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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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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 상냥한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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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

의식의 바다가 찢어질 듯한 극심한 통증에 리브의 시야는 점차 흐려지고, 그녀는 벽에 기대어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았다.

공중 정원으로 돌아온 지 28일이 지났다.

신형 특화 기체 적응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의식의 바다의 통증 증상이 더 뚜렷해졌다. 그녀는 그것이 아시모프가 처음 언급했던 ‘의식의 바다 극통’이란 걸 알고 있었다.

히포크라테스 교수의 도움으로 극통의 빈도가 많이 줄었지만, 통증의 깊이는 줄어들지 않았고, 매번 머리에 구멍이 뚫린 듯해서 집중하기 어려웠다.

적응 중에 희생된 구조체들은 이런 증상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 이상일 거야……

리브는 슬픈 듯이 두 눈을 감고 자신의 의식의 바다를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어서 일어나자.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어……

지금은 새벽 6시였다.

한 달 가까이 지상에 대한 구조 작전을 진행하지 않았어도, 생명의 별의 새벽은 여전히 분주했다.

미리 실습 기간에 들어간 많은 구조체와 의료진은 어떤 경우엔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많은 일을 부담했기 때문에, 가장 잔혹한 시기에 그 부상들은 비로소 죽음에서 생기를 얻을 수 있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리브 선배.

네…… 좋은 아침이예요.

아 참, 방금 올 때 연락관님을 만났어요.

어젯밤에 온 소식이 없으니 갈 필요 없다고 전해달라 했어요.

……네, 고마워요.

오늘도 역시 동료들의 소식은 없었다. 지난번 임무 보고를 본 게 언제였을까?

공중 정원으로 돌아온 후 15일 동안 임무 보고는 47호 도시의 지하 거점을 중심으로 꼬박꼬박 전해졌다.

그리 좋은 날들은 아니었지만, 안전하기만 하면 리브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15일 후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3일 동안 연락 두절 상태였고, 다시 보고를 받았을 때 루시아, 리, 크롬은 소수의 생존자와 함께 교회에 숨었다고 했다.

기록 전송 당시, 그들은 교회 폐허에서 전투 중인 관계로 별다른 상황을 알리지 못한 채 Ω2형 무기의 테스트 보고만 부랴부랴 보냈고, 자세한 데이터도 수집하지 못한 상태였다.

다음에 그녀가 동료와 지상의 상황에 대해 물었지만, ‘아직 새로운 보고가 없다’는 답변만 남아 있었다.

더 물어보면 그들에게 ‘정해진 위치에서 활동 중이며 나쁜 소식이 없으면 좋은 일’이라고 하고, ‘당신은 무거운 사명을 짊어지고 있으니 기체 적응을 우선시하라’고 되돌아올 것이다.

…………

정말 좋은 일일까?

생명의 별의 복도를 바라보던 리브는 그곳에서 리의 동생 머레이를 만났던 것이 떠올랐다.

평소 웃음이 가득했던 그 청년은 초조한 얼굴로 히포크라테스 교수를 찾아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녀는 궁금해서 히포크라테스에게 물었지만, 지금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루시아…… 리……

계속 따끔거리는 의식의 바다의 통증 속에서 리브는 그들의 단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리브, 이렇게 멍하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따뜻한 손이 갑자기 뒤에서 리브를 두드렸다.

어머……!

하하, 놀랐어?

교, 교수님……

응, 잠깐 올래? 너한테 할 말 있어.

히포크라테스는 리브를 데리고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player name] 지휘관이 있는 병실로 향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이게 너의 마지막, 음…… 출발 전 마지막 24시간이야.

정말요? 드디어……

곧 위험한 재난 속의 동료들과 합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리브는 무거운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하? 드디어?

다른 할 말 없어?

……죄송해요. 교수님, 저는……

앞에 있는 교수가 무엇을 묻고 싶은지 알고도 리브는 입을 열지 못했다.

