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는... 원래 좋은 곳이었어요. 전 제 기억이 시작할 때쯤부터 유토피아에 살았어요.
유토피아 안에선 많은 아이들과 구조체들이 보호받고 있었어요. 구조체 중 일부는 오로라 부대에 입대했고, 다른 일부는 유토피아의 운영에 참여했어요.
유토피아를 관리하는 이는 피크맨 의사님이에요.
피크맨 의사님은 유토피아를 위해 많은 규칙을 만드셨어요. 그리고 정의와 진리를 배우도록 가르치셨죠. 그 규칙들을 노래로 만들어 가르치셨고, 우리에게 아름다운 규칙을 따르면 세상에 도움 되는 이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선해야 하며, 사랑을 베푸는 것에 모든 것을 헌신하고, 절대로 진리를 속이거나 왜곡하지 마세요.
지혜를 밝히고, 교만하거나 게을러지지 마세요.
겸손하고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며,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해요.
의사 선생님. 오셨군요.
아리사?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니?
흰 가운을 입은 마른 체형의 중년 남성이 금색 눈으로 어린아이를 다정하게 바라봤다.
물론이죠. 절 유토피아에서 가장 멋진 기율 유지관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잖아요?
유토피아 수칙은 벌써 다 외웠어요!
장하구나.
네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저녁에 보상으로 주마.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오렌지 맛 디저트지?
감사해요!
미소를 지은 피크맨은 허리를 숙여 아리사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리사는 분명 최고가 될 거야.
의사 선생님. 시간이 많지 않아요.
아. 중요한 걸 깜빡 잊을 뻔했군.
잠깐 나와 가지. 실험에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
알겠어요. 의사 선생님.
수업 중이던 선생님에게 피크맨이 고개를 끄덕이자, 선생님은 책을 내려놓고 순순히 피크맨을 따라 방을 떠났다.
또 어른들의 일이네.
갑작스럽게 수업이 방해받자, 아리사는 당황해하며 책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수업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뭘 하지?
세실리 언니 찾으러 가면 되겠다! 세실리 언니는 이야기를 잘 해주니까, 그것도 "공부 시간"으로 치면 될 거야!
고민 끝에 아리사는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 일정을 결정했다.
유토피아 내부. 몇몇 구조체들이 구석에 앉거나 서서 조용히 자신들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세실리 언니. 안녕하세요.
일부러 목소리를 낮춘 아리사는 세실리라 불리는 보라색과 회색이 섞인 머리의 구조체 옆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치마를 들어 올리며 복잡한 예의를 올렸다.
아리사? 오늘 수업은 다 들었어?
세실리라 불리는 여성 구조체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옆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 간단하게 답례한 후 아리사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오늘은 무엇을 배웠니?
음. 오늘 선생님께서 다른 내용을 가르쳐주지는 않으셨어요. 그냥 유토피아의 수칙을 또다시 가르쳐 주셨어요.
수업하시다가 선생님의 협조가 필요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선생님께서는 불려 나갔어요.
고개를 숙인 세실리의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랬구나. 그럼, 세실리 언니가 이야기 들려줄까?
좋아요!
아리사. 지난번에 어디까지 들었는지 기억하니?
지난번에는 꼬마 앨리사가 자기 오빠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꼬마 앨리사가 너무 불쌍해요. 저였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거 같아요.
음... 꼬마 앨리사는 숲속에서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됐어. 선량한 할머니는 꼬마 앨리사에게 금관을 쓴 11마리의 백조가 근처 강에서 헤엄치는 것을 봤다고 말해줬어.
할머니는 꼬마 앨리사에게 과일을 주면서, 앞으로 조금 더 걷다 보면, 구불구불한 작은 강을 만나게 될 거라고 말해줬어. 선량한 할머니와 헤어지게 된 꼬마 앨리사는 강물을 따라 걸어가다가 아름다운 바다와 만나게 됐지.
그때, 파도가 밀려오면서 하얀 백조의 깃털 11개가 같이 떠밀려 왔어. 그리고 해가 거의 지려 할 때쯤 꼬마 앨리사는 금관을 쓴 11마리의 야생 백조가 천천히 내려오는 것을 보게 됐지.
아리사가 손을 들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몸짓을 했다.
아리사? 무엇을 묻고 싶은 거야?
바다는 어떤 모습인가요?
잠시 멈춘 세실리는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아리사를 품에 안았다.
바다는 말이야. 많은 강과 시냇물이 모이는 곳이라, 끝이 없는 것처럼 넓고 광활해.
난 거기서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금빛 바다를 본 적이 있어. 그리고 저녁노을이 비치는 주홍빛 바다와 폭풍우 치는 날의 깊고 푸른 바다도 본 적이 있어.
와...
아리사는 세실리의 묘사를 동경하는 눈으로 듣고 있었다.
