 거기에는 원래 짧은 문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녹슬고 마모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 █ █ █ 세계
머지않아, 목숨을 부지하던 배신자들은 합당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거야.
지금 나보고 물러나라고?
이번 일은 단순한 해킹 공격이나 테러가 아니야. 훨씬 상상조차 어려운 일인 것 같아.
그 폭동을 일으킨 로봇들은 너무 위험해. 이런 상황에서 군용 기능형 아머는 너희들에게 쇠로 된 관이 될 뿐이야.
그냥 육체로는 로봇을 상대할 수 없다. 내 말대로 뒤로 물러서.
이미 뒤로 물러난 늙은이가 목숨을 걸 필요는 없잖아. 네 딸도 생각해야지!
내가 그 고철 덩어리들은 믿을 수 없다고 말했었잖아! 마지막에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인간 자신이라고 말이야. 젊은 놈들이 내 말을 듣지 않더니... 역시 경험이 부족해!
통신기 너머에서 근육질의 사내가 허벅지를 치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바크하우스!
난 지금 농담하는 게 아니야!
내 말도 중요하다고! 요즘 신병들은 내 생각이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지금 훈련 문제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고!
그래서 아머도 없는 신병들에게 어떻게 전투의 선봉을 맡기겠다는 거야?
웃음을 거둔 바크하우스는 갓 자라 손질되지 않은 흰 수염을 만졌다.
세계 정부는 아직 적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인지조차 분석하지 못했잖아?
과학 이사회와 세계 엔지니어 연합이 24시간 교대로 분석 중이야. 곧 결과가 나올 거라 믿어.
과학적인 건 잘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있어. 그 폭주한 로봇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다는 거야.
그리고 과학자들에게 분석할 샘플을 주든, 민간인을 보호하든, 모두 사람이 해야 하는 거잖아.
그건 정규군 중에 지상 방어군이 맡아서 할 일이야.
흥, 의료 캡슐과 기능형 아머에 가장 의존하는 건 바로 그 애들이잖아?
내가 키워낸 병사들인데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이건 네 책임이 아니야.
바크하우스가 그의 말을 끊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 같은 늙은 병사가 마지막으로 뭔가 좀 해보게 놔둬.
전선에 나간다고 해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시대가 변했어. 너는 그 폭주한 군용 로봇도 다 알아보지 못할걸.
우리가 전장에서 하는 일은 늘 한 가지뿐이었어.
뒤따라오는 자들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것.
네 말이 맞아. 우리가 시대에 뒤처졌다는 건 사실이야. 그래서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나서야 해.
미래는 젊은이들의 것이니, 우리는 그들에게 성장할 시간을 벌어주어야 해.
게다가 신병들 뒤에 숨어 있는 노병이 어디 있겠어?
밸러드는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새로운 통신이 그의 말을 끊었다.
옛 전우들과 합류하러 가야겠다. 먼저 갈게.
아, 참 깜빡할 뻔했군.
네가 보낸 그 녀석 말이야. 싹수가 아주 좋더라. 이번 내기는 내가 졌어.
하지만 이제 네가 내 시가를 가져갈 일은 없을 거야, 하하하!
안타깝지만, 네가 영상 통화를 켜지 않아서 너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볼 수가 없군.
바크하우스... 바크하우스! 콜록콜록...
밸러드가 다시 바크하우스의 소식을 들었을 때, 바크하우스의 이름은 수많은 전선 전투 보고서 중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한 문장이 되어 있었다.
통일 영웅 훈장의 전 수상자이자 오아시스 소대 제2분대 훈련소 교관 바크하우스. 북원 전선의 방어선에서 전사.
……
교관님.
지금 상황은 어떻지?
새로운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습니다. 각 구역 기지로 전달 중이며, 일주일 내에 효과를 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여전히 수장이 그렇게 쉽게 죽었을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중 정원과 정면충돌을 피하자는 목소리는 반년 전보다 줄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수장을 오래 따랐던 원로들입니다. 그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와타나베를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때로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장기적인 문제를 다루기 전에, 먼저 눈앞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는 게 맞아.
