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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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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8-1 파편-08-T3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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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모든 기억이 리의 머릿속에 흘러 들어갔다.

이곳은 리의 의식의 바다였다. 모든 실패와 죽음을 담은 의식의 바다, 모든 과거와 미래에서 다른 가능성을 위해 싸운 "리"의 의식의 바다였다.

그것들은 어떤 계기로 서로 쌓이고, 연결되어 눈앞에 혼돈의 무질서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그제야 리는 기체 적합할 때 나타난 의식의 바다 과부하와 한순간에 없어진 장면들의 근원이 이곳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장소가 존재하는 이유는 "리"의 미래에 관한 모든 기억을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과거를 향해 보낸 모든 메시지는 유일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며, 미래에 있는 리는 정보를 보내고 받을 때 했었던 모든 행동 기억을 봉인했다.

그리고 "우연"이라는 단서만 남겨서 이곳으로 리를 조금씩 이끌었다.

수많은 리가 마음속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을 때, 또 다른 리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변수를 초래하지 않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윤회하며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모든 "리"를 이 의식의 바다로 끌어들여 직접 소멸시켰다.

그 순간, 이 기억들을 통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었고, 세상 만물의 모든 정보량이 리의 눈앞에 직관적이고 또렷하게 펼쳐졌다.

리의 의식의 바다는 그런 방대한 정보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리는 또 다른 자신의 도움으로 모든 세계선 속에 있는 "자신"의 연산 능력을 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리는 봉인됐고 지워졌던 많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건 공중 정원의 함교에서 무기를 든 구조체에 둘러싸여 있던 자신이었다. 구조체들의 눈엔 붉은빛이 발하고 있었고, 응답할 수 있는 모든 통신에서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리는 눈앞에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한 인간이 자신에게 총을 겨누며, 보지 못했던 광적인 미소를 얼굴에 띠고 있는 걸 봤다.

리도 그걸 보고 총을 겨눴지만, 방아쇠는 당길 수 없었다.

공중 정원이 하늘에서 추락하고, 예전에 에덴은 대기 중에서 공기와 마찰하며 가장 밝게 빛나는 유성이 됐다. 불타는 붉은색 대지에서 달리는 리의 총알이 옛 동료들의 가슴을 관통했다.

리는 결국 자신에게 내민 그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차가운 기계가 하늘과 대지를 뒤덮었고, 푸른빛은 더 이상 지구에서 볼 수 볼 수 없게 됐다. 유일하게 남은 건 강철과 불에 탄 땅이었다.

그레이 레이븐 대원은 변함없었지만, 옛 지휘관을 구하지 못했고, 시체조차 회수할 수 없었다.

행동 능력을 잃은 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싸우기 위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온 힘을 다해 외쳤지만, 아무도 응해주지 않았다.

모든 것을 묻어버릴 큰 눈이었다. 재앙은 모든 생명에게 무차별적으로 내렸으며, 혹한 속에서의 만물은 멸망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퍼니싱의 위협은 가장 미약한 것이었다. 리는 헛된 전투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씩 영원한 겨울의 끝에 쓰러지는 걸 봤다. 그리고 소녀가 자신의 영혼을 불태우는 대가로 구한 미래도 끝없는 전투 속에서 영원한 어둠으로 향했다.

주변에 데이터 스트림이 하나씩 생겨나 조금씩 훼손되거나 온전한 인간형으로 구성됐고, 수많은 세계의 "자신"이 눈앞에 나타나 각기 다른 표정으로 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를 바꾸려고 했지만, 더 큰 비극을 일으키고 말았어요.

끝에 다다르고 나니, 자신이 뭘 위해 구원했고, 싸웠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모든 사람을 구할 순 없어요.

이건 제 충고입니다.

바꿀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아요. 당신이 "탑"에 들어오기 전에 일어난 일을 바꾸려 하지 마요.

"탑"에 들어선 이후로 존재할 수 있는 미래를 찾아요.

계속 그렇게 해왔어요.

주먹을 불끈 쥔 리의 눈에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는 듯 자신감이 넘쳤다.

이 순간 모든 기억이 리의 의식의 바다에서 하나가 되어 슬픔, 원망, 아쉬움이 모두 리의 일부가 됐다.