아리사. 언젠가 너도 바다를 볼 수 있을 거야.
세실리는 미소를 지으며 아리사의 이마를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었다.
정말요? 꼬마 앨리사가 본 그 바다를요?
물론이지.
꼬마 앨리사는 자기의 선함과 순진함을 유지했기 때문에 나쁜 여왕의 두꺼비 마법도 통하지 않았어. 게다가 꼬마 앨리사는 용기 있게 나아가는 끈기를 유지했기 때문에, 결국 자기 형제들과 만날 수 있었단다.
그러니까 말이야. 자기 마음을 지키기만 한다면, 두려울 것 없어. 정의의 메아리는 언젠가 대지에 울려 퍼질 테니까. 그리고 언젠가...
휴게실의 문이 열리고 여성 구조체 하나가 들어왔다. 그녀는 작은 동작으로 세실리를 살짝 찔렀다.
크흠.
나타 언니!
……
자. 아리사. 오늘의 이야기 시간은 여기까지 할까?
유토피아의 규칙을 따르려면, 언니는 이제 "일"해야 하거든.
네!
아리사는 꼬마 앨리사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지만, 이해심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실리 언니. 나타 언니. 다음에 또 봐요!
세실리 옆에 있던 의자에서 뛰어내린 아리사는 알아들었다는 듯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 뒤 나갔다.
아... 책을 두고 왔네.
문을 나서기 전, 아리사는 책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돌아섰다.
아리사가 다시 돌아갔을 때, 나타 언니가 세실리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세실리. 넌 알면서도...
나타. 아리사는 단지 어린아이일 뿐이야. 아무것도 모르니까 어린아이에게 죄를 물을 필요는 없어. 노력해야 할 사람은 우리야.
됐어. 내가 좀 성급했던 거 같아. 아리사는... 정말 착한 아이야.
그 사람들은 찾아봤어? 여기서 탈출하고 싶었던 거 맞아?
피크맨이 그들을 너무 잘 대해줘서 흠잡을 데가 없었어. 음식도 충분하고, 물도 충분하고, 적절한 관심과 안정된 질서까지 있잖아.
그들은 피크맨을 구세주라고 여기고 있고, 그가 정말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믿어.
실험실 내부 자료를 많이 줘봤지만,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어.
그렇겠지.
적어도 이곳엔 충분한 물자, 음식, 물, 안정된 질서가 있으니까, 이런 시대에... 누가 이런 것들을 거절하겠어?
그래도 피크맨은 진심으로 유토피아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잖아? 그는 최선을 다했어.
피크맨은 심지어 유토피아의 질서를 어긴 몇몇 사람들을 징벌하기까지 했잖아.
세실리!
화내지 마. 이건 다 사실이니까.
하지만 너도 알잖아. 제카가 어떻게...
알아. 그래서 나도 방법을 찾을 거야. 서두르는 것만으론 소용없어. 나타.
밖으로 나가는 문의 비밀번호는 구했어?
구했어. 그리고 아무도 생각 못 할 그런 곳에 숨겨놨지.
다음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성급하게 나서지 마. 우린 제카와 아라벨라를 데리고 반드시 여기서 탈출할 거야.
정의는 언제나 존재하니까. 그렇지?
이런 어린아이 속이는 말은 인제 그만했으면 해.
정의가 정말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끔찍한 곳에 있을 수가 있겠어.
나타는 화가 난 듯 문을 쾅 닫고 떠났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다른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에는 방해하면 안 된다고요. 그래서 제가 노크할 때는 세실리 언니도 이미 떠난 후였어요.
그때 세실리 언니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언니도 탈출을 생각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어요.
에코의 슬픈 표정은 진심으로 보였지만, 짧은 이야기 하나 때문에 경계를 바로 풀 수는 없었다.
지휘관은 그 "세실리"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구조체의 사망 명단에 있었나? 아니면 다른 곳이었나? 만약 "세실리"가 정말 공중 정원의 구조체라면, 분명 공중 정원의 아카이브에 기록돼 있을 거였다.
살짝 고개를 숙인 에코의 옆에는 전설의 "쿠로노 실험체" 갑옷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갑옷은 에코의 어깨에 조심스레 손을 얹었다.
이렇게 들으면, 피크맨 의사는 드물게 선량한 이처럼 여겨졌다.
음식, 충분한 물, 적절한 관심, 안정된 질서... 이 모든 건 지금의 공중 정원조차 보육 구역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에게 보장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랬다면, 왜 그 구조체들은 거기서 탈출을 시도했던 것일까?
모든 죄악은 저 때문에 시작됐어요.
만약 제가 없었다면,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들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어도 됐고요.
하지만... 이건 다음에 해드릴 이야기에요. 내일도 먼 길을 가야 하니, 일단 쉬시죠.
에코가 손을 뻗어 모닥불을 몇 번 휘젓자, 주변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