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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열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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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면 시간, 2:30 PM

성층권, 수송기 내.

수송기의 날개가 구름을 뚫고, 높은 하늘에 항적선을 남겼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창밖의 지표면이 조금씩 선명하게 보였다.

상공에서 내려다본 구름과 안개에 가려진 폐허의 도시는 황금시대가 투영된 신기루와 같이 환각의 번영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까워지면서, 여러 개의 가늘고 길게 뻗은 검은 선들이 도시의 중앙을 관통하는 것이 보였다. 그건 지진으로 생긴 단층으로, 갈라진 피부처럼 납빛 강철 정글 위로 눈에 띄게 새겨져 있었다.

행성에 있어선 평범한 지각 변동일지 모르지만, 이곳을 집으로 삼은 인간의 눈에는 재앙이 남긴 상처였다.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던 단층 주변의 산발적인 건물들이 지진으로 인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일부 파손된 흔적엔 검은 그을림과 크고 작은 포탄 구멍으로 가득했다.

지휘관님, 예정된 착지 지점의 손상이 예상보다 심각해서 앞당겨서 착륙해야 할 것 같아요.

알겠어요.

수동 운전으로 전환하고 비행 고도를 낮출게요.

엔진의 굉음과 함께 수송기가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지휘관은 익숙한 흔들림 속에서 고갤 숙여 이번 지상 임무의 세부 사항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한 시간 전.

최근 두 달 동안 지표면 곳곳에서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았어요.

하지만 공중 정원에는 사용할 수 있는 감지 기기가 너무 적어서,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전체적으로 평가하기가 쉽지 않아요. 게다가 이번 지진은 보육 구역과 가까운 곳에서 발생한 경우가 많아요.

네. 현재까지 수집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몇 차례 지진의 분포 범위가 심상치 않았아요.

보육 구역들이 위치한 곳의 지각 활동은 활발하지 않았고, 지진대나 그 주변에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이론상 이런 구역에서 심각한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아요.

그게 바로 우리가 이 지역에 보육 구역을 우선적으로 건설하게 된 이유 중 하나에요.

세리카는 홀로그램 맵에서 지진이 일어난 지역과 지질 맵을 겹쳐서 보여줬다.

맞아요. 그리고...

탐지를 위해 출동한 인원이 지진 전과 지진 후의 퍼니싱 농도를 측정해 보니, 평균 2.3%가 증가했다고 해요.

세리카는 고갤 들어 지휘관을 바라봤고,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끄덕였다.

지진 전과 지진 후를 비교했을 때, 퍼니싱 농도가 평균 2.3% 증가했어요.

이 데이터만으로는 효과적인 결론을 낼 수 없어요.

하지만 최근 발생한 여러 차례의 재난이 보육 구역의 건설 진행도에 심각한 영향을 줬고, 지진 때문에 많은 건물과 에너지 시설이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됐어요.

달에 남아서 기지의 재건 작업을 하는 일부 인원을 제외하고, 정비 부대의 대부분 인원이 지상으로 지원하러 갔어요. 이에 따라서 유사한 임무가 집행 부대에도 배당됐어요.

이런저런 이유로 우린 인력난 상태에 빠지게 됐어요.

여기까지 말한 세리카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고갤 숙여, 들고 있던 전자 파일을 열었다.

지표면과 이곳의 통신이 아직 완전하게 회복되지 못했어요. 그래서 피해의 구체 상황은 집행 부대가 지표면에 가서 조사해야 해요. 이게 바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임무예요.

주둔 중인 부대와 합류한 뒤, 그들을 도와 구체적인 피해 상황 조사, 지진으로 손상된 시설 복구 및 이상 상황에 대한 원인을 조사하는 거예요.

구체적인 정보는 현장에 주둔한 부대가 알려드릴 거예요.

세리카의 터치 동작에 따라 임무의 세부 사항이 지휘관 단말기에 전송됐다. 지휘관이 임무 내용을 자세히 확인했을 때 참여 인원 명단에서 리의 이름이 여전히 빠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임무에 관해서 물어보실 게 있나요?

산더미처럼 쌓인 일 가운데서 고개를 든 세리카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신중하게 물었다.

지금 여기서 리에 관한 얘기를 물어본다면, 전과 비슷한 답변을 들을 게 뻔했다.

무사히 복귀하길 바라요.

지휘관님, 도착했어요.

리브의 목소리에 지휘관은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수송기는 평온하게 지면에 착륙했다.

맵에서 근처 침식체와 이합 생물의 신호 수량이 안전 범위에 있다고 표시된 걸 확인한 지휘관은 루시아와 리브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수송기의 문을 열었다.