그러나 리는 절망하지 않았다. 자신의 세계는 아직 가능성으로 가득했고, 정해진 궤적도 모두의 노력으로 조용히 바뀌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의 난류 속에서 리는 "탑" 속 코어에 숨겨 있던 결정적 정보를 손에 넣었다. 그건 사라진 "리"의 마지막 기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기억을 불빛으로 만들어서 리가 가야 할 길을 비춰줬다.

수많은 세계 속의 "리"가 전달하려고 했던 건 비극적인 역사 자체를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절망적인 미래를 보게 되더라도 확고한 의지로 나아가는 "그"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거였다.

수천만 번의 전투에 직면하더라도 무한한 미래 속에서 굳건히 앞으로 나아갈 거였다.

리는 이 특별한 의식의 바다에서 오랜 전투로 상처투성이인 수많은 자기 모습을 모두 봤다.

"자신" 몇 명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했지만 딱 한 군데는 완전히 똑같았다.

당신도 이미 눈치챘겠죠?

외눈에 백발로 퇴색된 그가 리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바닥에서 빛나고 있던 물체는 그레이 레이븐의 명패였다.

리(?)

어떤 시공간이든 당신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대원이었어요.

리(?)

운명의 궤적이 어떻게 변하든 당신은 마지막까지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선택할 겁니다.

리(?)

그러니... 당신은 그레이 레이븐의 리만이 완성할 수 있는 사명을 완성해야 해요.

그는 명패를 보며 먼 과거를 떠올리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자신이 잡을 수 없는 미래를 봤다는 듯 살짝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그의 얼굴엔 더 이상 냉혹함과 슬픔이 없는 대신 따뜻하며 덧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는 마치 흩어져 내리는 셀로판지에 반사된 햇빛 같았다.

저는 더 이상 기회가 없어요. 하지만 그쪽은 다시 돌아갈 기회가 있잖아요. 돌아가서 모두가 미소를 지으며 반기는 걸 볼 수 있다고요.

그럼, 그쪽은요?

답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리는 무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저도 저만의 전장이 있어요.

제 사명은 끝났어요.

전 계속 싸울 겁니다.

아직 이루지 못한 소원이 있어요.

아직 전하지 못한 말도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어요.

그리고 지키고 싶은 미래가 있어요.

또 다른 "리"가 옆에서 나타났다. 리는 그가 탑에서 자신을 도와줬던 "리"라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그 모습은 리가 가장 익숙한 기체였다.

우린 이 의식의 바다에 투사된 "귀신"일 뿐이야. 탑 자체가 시간을 초월할 순 있지만, 우리의 존재는 결국 "규칙"에 의해 없어지게 될 거야.

마지막 시련을 영접한 "저"는 선별을 통과하지 못했으니까요.

선별... 규칙? 누가 무슨 자격으로 이런 "규칙"을 만들었다는 거죠?

저도 그쪽과 똑같은 질문을 했었거든요.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리는 상대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자신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질문을 들었을 때의 표정을 알게 됐다.

리는 문득 자신이 그레이 레이븐이나 차징 팔콘과 함께 있을 때면 늘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사실을 갑자기 떠올렸다.

당신도 곧 직면하게 될 텐데... 그 답은 스스로 알아내야 돼요.

이미 자신에게 던져진 수수께끼를 풀었으니 지금부터 퇴로는 없고 앞으로만 나아가야 해요.

이 의식의 바다에는 마지막 기억이 봉인되어 있어요. 그건 결정적인 정보가 담긴 기억이고, 설정된 타이밍에 봉인이 풀릴 겁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에요. 우린 이 의식의 바다를 통해 이걸 당신에게 전달하는 거고, 이게 당신 마지막 카드가 될 겁니다.

그전에 위로 올라가 파멸의 빛을 막고 "탑"의 규칙을 바꿔요. 그래야 당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구할 수 있어요.

첫 번째 "리"가 모든 후회와 희망을 모두 전해주는 듯 미소 지으며 리를 살짝 밀었다. 이와 동시에 리의 앞에서 익숙한 시공간 균열이 나타났다.

방법은 이미 알고 있을 테니 시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