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안"과 마주하기 전에, 인간은 "그" 노안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 막지 않았다면, 그대로 혹사와 같이 갔을 거냐고?
음... 그럴 가능성이 높아. 혹사는 내가 긍정적인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계속 막았으니까.
한 사람의 기억이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멈춰버리고, 자신이 한 모든 일이 헛된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면, 다른 길로 빠지게 되는 건 불가피한 일이겠지.
아니. 그때의 내가 승격자가 되는 게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더라도, 혹사는 결코 날 승격자로 만들지 않았을 거야.
혹사는 자신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상황을 참지 못해. 기껏해야 날 수격자로 만들었을 거야.
…………
익숙한 모습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좁고 긴 터널에서 고개를 돌렸다.
이 소리는...
?
"노안"이라는 이름은 기억하면서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노안과 매우 닮은 청년이 혼란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지금의 내 기억은 완전해.
네가 이 말을 하면서 왜 걱정하는지 알아.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 공중 정원에 "진짜 내"가 있지? 그렇지?
수격자가 되고, 그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서서히 이 모든 일들이 기억나기 시작했어.
지휘관, 와타나베, 리, 시몬 지휘관, 파르마 리더와 릴리안이 기억났어.
나도 한때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확하게 선택한 적이 있다는 것도 기억났어.
내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러는 너야말로 어떻게 "노안"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거지?
네가 과거에 기억 상실 상태에 있었던 건 사실이야.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곳에는 기억을 가지지 않은 네 클론들이 많이 있어.
설마... 네가 진짜야?
하지만 넌 우리가 만났던 그때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네 기억도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그건 혹사가 자주 쓰는 수단이니까. 아니면...
내게 증명할 필요는 없어. 그건 네가 이곳을 나간 후 겪게 될 문제야.
나는 다른 "너"를 잘 보지 못했어. 하지만 한 번 만져본 적은 있어. 그리고 그 클론들은 모두 실험실 옷을 입고 있었어.
나도 몰라. 혹사가 나에게 절대 말해주지 않는 일들이 있어. 특히 이 눈을 잃고 나서부터는 크틸라 계획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했어.
혹사가 어떤 면에서는 다루기 쉬운 부분이 있지만, 모든 것을 속이는 건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야. 그래서 나한테는 유용한 정보가 별로 없어.
혹사가 널 이곳에 두고, 크틸라의 가족에 합류시켜서 그녀의 손안에 있는 알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만 알아.
아니. 하지만, 이 클론들이 겨울 요새 근처에 있는 비밀 실험실에서 옮겨져 왔다는 얘기를 들었어.
지금 넌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간절히 찾고 있는 지휘관일까? 아니면 그들이 신경 쓰지 않는 5명 중 하나일까?
아니면 네가 본인이고,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5명 중 한 명을 찾아서 더 이상 널 찾지 않을까?
청년은 자조적인 냉소를 지었다.
고민해 봐야 소용없는 이런 문제보다는 먼저 이곳에서 탈출해야 했다.
고민해 봐야 소용없는 이런 문제보다는 먼저 이곳에서 탈출해야 했다.
그건 왜 물어봐? 어차피 날 기억하지도 못하고, 기억하는 것도 내가 아니잖아.
차라리 질문을 바꿔.
인간형 자율 취미 그룹이랑 비슷하지.
적조 속에는 죽은 이들의 정보가 남아 있어.
크틸라는 그녀의 생명의 나무를 통해 이 정보 중 맞아떨어지는 큰 조각들을 모아 인간형 이합 생물에게 주입했어.
그녀는 이 조각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상호 보완하며 조화를 이루도록 했어. 마치 인간형 자율 취미 그룹처럼,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든 셈이지.
혹사가 그러던데, 의식 융합의 방법도 인간에게서 가져온 것이라고.
이곳으로 도망친 사람들이야.
맞아. 그들 대부분은 바로 그 전제하에 이곳으로 온 거야.
밖에 남아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희망? 어디에 희망이 있다는 거지?
힘내자, 노력하면 반드시 수확이 있기 마련이야, 이런 말을 웨치고 행동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릴까? 목숨을 걸고 일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음식과 물을 얻으면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을까?
동물도 먹이 외의 일로 슬퍼할 수 있는데, 하물며 인간은 더 그렇겠지.
