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괜찮은 것 같군.
여전히 의식의 바다에 관한 자료야. 난 이런 거 잘 몰라. 일단 모아 뒀다가 여기를 빠져나간 뒤에 과학 이사회 인원들에게 줘야겠어.
그 보고서에 쿠로노 히사카와, 하이디, 로키, 부두, 크틸라의 이름이 있었어.
크틸라가 대체 뭐예요?
쌍둥이를 낳은 괴물이야. 그 거대한 심장처럼 생긴 물건이 바로 크틸라의 불완전체라고 할 수 있거든. 다시 말해서 그녀의 걸어 다니는 자궁 같은 거지.
네?!
이것 봐, 자료에 다 나와 있어, 로키와 부두도 언급하던데. 그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던 참이었는데 오히려 잘 됐어.
슈트롤은 카메라 앞에 방금 찾은 자료를 흔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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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틸라 계획 종료 후, 지하실에서 발견된 실험체. 의식 손상과 공격성 때문에 오랫동안 감금되어 있었다.
지하실이 매우 은밀한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크틸라 계획 관련 인원이 정리될 때 잊혔다.
로키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감옥 문에 뚫고 탈출하려 했다.
머리 손상이 심각해 구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그녀의 의식 데이터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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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의 의식 데이터도 머리가 손상을 입을 때 파괴됐다. 강제로 신체에 이식한다면 완전히 "미치광이"가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난 그녀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녀의 의식 상태는 크틸라와 유사했다. 그래서 그녀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를 바랐다.
이건 그녀를 구하는 것이자, 크틸라를 구하는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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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의식이 신체의 안정을 유지할 수 없다면, 그 신체에 다른 의식을 이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인간 쪽으로 가서 의식 융합 기술을 교환해 그녀에게 적용하라고 하셨다.
이 기회를 얻은 사람은 아딜레 상업 연맹 출신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오슬란의 버림을 받은 "사생아"라고 했다.
그녀는 이름도 없고,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절대복종의 도구로 훈련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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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은 성공했다. 그녀는 로키의 용기가 되었고, 로키가 제어할 수 없었던 감정을 받아들였다.
이 연구는 분명 크틸라를 깨우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의식도 비슷한 결함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제 우리는 "복음"이 강림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하이디의 소원도 이루어질 것이다.
선생님께서 나를 칭찬해 주셨다.
이 연구가 선생님께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곳이 그놈의 거점이니 남겨진 것들은 모두 혹사의 것일 테지.
참. 그 외에도 일부 파일에서 조금 신경 쓰이는 이름을 발견했어.
킬고어 트라우트. 황금시대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작가... 그리고 살인범이기도 하지.
들어본 적 있어?
아니요. 그게 누구예요?
이런 유명 인사를 모르다니.
황금시대의 일을 모르는 건 정상 아닌가요? 당신이야말로 어떻게 이런 일을 잘 알고 있는 거죠?
구조체가 되기 전에 경찰이었어. 크틸라 계획과 킬고어 트라우트 사건 모두 담당했었지.
슈트롤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특히, 크틸라 계획은... 너무 참혹했어...
사고? 아. 밖에서는 그렇게 말했었구나.
당연히 아니지. 그리고 이 계획의 목적이 외부에 발표된 것처럼 그렇게 황당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우리 내부 정보원이 보낸 내용에 따르면, 그들은 전쟁 무기를 만들어 세계 정부를 다시 분할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아.
맞아. 이런 일은 이제 새롭지도 않아. 그리고 북극 항로 연합의 엠베리아도 비슷한 피해자였어.
...
원래 그들의 꼬리를 잡을 기회가 있었는데, 작전 하루 전날 그들의 소각장이 폭발했어. 그래서 연구 건물 전체가 불타버렸지.
맞아.
마지막 실험 중에 사고가 일어나면서 모든 실험체가 미쳐버렸어.
연구원들의 머리를 베어 그들의 배 속에 넣었대.
슈트롤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불이 꺼지고 나서 소각장 주변에는 처형된 실험체 시신으로 가득했어. 대부분 타버려서 남은 게 거의 없었지.
남은 건... 모두 머리 없이 배만 불룩한 과학자들뿐이었어.
히익!
어떤 사람들은 이 사건이 킬고어 트라우트 교수와 관련이 있을 거로 추측해. 그가 이미 죽었더라도, 그의 모방범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어.
하지만 우리는 확실한 증거를 잡지 못했고,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됐어. 그런데 지금 이런 곳에서 그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된다니...
왜 그 교수님이 크틸라 계획과 연관 되었다고 말하시는 거죠?
음... 그러니까 봐봐. 죽은 자를 실험체의 자궁에서 다시 탄생시킨다는 게 크틸라 계획의 목적이었어.
그런데 그 과학자들이 죽은 방식이 마치 범인이 "그렇게 새로 태어나고 싶으면, 스스로 해봐."라고 외치는 것 같잖아.
