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호가... 이쪽이야!
공중 정원이 생긴 이래 이렇게 끔찍한 광경은 없었던 것 같았다.
피, 비명, 맹렬한 통곡과 웃음.
모든 현수막과 안내판에 새빨간 경고가 재생되고 있었고, 가지런히 놓여 있던 장의자도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리는 가는 길에 구조된 몇몇 직원을 보호하며, 미친 듯한 공격을 피했다.
멀지 않은 모퉁이에서 한 직원이 비틀거리며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잇따른 건 그를 향해 끊임없이 총을 쏘는 인간이었다.
저기 사람 있어요!
말할 힘 있으면 빨리 걸으세요!
미친 듯이 쫓아오는 인간을 기절시킨 뒤, 후방에 있던 구조체에게 인간을 맡겼다. 눈살을 찌푸린 리는 다시 한번 아시모프가 보낸 메시지를 떠올렸다.
전자기 방사선, 마인드 표식... 퍼니싱 이중합... 탑...
입을 꾹 다문 리는 후방에 있는 생존자 수를 확인한 뒤, 단말기로 근처의 긴급 피난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소용없어요. 방금 전 적색 빛이 바로 전자기 방사선이에요. 일반 보호로는 차단할 수 없어요.
그래도 직접 노출되는 것보단 나을 거예요.
가장 가까운 피난처가 저쪽에 있으니, 따라오세요.
입을 다문 직원은 달리다가 찢어진 코트를 들고는 조용히 리의 뒤를 따랐다.
긴급 피난처는 이미 대피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한곳에 모여 있다가, 가끔 작은 소리로 무언가를 토론했다.
리는 이곳의 안전을 담당하는 구조체와 교대했다. 피난처에는 질식할 정도로 무거운 공기가 흘렀고, 모두의 얼굴에는 불안과 초조함이 감돌았다.
공중 정원 E-02 "에덴"이 지구로부터 알 수 없는 전자기 방사선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안내방송을 들은 모든 에덴 주민은 즉시 가까운 긴급 피난처로 대피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건 훈련이 아닙니다. 반복합니다. 이건 훈련이 아닙니다.
안내방송을 들으신 후, 즉시 가까운 긴급 피난처로 대피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내방송은 계속해서 피난 메시지를 반복했고, 기계적인 오디오도 조금의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소용없어.
어디선가 들리는 작고 연약한 목소리가 답답한 분위기를 깼다.
과학 이사회에서 탈출한 연구원의 목소리였다. 그는 몸을 웅크려 무릎을 껴안고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지구의 자전 속도와 공중 정원의 궤도 속도로 계산해 볼 때...
공중 정원의 순항 속도를 제어할 수 있다고 해도 다음번에 노출되면, 4시간... 아니... 3시간 후에... 아니, 우리에겐 30분밖에 남아 있지 않아...!!
그는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그때가 되면... 이 피난처에 있는 사람들이 미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지?!
……
피난처 안에서 가벼운 토론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잠시 후 다시 조용해졌다.
데려온 사람들을 진정시킨 리는 서둘러 과학 이사회로 향했다.
공중 정원, 과학 이사회.
과학 이사회의 상황도 참담했다. 바닥에는 깨진 실험 기구와 기기들이 흩어져 있었고, 강제로 중단된 기기 소리와 떠들썩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오는 길 곳곳에 미친 연구원들이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었다.
이합 생물! 이합 생물이 어떻게 공중 정원으로 들어왔지?
정신 차려! 그건 이합 생물이 아니야!
여기도 한 마리 있네! 지원을 요청한다! 이합 생물이 방어선을 뚫고 과학 이사회까지 침입했다!
난 이합 생물이 아니야! 몽둥이 내려놔!
윽...
제정신이 아닌 동료를 어떻게든 막으려던 연구원은 뒤에서 오는 습격에 두 눈을 부릅뜬 채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 구조체도 침식됐어! 조심해!
주변으로부터의 공격은 예상하지 못해서 저항하기 어려웠다. 과학 이사회의 대부분 연구원은 아직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미치광이 몇몇만으로도 이곳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연구원들은 이미 전자기 방사선의 영향을 받아 망상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아직 오염되지 않은 연구원들은 한곳에 모여 전력으로 그들의 "동료"를 막고 있었다.
가는 길에 생존자들을 구한 리는 아시모프의 실험실 범위에 들어섰다.
크게 열린 실험실 문 앞에 불길한 핏자국이 내부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시모프 님... 제발 무사하세요.
실험실 내 전자 스크린은 아직 빛나고 있었지만, 많은 유리 실험 기구와 정밀 기기가 부서져 있었다.
평소와 달리 기기 앞에서 바쁜 아시모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실험실은 텅 빈 것 같았다.
"펑!"
갑자기 총알 한 발이 리의 뒤에서 날아왔다. 하지만 리는 총소리를 듣자마자 날렵하게 피했다.
이합 생물! 또 나타났어! 그들은 한패야!
지원 요청! 지원 요청!
과학 이사회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있던 낯선 연구원은 총을 들고는 광적이고 고통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연구원은 검은 단말기 스크린을 향해 지원 요청을 외치며 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
아시모프 님은 어디 계세요?
