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26 요람 속의 유행 /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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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2 최후의 체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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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까지 32.1시간 남았다.

라미아가 피를 씻어내고 다시 인간들 곁으로 돌아왔을 때, 크틸라는 이미 "노안"에 의해 멀리 유인된 상태였다.

그는 공격을 완전히 포기하고, 모든 주의를 회피에만 집중함으로써 간신히 치명상을 피했다.

...

잠시 보지 못한 사이, 눈앞에 있는 인간의 몸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괜찮아?

라미아가 묻고 싶은 것은 곪아가는 육체뿐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 숨겨진 마음을 묻고 싶었다. 아무도 이런 상황에서 정서 안정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침식이라고?

고개를 들어 크틸라를 한 번 바라본 라미아는 그제야 인간이 이합 생물과 근거리에서 접촉하면 얼마나 큰 피해를 보는지를 깨달았다.

이 인간 영웅은 살아서 돌아가더라도 절단이나 심각한 후유증을 감수한 것 같았다.

내가 가서 크틸라를 상대하는 걸 도울까?

그게 어디야?

알겠어.

라미아는 손을 내밀어 움직임이 느린 인간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피와 살로 뒤덮인 다리는 이미 형태를 잃을 정도로 곪아 있었다.

내가, 내가 업어줄까?

라미아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했다. 오는 내내 그랬다. 라미아는 아직도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인어는 자신의 긴 머리를 앞으로 정리한 뒤 몸을 숙여 인간 쪽으로 등을 돌렸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받쳐주려는 자세를 취했고, 다른 손으로는 여전히 알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한 손으로 지휘관을 지탱한 라미아는 다소 불안정하게 지휘관을 등에 업었다.

타들어 갈 듯한 곪은 상처는 라미아의 차가운 몸으로 인해 조금 편안해졌다. 동시에 그녀의 깨끗한 등 위에 붉은 혈흔이 눈에 띄게 남았다.

사과하고 싶었지만, 머리는 강타당한 것처럼 그녀가 달릴 때 전해오는 약간의 흔들림조차 견딜 수 없었다. 결국 지휘관의 머리는 그녀의 어깨에 힘없이 축 늘어졌다.

그... 이러면... 좀...

목이... 좀 가려워...

겨우 사과의 말을 반쯤 내뱉었을 때, 피가 끊어진 구슬처럼 코와 입에서 흘러내려 라미아의 얼굴과 긴 머리를 적셨다.

...

모두 퍼니싱과 마인드 표식 오염 때문이었다.

사과하지 않아도 돼.

마침내 수리해 놓았던 송신기 쪽에 도착했다. "쿠로노 카나"와 "XX003"이 적힌 신분 카드를 모두 인식 구역에 놓았다.

녹색 표시등이 켜지고, 조작 화면도 무사히 활성화됐다.

이러면 됐어.

라미아는 피범벅이 된 인간의 몸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떨리는 손을 꽉 붙잡고, 손가락과 손톱의 곪은 곳에서 전해지는 고통을 억지로 무시한 채, 혈흔을 남기며 기억 속 번호를 눌렀다.

눈앞 단말기 스크린에 마침내 연결 중이라는 아이콘이 떴다.

길게 느껴지는 16초가 지난 뒤, 이름 모를 병사 한 명이 통신 화면에 나타났다.

누구세요? 화면이 흐릿합니다.

잠깐. 침착해야 했다. 평범한 구조체 병사에게 이런 말을 해봤자 소용없을 것 같았다. 흐릿한 화면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도 없었고, 병사에겐 엘리트 소대를 모두 파견할 권한도 없었다.

집행 부대가 이런 녹음 메시지만으로 전군을 출동시킨다면, 승격자들은 이미 이 방법으로 함정을 만들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사람이 배신자 중 한 명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휘관의 정보를 그에게 알려주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다. 차라리 그에게 연결을 요청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이 암호가 뭐죠?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요? 어쨌든 연결해 드릴게요.

이번 기다림은 단 3초에 불과했다. 화면에 세리카의 모습이 나타났다.

?