발이 땅을 닿는 찰나, 한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다. 발밑 아스팔트에 작고 가느다란 금이 간 듯 땅속 깊은 곳에서 전해져 오는 떨림이 생각의 깊숙한 곳까지 뻗어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마치 심장 박동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 감각은 환각인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휘관님?

갑자기 멈춘 지휘관의 동작에 리브는 걱정되는지 다가와서 물었다. 이에 지휘관은 고개를 젓고, 등을 쭉 펴면서 리브에게 괜찮다고 했다.

수송기의 급격한 감속 때문에 신경이 자극받아서 반사작용이 일어난 것 같았다. 생각에 잠긴 나머지 충격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해 생긴 일 같아서, 이후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부터는 수송기를 사용할 수 없어서 근처 소대에 마중 나오도록 요청했고, 그들의 소형 운송 장비가 15분 후에 도착할 예정이에요.

알겠어요.

이게 전부 지진이 남긴 흔적인가요?

루시아는 걸어가는 내내 주변에서 올지도 모르는 위협에 경계했고, 리브는 가져온 기록 기기를 사용하며, 길에서 마주친 지면의 균열과 퍼니싱 농도를 분석했다. 그리고 분석 결과를 홀로그램 맵에 하나씩 표기했다.

카퍼필드 해양 박물관 전투가 종료된 후, 이합 생물의 위협도 줄어드는 적조와 함께 약해졌다.

이합 생물이든 증식하는 퍼니싱 중합체든 예전처럼 대규모로 나타나지 않았고, 위성 이미지에 찍혔던 광범위한 주홍색은 자취를 감춘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의회는 당분간 대량의 Ω 무기를 투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달 표면 기지 재건의 진척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특화 기체의 연구도 최신 자료의 확보에 힘입어 새로운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전황의 변화는 바다 위에서 기승을 부리다가 평온해진 폭풍우처럼 인간에게 잠시 숨 돌릴 틈을 줬다.

승리의 소식은 매번 빠른 속도로 시민들의 귀에 들어갔고, 모두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줬다.

이런 평온은 곧 다가올 따뜻한 봄의 전조일까? 아니면 비바람이 몰아치기 전의 고요함일까?

마음속 불안이 가시질 않았다. 이와 같은 이상 상황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연이은 기묘한 지진 때문에 이런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번엔 그 어떤 실마리도 놓치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곤두세웠다. 더 이상 소대 대원들이 홀로 맞서게 하는 상황이 없도록 돌발 상황을 사전에 대비해야 했다.

지휘관님? 안색이 안 좋으세요.

루시아는 걸음을 늦추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휘관을 바라봤다.

루시아의 말을 듣고 나서야 지휘관은 자신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민의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 임무는 정찰에 협력하는 것뿐이니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방금 임무 수행을 시작했는데 벌써 두 번이나 그녀들을 걱정시키게 한 것으로 지휘관의 체면이 서질 않았다.

지휘관님의 몸은 거의 다 회복됐지만, 그래도 방심하면 안 돼요.

알겠어요. 그래도 전 지휘관님의 건강 상태를 계속 주시할게요.

"흥, 그러시는 게 좋을 거예요."

루시아는 갑자기 굳은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며, 평소 스타일과는 다른 어투로 말했다.

리가 여기 있었다면 이렇게 말을 했을 것 같아서요.

진지한 표정의 루시아가 조금은 걱정스럽고 복잡한 기색을 드러냈다.

확실히 리가 할만한 말 같네요.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리브가 곧 난처한 듯이 웃었다.

리는 항상 그래요. 조용히 걱정하면서도 말은 가시가 돋쳐 있는 것처럼 말하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행동하죠.

리는 항상 그래요. 조용히 걱정하면서도 말은 가시가 돋쳐 있는 것처럼 말하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행동하죠.

그리고 항상 모든 걸 자기가 다 짊어지려고 하죠.

맞아요. 리는 자기 의사를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죠. 지금도 그렇고요.

그제야 지휘관은 자신이 생각에 잠겼을 때, 그녀들도 리에 관한 일을 생각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리는 말수가 적지만, 초석처럼 그레이 레이븐을 강인하게 지탱해 주고 있었다. 요즘은 기체 적합 때문에 소대와 함께 임무 수행을 못 하지만, 그레이 레이븐과 관련된 일상적인 일에는 한 번도 게으른 적이 없었다.

출전 전엔 단말기로 상세한 지형과 적 분석 자료를 공유해 줬고, 기지에 있을 때면 매번 예비 외골격과 무기를 세심하게 조정해 줬다.

어느 것 하나 리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레이 레이븐은 언제쯤이면 다 함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요?

새 특화 기체의 연구는 기밀 사항이기에 지휘관님이 알 수 있는 정보도 제한적이에요.