안락한 "귀족"들은 "하층민"들이 이런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을 쉽게 믿는다고 비웃기만 하겠지. 하지만 어떤 일을 겪어서 그런 이야기들을 믿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을걸.
"어머니"의 위로와 재탄생의 소문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을 거야.
더군다나 이건 단순하고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 낙원에서 며칠만 머물면서 몇 번의 주사를 맞으면...
깨어난 후에는 끊임없이 곪아가던 그 몸을 벗어 던지고, 크틸라의 자궁 속에서 불로불사의 바다 마법 소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어.
몸을 독점할 수 없지만, 의식은 인간을 초월해 모든 것을 이해하고, 거슬리는 사람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그래서 "그녀들"이 어쩔 수 없이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라 해도, "그녀들"을 동정하지 말고, "그녀들"과 화해하려고도 하지 마.
청년은 담담한 어조로 살육의 필요성에 대해 진술했다.
"그녀들"이 인간으로서의 일부를 아직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하는 거야.
황금시대라 할지라도, 평범한 사람 앞에 데스노트를 떨어뜨린다면, 그 위에 게임 제작자의 이름을 쓰는 사람이 꽤 많을 거야.
지금 같은 환경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지. 모든 갈등과 충돌이 격화된 상황이잖아. 그리고 "그녀들"은 절망의 끝에 몰린 집합체니까.
힘의 무서움을 느껴보지 못한 채, 하룻밤 사이에 "무력한 존재"에서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는 평범한 사람은 반드시 다음 마왕이 될 거야.
사실 너도 알고 있잖아? 그런 생물과는 담판할 가능성이 없다는 걸. 대화가 가능한 생물을 보고 여전히 희망의 끈을 잡고 싶었던 것뿐이잖아.
마지막 주사 맞았어? 널 볼 수는 없지만, 피 냄새는 맡을 수 있어.
이곳에 남아 바다의 마법 소녀로 환생하고 싶어?
어려워. 그래도 제어실로 가서 네 동료들을 호출할 수는 있어. 그곳이 유일하게 신호가 잡히는 곳이거든. 내가 대략적인 경로는 알려줄 수 있어.
하지만 네게 접속 권한이 있는지는 보장 못해. 접속되더라도 다른 승격자들한테 연결될지도 몰라.
그리고 혹사에게 발각될 가능성이 높아.
어.
지휘관의 질문에 청년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직접 크틸라를 몰고 돌아가는 거야.
우린 지금 크틸라의 자궁 안에 있어.
지나치다고? 넌 지금 크틸라의 자궁 안에 있잖아.
그는 표정 없이 주변을 가리켰다.
이 공간 자체가 거대한 이합 생물이야. 풀리아 삼림 공원의 그 인간형 변종처럼 말이야. 이곳도 크틸라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 있지.
여기서 죽은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흡수되어 크틸라의 자궁에 받아들여지고, 그녀에 의해 다시 태어나.
혹사가 그렇게 부르는 걸 좋아해. 그 외에도 "거대한 고래", "성수" 같은 다른 이름들도 있지만, 그것이 본질을 바꾸지는 못해.
우리가 있는 이 거대한 자궁은 심해 밑바닥에 고정되어 있어. 난 이것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기 위해 크틸라의 자궁을 속박하고 있는 족쇄를 풀 기회를 계속해서 찾고 있었어.
그래야만 재앙이 되기 전에 다른 이들에게 발견되어 제때 제거할 수 있거든.
복제된 의식의 바다가 보관된 저장고가 아직 남아 있다면 가능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때는 혹사가 가져오는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할 거야.
자궁을 제어할 "방향키"를 되찾아야 해. 그리고 수압을 견딜 수 있는 이를 찾아, 심해로 잠수해 자궁 외부에 고정된 족쇄를 풀어야 해.
크틸라를 제어하는 또 다른 의식이야.
부두와 로키에 대해 알고 있어? 크틸라는 미친 사람 같아서 또 다른 이의 의식이 그녀를 안정시켜 줘야 해.
크틸라 본인과 그녀의 자궁은 각각 다른 의식으로 제어해야 해. 그러니까 크틸라와 2개의 안정된 의식의 바다, 총 3개가 필요해.