이건 모두를 위한 망각자의 약속이다. 지금 상황에서 와타나베와 내가 바뀌었더라도, 그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 믿는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계획대로 계속 진행해라. 지금이 가장 심적으로 흔들리기 쉬운 시기다. 적들도 우리에 대한 여론 조작을 포기하지 않을 거다.
각 부서에 통보해서 전투 의지를 흔드는 발언을 하는 이들을 경계하라고 전달해.
알겠습니다!
그 지지자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내가 직접 그들과 대화해 보겠다. 다른 의견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어떤 말은 직접 얼굴 보고 하는 게 좋겠지.
하지만, 군대는 하나의 지휘 방침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밸러드는 계단을 내려왔다. 하늘의 먹구름이 조금씩 짙어지면서, 햇빛이 영원히 뚫고 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더 버티기도 어렵군.
공기를 일그러뜨릴 정도의 열기 속에서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이 70도의 뜨거운 모래를 밟으며 행군하고 있었다.
너무 더워서 숨이 막혀.
초록 머리의 에베르트는 군인 중에서 체력이 가장 약해서, 대열 끝에 처져서 간신히 따라오고 있었다.
버텨봐. 내가 네 짐을 좀 나눠서 들어줄게.
에레이 섬 출신인 브루스는 소대 내에서 인정받는 착한 사람이자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인물로서, 항상 다른 사람의 짐을 덜어주려고 했다.
그의 옷도 땀에 젖어서 하얀 소금 얼룩이 생길 정도였다.
브루스, 너무 무리하지 마. 사막에서 쓰러지면 큰일이야.
모래가 너의 피부를 벗겨낼 테니까.
같은 에레이 섬 출신인 코아테스는 브루스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늘 브루스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이제 3킬로미터 남았어.
마지막으로 카자가 무겁게 말을 꺼냈다. 와타나베가 최근 며칠 동안 그에 대해 알게 된 정보 중 가장 많은 것은 카자가 민트차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민트차는 카자의 고향 특산물인 듯했다.
난 더는 못 버티겠어.
에베르트!
으읍...
브루스, 조금만 더 살살 다뤄!
체력 고갈로 쓰러진 에베르트가 모래 언덕에 얼굴을 박지 않게 와타나베는 재빠르게 몸을 던져 에베르트를 받쳐주었다.
와타나베는 코아테스의 "피부를 벗겨낸다."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정말 살살 한 건데.
내가 상처 소독 및 붕대 감기와 같은 고전 방법을 알고 있어서 다행이야. 소대 규칙에서는 의료 캡슐 사용을 금지하고 있잖아.
지난 11개월 동안, 바크하우스는 군용 기능형 아머 조작을 목표로 한 소대의 뇌 수용 능력 훈련을 지도 수첩에 나와 있는 대로 하지 않았다.
와타나베와 대원들은 끝도 없는 행군, 격투 및 사격 훈련으로 그 훈련을 대체했다.
교관님도 정말 너무... 구식이야. 훈련 조건이 원시적이라 해도 지금 시대에 체력 훈련을 고집하시다니, 게다가 상처가 나도 의료 캡슐을 사용하지 말라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긴급 상황에서 너를 살리는 것은 기계도, 신도 아니야.
오직 너 자신이다!
이 말은 바크하우스가 한 것이었다. 나머지 세 사람이 두 명의 부상자를 부축하며 야외 기지로 왔을 때, 의료 캡슐 사용을 신청하자 바크하우스가 처음으로 한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교관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불평 그만해.
됐다. 제대로 잘 감았어. 그러고 보니, 훈련 기간도 거의 끝나가네. 이제 곧 부대 배치가 시작되겠지?
맞아. 그런데 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예전처럼 지상 방어군에 들어가서 최전선에서 죽으려고?
11개월 동안 함께 지내면서, 이들은 서로의 계획을 잘 알게 되었다.
에베르트, 카자 그리고 와타나베는 모두 고용제를 선택했지만, 브루스와 코아테스는 지상 방어군을 선택했다.