하려던 말이 갑자기 울린 통신 알림음에 끊겼고, 단말기에 통신 신청이 떴다.

이 코드는 근처 보육 구역에 주둔한 정비 부대 대원 거예요.

???

테스트%&@--통신 링크로 전환%#@--

연결됐다! 저기! 들려?

신호를 조정하는 잡음이 한바탕 들리더니 이내 상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오오, 여기는 지원 부대야. 이미 그쪽의 위치를 확인했으니, 금방 데리러 갈게.

10분 후, 시야에 나타난 세계 정부 표시가 달린 소형 운송 장비가 능숙하면서도 난폭한 운전으로 폐허와 단층을 피해 이쪽으로 질주해 왔다.

이 느낌, 어딘가 익숙한 것 같았다.

생각하는 사이에 운송 장비가 소대의 눈앞까지 왔다.

???

안~ 녕!

멋진 드리프트를 한 뒤, 도로변에 정차한 차의 창문 너머로 익숙한 그림자 하나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오랜만이야.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일단 차에 타. 자세한 건 가면서 얘기해 줄게.

운송 장비가 보육 구역 방향을 안정적으로 달렸다. 브리이타는 의외로 올 때처럼 액셀을 끝까지 밟지 않았다.

차 안에는 정비 부대 구조체가 타고 있었고, 그레이 레이븐은 가는 길에 그녀와 임무 세부 사항을 확인했다.

[player name] 지휘관님, 대원 루시아와 리브... 총 세 명 확인 완료했어요.

이건 저희가 오는 길에 수집한 데이터예요.

접수됐습니다.

지휘관 옆에 앉아 있던 리브와 루시아가 기록 기기에 있던 데이터를 전송했다.

아주 유용할 거 같아요. 고마워요.

땡큐.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여전히 믿음직스럽네.

안 좋아.

지진이 발생했을 때, 대피를 잘해서 인원 피해는 없었어. 하지만 보육 구역의 많은 기본 시설이 지진의 피해를 보아서, 지금은 예비 발전 시스템으로 조금씩 전력 공급을 복구하고 있는 상황이야.

게다가 일부 통신탑도 파괴됐어. 지금 정비 부대가 수리 작업을 하고 있으니, 우리 구역의 통신은 내일이면 모두 복구될 것 같아.

그리고 여진이 발생할지는 확실치 않아. 적어도 지금까지의 지진 발생 빈도에는 규칙이 없었어.

일손이 부족했는데, 마침 와줘서 다행이야.

오전에 임시로 짠 거 같은 소대의 지휘관이 구조체를 데리고 왔는데, 지금은 인근 보육 구역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그쪽 피해는 여기보다 더 심각해서 침식체 반응도 나오고 있어.

게다가 아무리 신청해도... 요즘 집행 부대 내부에 문제가 많지?

"배신자".

줄곧 잠자코 있던 정비 부대 구조체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머리 위에 있는 백미러 너머로 그녀의 훑어보는 눈빛이 보였다.

후.

선글라스를 벗은 브리이타가 한숨을 내쉬었다.

의회가 의도적으로 은폐하려고 해도, 각 부대에선 공공연한 비밀이 됐거든.

배신한 구조체 수가 급증하는 바람에, 배신자가 나온 소대는 모든 임무를 중지시키고 공중 정원에 남겨서 조사를 받고 있잖아.

머릿속에 세리카가 일손이 부족하다고 말할 때의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자기도 모르게 리브를 쳐다봤는데, 리브 역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배신의 원인을 알아내기 전까지 그들에게 지상 전투가 허용되지 않아. 그리고 지금 임무를 수행하러 온 소대의 대부분이 임시로 짠 소대여서 협조하기도 어려워.

정보를 공유하고 최고 살상력 무기를 가진 군대에서 그 어떤 의심과 사기를 흔드는 상황이 나타난 건 치명적인 거야.

배신한 구조체 한 명이 승격자와 함께 나타나서 지표면의 모 기지를 습격한 뒤, 그곳의 모든 이를 죽였다고 들었어요.

그 구조체 때문에 제 친구는 아직도 구금실에 갇혀있어요.

브리이타는 손을 내밀어 옆에 있는 구조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미연에 방지하려고 하는 게 틀린 건 아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아.

참, 이번엔 왜 너희 셋이야? 또 다른 대원인 리는?

그렇구나. 리를 본 지도 오래된 거 같아.

마지막으로 함께 한 전투가 바닷가에서 모두의 힘을 모아 벌인 사투였다. 그 후로 지휘관이 리와 대화한 건 한 번밖에 없었다.

그건 상륙 전투를 끝내고 휴게실에서 익숙한 그림자를 보았을 때였다.