세리카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세리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듣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왼쪽에 있는 조작 콘솔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그녀의 표정과 반응이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잘못됐는지 말하자니, 오염된 마인드 표식과 함께 뇌도 거의 사고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렇게 되어선 안 됐다.

앞의 화면이 신기루일까? 빈사 상태에서 본 구원의 환상일까?

듣고 있어요.

세리카의 얼굴이 마치 조각된 가면처럼, 끊기는 화면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왜 그래?

조심해!

라미아는 인간의 코트를 붙잡은 뒤, 송신기 앞에 있던 인간을 강제로 스크린에서 멀어지게 했다.

다음 순간, 조작 콘솔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고, 수많은 진홍색 전류 속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중상을 입어 평소보다 둔한 몸이 순간의 폭발을 피하지 못해 파편이 허벅지에 박혔다.

약제 증폭으로 인해 느껴지는 통각은 상처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자 다리에서는 몸을 지탱할 마지막 힘이 빠져나갔고, 신경은 뿌리째 뽑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 쌓여 있던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자마자, 늦게 찾아온 현기증이 머릿속을 덮치며 눈앞이 조금씩 검게 물들어갔다.

!

하얀 백지장이 되어가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자, 눈앞의 어둠이 서서히 사라졌다.

시야가 회복되었을 때, 지휘관은 식은땀을 흘리며 제어실의 한구석에 주저앉아 있었다. 다친 다리는 고통 속에서 경련을 일으키며, 다시는 일어서기 어려운 상태로 보였다.

그...

라미아가 무언가를 말하려다 멈췄다.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라미아는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 웅크려 앉았다. 그리고 인간과 비슷한 높이에서 눈앞의 공기를 툭툭 건드렸다.

순간, 주변에 있던 적색 안개가 라미아의 손끝에 따라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

괜찮아?

숨 쉴 필요도, 퍼니싱을 걱정할 필요도 없는 승격자는 인간이 직면한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이 사람을 폭우 속에서 떨고 있는 작은 동물을 바라보듯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라미아는 진심으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조각난 송신기를 바라봤다.

내가 조작할 때 뭔가를 잘못 건드린 건 아니겠지?

라미아의 의심을 들은 인간은 더 이상 논쟁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저렴한 희망이 거대한 거품처럼 눈앞에서 터져버렸다. 이제 눈앞에 놓여 있는 것은 칠흑 같은 심연뿐이었다.

운명은 비웃으며 커다란 입을 벌리고, 생명이 스스로 걸려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죽음을 통해 유일한 저항의 기회를 얻고자 했다.

라미아

야! 야!

죽음까지 26.2시간 남았다.

긴 휴면 끝에, 인간은 드디어 극심한 통증 속에서 정신을 되찾았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사지의 감각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피와 살로 만들어진 몸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약제의 영향 때문인지, 조금씩 빼앗겨 가는 행동력과 반대로 사고는 점점 더 뚜렷해졌다.

간신히 눈을 굴려보니, 자신이 버려진 수족관 통로에 누워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손 옆에는 주사기와 수액이 버려져 있었다. 약물 이름을 보니 진통제와 복합 전해질 주사액인 것 같았다. "노안"이 다녀간 걸까?

깨났어?

인어는 알을 안고 가드레일에 기대어 있었다.

라미아

응. 의식을 잃은 널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이곳으로 옮겨놨어.

"노안"이 약을 가져와서 간단히 치료해 줬어.

라미아

라미아는 의사가 아니야! 게다가 그때 난 퍼니싱을 제어하고 있었어. 그렇지 않았으면, 수격자가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침식이 악화됐을 거야.

게다가 네 피부 상태가 너무 나빠서 의학 지식이 있는 사람조차 주사를 놓을 자리를 찾기 어려웠어. "노안"이 네 옆에 앉아서 일곱여덟 번이나 찌른 뒤에야 겨우 성공했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라미아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꼬리는 전보다 훨씬 크게 흔들렸다가 옆의 가드레일에 부딪히고 나서야 조용히 멈췄다.

라미아

...

라미아

바로 갔어. 승격자를 매우 싫어하는 것 같던데?

