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26 요람 속의 유행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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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2 질식의 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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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잃고 광기에 빠져가는 크틸라"와 "알을 얻고 물 만난 고기처럼 자유로워진 라미아"와는 달리,

그 붕괴 속에서 모든 것을 잃은 인간 지휘관은 하층 웅덩이로 떨어졌고, 물살을 따라 깊은 우물로 추락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지진은 마치 거대한 물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계속되고 있었다.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우물 입구를 올려다보며 위로 기어 올라가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다시 우물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부상자에게 방금 전의 전투는 한계였다.

깨어난 후 줄곧 슈트롤의 도움에 의지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이별에 지휘관은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성갑충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다. 우연히 바렐리아 지휘관과 다른 대원들이 함께 걷는 모습을 본 것이 전부였다.

전장에서 희생과 죽음은 흔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못했다.

주머니를 만지자, 슈트롤이 남겨준 사탕이 만져졌다.

시원한 박하 향과 저도수 알코올에 흐릿했던 정신이 조금이나마 선명해졌다.

남은 사탕 포장지를 꽉 쥔 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하지만 몸 상태는 의지와 완전히 반대였다. 천이 상처를 스칠 때마다 피부가 벗겨지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고, 추위와 떨림이 조금씩 몸을 옥죄이고 있었다.

체온을 확인하려고 손을 이마에 올려보았지만, 손에 닿은 것은 끈적끈적한 붉은 핏자국뿐이었다.

마인드 표식의 오염 상태도 나아지지 않았다. 억누를 수 없는 혼란 외에도, 많은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생각들이 이 혼란에 가세했다.

하지만 연결은 상대방에게 단단히 붙잡힌 것처럼 일방적으로 끊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격려하는 말을 되뇌며 반드시 나아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다시 위로 기어 올라가려 해도 그저 헛수고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에 완전히 갇혀버린 건가? 하지만 나간다고 해서 뭘 얻을 수 있을까?

수많은 이합 생물, 이길 수 없는 크틸라 그리고... 진짜 모습을 드러낸 승격자.

절망이 곰팡이처럼 마음속에서 자라났다. 그럼에도, 지휘관은 여전히 사방을 더듬으며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어두운 우물 바닥에서 한순간 환영 같은 그림자가 스쳐 갔다. 그것은 길을 안내하는 작은 생명체였다.

그것이 구석구석을 오가며 무언가를 가리키는 듯했다.

거기에는 더러운 가방 하나가 놓여있었다.

가방에는 압축 비스킷 반 봉지, 혈청 한 개, 비수 한 자루, 총알 수십 개, 2알만 남은 해열진통제가 들어 있었다.

어떤 스캐빈저가 잃어버린 짐 같았다. 하지만 시기가 너무 적절한 나머지 일부러 이곳에 놓아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런 물자를 거부할 여유가 없었다. 설령 물자들의 출처가 불분명하고 의심스러워 보여도 말이다.

맛은 보통 압축 비스킷 맛이었다. 목이 마르고 삼키기 어려운 것 외에는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비스킷과 마찬가지로 혈청도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방금 비스킷을 삼킨 목이 더 이상 강력한 효과의 알약을 견디지 못하고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무력한 지휘관은 자신을 아래로 밀어내던 물살을 찾아보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물살이 안전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때 우물이 갑자기 더욱 세게 흔들리더니, 얼마 남지 않은 고인 물도 바닥으로 스며들어 사라져 버렸다.

입안에서 퍼지는 약의 쓴맛이 현재 어려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약을 삼키는 데만 거의 10분이 걸렸다. 그리고 위쪽 우물 벽이 다시 흔들리더니,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기울어진 우물 벽 옆 입수구에서 바닷물이 조금 흘러나왔다. 그리고 바닷물을 따라 떠내려온 반병의 물과 한 묶음의 지혈 붕대가 지휘관을 맞출 뻔했다.

구겨진 플라스틱병을 주워 뚜껑을 연 지휘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냄새를 맡아본 뒤, 용기를 내어 한 모금 마셨다.

조금 전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물건 자체에는 문제없어 보였다. 문제는 이 우물이었다.

지혈 붕대로 팔의 상처를 간단히 감싼 후, 방금 얻은 비수를 집어 들고 다시 한번 위로 기어 올라가려고 했다. 보급품과 도구 덕분에 이번에는 훨씬 수월했다.

중간까지 올라갔을 때, 흔들림이 또다시 전해지면서 지휘관이 걱정했던 것처럼...