한때, 브루스는 공군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밸런스 테스트에서 계속 탈락했다.
브루스가 왜 그렇게 고집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이유를 말한 적은 없으나, 같은 에레이 섬 출신인 코아테스는 뭔가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와타나베는 그 문제를 물어보는 무례는 범하지 않았다.
최전선에 나가는 건 죽으러 가는 게 아니야. 더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지. 내 얘긴 그만하고, 너는?
훈련이 끝나면 나는 고용제로 갈 거야. 그럼, 목숨을 특별히 아끼는 부자의 경호원이 되겠지.
그의 목소리에는 자조가 섞여 있었다.
돈 벌면서, 쉽게 산다?
맞아! 인생이란 돈과 생존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겠어?
설마... 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는 장면을 못 봐서 그런 걸까? 보기만 해도 메스껍고 어지러워지는 그런 거 말이야?
……
브루스에게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것처럼, 와타나베도 마음속에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너무 착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너무 겁이 많다고 해야 하나?
조금 익숙하지 않을 뿐이야! 진짜 전장에 나가게 되면... 괜찮아질 거야!
이 평화로운 순간에 와타나베는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럼, 나도 한번 지켜볼게.
지휘관님, 성함에 영점 에너지 엔진을 장착하는 개조안입니다. 검토 부탁드립니다.
극비 사항이라 단말기로 보낼 수 없었습니다.
부관은 두꺼운 서류 묶음을 건네주었다.
알았다.
신은 상대방에게서 받은 개조안을 넘기며 물었다.
내 기억으로는 1호 영점 에너지 원자로가 다음 달이나 되어야 첫 점화가 예정되어 있어. 그런데 이 시점에서 개조안을 제출한다는 건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닌가?
정비 부대는 이 프로젝트가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확신하는 모양입니다. 우주 항에서 술을 금지하지 않았다면, 원자로가 완공된 지난달에 벌써 샴페인을 터뜨렸을 겁니다.
아, 그리고 지휘관님, 몇몇 항로 연합 멤버가 몰래 보드카를 가지고 성함에 올라온 건에 대한 처분에 대한 승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주에 처분했던 거 아닌가?
또 새로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번에는 술 증류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 일은 나중에 처리하고, 정비 부대가 이렇게 일찍 개조를 시작하자고 한 이유가 뭐지?
그들의 말에 따르면, 영점 에너지 엔진의 출력구를 추가하는 것은 큰 공사가 아니라고 합니다.
에덴 Ⅱ형의 청사진을 가지고 있으니, 그 식민함선을 기반으로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군다나, 호위 목적으로 만들어진 성함은 개척용 식민함선에 비하면 구조가 훨씬 간단하기 때문에, 이번 개조는 더 수월할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숨겨진 이유는 그들이 에덴 Ⅱ형에 비해 너무 뒤처지기 싫기 때문일 겁니다.
그들 눈에는 자신들이야말로 우주 항해의 선구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덴 Ⅱ형의 설계에 대해선 인정하지만, 그래도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입니다.
난 그런 이유로 이 제안을 승인할 수는 없어.
그럼, 반려하시겠습니까?
이후 성함 전투군이 에덴 Ⅱ형을 호위하는 책임을 진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개조안은 다음 전체 회의에서 발의하겠다.
그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기뻐할 겁니다.
축하하기는 일러, 개조가 진행되더라도 전투군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리고 이건 방금 언급된 새로운 처분 통지서다. 몇몇 상습범들은 가두도록 해.
알겠습니다.
부관이 떠난 후, 신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떠 있는 것은 인간이 만든 우주 장벽으로, 궤도를 따라 18,750킬로미터나 뻗어 있는 우주 항이었다.
군인, 기술자, 후방 지원 인력 수십만 명이 우주 항에서 오가며 30척의 성함을 유지 및 업그레이드하고 있었다.
더 낮은 궤도에는 다기능 위성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인간의 눈, 귀, 입 역할을 하는 240개의 궤도 위성이 수많은 정보를 중계하며 우주와 지상을 연결하고 있었다.