킬고어 트라우트 교수의 마지막 자서전에도 유사한 문장이 있었어.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음... 설명하기에 좀 복잡하니 이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수많은 혹사의 잔해를 확인했어요. 그의 기체 부품, 팔다리, 몸통... 그리고 적조의 허상도 있었어요.
어쩌면 그의 사망 횟수는 이미 한 자릿수를 넘었을지도 몰라요.
적조의 허상도 그가 죽기 전의 모습을 반복하고 있어요.
승격자는 퍼니싱과 자신의 잔해로 기억을 계승할 수 있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일부 승격자는 침식체의 기억까지 읽을 수 있어요. 적조에도 많은 정보가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적조의 허상이 나타나는 거예요.
다만, 이를 통해 저장된 기억의 대부분에는 결함이 있어서 완전성을 보장할 수 없어요. 여기 적조의 허상은 외부보다 더 완전해 보여요. 혹사가 뭔가를 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리고 뒤쪽에 있는 적조의 허상들은 자살로 죽은 것처럼 평온해 보였어요.
자살이라고? 그 녀석이 왜 자살해?
다만 "가해자"인 혹사가 정말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까?
아직 결론 내리긴 일러. 네 쪽은 어때?
보육원도 불법 범죄의 중도 재난 지역이지.
윗사람들은 출생률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한 후, 유기죄 처벌도 많이 완화했어. 그리고 보육원도 많이 설립했지.
의도는 좋았지만, 실행 과정에선 그렇지 못했어.
이 일은 릴리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방금 혹사가 너와 같은 보육원 출신이라고 했잖아.
아. 네. 맞아요.
라미아는 불안한 듯 옷자락을 움켜쥐며, 릴리안이 했던 말을 되새기며 이야기했다.
실제로 일부 보육원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아이들을 여러 곳에 "상품"으로 팔아넘기기도 해요.
예를 들면, 릴리안... 그러니까 저도 초기 구조체 개발 계획에 참여했었어요.
다른 아이들은 실험 중에 죽었고, 저만 살아남았죠. 혹사도 똑같았어요.
이 단서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
다른 발견 사항은 뭐가 있어?
유품인가요? 혹사 친구들의...
머리 장식이요?
이 녀석은 정말 갈수록 영문을 모르겠네.
오?
음...
슈트롤은 이해한 듯 이해하지 못한 듯 음을 길게 늘였다.
네. 그럼 30분 후에 다시 연락할게요.
통신이 끊기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그 승격자는 어떤 심정으로 친구들의 유품이 가득한 방에서 혼자 이 머리 장식을 만들었을까?
아무리 봐도 평범한 나무 공예품일 뿐 특별한 점은 없었다.
정말 누군가를 기리기 위해서 그렇게 똑같은 물건을 많이 만든 걸까?
문득 이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치며 기억 속 안개를 걷어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루시아가 아우 기체로 변경하기 전일 것이다.
도미니카 기념 공원에서 얼굴에 슬픔이 가득한 여자아이를 만났다.
혼자 서 있는 그녀 옆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주위를 순찰하던 무인기와 행인들이 알게 모르게 그녀에게 보내는 눈빛들이 그녀가 눈에 띄고 있음을 알려줬다.
"행인"들의 신분과 소속을 확인하고 난 지휘관은 여자아이에게 인사를 건네기로 했다.
...
전... 로사예요.
겁먹은 목소리로 대답한 로사는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뒤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쏘아보는 시선을 곁눈질로 확인하고 있었다.
양쪽의 모순을 확인하기 전에는 가볍고 관련 없는 화제로 긴장을 풀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네. 엄마가 <어린 왕자>이야기를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엄마와 아빠는 제가 "행성의 유일한 장미"라고 하셨어요.
네... 하지만 부모님은... 돌아가셨어요.
로사는 낮은 소리로 흐느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음... 저기요.
제게... 메시지 보낸 분이... 당신인가요?
로사. 여기서 뭐 하니?
페트라 이모?! 죄, 죄송해요. 제가...
앞에 있는 여성은 심사하는 눈빛으로 지휘관을 한 번 훑어봤다.
바네사의 동창이지? 파오스의 수석 졸업생이라는?
난 바네사의 어머니야.
...
아니. 파오스의 공개 구독 채널에서 너희들의 졸업사진을 본 적이 있어.
아니에요.
여자아이는 깊은 슬픔 속에서 단호한 네 글자를 내뱉으며, 지휘관의 옷자락을 세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엄마가 어렸을 때... 페트라 이모의 할아버지가 많이 돌봐주셨다고 하셨어요.
...
그만하고 어서 가자. 여기서 뭘 하는 거니?
안 돼요.
겁에 질린 듯 지휘관 뒤로 숨은 로사는 전혀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라고 해도 나와 이 아이의 관계는 너보다 깊어.
여성의 목소리에는 조급함이 담겨 있었다.