1개라도 부족하면 지금처럼 계속 붕괴하고, 우리도 바닷속에서 죽게 될 거야.
아마 그럴 거야. 하지만 크틸라가 살아 있는 한, "요람"은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어.
아마 그럴 거야. 하지만 크틸라가 살아 있는 한, 그녀의 자궁은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어.
조건은 2가지야. 첫째는 의식의 바다가 충분히 안정적이어야 하고, 둘째는 크틸라 본체에 받아들여져야 해.
그녀에게 미움받으면 거부 반응이 생겨 몸 밖으로 미리 배출되고, 그녀의 아이가 되어버리지.
이 조건들을 갖춘 다음, 그녀의 자궁 안에서 죽기만 하면 돼. 여기 곳곳에 "생명의 나무"의 "뿌리"가 묻혀 있어서 언제든 적조를 통해 의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
아니. 아무도 그녀와 오랫동안 공존할 수 없어. 그녀는 이 의식이 산산조각 나기 전에 상대를 그녀의 아이로 만들어버릴 거야.
바닥을 기어다니는 말미잘이 될 수도 있고, 바다 마법 소녀로 변할 수도 있어. 아니면 어떤 알 속에 녹아들 수도 있어.
두 번째 방법은 어떻게든 의식이 충분히 안정된 이를 희생시켜 두 번째 의식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이는 세 명뿐이었다. "노안", 라미아, 그리고 지휘관이었다.
통신이 연결되지 않아서 이 방법을 써야 한다면, 희생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는 누구일까?
이런 곳에서 노안을 만난 건 끔찍한 농담 같았다.
그가 실명한 이유도 모른 채, 기억의 어느 부분이 결여된 줄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를 "두 번째"로 희생시켜야 하는 것일까?
뭐?
지금 상황에선 노안이 말한 대로 제어실에 가서 지원군을 호출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눈앞의 둘만으로는 절대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매우 긴박한 상황이었다. 지휘관의 몸에 새겨진 죽음의 카운트다운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합 생물을 싣고 있는 이 공간이 육지로 향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재난을 초래할 것이었다.
집행 부대는 심해에서 전투할 수 없다. 그러니 크틸라를 데리고 바닷속에서 벗어나 수면 위로 올라가야만 집행 부대가 크틸라와 그녀의 자궁을 모두 소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또다시 한 사람의 죽음을 필수 조건으로 삼아야 했다.
그렇다. 아직 희망은 있었다. 지휘관은 그를 데리고 함께 움직이면서 통신과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 했다.
"노안"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머리를 살짝 돌렸다.
…………
제어실에서 호출했는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으면 어떻게 할 건데?
…………
청년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계획에 가볍게 웃었다.
좋아. 네 계획대로 시도해 보자.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말을 마친 노안이 대략적인 방향을 가리키고는 돌아서서 걸어가려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러.
어느새 "노안"이 와서 도와주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지금 앞에 있는 이는 더 이상 노안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와서 도와줄 리도 없었다.
혹사의 큰 계획을 방해 하러 가.
…………
청년은 남은 무기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알겠어. 그렇게 하자.
여긴 곧 무너질 거야. 원래 크틸라는 마지막에 보러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네.
"노안"은 눈을 감고 망설이는 이유에 대해 절반쯤 말했다.
네가 말한 것처럼, 크틸라는 반드시 죽여야 해. 하지만 나에게는 그녀의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 이렇게 끊임없이 죽은 자들을 낳는 건 그녀의 본의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소원이 뒤틀린 결과야.
"노안"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모두가 어머니에게 구원을, 받기를 갈망하고 있지만, 누가 어머니를 구할 수 있을까?
네 몸에 난 상처를 본 뒤에 다시 한번 그 말을 해보는 게 어때?
하지만 크틸라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없어. 이합 생물의 몸은 몇 번을 죽여도 퍼니싱 속에서 치유되니까.
맞아. 그래서 내가 "알겠어."라고 한 거야.
하지만 크틸라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없어. 이합 생물의 몸은 몇 번을 죽여도 퍼니싱 속에서 치유되니까.
해결 방법을 찾으려면, 공중 정원 같은 조직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
가자.
"가자."는 제스처를 취한 노안은 전혀 다가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난 이미 수격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