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기 관측 장치 덕분에 탑 내부의 복잡한 중력 변화와 이상 공간을 뚜렷하게 포착할 수 있었고, "탑"의 숨겨진 통로도 리의 시야에 하나씩 드러났다.
우회해서 그 좌표에 가지 않았다면, 리는 전자기 관측 장치를 기체의 기본 부품에 넣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게 우연 같지만, 리는 허공 위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이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리가 탑을 올려다봤지만, 탑의 꼭대기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이 탑은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어.
리는 이 탑이 단순하게 퍼니싱이 이중합되어 만들어진 건물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겉모습과 전혀 다른 공간이 그 안에 있었고, 호흡하는 생물처럼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리가 도전과 위기에 직면했을 때의 행동을 모두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상이 어처구니없다는 걸 알고 있다. 과거의 리였다면 이런 가능성을 아예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전투를 겪으면서 그들은 항상 알 수 없는 새로운 위험에 직면했다. 그렇기 때문에 낡은 이론과 경험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었다.
사고를 고착화시켜서는 안 됐고, 리의 손에 들고 있는 복합 무장과 마찬가지로 첫 단계에서 일어날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만 했다.
탑 전체가 하나의 시공간 연속체야. 여기서 네가 속하지 않는 세계 속의 "가능성"과 접촉할 수 있어.
인식 범위를 벗어난 사물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것의 형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
이때,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게 네 인식의 총합이야.
눈에 보이는 걸 믿지 말고, 자신의 직감을 믿어.
머릿속에 언제 들었는지 모르는 목소리와 함께 현실과 같은 환상이 또다시 리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렬하게 견딜 수 없는 슬픔이 덮쳐왔다.
이를 악물고 솟아오르는 감정을 억누른 리가 다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 건 리의 현실이 아니었다. 리의 임무는 이 탑 꼭대기에 올라가 다시 다가오는 재앙을 막는 것이었다.
만약 리를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의 의지가 존재한다면 그곳에서 리가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