공기 중에 다시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라미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해?

혹사의 의식 안정도를 보면, 크틸라한테서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

혹사가 무너지면, 이곳은 또다시 붕괴 상태로 돌아가게 될 거야.

그럼, 나도 이곳이 붕괴한 후의 수압 문제를 걱정해야 해. 여기가 5000미터 이하지? 난 최대 4000미터까지밖에 견디지 못해.

게다가 이합 생물도 많아. 그것들이 한 번 풀려나면 사방에서 공격해 올 거야. 그것들을 통제하려면 알을 사용해야 해.

라미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뒷말은 알 수 있었다. 지휘관이 없다면 의식의 바다가 혼란스러운 라미아는 싸우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셋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라미아

...

고민 끝에 라미아는 잠시 이 문제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라미아

여기에 막 들어와서야 이 구역이... 진짜 건축물이라는 것을 알아챘어.

라미아

버려진 잠수함이나 그 위에 지은 해저 기지 같은 거겠지?

라미아

응. 밖에서 계속 붕괴하고 있는 구역과는 완전히 달라.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는 전에 대부분의 시간을 어떤 이합 생물체의 체내에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무너진 것들은 아마 혹사가 인간을 보호하려고 만든 방어 장치였겠지?

그런 것들이 없고 승격자가 퍼니싱 농도를 제어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금방 침식돼서 죽었을 거야.

라미아

여기에 도착해서야 이 이합 생물이 일부 해저 유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

유적 통로의 문들도 대부분 혹사가 만든 것 같아. 아래에는 적조의 암류가 숨어 있어. 그래서 이곳은 미로처럼 복잡하고 기괴해.

유독 이 문, 이 통로만은 놓친 것 같아. 여기까지 와서야 진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어.

라미아

연결 부위를 점검해 봤는데, 이합 생물이 완전히 붕괴하면 연결 부위도 끊어지게 되어 있어. 그러면 이 유적들도 물 속으로 가라앉으면서 수압에 의해 붕괴할 거야.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기껏해야 20~30시간 정도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라미아의 말을 들은 인간은 무언가를 생각하듯 조용해졌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미아

다른 해결책이 있을까?

라미아

절대 쓰고 싶지 않다면... 크틸라 때문에 그래?

그녀가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아. 하지만 계속 행동하는 건 여전히 너무 위험해.

알과 너만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만, 넌...

라미아

...

(온몸이 곪아 빈사 상태인 마당에 어떻게 다른 이들을 아직도 걱정할 수 있지?)

깊은 한숨을 내쉰 인간은 그 단순한 호흡 동작에 고통을 느껴 무의식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웅크리는 동작은 피부와 근육에 새로운 통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곧 썩어갈 몸은 극심한 고통의 수렁 속에서 발버둥 치며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라미아

여기선 절대 안 돼.

라미아

왜 크틸라를 이겨야 해?

크틸라는 본·네거트를 도와 이합 생물을 통제할 수 있어. 이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야.

라미아

...

크틸라가 살아서 떠나게 해서는 안 됐다. 그건 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탈출하는 것도 한 명의 생명을 희생해야 하는데, 도대체 무슨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그들은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 설령 공중 정원이 크틸라가 해면을 떠나는 소동에 즉시 출동하더라도 현장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가 되면... 본·네거트는 이미 크틸라를 데리고 떠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될 것이다.

라미아는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라미아를 강제로 이곳에서 죽게 할 여력이 있다 해도, 크틸라의 두 번째 의식이 된 그녀가 공중 정원의 집행 부대가 도착할 때까지 제자리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라미아는 오히려 증오를 품고 도망친 뒤, 모든 인간에게 복수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 방법은 없다. 왜 복제 의식을 폭파할 때 몇 개 남겨두지 않았을까?

복제된 의식들도 살아있는 구조체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에 서 있는 이들과 별반 차이 없다.

단지 그들이 복제 의식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생사를 마음대로 결정한다면...

지금 직면한 문제는 지휘관의 죽음뿐만이 아니었다. 크틸라가 떠난 뒤에 초래할 재난도 있다. 그건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초래하게 될까?

