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는 시공간 연속체 속에서 "워프"하는 이상한 느낌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번 균열의 끝에 나타난 건 과거의 지정 시간 포인트가 아니라, 이제까지 본 적이 없었던 혼돈의 공간이었다.
바람은 거세게 휘몰아쳤고, 머리 위에는 차가운 바다가 거꾸로 놓은 듯 부서지고 알아볼 수 없는 덩어리로 떠다니고 있었다. 공간의 깊숙한 곳에서 극도의 슬픔에 잠긴 울음 같은 천둥이 은은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는 땅속에 잠들어 있는 종말의 짐승이 울부짖는 것을 연상케 했으며, 순간 땅을 뚫고 나와 만물을 잠식할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폭풍에 의해 파괴됐다가 재구성하기를 반복했다. 여긴 기억에 남는 어느 곳이 아니라, 시간의 끝자락 먼지 낀 이름 모를 구석에 잊힌 듯한 곳이었다.
여긴... 의식의 바다?
어떤 기이한 신호에 이끌린 리가 유일하게 완전한 모양을 한 큐브 위에서 앞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발밑의 큐브는 리의 발걸음에 따라 조금씩 맞춰지면서 먼 곳을 향해 뻗어나가는 도로를 만들었다.
도로의 종점은 이 폭풍 속에 우뚝 솟은 외딴섬이었다.
저쪽인가.
리는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