이 아이의 엄마는 대철수 때 우리 할아버지가 데려온 아이야. 할아버지는 그녀를 우리 집의 먼 친척이 잃어버린 아이라고 생각하셨지.
그래서 증거가 없고, 실종 시기도 맞지 않았음에도 할아버지께서는 "로즈"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를 데려오신 뒤, 우리와 같은 성인 "앤"으로 개명하게 하셨어.
그러니 내가 그녀를 해칠 리 없잖아. 네가 그 수석이 아니었더라면 너까지 경계했을 거야.
다 널 위한 일이야. 로사. 거기 서 있지 말고 어서 여기로 오렴.
죄송해요. 하지만 전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아빠, 엄마가 희생된 소식을 아신다고 말한 분이 계세요. 저한테 엄마 머리 장식을 하고 이곳에 와서 그들의 이름을 찾으라고...
희생?
앤과 랜드는 가전제품 사고로 죽었어. 네 생일날 바로 네 앞에서 죽었잖니. 잊은 거니?
도미니카 기념 공원에 이름을 남긴 이들은 모두 전장에서 죽은 영웅들이야. 그런 곳에 어떻게 너의 아빠, 엄마 이름이 있을 수 있겠니?
도대체 누가 이런 무지한 아이를 조롱하려고, 너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낸 거니?
페트라는 무언가를 경고하는 것처럼,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로사의 어깨를 꽉 잡았다.
...
이 말을 듣자, 로사의 눈물이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처럼 쏟아졌고, 울 힘조차 잃어버린 듯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
좋아.
바네사와 비슷한 동작으로 귓가의 머리카락을 정리한 페트라가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
네. 대부님 집으로 가면 돼요.
로사가 손을 들어 과학 이사회 방향을 가리켰다.
아시모프에게 물어본 뒤에야 로사가 그의 선배와 친구가 남긴 아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시모프가 젊었을 때, 그들의 거절할 수 없는 요청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로사의 대부가 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앤과 랜드는 생전에도 공중 정원에서 일하는 일은 드물었다.
어릴 적부터 집에서 혼자 가정용 로봇과 함께 시간을 보낸 로사는 로봇의 교육 덕분에 또래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다양한 지식을 습득했다.
그녀는 누가 뭐래도 "꼬마 천재"였다. 어린 외모 뒤에 숨겨진 놀라운 재능은 아시모프의 조수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 외의 일에 대해서 아시모프는 더 이상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루시아는 대화 중에 그녀가 본 파일과 얻은 정보를 언급했다.
레븐쉬와 연결했던 승격자, 겨울 계획, 그리고 겨울 계획으로 사망한 과학 이사회 멤버 앤과 랜드에 대해 말해줬다.
아시모프는 왜 그 두 사람을 언급할 때 그렇게 슬프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을까?
그들은 왜 과학 이사회 멤버임에도 불구하고 공중 정원과 같은 안전한 장소에서 일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제는 죽은 자들을 위해 진정으로 충성했던 조직을 그들이 숨길 필요가 없어진 걸까?
암호화된 파일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그와 완전히 상반되는 현실도 실제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날 아시모프가 대답하지 않으려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추억 속에서 깨어나 다시 한번 평범해 보이는 머리 장식을 바라봤다.
그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머리 장식을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 보니 로사와 혹사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장식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뒤, 아직 탐험하지 않은 다른 지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인간의 뒷모습이 복도 끝에서 사라지자, 테이블 가장자리에 버려졌던 머리 장식이 떨어져 바닥 가장자리를 따라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다 벽 구석에 스며 나온 홍조를 건드리고 말았다.
그 속에 있던 적조의 허상은 그림 속 망령처럼 주인의 기억 속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제가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어요. 선생님. 그들은 너무 일찍 떠나버렸어요.
언젠가 죽은 이들의 의식을 담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더라도 그들의 의식이 없는 전 그들을 구할 수 없어요.
한때는 로즈가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순진하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그건 저 혼자만의 바람이었죠.
선생님. 전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선생님께서 그 계획을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전 그것이 더 많은 이들을 도와줄 수 있다고 믿어요.
선생님의 목적은 퍼니싱이 가져온 재난을 우리가 견뎌내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재앙에 맞서려면 그에 대항할 힘이 필요해요. 그래서 저는 조금이라도 인간과 힘을 나누고 싶어요.
제가 겪었던 고통을 다른 이들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들에게 제어당해 누설하지 말아야 할 것을 누설하거나, 그들을 도와 이 힘을 남용할까 봐 염려되신다면...
제 몸에 언제든 저를 죽일 수 있는 종자를 심어주세요.
괜찮아요. 선생님께서 절 구해주셨잖아요. 그러니 절 마음대로 사용하시고, 죽이셔도 돼요.
빙글빙글 돌던 머리 장식이 벽에 부딪혀 멈췄다. 머리 장식 때문에 만들어졌던 적조의 허상도 바닥 틈 사이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머리 장식 주인의 말로처럼 구석에서 핏빛 꽃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