해결 방법이 하나 더 있다.

지휘관이 크틸라의 두 번째 의식이 된다면, 최소한 크틸라의 행동을 지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라미아가 협조하지 않더라도, 크틸라가 본·네거트와 함께 떠나지 못하게 방해할 수 있고, 공중 정원의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끌 수 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체스 플레이어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조용히 체스판에 놓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며 다음 턴을 시작했다.

라미아

소원을 이룰 기회야.

라미아

좀 더 먼 곳에 가보고 싶어.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쫓아가고 싶어. 그들과 같은 위치에 서서, 그들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추구했던 별하늘로 들어가고 싶어. 우주 속에 숨겨진 진리를 찾아내고 싶어.

라미아

...

라미아

바라지 않아.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인간도 문명도 죽게 되어 있어. 그런 건 수없이 봐 왔어.

우주조차도 결국 영점으로 돌아간다면, 생명은 그저 소멸하기 전의 먼지에 불과해. 이런 것들과 비교하면... 아무도 없는 미래가 무슨 상관이야?

라미아는 앞을 바라봤지만, 시선의 초점은 별바다 속 허무함에 녹아 들어 있었다. 그녀의 영혼은 여전히 그 환영들에 사로잡혀, 먼 곳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라미아

난 원래 승격자야.

라미아

어떤 모습이 나다운 건데?

라미아

...

라미아

아니. 그건 진짜야. 하지만 인간은 언젠가 죽게 될 것이고, 지구의 문명도 멸망할 거라는 것도 사실이야.

모순되지? 그래도...

라미아

네가 그렇게 말해도 난...

라미아

아니야. 물론 그 이유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네가 했던 말 때문이야.

하지만 이건 별개의 문제야. 내가 알을 갖고 있으면 널 구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어. 하지만 내가 "그녀"를 내려놓으면 그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인간이 그녀 앞에 엎드려 침묵했다.

라미아

힘들게 얻은 기회야. 이제야 비로소 원래의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됐어.

더 이상 릴리안이나 나와 협력하는 이들로 위장하지 않아도 안심하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됐어.

라미아

!

지휘관의 말이 라미아의 손바닥에 바늘처럼 박혔다.

그렇다. 그녀는 "알"이 가져다준 기회를 통해 "라미아"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이디는 이름과 자유를 빼앗기고, 도구로 전락했다.

하이디에게 사용 가치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이합 생물에 융합된 이는 선택권이 없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선택권이 없는" 건 과거의 라미아도 마찬가지였다.

라미아

그렇지 않아. 난 그... 그렇지...

라미아는 슬픈 눈으로 인간을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을 믿어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 자신 때문에 피로하고 실망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는 것에 슬퍼했다.

지금의 라미아는 더 이상 하이디를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여기고 싶지 않았다.

라미아

하이디... 모두에게 버려지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느낌은 나도 이해해.

그래서 그런 소원들이 생긴 거야.

고개를 든 라미아는 현실 세계를 그리워하는 죄수처럼, 기억 깊은 곳에 있는 별하늘의 환영을 바라보았다.

연산에서 보았던 찬란함이 라미아를 여전히 끌어당기고 있었고, 그녀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라미아는 알고 있었다. 라미아가 별하늘로 들어가 우주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것은 힘을 숭배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동경하는 종착점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라미아는 자신의 입지를 보장받고 싶어 했지만, 품에 안긴 알이 하이디라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었다.

라미아는 결코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한 많은 사람들에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누군가"가 "전체 인간"이나 "인간이라는 개념"으로 바뀌면, 라미아에게는 그것이 자신과 무관하고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됐다.

라미아는 여전히 익숙한 그림자를 쫓는 이탈자였다.

망설이는 라미아의 표정을 본 인간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라미아

좋아한다고?

라미아

...

라미아

...

라미아

퍼니싱...

라미아

난...

나도 알아. 하지만...

라미아가 말을 이어가려던 찰나, 멀리서 크틸라의 애달픈 울음소리가 들렸다.

크틸라가 이곳을 발견했어!

크틸라를 멀리 유인하고 돌아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