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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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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8 시간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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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붕해하며 흩어진 조각 사이에 전혀 다른 세계가 리의 눈앞에 펼쳐졌다.

왜곡된 공간이 겹치면서 진동했다. 지휘를 잃은 교향악단처럼 혼란스러운 음표가 악보에서 튀어나와, 점에서 면으로 변했다가, 발밑의 플랫폼을 이룬 다음 또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으로 변했다.

방대한 정보가 리의 의식에 바람처럼 스며들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천만 년의 시간도 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리는 신기한 색채들 사이로 여러 은하의 탄생과 멸망을 봤다. 시간이 광풍 속의 책처럼 질서 없이 넘겨졌다.

광활한 우주에 선 리의 시야엔 더 이상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았고, 수많은 은하가 탄생하고 멸망하는 빛이 보였다. 그건 억만 년 전의 빛이었다. 우주의 규모로 볼 때 인간이 생활하는 행성은 아직 아장아장 걷는 아기와 같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더 높은 차원의 존재에게 있어 뭇별은 그저 차가운 장난감이거나, 손바닥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오르골뿐일지도 모른다.

현실과 격리된 이 공간에 영원히 갇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모든 "그"의 과거와 미래가 펼쳐진 지도처럼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세부 사항이 하나도 빠짐없이 선명하게 보였다.

"시작"과 "종결"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이 공간에서 시간은 공간의 주인이 가지고 놀 수 있는 블록이라 차갑게 닫힌 고리가 됐다.

혼란스럽고 무질서했던 공간이 안정을 찾게 되자, 리는 자신의 익숙함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됐다. 그건 이곳을 방문한 게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성운이 모여 만들어진 만물을 꿰뚫는 두 눈이 검은 우주에 홀로 선 생물을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먼 곳에서 울리는 소리가 리의 머릿속에 직접 전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건 리가 들어본 적이 없는 언어로 우주의 화음 같기도 했고, 수많은 사람의 화음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왠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들 사이의 대화는 그의 "추억"이자 "현재"이고 "미래"였다.

"보이는 모든 것에 당혹감이 느껴지니?"

여긴 어디죠?

"차원을 초월한 공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차원 경계, "문"이라고 부를 수도 있어."

"우리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위해 만든 '응접실'이라고 생각해도 돼."

"인간이 적응할 수 있게 그것들의 형태를 너희들이 이해할 수 있는 모습으로 바꿨어."

제가 왜 이곳에 있는 거죠?

"그건 '인간'이라는 문명체가 문을 넘을 가능성이 생겼다는 걸 의미해."

이렇게 우주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대답했다. 삼라만상을 담고 있는 화음 속에 리는 어딘가 귀에 익은 소리를 듣게 됐다.

문득 의식의 바다에서 또 다른 자신이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신... 당신들의 정체가 뭐죠? 심판자 아니면 선별자인가요? 그 탑의 출현도... 그것도 당신들의 선별 도구인가요?

"우린 관측체가 가진 의지의 집합에 불과해. '규칙' 때문에 인간의 역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는 없어. 왜냐하면 관측 초기에 과도한 간섭으로 막 태어난 문명 세 개를 망가뜨린 적이 있거든."

"극소수의 '우리'는 차원이 낮은 세계에서 움직일 수 있는 '투영'이 있어. 그들은 사절인 동시에 여행자야."

"그리고 '탑'은 생명 진화의 또 다른 상징이야. 넌 그 특성을 이용해 이곳에 올 수 있는 길을 찾았을 뿐이야."

"퍼니싱이 인간에게서 새로운 진화 방향을 찾은 것처럼, 인간도 퍼니싱을 이용해 달성하지 못했던 일을 이룰 수 있어."

퍼니싱... 선별자인 동시에 선별되는 대상이기도 하다는 말인가요?

"너희들이 '인간형 생물체'라고 부르는 생명은 이런 생물이 진화한 정점이야. 인간이 그것들을 처치했을 때, 인간의 미래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의미해."

당신들은 대체 뭘 원하는 거죠?

"모든 가능성에서 인간의 진정한 미래를 관측하고 목격하는 거야."

"혈육의 몸으로 아직 열리지 않은 문에 닿는 그 순간을."

"우린 '인간의 생존 가능성'을 알고 싶어."

"우린 늘 기다리고 있었어. 최종 '시련'을 통과해, 함께 '규칙'의 미래를 깨기를 기다렸지."

"네가 여기에 도착했으니..."

거대한 두 눈이 천막 속에서 사라지고 세계가 순식간에 축소됐다. 그리고 수많은 투명한 원뿔이 시공간의 균열에서 나와 리가 있는 방향으로 공격해 왔다.

"네 의지로 너희들의 답을 우리에게 알려줘."

리는 여러 번 경험해 봤다는 듯 능숙하게 원뿔 공격을 피했다.

리는 "자신"이 이곳에서 싸우는 모습을 봤다. 수많은 "리"가 나선형 플랫폼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마지막 허상이 앞에 멈춰 서서 손에 든 무기를 건넸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우리가 이 의식의 바다를 통해 너에게 전달하는 건 네 마지막 카드가 될 거야."

리의 손이 무기에 닿자마자, 만신창이가 된 구조체 허상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전해져 온 건 변하지 않는 용기와 그리움, 그리고 모든 세계선 속 "리"가 싸웠던 기억이었다.

모두의 노력, 모두의 후회 그리고 인간의 의지로 리는 이 기체로 탑의 정점에 도달했다. 그리고 리는 이곳을 떠나 최초의 사명을 완성해야 했다.

제가 이 거짓된 공간에 종말을 가져다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