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26 요람 속의 유행 /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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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1 무너진 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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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시간 30분 뒤.

모든 준비를 마친 지휘관 일행은 안전지대로 물러난 뒤, 폭파 장치를 눌렀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나무와 크틸라 주변에 있던 모든 의식 복제가 불길 속에서 잿더미로 변했다.

그러자 공간이 진동하면서 완전히 캄캄해졌다. 왠지 모르게 라미아는 자신이 통증으로 인해 의식을 잃었을 때의 어둠을 떠올렸다.

거대 알을 만진 후, 라미아는 이 공간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 지옥 같은 곳에 전기가 들어오다니, 믿기지 않는군.

단말기에 달린 휴대용 조명 장치를 켠 슈트롤이 어두컴컴한 터널 속을 비췄다. 그러자 수많은 심연의 거대한 입과 송곳니가 창백한 빛을 반사했다.

***! 잘 못 걸렸다!

하지만 외쳤을 땐 이미 늦었다. 무리를 지은 거대 이빨 말미잘이 빛을 따라 "릴리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황한 "릴리안"은 등 뒤에서 녹슨 비수 두 자루를 꺼내려 했다. 하지만 반격할 틈도 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심연의 천사에게 물리고 말았다.

으악!

날카로운 이빨이 인조 피부를 뚫고 "릴리안"의 등에 핏빛 꽃 한 송이를 남겼다.

총알이 예상 경로를 따라 정확히 "릴리안"에게 매달린 괴물에 명중했다. 그러자 괴물이 소리 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릴리안"을 밀어낸 슈트롤이 검을 들어 올려 거대한 입을 베었다.

하나밖에 안 남았어!

명령을 받은 슈트롤은 품에 안고 있던 수류탄을 투척한 후, 뒤에 있는 둘을 보호하며 후퇴했다.

굉음을 내며 폭탄이 터졌다.

더 이상 조명을 켤 엄두도 내지 못하는 지휘관 일행은 서로 등을 맞대고 선 채, 긴장한 상태로 주변의 작은 움직임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

………………

또각.

맑은소리가 계단 위에서 들려왔다.

또각, 또각, 또각...

그 소리는 매우 느리고 이상한 발소리였다.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지자, 퍼니싱 입자의 진홍빛이 폭우 속에서 흐르는 물줄기처럼 깊은 곳에서 아래층으로 밀려 들어왔다.

붉은 불빛들이 아른거리며 안도감을 주자, 원래 꺼져 있던 불빛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칠흑의 그림자가 빛을 삼키자, 그녀는 그림자로 만든 카펫을 밟으며 걸어왔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생명을 향해 자애롭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빛이 자신의 윤곽을 그려내는 것을 허락했다. 그러자 짙은 그림자가 다시 그녀의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

빨리... 도망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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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로가 막혔어. 뒤쪽은 전부 방금 그 괴물들이야!

지휘관. 여기서 그녀를 물리쳐야 해! 그녀가 이곳을 떠나 혹사와 합류한다면, 우린 앞뒤로 포위당하게 될 거야.

더 기다렸다간, 뒤에 있는 이합 생물 무리의 공격을 받게 될 거야. 그리고 공격 방식은 때리다 보면 알 수 있잖아!

안 되긴 뭐가 안 돼! 다른 선택지가 있어?

주위는 너한테 맡길게.

무기를 꽉 쥔 슈트롤은 혼자서 그 둘의 앞을 막아섰다.

쳇. 불이 또 꺼졌어!

손에 쥐고 있던 총을 들고는 어둠 속에 숨은 그림자를 향해 조준했다.

그리고 그녀가 가까이 오는 순간, 총알이 날카로운 발톱을 든 크틸라를 정확히 맞췄다.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그녀는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

조심하세요. 그녀 손에 쥐고 있던 알이 없어졌어요!

뒤!

붉은빛이 인간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인간은 피하지 못했고, 그 거대한 충돌로 인해 갈비뼈 하나가 부서졌다.

알에 닿은 피부는 순식간에 곪기 시작했다. 신선한 피와 이합 생물의 적색 즙이 섞여 코트를 적셨다.

뒤늦게 도착한 두 자루의 비수가 그것의 가장 붉은 곳에 박혔다. "릴리안"은 자신의 체중을 실어 뛰어오른 뒤, 그것을 제압해 인간으로부터 멀리 떼어놓았다.

알과 몇 초만 더 접촉하고 있었다면, 부식은 표피와 지방층을 뚫고 번져 나갔을 것이다.

이합 생물과 직접 접촉한 거야?! 너희 둘 침식이?!

전 괜찮아요!

"릴리안"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확고했다.

지휘관??

대답하기도 전에, 크틸라가 다시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냈다.

머리가... 아파요. 의식의 바다가...

라미아의 혼란스러운 의식의 바닷속에서 멀리 사라진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텅 빈 고독감이 라미아를 심해로 끌어당기자, 라미아는 익숙한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들키면 안 돼요. 양가죽을 뒤집어쓴 늑대를 누가 받아주겠어요? 설령 그것이 제가 원해서 그런 게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릴리안이 혼란스러운 기억에 갇혀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알이 비수의 속박에서 벗어나 모체의 품으로 돌아갔다.