휴게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리의 일부 기체에는 생체공학 코팅이 덮여 있지 않았고, 옆에는 평소에 입고 다니던 코트가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리는 자기 팔을 수리하고 있었다. 오른팔의 로봇 구조는 노출돼 있었고, 다른 손엔 도구를 들고 그 속에 있는 정밀한 로봇 부품들을 꼼꼼하게 조정하고 있었다.

리의 표정은 평온했다. 마치 신체의 일부를 분해한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흔한 로봇 도구를 마주한 듯했다.

……

언제까지 보고 있을 거예요?

손동작을 멈추지 않은 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걸어, 엿보는 지휘관에게 행위가 발각되었음을 일깨워 줬다.

자신의 기체를 수리하는 것뿐이에요. 인간이 상처를 치료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리고 예전에도 종종 이런 상황이 있었는데, 의식의 바다에 편차가 생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전에 지원 임무를 수행하다가 생긴 거예요. 손상이 심하진 않지만, 이참에 출력 구조를 조정하려고요.

여기가 더 익숙해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문제니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할 필요 없어요.

기억 속 리는 생명의 별 구조체 정비실에 도움을 구하러 가는 일이 뜸했다. 하지만, 그게 결코 리가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항상 혼자 다니는 것 같은 리의 모습에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리가 차갑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리가 일의 어떤 부분을 은폐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알 것이다.

리는 고개를 들지 않고 눈앞의 작업에 집중했다. 방 안에는 금속 부품들이 맞물리며 딸그락거리는 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니요.

여긴 지휘관님의 휴게실이에요.

리는 어이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어보세요.

지휘관님 단말기에 매번 적합 실험의 보고서를 보내드렸는데요.

카퍼필드 해양 박물관 전투 이후, 지휘관의 간곡한 부탁에 하산은 매번 적합 실험의 진척 보고와 기체 상태에 관련된 정보를 동기화해 주는 걸 동의했다.

그 외 사항은 "해당 기체는 당분간 지휘관의 의식 연결 협력이 필요 없다"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하지만 보고서의 내용은 지휘관의 궁금증을 해소시키지 못했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하나씩 물어보세요. 입이 하나라서 동시에 그렇게 많은 질문에 대답할 수 없어요.

의식의 바다 과부하 문제는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체 성능과 전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요.

그리고 새 기체의 각 지표 모두 정상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요.

저 자신도 별로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고요.

리는 물어보지 않으면 묵묵히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놓아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가 리를 도와서 문제를 해결한 적은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리는 항상 주도면밀해요. 제가 그레이 레이븐 소대 대장이긴 하지만, 저 자신도 모르게 리의 판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요.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맡기면 모두 완벽하게 해낼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도 그렇고요. 하지만 리가 여태껏 이런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리에게도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어요.

리는 항상 그랬다. 말수는 적지만, 언제나 혼자 위험에 맞서는 믿음직스러운 동료였다.

……

저도 그렇게 믿고 있어요.

미간을 핀 리의 입가엔 위로하는 듯한 곡선이 올라갔다.

참 지휘관님 다운 말씀이네요.

안심하세요. 이번 적합엔 문제가 없을 거예요.

그때의 지휘관은 리에게 "개인적으로든 지휘관의 책임으로든 난 네가 걱정돼."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리는 잠시 멍해진 듯했다. 그리고 한순간 리의 눈빛은 지휘관을 통해 다른 무언가를 보는 듯했다. 지휘관이 손을 들어 리의 눈앞에서 몇 번 흔들었다.

알겠어요.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생기면...

팔을 수리하던 동작을 멈춘 리가 고갤 들어 지휘관을 바라봤다.

알려드릴게요.

리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지휘관은 리가 그렇게 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선의의 위로인지 알 수 없었다.

그 후, 차 안의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운송 장비는 빠르게 봉쇄 시설을 지나 목적지인 보육 구역에 도착했다.

파손된 건물은 임시 보강을 마쳤고 정비 부대 대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도중에 몇 명이 지나가면서 브리이타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네자 브리이타는 일일이 답했다.

우리 임시 기지가 바로 저기야. 우선 저기로 가자.

대장님!

이때, 정비 부대의 한 구조체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드디어 돌아오셨네요. 어서 이 데이터를 보세요!

난리 치지 말고 보여줘.

브리이타는 구조체가 들고 있던 측량기를 넘겨받은 뒤, 앞쪽 데이터를 넘겨 보기 시작했다.

방금 자기람 수치가 최고점을 갱신했어요.

이건 최근 2일간의 데이터에서 최고 수치잖아.

지난번 최고점을 찍은 게 언제였지?

두 번째 여진...

구조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멀리서 이상한 굉음이 들려왔다.

이윽고 발아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