이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인데, 또 눈물로 타인을 괴롭게 할 필요가 있을까?

더는 말을 하지 않는 리브를 본 히포크라테스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네가 학생이었을 때, 나와 다른 선생님들이 널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

그녀는 교수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보다가 평가 수첩에 적힌 그 내용들을 말해야 할지 망설이기도 했다.

성실, 노력, 공부?

아니, 넌 바보였어.

……네.

모두의 진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이 있었단 걸 알고 있어요.

불과 반년 전에 네게 임상 간호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돌아가셨어.

……

슬퍼하지 마. 그 나이면 세상을 떠나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니까. 그런데 떠나기 전에 너에 대한 얘기를 했었어.

히포크라테스는 주머니에서 지퍼백을 꺼내 [player name] 지휘관의 병상에 던졌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리브를 바라보았고, 슬픈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가려져 있었다.

이건……

리브가 침대 위의 지퍼백을 열자 그 안에는 용도가 다른 7개의 의료용 바늘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바늘들이 어디서 왔는지 한동안 생각나지 않았다.

이건 네가 의료병일 때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했던 물건이야.

그녀가 왜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느냐는 물음에 네가 어떻게 답했지?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 제 주사가 얼마나 아픈지 알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면 더 개선될 수 있으니까요.

연습용 전문 장비가 따로 있잖아? 꼭 스스로 느꼈어야 했니?

교수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player name]의 시트를 들어 올린 김에 진단을 했다.

그 선생님은 너 같은 바보가 스스로 피를 뽑고, 바늘을 꿰매고, 주사 맞는 걸 보고서…… 깊은 인상이 남았다고 했지……

나중에 그녀는 네가 사용한 것을 소독하고 거둬들이며,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라고 말하고는 많은 사상자를 목격했다고 해서 무감각해져서는 안 된다고 했지.

……하, ‘너무 많은 사상자를 목격했다고 해서 무감각해져서는 안 된다.’

예전 황금시대에 통증 제거 치료가 전면적으로 추진되었지만, 그 기계로 만들어지는 정밀 장비들은 전부 재난에 의해 원형을 되찾았지.

퍼니싱이 폭발한 후 대부분의 의료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고, 학생들도 장비의 피드백을 참고해 사용법을 연습할 수밖에 없었어. 확실히 제한이 많았지만 누가 그걸 신경 쓸 여유가 있었을까?

일부 생산 라인이 복구됐다 하더라도 작전 인원에게 필요한 장비를 우선 공급하고, 통증 제거보단 치료 효과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어.

전투와 생존이 가장 긴박한 일로 변하고, 죽음을 많이 목격하게 되면 무감각해질 텐데, 주사나 봉합 같은 그런 작은 통증이 얼마나 중요할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player name]의 몸에서 진단하던 손을 거둬 시트를 다시 덮었다.

그래서 내가 너를 바보라고 말한 거야.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은퇴했더라도, 네가 최근에 또 무슨 바보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안 볼 수가 없었지.

전에 네가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서 잘 지낸다는 얘기를 듣고 안심했어.

……하지만 이 세상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어.

히포크라테스는 고개를 숙였고, 리브는 그녀 눈 밑의 감정을 볼 수 없었다.

예전에 사람들이 ‘바보는 바보 복이 있다’라고 해서 바보는 전선에 나가지 않고 후방에 남아 죽지는 않는다고 말했지.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많은 학생들이 떠나는 것을 봐왔고, 이제 너마저 떠나려고 해.

남을 수 없는 사람을 붙잡는 듯 연로한 교수는 리브의 손목을 잡았고, 목소리는 울먹이며 떨고 있었다.

……교수님…… 저는……

여러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네가 희생해야 하는 계획을 바꾸지 못했어.

……앞에 있는 지휘관을 깨어나게 하지도 못했고.

……이건 내 실패야. 너무 이른 은퇴에 적지 않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어.

이제 우리는 [player name]이(가)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마주해야만 해.