초조해진 인간이 동료의 이름을 부르며 그림자와 미지에 숨은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만...

정보의 원천으로서, 비로소 너는 살아갈 가치가 생기는 거야.

이성에게 답을 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혼란스러운 주마등뿐이었다.

정보의 원천... 맞아요! 그 알... 꼭... 조심하세요!

조금 전부터 저 물건에 유독 신경 쓰는 것 같네!

왜냐하면... 으음... 머리가 아직도... 아파요!

그것은 이미 목표를 정한 듯 다시 한번 약한 인간을 향해 돌진했다.

인간을 향해 다시 돌진한 알은 퍼니싱으로 이루어진 7개의 가시를 인간의 팔에 관통시켰다.

근거리에서 왜곡된 생물을 향해 연달아 여러 발을 쏘자, 그것이 비명과 함께 가시를 뽑아냈다. 그러자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어서 도망가세요. 이제 죽을 거예요!

[player name]

크틸라를 발견한 이상 그녀가 이곳을 떠나게 놔둬선 안 돼. 우리에겐 퇴로가 없어. 그리고 우리 자신만 생각할 수는 없어. 여기서 반드시 재앙을 막아야 해.

극심한 고통에 의식을 잃을 것 같았지만, 절망은 멈추지 않았다.

지휘관!!! 내 뒤에 숨어!!

다들 살고 싶지 않은 거야? 미치기라도 한 거야?!

빛이 다시 시야에 들어온 순간, 슈트롤의 몸이...

슈트롤은 비명이나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했다. 그리고 단단했던 그의 뒷모습은 "릴리안"과 지휘관의 눈앞에서 산산이 부서져 땅에 떨어졌다.

슈...

주인을 잃은 순환액이 몸통에서 흘러나와 머릿속에 있던 의식의 바다와 함께 크틸라의 몸에 튀었다.

크틸라의 몸에 튄 액체는 순식간에 "그녀"의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어떻게 된 거죠?

바닥은 꿈틀거리며, 슈트롤의 남은 잔해까지 품에 안았다.

과거와 미래, 바렐리아 그리고 또 다른 자신 때문에 불안해하던 표정들은 모두 흩날리는 파편과 함께 어머니와 대지의 자궁으로 돌아갔다.

어떠한 흔적도 없이.

잠깐만요. 위에 뭐가 있어요!

반응할 틈도 없이, "릴리안"에게 밀쳐진 지휘관은 "릴리안"과 함께 혼란 속에서 함께 벽 구석으로 굴러갔다.

날아오는 속도가... 너무 빨라요.

소녀는 일어서려 애썼지만, 다시 제자리에 넘어지고 말았다. 결국 소녀는 떨리는 몸을 뒤에 있는 벽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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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안?

으...! 간섭이... 너무 심해요!

알이 저항할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한때 "그것"을 안았던 이를 유혹하고 있었다.

릴리안?

네?!

시끄럽게 꿈틀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릴리안?

아아아아아...

궁지에 몰린 인어는 결국 상처투성이 인간의 손을 다시 잡았다.

인간이 이제서야 "소녀"가 내내 연결을 거절했던 이유를 마인드 표식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을 통해 이해하게 됐다.

지휘관이 이 이질감이 어디서 오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거대한 알이 다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이번 목표는 "릴리안"인 것 같았다.

그녀에게 많은 의문점이 남아 있었지만, 지휘관과 슈트롤을 도와 혹사의 의식 복제체를 찾는 것과 조금 전 지휘관을 보호해 준 행동은 거짓이 아니었다.

릴리안?

!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릴리안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공포에 떨고 있었다.

총소리를 듣자, "알"이 즉시 방향을 바꿨다. 얼마 남지 않았던 총알은 텅 빈 터널 속으로 날아갔다.

터널이 곧 무너질 것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마인드 연결이 진행된 후, 혼란스러웠던 주마등이 걷히자, 이성을 되찾은 라미아는 여전히 요행을 바라고 있었다.

릴리안?

어서 도망가요!

이곳을 떠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나아질 기회가 남아 있고, 그녀는 릴리안으로서 남은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릴리안?

그...

공포에 휩싸인 "릴리안"은 도망갈 수 있는 경로를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었다.

조수처럼 밀려오던 괴물들은 투기장의 관객이 된 것처럼 공격하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이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을 여유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정면에 있던 사냥꾼이 그녀의 "펫"을 던졌다. 그리고 그녀는 뒤에 서서 여유롭게 사냥감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우린 아직... 아니에요.

전...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는 이미...

전...

"릴리안"은 떨리는 눈으로 인간이 혼자 칠흑 같은 악몽을 향해 돌진하는 걸 봤다.

몸에 있는 곪아가는 상처들이 극심한 통증으로 경고를 보내왔고, 흐릿한 시야와 혼란스러운 광경이 마인드 표식이 오염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지만, 인간은 여전히 반항했고 굴복하지 않았다.