이합 생물이 또 말했어!
이합 생물이 뭐라고 말하는지 잘 들리진 않지만, 방금 전 이합 생물과 마찬가지로 어떤 의미로 구성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건 확신해.
연구원은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단말기를 터치하며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두 번째 포획 시도-녹화 시작!
이 발견으로 올해의 상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잡아야 해. 잡아야 해!
연구원은 흡사 "이합 생물"을 잡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 연구 성과를 잡는 것처럼 미친 듯이 리를 향해 덮쳤다.
……
과학 이사회의 연구원을 깔끔하게 제압한 리는 실험대 뒤에서 기절한 아시모프를 발견했다.
리가 있는 장소에서는 아시모프의 상체밖에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에 연구원의 습격을 당한 듯 피투성이 상태로 쓰러져 있는 아시모프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뺨과 팔에는 크고 작은 찰과상이 있었지만, 어깨뼈 부근에 관통한 총상이 가장 심해 보였다. 간단한 치료를 받은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위험한 상황인 것만은 확실했다.
총을 너무 빨리 쏴서...
지혈용 붕대... 다 떨어졌나요? 여기 소독 젤이 좀 남아 있던 거 같은데...
품에 약품을 잔뜩 안은 보라색 머리의 꼬마 아가씨가 실험실에 나타나 비틀거리며 빠르게 뛰어왔다.
로사?
리를 보고 소리치지도 않았고, 아시모프를 죽이려 하지도 않았다. 이 꼬마 아가씨는 아직 정상인 것 같았다.
어... 리, 리!
고개를 든 로사의 눈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했다.
흑... 방금 그 사람이 아시모프 님을 쐈어요. 전 그걸 보고도 막을 수가 없었어요. 흑흑흑...
제가 뒤편에서 약을 좀 찾았어요.
이미 잘해 주고 있어요.
어설프게 로사를 위로한 리가 아시모프의 상처를 간단히 치료하자 피가 멎었다. 하지만 아시모프는 금방 깨어날 것 같지 않았다.
아시모프의 권한을 무시하고, 강제로 기체를 변경한다면...
아니. 안 될 것 같아.
리가 필요한 건 권한뿐만이 아니라 새 기체를 가동할 때의 파라미터와 일련의 조정된 데이터였다.
이런 데이터들은 모두 최고 기밀이기 때문에 종이나 전자기기에 저장하지 않고, 자신의 뇌만 믿는다고 아시모프가 말한 적이 있었다.
이런 조심스러운 습관이 걸림돌이 될 줄은 몰랐다.
로사, 새 기체의 가동 파라미터와 조정 데이터에 대해 아시나요?
음... 전 조정에 참가만 해서 다른 건 잘 몰라요.
아시모프 님께서 그건 기밀 자료라고 하셔서... 저...
그래도 이전 기체 적합 실험의 기록 백업은 찾을 수 있어요.
리와 로사는 볼 수 있는 모든 메모리와 종이 자료를 찾았지만, 일부 이전 기체 적합 실험 때의 전투 시뮬레이션 기록 백업만 찾을 수 있었다.
이중합 조각에서 얻은 좌표와 정보를 떠올린 리는 숫자가 적힌 기억 장치를 보면서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이중합 조각 속의 "메시지"...
가설이 맞다면, 퍼니싱엔 해독할 수 있는 "언어"가 존재해...
그럼, 이중합 조각에 직접 침식돼서 이중합 조각으로부터 정보를 획득할 수 있을 거야.
이 가설이 맞다면, 리는 성공적으로 기체를 가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틀린다면...
"너무 위험해."
지휘관님이라면 이렇게 말씀하셨겠지.
하지만... 지금은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바깥은 아직도 혼란스러웠고, 병상에 누워있는 아시모프의 입술은 창백했다. 연약한 인간 육체를 가진 아시모프는 피를 너무 많이 흘린 상황이라 의식을 유지할 수 없었다.
로사는 소심하게 리를 도와 관련 자료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똑딱거리는 소리와 함께 흘러가면서, 혼란스러운 공간을 조각냈다.
시간이 없었다. 그 "탑"이 다시 공중 정원을 비추기 전에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리는 책상 위에 흩어져 있던 메모리와 종이 자료를 깔끔하게 정돈한 다음 켜져 있던 전자 스크린을 껐다.
로사, 이곳에 남아서 아시모프 님을 돌보시면서,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주세요.
흑... 네. 알겠어요!
아시모프의 작업 카드를 뽑아 든 리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 물건에도 당신밖에 모르는 암호가 걸려 있지 않길 바라요.
그렇지 않으면 부상자를 억지로 깨워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미친 연구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돌아서서 문을 잠근 리는 과학 이사회의 다른 실험실로 달려갔다.
연구의 편리성 때문인지 과학 이사회의 이중합 조각에 대한 저장은 아시모프의 뇌만큼 치밀하지 못했다.
아시모프의 권한 키로 마지막 보안 시설을 해제했다. 이중합 조각이 들어 있는 유리 덮개 안에서 기이한 색채가 발하고 있었다.