수많은 금속 난간이 우물 벽을 뚫고 나와 입구를 막았다.

충격 속에서 더 이상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버틸 수 없게 되자, 다시 우물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혹사가 마지막 주사가 남았다며 꼭 살아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다시 비수를 잡고 재도전할 준비를 하려던 순간, 발밑의 지면이 조금 울퉁불퉁해진 것을 느꼈다.

우물 입구에서 들어오는 빛을 이용해, 그 부분이 글자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여▁▂에 있어. 밖▂▄▁ 위험해.

마인드 표식의 오염이 역겨운 분노를 일깨웠다. 그러면서 이성을 삼켜버린 분노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런 감정은 한 번 터지면 완전히 발산되기 전까지 멈추지 않았다.

연속적으로 쏟아내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자신의 비참하고 혐오스러운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표식 오염으로 레븐쉬와 같은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거의 붕괴 직전의 인간은 눈물과 함께 벽에 돌출된 글자를 비수로 찌르기 시작했다. 칼날을 휘두르는 도중 자신이 다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우물은 더욱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돌출된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이 벽이 살아 있는 것처럼, 이합 생물의 일부분인 것 같았다.

미안해. 이곳에 ▁▆▁▂ 있어. ▄▁▂위험해. 이곳에 ▂▁▄ 있어. ▃▆ 위험해. ▃▁▂▆ 있어. ▅▂▄▂ 위험해. 이곳에 ▂▄▂ 위험해. 이곳에 ▁▅아 ▁▂어. ▂▄▁ 위험해. 이곳에 ▁▂ 있어. ▁▂▄ 위험해.

우물은 더욱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돌출된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이 벽이 살아 있는 것처럼, 이합 생물의 일부분인 것 같았다.

미안해. 이곳에 ▁▆▁▂ 있어. ▄▁▂위험해. 이곳에 ▂▁▄ 있어. ▃▆ 위험해. ▃▁▂▆ 있어. ▅▂▄▂ 위험해. 이곳에 ▂▄▂ 위험해. 이곳에 ▁▅아 ▁▂어. ▂▄▁ 위험해. 이곳에 ▁▂ 있어. ▁▂▄ 위험해.

▁▄▂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크틸라도 ▁▂▄▁

우물 입구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내가 ▁▂▄▁ 전까지 이곳에 남아 있어. 밖은 위험해.

죽어가는 사람이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미안해. 이곳에 ▁▆▁▂ 있어. ▄▁▂ 위험해. ▁▂▅▂▄ 위험해. ▁▄▂ 위험해.

울퉁불퉁한 벽에 있는 글자가 절규하듯 인간에게 이곳에 남아 달라고 계속해서 애원하고 있었다.

방금 지휘관이 한 말을 믿는 듯, 주변의 떨림이 조금씩 가라앉았고, 우물 입구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우물 입구가 거의 폐쇄되자 주위는 어둠에 잠겼다.

진통제의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자, 피로감이 온몸에 몰려왔다.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지휘관은 우물 벽에 기대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4월 16일

새벽 4시

4월 16일. 새벽 4시.

지정된 구역에서 철저한 수색을 진행하던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수색 범위를 오래된 폐허의 병원으로 좁혔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지하 영안실에 잠입했다. 그리고 리브가 열세 번째 시체 냉동고 뒤에서 비밀 문을 발견했다.

...

그레이 레이븐 소대 앞에 가장 절망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지... 휘관님...

참을 수 없는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밀 문 뒤에 있는 방 안에는 같은 얼굴을 가진 6구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어떤 건 경직됐고, 어떤 건 부패하기 시작했으며, 어떤 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어떤 상태에 있든 간에, 이 시체들은 모두 비참한 표정으로 죽기 전에 겪은 모든 일을 말하고 있었다.

...

루시아는 의식의 바닷속에서 끓어오르는 고통을 억누르며, 떨고 있는 리브의 손을 잡았다.

리브. 리.

어떤... 어떤 지휘관님의 몸에 묻은 혈흔은 아직 마르지 않았어요.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니, 먼저 확인해 봐야 해요.

어떤 답이 나오든 간에... 클론이든, 승격자의 장난이든, 우리는... 우리는 모두...

알겠어요.

리브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루시아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부드러운 외모의 소녀가 먼저 감정을 추스른 뒤, 피투성이의 몸 앞으로 다가가 하나씩 생명 징후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리는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지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리?

리는 듣지 못한 듯했다.

리!