……내가 그들에게 며칠만 더 기다리면 안 되겠냐고 설득을 해봤어. 너의 지휘관이 깨어난다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세상에는 매일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연구 진도를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했어……

미안해. 너를 남기지 못했어……

교수님…… 슬퍼하지 마세요. 과거든 현재든 교수님이 가르쳐 준 지식이 저를 지탱하고 있어요.

하…… 과거와 현재……

난 그저 네가 미래를 가지길 바랄 뿐이야.

그녀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으며 자신을 뒤흔든 슬픔들을 가슴속에 담았고, 그렇게 일어서서 병실 문으로 향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해도 이미 늦었겠지.

가자, 아시모프도 거의 준비 다 했을 거야.

……

히포크라테스를 따라 아시모프의 연구실로 돌아갔을 때, 그곳은 평소보다 조금 더 차가웠다.

수많은 스크린과 설비가 쌓여 있는 방에는 아시모프와 로사만 남아 있었다.

리브가 들어오는 것을 본 작은 조수가 그녀에게 경례한 뒤 잡다한 물건이 담긴 상자를 들고 떠났다.

이 기체가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은 퍼니싱을 "정화"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야. 이는 인간 역사상 처음으로 퍼니싱을 진정으로 소멸시킬 수 있게 된 거라고.

그래서 기체 변경과 관련된 기밀 내용은 이번에 나와 히포크라테스 교수만 알고 있어.

아시모프는 앞에 놓인 자료에 시선을 둔 채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대행자를 토대로 하는 대량의 데이터를 사용했으니, 이 기체도 대행자에 버금가는 능력을 보여줄 거야.

하지만 그건 결국 ‘가짜’일뿐이야. 너도 자료 기록에 있는 소위 그 선별이라는 걸 거치지 않았지.

실전이 시작되면 너는 곧 한계에 봉착해 각종 제어 불가 상태가 나타날 거야.

앞선 루시아와 크롬의 특화 기체와 달리…… 이번에 난 너에게 어떤 보증도 할 수가 없어.

네, 알겠어요.

검증되지 않은 추측일 뿐이지만.

특화 기체에 ‘흡수’된 퍼니싱은 Ω무기에 ‘흡수’될 겨를도 없이 너의 침식치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하게 할 거야.

……어쩌면 그 특화 기체의 도움으로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승격 네트워크에 진입할지도 몰라.

승격 네트워크?

맞아. 그 가정이 정말 실현된다면, 이건 보기 드문 기회가 될 거야.

제가 뭘 해야 하죠?

대비만 잘 하면 돼. 의식의 바다 감시침으로 네가 보는 모든 걸 우리도 보게 될 거야.

이전 자료의 기록에서, 승격 네트워크는 수많은 침식체들 사이에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구축된 네트워크인 걸 알 수 있었어.

하지만 대행자, 적조, 이합 생물을 본 후 그들의 배후 관계에 대해 더는 알지 못했지.

아시모프는 미처 갱신하지 못한 자료에 지친 듯 눈을 감았다. 그에게든, 종말의 생명에 있어서든 기술과 자료에 대한 갱신 속도가 너무 느렸다.

시작할까? 아시모프.

그래도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 지금은 크롬 때와는 상황이 달라. 리브는 다치지 않았고, 나도 여기 있잖아.

이번에 기체를 변경할 때 지휘관이 필요 없을 거야.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 들어가기 전, 그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 혼자 버텼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 들어간 후 [player name]은(는) 그녀에게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지휘관과 동료들이 늘 그녀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네.

그녀는 한때 혼자였기 때문에 지금도 혼자서 할 수 있었다.

그 거대한 재난 속의 고난에 비하면 그녀가 받는 고통, 마음속의 외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희는 곧 서광의 일각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정비대에서 작은 굉음 소리가 울리며 표시등이 하나씩 켜지더니 어두컴컴한 연구실에 온기를 약간 더했다.

두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리브는 희미한 빛에 둘러싸인 종점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