성함, 우주 항 그리고 위성들은 하나의 족쇄처럼 모성을 인간의 손안에 가두고 있었다.
한때 모성은 인간에게 요람이자 감옥이었다. 그 결과 모든 인간이 중력과 생태계에 속박되어 지상에 묶여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인간은 그것을 정복하려 하고 있었다. 현재의 성과는 영점 에너지를 위한 기초 단계에 불과했다.
국제 우주 정거장
"떡대", 뭐 보고 있어?
w(?Д?)w
완전무장한 큰 키의 병사는 갑작스러운 호명에 깜짝 놀랐다.
헬멧 너머로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곁에 있던 동행 무인기가 대신 키 큰 병사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미안, 놀랐어?
우주 정거장 연구원들도 그가 말하지 않고 항상 무인기를 통해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몇 년 동안 같이 지내오면서, 그들의 조화는 표정 하나로 긴 문장을 대신할 정도가 됐다.
╮(╯▽╰)╭
정신 좀 차려. 안전 관리자라도 왔으면 어쩔 뻔했어?
(⊙﹏⊙)
"떡대" 오늘도 여기서 근무하는 거야?
(≧?≦)ゞ
지나가던 연구원이 "떡대"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국제 우주 정거장은 이론적으로는 보안 요원이 필요하지 않아서, 보안 부서 인원은 세 명뿐이었고,
보안 외에도 청소와 운반 등 여러 잡일도 맡고 있었다.
할 일이 많지 않은 데다 친화력도 좋은 "떡대"는 연구원들과 금세 친해져 마스코트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네가 이 창가 자리를 참 좋아하는 것 같네. 우주 항이 보여서 그런가?
왜, 우주 정거장이 지루하니 성함의 멤버가 되고 싶은 거야?
(?Д?*)?
됐어. 이제 그만 놀려.
"떡대", 우리는 먼저 실험실로 가야 해. 점심 같이 먹자.
( ???)?
두 사람이 떠난 후, 이름을 알 수 없는 전사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바라봤던 것은 사실 성함이나 우주 항이 아니라 우주 그 자체였다.
그에게 우주 산책에 대해 묘사했던 소녀는 그렇게 말했었다.
물속에 떠 있는 것 같지만, 온몸과 내장을 짓누르는 수압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래서 걱정도 없고, 구속도 없는 자유로운 상태라고 했었다.
그 경험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자신에게도 그런 기회가 올까?
(??_?`)
과학 이사회 지하 700미터
게슈탈트의 푸른 빛이 니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빛이 한 번 깜빡일 때마다 수백억 번의 연산이 이루어졌다.
이제 다 끝났다.
마지막 문자를 입력하자, 게슈탈트는 새로운 자체 검사를 완료했다.
시간이... 아직 30분 정도 남았네. 여기서 잠시 쉬어야지.
옆에 있는 케이블에 기대어 앉은 니트는 "황금시대의 뇌"를 올려다보았다.
이 거대한 양자 컴퓨터는 인간이 가진 지식과 정보를 모두 통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함의 설계도에서부터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문제까지 인간 문명의 모든 지혜가 이 안에 저장되어 있었다.
황금시대의 사회 운영은 이 강력한 연산 능력의 지원 덕분에 질서 정연하게 이루어졌다.
영점 에너지 원자로 건설부터 시민의 생일 축하까지 게슈탈트는 모든 사회 운영 시스템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게슈탈트를 인간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제 이 뛰어난 연산 능력의 도움으로 영점 에너지 프로젝트가 곧 현실화되려 하고 있었다.
게슈탈트의 타이틀은 곧 "인간의 첫 번째 기적"으로 바뀔 것이 틀림없었다.
연구원들은 이 타이틀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인간이 나락을 벗어나 새로운 항성 간 영역에 진입한 후에는 새로운 기적을 끊임없이 창조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 번 더 점검하자.
원래 설정해 둔 알람을 끈 니트는 다시 일어섰다.
유난히 푸른 빛이 다시 한번 밝아지며 깊은 우물을 비추는 듯했다.
퍼니싱 폭발까지 20일 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