루시아가 리의 어깨를 세게 두드리자, 리는 먼 시간 속에서 현재로 돌아온 것처럼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다른 방을 확인하러 가요. 포기하긴 일러요!

리는 고개를 끄덕인 뒤, 핏자국이 가득한 장소를 조용히 떠났다.

리는 "포기"한 것도 그 장면을 보고 멘탈이 나간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너무나도 익숙했을 뿐이었다.

왜 익숙하게 느껴지는 걸까?

먼지가 쌓인 격리벽을 부순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썩은 냄새와 핏자국을 지나 깔끔한 공간을 발견했다.

그 공간에는 비어 있는 휴면 캡슐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중 마지막 캡슐 안에만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누워 있었다.

이 지휘관님은... 아직 살아 있어요! 루시아. 구조 요청해 주세요!

들어올 때 이미 했어요. 아마 오는 길일 거예요.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걸까?

그레이 레이븐 소대 세 명은 아직 심장박동이 느껴지는 육체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진짜 지휘관이 이렇게 사라져 버린다면, 그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있을까?

진짜 지휘관이 돌아온다면, 이렇게 똑같이 생긴 존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긴 침묵 끝에, 그레이 레이븐 소대 셋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이 문제를 당분간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지휘관님이 실종된 지 겨우 16일이 지났을 뿐이에요. 약물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해도, 탄생부터 지금 모습으로 성장하기까지, 이 짧은 시간 내에 정말 완성할 수 있었을까요?

가능성은 하나뿐인 것 같아요. 이 클론들은 지휘관님께서 실종되기 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거예요.

그럼, 도대체 언제부터...

잠깐만요. 이 단말기를 해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리는 투영 키보드를 띄우고 가지고 있던 메모리를 연결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감시 비디오 하나를 복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날짜는 최근 것이 아니었다.

기록 속에는 혹사가 구조체 몇 명을 이끌고 대형 기계를 옮기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이건 뭐죠?

본 적이 있는 물건이에요, 히포크라테스 교수님의 연구소에 관련 자료가 있었는데, 기억을 동기화하는 기계라고 하더군요.

기억 동기화요?

네. 이 기계를 사용하면 두 사람의 대뇌 속 기억을 동기화할 수 있어요. 황금시대에 이 기계는 기억상실을 치료하거나... 일부 불법 연구에 사용됐어요. 하지만 뇌 손상을 일으키기 쉬운 문제 때문에 폐기된 상태예요.

화면 속 혹사는 기계를 쓰다듬으며 혼잣말하고 있었다.

다음은... 너희들을 겨울 요새에서 이곳으로 옮겨야겠어.

여기서 기억을 되돌려 줄게. 이 기계가 아직 작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네가 누군지 이제서야 생각나서 미안해.

영상은 여기서 끊겼다.

...

겨울 요새... 혹사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이 사람들은 지휘관님께서 실종되기 전부터 "만들어진" 거예요.

설마...

인간의 해골... 그들은 이렇게 할 정도로 마음이 급했던 건가?

저와 알파가 겨울 요새에 갔을 때, 접속 장치 옆에서 인간의 해골을 본 적이 있어요. 설마 그때부터...

해골이요? 그때 이미 해골이 있었나요?

아니요. 그 상태는 자연적으로 부패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웠죠.

하지만 제게 한 가지 추측이 있어요. 지휘관님께서 실종되시기 전에 그들이 손 쓸 "기회"가 있었다면...

반즈와 필드 포인트 설치 임무를 수행하고, 우주 무기가 적조를 증발시킨 뒤일 거예요.

!

기억나요? 그때 전황이 매우 긴박했음에도 우리는 전투 대기실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았었어요.

기억나요. 지휘관님께서 관계자에게 상황을 물어보려다가 곧바로 누군가에 의해 끌려갔었죠.

"마인드 표식 오염이 초래한 기억 재생 상황을 감시해야 해."라고 하면서요.

하지만 그 의료 검진에서 무엇을 검사했는지, 무엇을 가져갔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루시아는 들고 있던 칼자루를 부러뜨릴 듯 꽉 쥐었다.

이 모든 것이 겨울 계획 때문인 건가요? 하지만 겨울 요새는 철저한 수색을 마쳤는데, 왜 아직도 포기하지 않는 거죠?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정화 부대의 징계에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그들과 접촉하기를 꺼릴 테니까요.

그래서 계속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었던 거겠죠.

리브의 목소리에도 분노가 담겨 있었다.