……
리는 미간을 찌푸렸고, 방 안에는 감지 기기가 내는 소리밖에 없었다.
그 기체를 가동하는 순간을 몇 번이고 상상했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가동 파라미터와 조정 데이터를 획득하는 방식일 거라고는...
확실히 위험한 것 같았다.
하지만...
밀폐된 방 밖, 공중 정원, 지상에서 수많은 혼란이 폭발하고 있었다.
전자기 방사선은 노출된 모든 인간의 마인드 표식을 오염시키고 그들이 보는 모든 것을 왜곡시켰다.
인간 자체의 힘으로 볼 때, 야기할 수 있는 파괴는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높은 권한을 가진 인간들이 혼란과 광기에 빠지면, 그들이 가져올 재난은 퍼니싱의 확산보다 더 끔찍할 것이었다.
그 메시지가 사실이어야 하는데...
리는 유리 덮개를 열고 과감하게 이중합 조각을 꺼냈다. 그리고 퍼니싱이 방 전체로 확산되기 전, 가슴에 힘껏 찔렀다.
윽...
날카로운 통감이 인조 피부와 이중합 조각이 닿는 부분에서 터져 나왔고, 순환액을 뿜어내는 로봇 구조는 미친 듯이 진동했다.
"심장" 부위의 존재가 두근거리는 걸 이렇게 또렷하게 감지해 본 적이 없었다. 가슴에서 이 정도의 격렬한 박동을 마지막으로 느꼈던 건, 리가 구조체로 개조된 후 심장을 머레이에게 이식하기 전이었다.
심한 통증이 하늘을 뒤덮을 만한 해일처럼 리의 의식의 바다를 끊임없이 덮쳤다.
오래전에 잊힌 줄 알았던 오래된 추억들이 고통의 파도에 의해 떠올랐고, 시간은 순환액을 타고 역류하며 이중합 조각이 있는 곳으로 직진했다.
일그러진 빛의 반점, 칠흑, 기괴한 색채들이 이어지는 이상한 화면으로 구성되면서 가느다란 신경 하나하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느다란 바늘로 찌르는 듯한 작열의 아픔이 기체를 감쌌다. 리는 무언가에 휘감겨 심연으로 추락하는 느낌이 들었고, 오감은 조금씩 흐려져 갔다.
의식의 바다는 허전하고 으스스했다. 이따금 알아들을 수 없는 잠꼬대와 외침이 날카로운 통증을 안고 청각 모듈로 돌진해 왔다.
정신... 차려야 해...
안 돼...
의식의 바다에서 형형색색의 색채와 기괴한 화면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한곳에 모였다가 지리멸렬한 강줄기가 되어 흘렀다.
시계가 멈췄다가 뒤로 미친 듯이 돌았다. 시야에 분열된 화면들이 어렴풋이 나타나 마임을 하듯 조용히 공연했다. 어떨 땐 새 기체가 홀로 걷는 화면, 어떨 땐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함께 겪었던 전투, 그리고...
나선형 탑은 굴곡된 시선 속에서 하늘 끝까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영원히 정상에 오를 수 없는 계단처럼 험준했고, 경외감을 느끼게 했다.
리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유지하면서 어떻게든 무질서한 데이터로부터 정보를 파악하려고 했다.
찾았다.
해독 시작... 가동 파라미터 확인... 조정 데이터 확인...
방대하고 번잡한 정보의 흐름 속에서 리는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포착했다.
어둠이 조용한 공간을 잠식했고, 의식은 끊임없이 침식되며 벗겨졌다.
심연 속에서 자란 가시는 손목을 타고 로봇의 심장을 향해 뻗어갔다.
윽!
갑작스레 커진 동공이 구조체가 방금 겪은 모든 고통을 보여주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신 리의 손가락 사이에서 파란 순환액이 흘러나오면서 녹슨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죽음을 이런 식으로 또렷하게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신경이 아직 허전한 심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 리의 관절이 무의식적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단시간 과량 연산으로 기체에 과부하 현상이 조금 나타났다. 새하얀 천장을 멍하니 쳐다본 리의 의식의 바다에는 방금 전에 "봤던"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갔다.
그 기억들은 실제로 존재했던 것인가?
방금 전 봤던 화면들이 뇌리에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새 기체로 변경하는 행동, 오래전 전투 임무, 리는 그 일들이 자신이 겪었던 것과 조금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것이 진짜 기억일까?
눈을 감고 시각 모듈을 재교정한 뒤 눈을 뜨니 다양한 환각들이 망막에서 사라졌다.
그것들이 진실이든 아니든, 리는 가장 필요한 물건을 이미 얻었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리는 기체와 관련된 내용을 완전히 해독했다.
가동 파라미터, 조정 데이터... 그 외에도 추가적인 수확이 있었다.
모호했던 메시지가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건 리의 원래 계획과 같은...
"초각"이라는 새 기체를 가동해 "탑" 안으로 들어간다.
미래라는 선물이라?
회복되는 손목을 조금씩 풀어주자, 리의 미간도 살짝 풀렸다.
해결 방법만 있다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눈빛이 굳건해진 리는 과학 이사회의 폐쇄 시험 구역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