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합 탑에서 알 수 없는 전자기 방사선이 발사된 지 2시간이 지난 지금, 인간의 전선은 외딴섬처럼 이합 생물의 바다에 포위돼 있었다.
하지만 공포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전투에서 뒤를 맡길 수 있는 건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전우였다. 하지만 지금은 기이한 붉은빛의 영향을 받아 모든 사람을 믿을 수 없었다.
거기엔 지휘관도 포함돼 있었다.
생명엔 지장 없지만 의식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알겠어요. 하지만 지휘관님도... 지휘관님!
깜짝 놀란 리브가 구급상자를 들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무의식적으로 촉촉해진 입술을 손으로 닦았다. 그러자 촉촉해진 입술이 비 때문이 아닌 코에서 흘린 피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멈췄던 피가 다시 흐른다는 건 무리하게 많은 구조체와 강제적으로 연결했기 때문일까.
의식 연결이 한계를 넘었어요! 지휘관님! 정신 차리세요!
누군가가 긴급 지혈제를 주사하려던 리브의 목을 바짝 졸랐다.
인간의 악력은 구조체에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리브는 통증을 느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리브는 피하지도 저항하지도 않은 채 목이 서서히 조이는 걸 내버려 뒀다.
괜찮아요. 지휘관님, 괜찮아요.
리브가 통증을 참으며 주사를 놔줬다. 하지만 마인드 표식 오염의 영향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휘관의 다른 손이 홀스터로 향하고 있었다.
마지막 힘을 다해 팔의 움직임을 멈춰봤지만, 몸이 점점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네. 지휘관님!
하지만 그러면... 지휘관님은...
적의 포위망 안에서 무장을 해제하는 행동은 자살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의 자신은 자살조차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알겠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길 지킬게요.
리브는 결국 지휘관의 설득으로 명령을 수행했다. 지휘관이 또다시 통제력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무기를 손에 쥘 수 있다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이때,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지휘관님! 아울 소대 지휘관과 합류했어요. 그는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거 같아요.
해리조 지휘관의 잘못된 지시를 받고 온 구조체라도 상황을 잘 설명하면, 상대방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적의 취약 구역을 노리고 돌격한 뒤, 이중합 탑 근처의 거점을 탈환해서 익숙한 지형을 이용할 수 있다면 적은 인원으로도 많은 적에게 대항할 수 있어요.
교과서에 있었던 내용이에요.
그 전술이면 리의 퇴로도 확보할 수 있었다. 임무를 완수하다가 다쳤을지도 모르는 리를 많은 적들과 혼자 마주하게 둬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네. 그들과 함께 바로 그쪽으로 합류할게요.
알겠어요. 안녕하세요. 아울 소대 지휘관님. 저희 지휘관님께서...
루시아가 통신으로 아울 소대 지휘관과 연결하려고 할 때, 지휘관은 단말기의 화면에서 아울 소대 지휘관의 모습을 보게 됐다.
루시아에게 경고하는 순간, 그 지휘관이 손에 들고 있던 총의 총알이 무방비 상태에 있던 루시아를 향해 발사됐다.
!!?
인간이 사용하는 권총이지만, 루시아에게 상처 주기엔 충분했다.
멍청한 승격자! 걸려들었구나! 아울 소대, 루시아를 처치해!
이 사람은 아울 소대의 지휘관이 아니었다. 마인드 표식이 오염된 지휘관 중 한 명이 자신의 마인드 표식으로 아울 소대 대원을 강제로 연결한 것이었다.
윽... 아울 소대! 여긴 그레이 레이븐 소대... 어서 정신 차리세요!
수많은 총알과 무기가 루시아를 덮쳤지만, 동료들을 상대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루시아는 힘겹게 방어하면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모든 공격이 갑자기 멈췄다. 아울 소대 대원의 기체 관절이 얼음으로 덮이며 그들의 행동 능력을 대폭 감소시켰다.
크롬!
정확하게 냉기를 시전 한 구조체는 차징 팔콘 소대 대장 크롬이었다.
루시아. 늦어서 죄송해요!
쯧! 방심했군. 승격자에게 지원이 있을 줄이야! 그래도 성과는 내야겠지!
그 지휘관은 자기 대원의 총기를 빼앗은 뒤, 무작정 루시아를 향해 발사했다. 하지만 구조체 무기의 격렬한 반동에 견디지 못한 가짜 아울 소대 지휘관은 한 발만 쏜 뒤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루시아를 향해 발사된 총알은 칠흑 같은 거대한 검이 막아냈다.
루시아! 일어설 수 있겠어?
네. 고마워요. 카무이.
짜증 나!!!
아울 소대 지휘관이 다시 공격하려고 할 때, 뒷덜미에 저격총이 사용하는 마취 주사가 소리 없이 박혔다.
으... 으...
순순히 수술받지 않는 환자들을 상대할 때는 이런 게 도움이 되기도 하거든.
멀리서 저격용 총을 든 반즈가 손을 흔들고 있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반즈, 잘했어.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님. 먼 곳에서 임무 수행하는 카무를 제외한 차징 팔콘 소대 3명 모두 집결했어요.
알겠어요!
지휘관은 통신을 끊은 후에야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던 피를 토해냈다.
지휘관님, 괜찮으세요?
아니에요. 분명히 괜찮을 거예요!
머릿속 의식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지만, 리와 연결된 마인드 표식 신호는 느낄 수 있었다. 그 신호는 미약하지만, 계속해서 빛나고 있었다.
리도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빛이나 연약한 자신에게 질 수 없었다.
다시 올려다본 탑은 신의 거처라도 되는 듯, 하찮은 인간들이 죽기 직전에 발버둥 치는 걸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도 누군가는 계단을 오르며 신이 있는 문을 두드리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