혹사가 기억 동기화가 필요한 것도 의식의 바다 안정성과 자아 인식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이는 본질적으로 기억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휘관 본인을 데려가 기억을 동기화하려는 건가요?

...

죄송해요. 선생님. [player name]의 구체적인 위치를 잃어버렸어요. 크틸라도 일찍 깨어난 탓에 폭주하고 말았고요.

중상을 입은 인간이 우물 바닥에서 쉬고 있을 때, 혹사는 혼란 속에서 그의 대행자에게 이곳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

...

본·네거트는 바로 답변하지 않고, 혹사가 나쁜 소식을 모두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본·네거트는 혹사에게 해결책이 있었다면,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셋은 폭발 계획을 세웠고, 크틸라 옆에 저장된 의식 백업들이 모두 파괴됐어요.

그래서 더 이상 제 의식의 바다 복제본으로 그녀를 안정시킬 수 없게 됐어요.

네 의식의 바다 복제본은 원래부터 안정적이지 않았다. 크틸라가 잠들어 있을 땐 진정제의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그녀가 깨어나면 금방 붕괴할 거다.

내가 말했었지.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안정적인 대비책을 찾아놔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선생님을 도와 이 계획을 빨리 추진하고 싶었어요.

혹사는 스스로를 책망하며 자신의 팔을 부러뜨릴 정도로 꽉 움켜쥐었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로키를 방에 남겨두는 바람에 로키가 칸막이를 부수면서 그들이 그 방을 발견하게 됐어요.

슈렉의 의식의 바다 복제본도 파괴됐어요. 크틸라의 폭주가 계속된다면, 그가 요람에 심어둔 의식도 오염되어 붕괴할 거예요.

그때가 되면, 우리는 이곳을... 그리고 그녀의 요람을 제어할 수 없게 될 거예요.

네가 그들이 네 방에 접근하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가 말했었지. 그를 이용해 요람을 제어하려면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

그리고 로키를 남겨두지 말라고도 충고했었지. 실험이 끝났으면 일찍 그녀를 해방해 줘야 했어.

그녀는 우리의 동료예요. 그녀는 살아야 해요. 살아 있어야...

넌 인간들에게 죽음을 추구할 권리를 허락하면서도 로키에게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구나.

그녀가 살아 있길 원하는 거냐? 아니면 그녀가 살아있기를 네가 원했던 거냐?

...

죄송해요.

넌 이 지휘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전... 전 모르겠어요.

겨울 요새에서 마인드 연결 실험을 하던 그 시절, 저희는 벽 너머의 연결자가 누구인지 몰랐어요.

지금의 전 그때의 제가 아니고, [player name]도 그때 연결되었던 [player name]가 아니에요.

지금의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선생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계획을 반드시 끝마치겠다고 맹세할게요.

혹사는 질문을 맹세로 대답했다.

제발 절 믿어주세요.

너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당장 너 자신을 크틸라와 융합하려고 하지 마라.

알겠어요.

혹사가 이 일을 마무리해야 죽을 수 있기 때문에 그의 대행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당연하게 여기는 대행자의 말을 듣고, 혹사는 추락하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라미아가 이곳에 침입해 하이디를 빼앗아 갔어요.

루나 쪽이 늦지 않게 도착했군.

칠흑 같은 그림자가 잠깐 사색에 잠겼다.

알파가 아니라면, 내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크틸라가 살아 있는 한 요람은 재건할 수 있어.

그 지휘관은 마지막 주사와 약제의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 빨리 찾아라.

그 알 속에는 안정된 조각들이 많이 침전되어 있고, 부화까지는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나는 이 결과와 크틸라의 생존만 보장되면 된다.

그 결과만 보장되면 된다는 말씀은... 부화하지 못한 하이디는 어떻게 하죠?

하이디는 크틸라에게 돌아갈 때 이미 그 준비를 마쳤다.

...

네가 하이디도 보존할 수 있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혹사는 자신이 그것을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라미아의 침입 소식을 들은 대행자조차 요람을 포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크틸라와 그 지휘관이 가져올 결과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면, 요람과 알의 연결을 통해 소유자에게 "매혹"을 걸 수 있는 라미아까지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혹사는 지금 "방향키"를 잃어버렸다. 크틸라를 제어하는 "방향키"든, 요람을 제어하는 "방향키"든 모두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내가 남긴 열쇠로 제어실의 기기를 열어봐라. 그곳에 너의 마지막 의식의 바다 복제가 남아 있을 것이다.

혹시...

