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는 이중합 탑의 정점에 서서 위험한 붉은빛을 발하는 거대한 코어를 응시했다.
성공하기 일보 직전이 가장 위험하다는 건 그쪽도 잘 알고 있겠죠.
그래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시련으로 과거 당신에게 증오, 후회, 두려움, 약한 감정을 느끼게 했던 적이 나타날 겁니다.
당신이 보는 적의 모습이 어떨진 모르겠지만... 전 당신을 믿어요. 이번에는...
환영의 "리"가 서서히 사라지며 리와 겹쳐졌다. 그건 모든 인과가 여기에 모였다는 걸 의미했다.
이번엔 극복하겠습니다.
돌아선 리가 끊임없이 변하는 탑 내의 시공간을 마주하며, 앞으로 나타날 적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듯 조용히 적을 기다렸다.
공중에서 떨어진 걸쭉한 적색 퍼니싱 이중합체가 플랫폼 위에서 두 개의 창백한 인간형으로 응집됐다.
인간과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직감으로도 눈앞에 있는 남자와 여자 생명체가 인간 근원의 적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
인간의 모습, 인간의 지혜를 모방해 인간끼리 의지하는 것조차 모방했군요.
인간형 생물체는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 차갑게 리를 바라봤다. 지금의 그들은 리가 처음 봤을 때보다 더 끔찍해져 있었다.
리는 그것들이 이중합 탑에서 리의 내면을 따라 복제한 모방품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봤던 인간형 생물체보다 더 큰 위협을 느끼게 했다.
인간의 모든 것을 모방하면서도, 유독 인간이 가진 감정은 갖추지 않은 당신들은 지금 제 심정을 이해할 수 없겠죠?
여성 인간형 생물체가 리를 향해 자기 왼손을 들었다. 그러자 원래 팔이었던 부분이 활 모양으로 바뀌었다.
……
여성 인간형 생물체가 팔을 가볍게 움직이자, 고농도 퍼니싱으로 응집된 화살이 엄청난 속도로 리를 명중시킨 뒤,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기뻐하거나 흥분하지 않고, 멍하니 팔을 내린 여성 인간형 생물체는 눈앞의 구조체가 죽었는지를 확인하려고 했다.
여성 인간형 생물체의 예측은 아쉽게도 빗나갔다. 연기가 흩어진 후, 그곳에 죽어 있어야 할 구조체는 보이지 않았고 형체 없는 허상만이 남아 있었다.
전 수없이 실패했고, 인간도 수없이 실패했어요.
남성 인간형 생물체는 공중에서 들리는 리의 목소리 방향으로, 맹렬히 주먹을 치켜들어 높은 곳에서 탄창을 둔기로 사용해 돌격하는 리를 막았다.
그와 동시에 여성 인간형 생물체가 동료의 엄호하에 연달아 뒤로 점프한 뒤, 리의 등을 향해 화살 비를 퍼부었다.
사각지대에서 온 공격이었지만, 리는 손에 든 탄창으로 맞았어야 하는 공격을 불가능에 가까운 각도로 모두 막아냈다.
수많은 실패가 인간에게 가져다준 건 절망뿐만 아니라 더욱 강인한 의지도 있죠.
리가 남성 인간형 생물체를 향해 총을 연사하며 돌진했다. 인간형 생물체가 팔을 들어 방어했지만, 총탄의 충격에 연거푸 뒤로 물러나게 됐다.
계속 관찰하고, 학습하며 끊임없이 창조를 이어갔어요.
돌진의 가속도에 힘입어, 남성 인간형 생물체 곁으로 다가온 리는 남성 인간형 생물체의 자랑스러운 팔 갑옷을 분쇄시켰다.
……!?
하지만 리가 남성 인간형 생물체를 공격하는 짧은 시간은 여성 동료가 다시 화살을 겨누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빗나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화살을 쏘려던 순간 중형 탄창이 불가사의한 각도로 여성 인간형 생물체에게 던져져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
조금씩 전진하면서 점점 더 강해지는 겁니다.
남성 인간형 생물체를 차던 리의 모습이 곧바로 잔상으로 변했다. 진짜 리는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랐고, 속사권총과 탄창이 한순간에 변형됐다.
당신들과의 재회를 머릿속에서 수없이 시뮬레이션 해봤어요.
저격의 비결? 그걸 왜 알고 싶은 거야?
비결 같은 건 없어.. 조준할 때 자지 않는 것 외에...
총에 익숙해지고 또 명중시킬 수 있다는 절대적 자신감을 갖고 있는 거야.
중력자 폭탄? 쉿...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고에너지 총알을 제작하겠다고? 과학 이사회 IUO-9호 표준에 허점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됐어, 알았어. 어디에다 쓸 건진 묻지 않을게. 내가 줬다는 것만 네 지휘관에게 들키지 마. 알았지?
여러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라...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아니. 가능하지만 이런 무기는 밸런스가 많이 안 좋을 수 있어.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봐야겠지.
대체 어떤 적을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 거지?
제가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적과 혼자 마주쳤을 때, 지휘관님은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 거 같아요?
그렇긴 하지만 정말로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는 가정하에 조언해 주세요.
공격이요?
공중으로 뛰어올라 저격총을 인간형 생물체에 겨눈 리는 유일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인과관계가 수많은 시간과 차원 속에 서로 겹쳐졌고, 시간의 바늘은 천천히 돌아갔다. 이윽고...
결국, 모든 걸 담은 총알이 관통했다.
그런 다음... 방아쇠를 당긴다.
찰나의 기회를 잡은 리가 한방에 두 인간형 생물체의 두개골을 관통시켜, 그들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위치를 분쇄했다.
흥, 역시 쉽게 죽을 리 없지.
인간형 생물체는 탑이 복제한 존재여서 그런지 다른 이합 생물과 달리 머리가 치명적인 약점이 아니었다. 이윽고 그들의 몸을 구성하는 붉은 농액이 꿈틀거리며 머리를 재생시켰다.
얼마든지 덤벼. 몇 번이고 너희들을 시간의 끝에 묻어버릴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