두 팔이 건강할 때의 힘을 잃었다면, 장검을 휘둘러 관성을 이용하면 됐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알이 습격해 오는 순간을 노려...

슈트롤의 남은 순환액이 검날과 함께 튕겨 나가며, 습격해 오는 알에 튀었다. 검날의 관성을 이용해 이합 생물의 껍데기를 내리치자, 성공적으로 상처를 만들어 냈다.

상처를 입은 거대한 알이 바닥에 떨어지며 추하게 꿈틀거렸다.

목구멍에서 피를 토해내자, 머리가 조금씩 무거워졌다. 눈가에 따스한 액체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손으로 닦을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눈물이 아닌 피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시야가 이 공간만큼 어두워졌더라도 이곳에서 눈물을 흘릴 순 없었다.

어둡던 공간이 다시 한번 진동했고, 주위 괴물들은 무언가를 감지한 듯 경계하며 뒤로 물러났다. 크틸라도 제자리에 멈춰 섰다.

장검을 다시 들어 올린 지휘관은 마지막 힘을 짜내 아직 발버둥 치고 있는 알을 향해 전력의 일격을 가했다!

장검은 거대한 알을 관통한 뒤, 그것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했다. 그러자 알은 아기처럼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고, 그 소리에 고막이 뚫릴 것만 같았다.

그 울음소리에 "어머니" 크틸라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무거운 두 손을 들어, 알을 빼앗아 가려는 크틸라를 향해 총을 겨눴다.

통증에 시달리던 몸은 총의 반동조차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뒤에 있는 벽으로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공간의 굉음과 진동은 점점 더 강해졌고, 주위를 둘러싼 괴물들도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이라면 릴리안 혼자서도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망가라고 설득할까? 마인드 연결만으로 그녀가 승격자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찢어지는 통증과 다가오는 크틸라의 모습에 지휘관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아... 아아아...

멈출 수 없는 떨림 속에서 소녀는 인간과 알을 구하고 있는 크틸라를 번갈아 보았다.

아직 만회할 기회는 남아 있었다.

위장을 벗어버리고 승격자의 몸으로 맞설 수만 있다면, 탈출할 기회를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상대가 처음부터 신뢰한 이가 라미아가 아니라면, 그녀가 위장을 벗어버린다 해도 돌아오는 건 살의뿐일 텐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이대로 계속 망설이다가는 지휘관은 죽게 될 것이고, 그녀는 또다시 자신을 믿어준 이를 잃게 될 것이었다.

우연히 만난 사람일 뿐인데...

그래...

퍼니싱 위기와 거리가 먼 승격자들에게 이 사람들은 그저 어린 시절의 "커피잔", "인터넷 케이블", "필기판"같은... 장난감을 대신하는 물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난 이걸 좋아해. 그리고 이거 하나뿐이야.

난 커피잔조차 지킬 수 없는 내 자신이 싫어.

발각되든 상대를 죽게 내버려두든, 최악의 결과는 크틸라를 혼자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 난...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야.

상관없어요... 이젠 상관없다고요!

"릴리안"은 히스테리컬한 고함을 지르며, 이길 수 없는 검은 그림자를 향해 달려갔다.

다음 순간...

이형창이 크틸라의 긴 채찍과 부딪혀 찬란한 불꽃이 튀었다. 그 아래 인어의 모습이 연약하고 작은 몸을 덮었다.

라미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건 이제 지겨워!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는 것도 지겨워!

라미아 주변에 응집된 고농도의 퍼니싱이 수많은 칼로 변해 크틸라를 향해 날아갔다.

라미아

어느 쪽이든 후회할 거라면, 적어도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고 싶어!!

크틸라 주변에 모여 있던 적조가 승격자의 통제에 흐름이 멈추자, 그녀와 알의 동작도 느려졌다.

극심한 두통이 놀라움을 덮어버렸고, 알록달록한 색채가 유리구슬이 쏟아진 것처럼 눈앞에서 흩어졌다.

라미아의 불타는 결의와 정반대로, 마인드 표식의 오염은 인간의 의식을 끌어당기며 불꽃 아래 가장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했다.

라미아가 능력을 발휘할수록 부담은 커져만 갔다.

이건 승격자와 연결하면 반드시 감수해야 하는 대가였다. 아무리 "천재"라 할지라도, 이 대가를 가볍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퍼니싱 농도가 극도로 높은 지역에서 이렇게 빈약한 방어로 승격자와 연결하는 것은 더욱 위험했다.

동료들이 가져다준 빛을 잃은 지금, 표식 안에 남아 있던 얼마 안 되는 빛마저도 인어에게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량의 피가 기도로 밀려들자, 호흡이 힘들어졌다.

몸이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해 벽에 기대어 쓰러지고 말았다.

주변이 조금씩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십 초 안에 이곳이 무너질 것 같았다.

검은 그림자와 싸우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다시 보며, 남은 힘을 다해 손을 뻗었다.

의식이 흩어지면서 모든 것이 왜곡되고 붕괴하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시야 속에서 그 인어는 바닥에 박혀 있던 알을 껴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