그래. 그건 네가 승격자가 되기 전에 남긴 복제 기체이다. 그걸 이용해 크틸라를 안정시켜라.

크틸라와 요람 모두 제어 불가 상태예요. 이 하나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지휘관에게 마지막 주사를 빨리 주입해야 한다.

이후에 알과 크틸라 회수 작업은 릴리스에게 맡겨.

...

혹사는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으나, 잘못을 저지른 자신에게는 반박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이용해 아직 더럽혀지지 않은 시절로 도망가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백일몽으로 이루어진 길마저 끊어져 버렸다.

혹사는 이 모든 게 자업자득일 뿐이라고 자신을 비웃고 싶었다.

그리고... 혹사.

처음 만났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대행자가 혹사를 불러세워 처음 만났던 날 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

고통에 너무 의존하지 말 거라.

혹사는 가슴에 박혀 통증을 계속해서 불러일으키는 가시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이합 생물들로 가득 찬 복도를 지나갔다. 그리고 본·네거트가 말한 열쇠를 손에 넣은 뒤, 혼자 제어실로 걸어갔다.

혹사는 걸어가면서 머리에 있던 장식을 떼어냈고, 로즈의 것이었던 긴 머리와 원피스를 벗어버렸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보육원에서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미안해. 로즈. 너의 모습으로 변해도 난 여전히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없었어. 여전히 통증을 통해서만 용서를 구하고 있었어.

그러니 내 원래 모습으로 최초의 나와 마주할게.

지금까지 혹사는 통각과 자아 처벌을 통해 정신을 유지해 왔다.

이건 혹사가 계속 주시해 온 "마인드 표식"이었고, 그것을 방향 삼아 앞으로 나아갔다.

몇 번이고 복제되더라도, 혹사라는 개체는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

선한 사람이 기증한 의료 의자 "종이학"이 처형 의자로 개조되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승격자가 된 후,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원한의 진흙을 희망으로 착각해 레븐쉬의 손을 잡았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보육원의 아버지들과 레븐쉬라는 지휘관이 했던 모든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피어나지 않은 꽃봉오리가 어떻게 종이학에 박혀서 꽃잎이 벌어지고 꽃술이 찢겨 나갔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꽃이 실험 표본이나 장식품이 될 때까지 상처를 다시 헤집고 꿰매는 게임을 반복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건 널 위한 거야."라고, 자신들은 꽃봉오리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할 리가 없다고 말했다.

기형적이고 고립된 낙원 속에 있는 어린아이는 "사랑"의 진정한 형태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라난 뒤 아이는 강렬한 감정이나 고통스러운 찢김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뼛속까지 새겨진 고통이 짙을수록, 그 왜곡된 고백은 더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오늘날, 혹사 또한 자신의 피와 살을 잘라내어 토끼에게 먹이로 주는 이가 되어버렸다.

그것을 위한 일이야. 굶어 죽게 놔둘 수는 없잖아.

토끼에게 살과 피를 준 뒤, 토끼는 어떻게 됐을까?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만큼이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돌아오지 못하는 승격자의 길도 마찬가지였다.

길에서 새로운 미래를 찾고자 했지만, 갈수록 가시와 안개 속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나쁜 사람은 피해를 보았다고 해서 더 이상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혹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혹사의 영혼도 두 개로 분열되었다.

"혹사"이면서도 "아버지들"이 되었다.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된 것이었다.

모두가 평화로운 시대 속에서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상처를 주는 승격 네트워크라는 강을 건너 왜곡된 방식으로 살아남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들"에게 길러진 혹사는 "아버지들"이 보여주지 않은 방법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하는 일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재난<//전차>는 누구에게도 시간을 남겨주지 않았다.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했다.

그 때문에 몇 명이 상처 입건 상관없었다. 그중 일부만이라도 보호할 수 있다면 괜찮았다. 이것이 혹사가 고수하는 또 다른 "선별" 방식이었다.

이런 행동이 가져오는 죄책감은 항상 그를 괴롭혔다. 자아 증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너를 위한 거야.", "이 방법만이 살아남는 길이야."라고 말하면서 혹사 자신까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게 했다.

이렇게 쌓인 감정을 없애기 위해 혹사는 정기적으로 죽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도피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혹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죽음은 종이학과 함께 완전히 찢기고 으스러져서, 과거의 고통에 만 배로 곱한 고통을 맨정신으로 견디는 것이었다.

깊은 고통을 남기는 처벌을 받은 후에야 혹사는 잠시나마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다.

그다음에야 비로소 깨끗하게 떠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